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충일은 나라 위해 희생한 이들 기리는 국가 추념일
‘국가를 위한 헌신‘의 기준, 국가주의 태극기에 흔들려
보수 국가주의의 도구로 전락한 ‘핏빛’ 태극기와 한반도
현충일 아침 순국선열의 외침 “친일은 청산하셨는가?”


[스트레이트뉴스=김태현 선임기자] 현충일 아침, 순국선열들이 피로 지킨 한반도와 전몰장병들의 시신을 감쌌던 태극기가 국가주의에 오염되고 있다.

현충일은 ‘빨간 날’이다. 금요일 하루만 쉴 수 있다면 일요일까지 내리 나흘을 쉴 수 있다. 언젠가부터 우리에게 6월 6일은 오전 10시에 울리는 사이렌 소리에 충남 아산 현충사와 이순신 장군, 6・25 한국전쟁을 잠깐 떠올리고는 쉬는 날이 돼버렸다.

그러나 현충일은 ‘빨간 날’이다. 나라를 위해 희생한 순국선열과 전몰장병의 넋을 기리기 위해 지정된 ‘핏빛’ 낭자한 국가 추념일이다. 현충일이 6월로 지정된 유래는 1천여 년 전인 고려 현종 5년(1014년) 6월, 조정이 거란과 전쟁 중에 사망한 병사들의 유골을 고향집으로 보내 제사를 지내게 했던 전통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문재인 정부 보훈 분야 국정과제는 ‘국가를 위한 헌신을 잊지 않고 보답하는 나라’다. 국가보훈처(처장 피우진)는 지난해 참전명예수당과 진료비 감면 혜택을 역대 최대 규모로 확대했고, 국립연천현충원과 국립괴산호국원, 제주국립묘지 등 안장시설도 신설 중이다. 국가유공자 사망 시 생계가 어려운 유족에게 장례비도 지원한다.

애국심과 국가주의

국가를 위해 헌신하다 유명을 달리한 사람은 현충일의 주인이고, 국가는 주인을 기려야 한다. 그런데 최근 ‘국가를 위한 헌신’의 기준이 흔들리고 있다. 두 가지 의미의 태극기 탓이다. 하나는 대한민국을 애국심의 기치 아래 하나로 묶어왔던 전통적 의미의 태극기다. 또 하나는 최근 몇 년 사이 부쩍 늘어난 국가주의(Statism)적 태극기다.

애국심과 국가주의의 차이는 “누가 역사를 만드는가?”에 대한 답변으로 판가름 난다. 이 질문에 “국민”이라고 답한다면, 그는 애국자다. “국가”라고 답한다면, 그는 국민보다 국가를 상위에 두는 국가주의자다. 국가가 잘못된 방향으로 갈 때, 애국자는 국가를 질타하지만, 국가주의자는 국가를 자랑스럽게 여긴다.

‘국가를 위한 헌신’의 기준은 이 지점에서 흔들린다. 엉망진창인 현실정치 중 대표적인 시금석이 바로 건국절이다. 이 문제는 우리 사회가 진보와 보수로 갈리는 지표이기도 하다. 대한민국 건국절은 상해임시정부가 수립된 1919년인가, 이승만 정부가 출범한 1948년인가?

진보 진영은 대한민국임시헌장(1919년)과 대한민국제헌헌법(1948년), 대한민국헌법(1987년)에 명시된 1919년을 건국절로 본다. 반면 보수 진영은 국가 성립의 세 가지 요소인 국민, 영토, 주권이 모두 갖춰진 1948년을 건국절로 본다. 보수 진영이 이승만 전 대통령을 국부로 내세우는 이유다.

이 경우, 안중근, 정정화, 윤봉길, 유관순 등 독립을 위해 투쟁하고 국가를 위해 헌신한 숱한 애국지사들은 대한민국의 역사에서 사라져 미아가 된다. 국가보훈처, 즉 국가가 ‘핏빛’ 현충일에 ‘잊지 않고 보답할’ 근거가 사라지는 것이다.

