불법 정치자금을 받은 혐의로 대법원에서 징연 2년을 확정받은 새정치민주연합 한명숙 의원(오른쪽)이 20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긴급 회의가 끝난 뒤 문재인 대표(왼쪽)와 동료 의원들의 배웅을 받으며 차량으로 이동하고 있다.[사진제공=뉴시스]

한명숙 前총리가 24일 서울구치소에 수감됐다. 언론을 통해 이미 알려진 것처럼 한 前총리는 대법원이 불법정치자금 수수죄로 징역 2년을 확정한 이 판결이 부당하다고 거듭 주장하고 있다. 대법원 선고가 내려진 지난 20일 그가 밝힌 입장문 마지막 세 문장을 보면 “국민 앞에서 저는 떳떳하고 당당하게 선언합니다. 역사와 양심의 법정에서 저는 ‘무죄’입니다. 비록 제 인신을 구속한다 해도 저의 양심과 진실마저 투옥할 수는 없습니다.”라고 밝힌다.

문구 그대로만 보면 그는 사실상 양심수이다. 한 前총리는 투옥되는 서울구치소 앞에서 상복 차림으로 "사법정의가 죽었다. 사법정의를 다시 살려 달라”며 끝까지 대법원 판결을 정치탄압이라고 몰아세웠다. 오랫동안 한국을 대표하는 여성운동가로 일해 온 한명숙 前총리는 2000년 16대 총선 때 김대중 대통령의 발탁에 의해 정치인으로 변신했다. 이후 3선 국회의원과 초대 여성부장관, 참여정부 초대 환경부장관, 초대 여성 국무총리 등을 거쳐 3공화국 당시 민중당의 박순천 당수 이후 45년 만에 민주당계열 정당의 여성 당대표로 선출되며 화려한 조명을 받아왔다. 그랬던 그가 난데없는 비리 혐의로 감옥행이라니? 본인은 물론 그가 속한 정당과 지지자들도 받아들이기가 무척 힘들 것이다.

그러나 정작 실소를 금할 수 없는 태도를 보인 이는 바로 새정치연합의 문재인 당대표이다. 그는 대법원 선고 당일 기자들에게 "이번 사건은 돈을 준 사람도 없고 돈을 받은 사람도 없다. 대법원이 잘못된 항소심 판결을 유지한 것은 정말 유감이다. 검찰의 정치화에 이어 법원까지 정치화됐다는 우려를 금할 수 없다."고 언급했다. 한 마디로 법원을 동원한 정치보복이라는 뜻이다. 그는 또한 26일 열린 비공개 최고위원회의에서는 한 前총리의 추징금 모금제안과 재심청구가 가능한지까지 검토해보라고 했다. 당내 이견으로 불발은 됐지만 130석의 거대 야당을 이끄는 공인의 언사로는 참으로 부적절하기 짝이 없다. 그런데 그의 과거 발언과 행동은 지금의 그것과는 무척 다르다.

임종석 서울시 정무부시장은 신삼길 삼화저축은행 명예회장에게서 불법정치자금 1억여원을 받은 혐의로 2011년 7월 불구속 기소됐다. 5개월 후 열린 1심 선고공판에서 임 부시장은 징역 6월에 집행유예 1년 형을 언도받았다. 2012년 1월 전당대회에서 당대표로 선출된 한명숙 前총리는 이러한 흠결이 있는 임 부시장을 ‘무죄 추정의 원칙’에 따라 사무총장으로 임명을 한다. 사무총장은 공천실무를 관장하는 매우 중요한 직책이지만 정무적인 판단은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

한편 민주통합당 합당 당시 한 축으로 참여한 문재인 노무현재단 이사장, 김두관 前경남지사, 이해찬 前총리 등 '혁신과 통합'의 상임대표단은 공천심사가 한창이던 2012년 2월 20일 '민주통합당, 혁신만이 살길입니다'라는 제목의 성명을 통해 “불법・비리 전력을 가진 후보에 대해서는 원칙적으로 심사대상에서 배제하며 공천심사위의 판단에 따라 구제 여지를 두고 있다. 확정판결이 나지는 않았지만 법률적으로 다툼의 여지없이 사실관계가 확인된 경우에는 배제하는 원칙 또한 명확히 세워야 한다.”라고 임종석 사무총장 등을 겨냥했다.

비리혐의로 형사 기소 시 당원권을 정지시켜서 원천적으로 공천신청 자체를 하지 못하도록 했던 당시 새누리당의 혁신공천에 자극을 받은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 성명 발표 나흘 뒤 공천심사위는 임 총장을 서울 성동(을)에, 이화영 前의원을 강원도 동해삼척에 단수 공천했다. 이화영 前의원은 제일저축은행 유동천 회장으로부터 불법정치자금을 받은 혐의로 불구속 기소된 상태였다.

급기야 부산에서 힘겹게 선거운동을 하던 문재인 후보까지 상경, 한명숙 대표를 면담하고 임 총장의 공천 자진사퇴 또는 당의 공천 철회를 강력하게 요구하였다. 여론의 반발까지 더해지면서 결국 임 총장은 당직과 공천 모두를 자진 반납하고 말았다. 일주일 후 당은 이 前의원에 대하여도 여론에 떼밀려 공천 취소를 결정한다. 그런데 임 부시장은 지난해 3월 대법원에서 최종 무죄를 선고받았다. 이 前의원 역시 1, 2심 모두 무죄를 선고받았다. 2년여 동안 화병을 키워온 이 두 사람은 정말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다.