국립서울현충원(자료:Flickr by Jordi S. Teruel)
국립서울현충원(자료:Flickr by Jordi S. Teruel)

애국지사 지우려는 보수 국가주의

2006년 뉴라이트 사학자 이영훈이 처음으로 건국절 논란을 촉발시킨 이후, 이명박 정부 한나라당은 건국절 제정 법안을 발의했고, 박근혜 정부는 역사 왜곡 국정교과서까지 만들었다. 자유한국당은 당 혁신선언문에 ‘1948년 건국’을 명시하기도 했다.

“나라를 아이에 비유하자면, 1919년에 임신은 됐을지 모르나, 아이가 태어난 생일은 1948년 8월 15일이다.”

자유한국당 심재철 의원이 어느 세미나에서 한 발언이다. 그러나 정작 이승만 전 대통령은 제헌국회의장 시절 “대한민국 30년”이라고 발언했고, 대통령 취임 당시 사용한 연호도 ‘대한민국 30년’이었으며, 그해 광복절에 개최된 정부출범행사도 ‘건국축하식’이 아닌 ‘정부수립축하식’이라고 불렀다. 보수 진영이 ‘건국의 아버지’로 추앙하려는 당사자가 1919년을 건국절로 인정했던 것이다.

지난 2016년, 광복군동지회 김영관 전 회장은 박근혜 대통령의 면전에서 이렇게 따졌다.

“대한민국이 1919년 4월 11일 중국 상하이에서 탄생했음은 역사적으로도 엄연한 사실이다. 왜 우리 스스로가 역사를 왜곡하면서까지 독립투쟁을 과소평가하고, 국란 시 나라를 되찾고자 투쟁한 임시정부의 역사적 의의를 외면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 역사를 잊은 민족은 미래가 없다고 했다.”

‘핏빛’ 현충일이 묻는다. “친일은 청산되었는가?” 진보 진영은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고, 보수 진영은 “미래를 보고 나아가자”고 한다. 이런 보수 진영의 배경에 국가주의가 있고, 새롭게 두각을 드러낸 보수 국가주의의 전위, 이른바 ‘태극기부대’가 있다.

보수 국가주의의 도구로 전락한 태극기 ⓒ스트레이트뉴스DB
보수 국가주의의 도구로 전락한 태극기 ⓒ스트레이트뉴스DB

국기는 국가주의의 요긴한 도구

보수가 태극기를 들고 거리로 나선 이유에 대해, 이미 사회적으로 제시된 답변들이 있다. 가짜뉴스 등 부정확한 정보와 선동, 여전히 남아 있는 유교문화에 의한 자발적 복종, 인지부조화 중 ‘유도된 복종 패러다임’과 같은 심리적 원인, 일부 기독교인들의 정치적 착각 등이 그런 것들이다.

그러나 그 모든 이유의 기저에 자리하고 있는 것은 국가주의다. 태극기를 든 시위대의 평균 연령은 매우 높다. 그들이 미처 개인 스스로 뭔가를 해 보기도 전인 젊은 시절부터 국가주의를 주입받았던 세대들이고 보면, 이를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국가가 국민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국민이 국가를 위해 존재한다는 이데올로기는, 상시 전쟁상태를 부각시키면서 사회를 국가 우선주의, 국가 지상주의로 몰아간다. 국기는 국가주의가 가장 요긴하게 활용하는 도구다.

그런 점에서, 건국절 논란은 국가주의와 밀착돼 있고, 국가주의는 다시 군부독재 및 친일 잔재와 긴밀히 연계돼 있다. 대한민국 헌법에는 ‘국가가 최고의 권리를 갖는다’는 조항이 단 한 줄도 없으며, 오직 ‘국가가 국민에게 해야 할 의무’만 있다는 사실을 그들에게 아무리 이야기해도 소용없다.

태극기부대가 이 사실을 인지하건 말건,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거꾸로, 이 연계고리가 해체되지 않는 한, 태극기는 앞으로도 보수 국가주의의 훌륭한 도구로 기능할 것이다.

‘핏빛 낭자한’ 현충일 아침, 나라를 위해 희생한 순국선열과 전몰장병들의 고함소리가 국가주의자들의 귓전에 쩌렁하다. “친일은 청산하셨는가? 그리고 우리가 피로 지킨 한반도와 태극기는 안녕하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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