도대체 새정치연합의 고무줄 잣대는 무엇이 기준인가? 법원의 최종 판결도 나지 않은 임종석․이화영 前의원은 공천에서 원천 배제해버리고 사법부의 최종 판결이 이루어진 사건은 정치재판이라고 몰아붙이면 누가 동의하겠는가?

물론 한명숙 前총리 사건은 한만호 前한신건영 사장의 진술 번복으로 돈을 준 사람도 없고 돈을 받은 사람도 없다는 주장이다. 평생을 민주화운동과 여성운동가로, 그리고 공직에 들어와서도 청렴한 이미지로 일해 온 한명숙 前총리의 처지에서는 매우 억울한 일이기도 할 것이다. 그러나 문재인 대표의 입장은 이와는 전혀 다르다. 그는 한명숙 前총리의 개인 변호인이 아니다. 지난 대선에서 무려 1,470만명 유권자의 지지를 받았고 지금은 제1야당 당대표인데 우리나라 사법체계를 부인하는 듯한 표현까지 사용했다. 임종석․이화영 前의원을 대했던 태도와 비교하면 명백한 자가당착이다.

20년 이상 변호사로 활동해온 문재인 대표의 준법의식 결여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최근 실시한 인사에서 부적격 인물들을 잇달아 발탁하고 있으니 알고 했다면 부도덕이요 모르고 했다면 무능일 것이다. 최재성 사무총장 임명 갈등으로 인해 사무총장직이 폐지되고 5본부장 체제가 시행된 직후인 7월 22일 문 대표는 뇌물죄 전력자인 이윤석 의원을 핵심 요직인 조직본부장에 임명했다.

전남도의회 의장 재직 시 건설사로부터 공사발주를 이유로 3천만원을 받은 사실이 인정돼 징역 2년 6월에 집행유예 3년이 확정된 이윤석 의원은 18대 총선 당시 통합민주당에 공천을 신청했으나 박재승 공천심사위로부터 원천 배제된 바 있다. 지난 2월 3일 개정된 당규에 따르더라도 이 의원은 여전히 공직선거후보자 부적격 기준에 해당한다. 공직선거후보자추천규정에는 뇌물, 알선수재, 공금횡령, 정치자금법위반, 성범죄, 개인비리 등 국민의 지탄을 받는 형사범 중 금고 및 집행유예 이상의 형이 확정된 자는 공직선거후보자검증위원회에서 부적격 기준으로 심사한다.

그런데 명백한 자격 미달인 사람을 20대 공천 실무를 관장하는 조직본부장에 임명한 문 대표의 배짱은 어디에서 나온 것일까? 문재인 대표는 취임 직후 ‘유능한 경제정당, 든든한 안보정당’을 캐치프레이즈로 내걸었다. 전통적인 야당 지지층들은 그가 '안보 정당'을 내세운 것에 대해서 의문을 표시했다. 안보 문제는 전통적으로 보수정당의 고유 영역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난 대선 당시 종북 프레임에 갇혀 중도층과 합리적 보수층을 공략하지 못해 패배했다고 판단한 탓에 이 같이 안보 이슈를 전면에 내걸었던 것이다.

문재인 대표는 목함 지뢰 사건으로부터 비롯된 남북 간 긴장상태 해결을 위한 고위급 협상이 한창이던 지난 23일 바로 이 안보정당의 핵심조직인 한반도평화안전보장특위를 구성해 박지원 의원을 위원장으로 앉혔다. 유능한 경제정당위원장을 맡은 정세균 의원에 이어 당대표급 위원장이다. 박 의원은 김대중 정부 당시 햇볕정책의 핵심인사이자 대북송금특검사건으로 인해 구속되어 실형을 살기도 했으니 당내에는 그만한 인물도 없다. 그런데 박 의원은 지난 7월 9일 2심에서 보해저축은행 오문철 대표에게서 3천만원을 받은 혐의(알선수재)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 받았다.

그런데 막바지를 향해 달려가는 당 혁신위원회는 지난 7월 20일 당헌 제127조를 신설하여 ‘뇌물과 불법 정치자금 수수 등 부정부패와 관련한 법위반 혐의로 기소된 지역위원장과 각급 당직자는 기소와 동시에 직무를 정지’하도록 제안하여 통과시켰다. 따라서 기왕의 지역위원장 직도 정지당해야할 처지에 놓인 박지원 의원을 당대표급 위원장으로 예우하는 문 대표의 각별한 인심은 총선을 앞둔 비주류 껴안기로, 또 광폭의 통합 행보로 이해해줘야 할 것인가?

그러나 힘 없고 빽 없는 허영일 부대변인은 남북 고위급 접촉이 타결된 지난 25일 개인 SNS에 "박근혜 대통령과 함께 김정은을 존경한다."는 외교적 수사(修辭)로 읽히는 글을 올렸다가 여당과 우익세력의 집중 포화를 맞은 끝에 이틀 후 직을 자진 사퇴했다. 28일 이종걸 원내대표는 한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허영일 前부대변인의 당적 제외 검토에 들어갔다고 전했다. 따라서 허 前부대변인의 당직 사퇴는 사실상 경질이라고 해석이 된다.

이처럼 내 편조차도 손해다 싶으면 칼 같이 쳐 내면서 새정치연합은 선거 주무장관이 여당의원들 앞에서 “총선 필승” 건배를 외쳐도 말로만 “투쟁”을 외칠 뿐이다. 문재인 대표의 기준은 내 이익이면 무죄이고 내 손해면 유죄라고?

 

최 광 웅

참여정부 인사제도비서관
민주당 조직사무부총장
현 데이터정치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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