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를 위한 정부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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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5일 고용노동부는 전국 기관장 회의를 열어 저성과자 일반해고와 취업규칙 변경요건 완화 지침을 노동현장에서 본격적으로 적용하도록 세부내용과 후속조치를 전달했다. 정부는 이 지침이 직무성과를 중심으로 일반해고기준을 제시하고, 정당한 해고 요건과 절차를 마련하여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이에 민주노총은 즉각적인 총파업 투쟁으로 맞서고 30일 대규모 시위가 예정되어 있어 갈등이 장기적으로 지속될 전망이다.

법보다 위에 있는 행정 지침

일반해고 기준의 경우, 근로관계를 더 이상 유지하기 곤란할 정도의 업무능력결여나 근무성적 부진에 따른 해고로 정하고 있다. 해고 근거로 취업규칙, 단체 협약 등에 업무능력 결여 등에 따른 해고 사유가 명시돼야 하며, 평가 기준으로 ‘근로자 평가에서 사용자 재량권을 원칙적으로 인정’ ‘공정성 확보를 위해 평가기준에 노사협의회, 노동조합, 근로자 대표 등 근로자 측 의견 반영절차 권장’ ‘상대평가보다 절대평가시 평가 합리성 인정’ ‘평가 결과 공개 및 이의제기 절차 마련’을 규정하고 있다. 이 평가 후에는 업무능력 향상 교육훈련 프로그램을 마련하고, 전환 배치 등의 해고 회피 기회를 준다고 한다. 그리고 이후에도 개선이 없고, 감봉 등의 처분을 받은 후에 최하위 등급 평가를 받는 경우 해고 대상자가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취업규칙 변경 완화의 경우, 근로자의 집단적 동의절차가 필요 없는 취업규칙 변경의 요건인 ‘사회통념상 합리성’의 판단 기준으로 취업 규칙 변경이 효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이 행정지침은 근로자의 불이익 정도, 사용자 측의 변경 필요성, 변경된 취업규칙 내용의 상당성, 다른 근로조건의 개선 여부, 노조 등과의 충분한 협의 노력, 국내 일반적인 상황 등 6가기 요소를 제시했다. 결국, 노조 등이 ‘대안’을 내놓지 못하면 사측은 ‘사회통념상 합리성’을 근거로 낮은 임금 발동과 임금피크제 도입을 가능하게 하였다.

이 지침은 절차상으로 보면, 매우 공평하고 형식논리가 완전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정부 행정 지침은 노동자의 해고를 징계해고와 경영상의 해고로 엄격히 제한하고 있는 근로기준법 제23조를 무력화 시킨다는 비판에 직면해 있으며, 취업규칙 변경의 사유인 ‘사회적 통념상 합리성’도 근로자에게 불이익을 주는 방향으로 변경하려면 노조나 근로자 과반수 대표의 동의를 받도록 하고 있는 현행 노동관계법령의 ‘취업규칙 불이익 변경 금지’원칙을 위배하고 있음으로 해서 노조의 반발을 사고 있다.

반 노동, 반 인권적 악법

또한 이 행정 지침들은 박근혜 정부의 반 노동, 반 인권적인 폭력성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일반해고는 자본주의 경쟁 사회에서 꼴찌는 무조건 배제되고, 쫓겨나가야 하는 사회를 만든다.

이 지침은 국가가 나서서 꼴찌를 노동과 사회에서 배제시키도록 조장하고 합법화 시키는 결과를 야기하고 있다. 직장으로 부터 배제된 꼴지는 다른 노동으로부터 배제될 것이고, 이는 사회적 배제, 더 나아가서는 삶으로부터 배제를 야기할 수 있다.

실상, 국가 본연의 역할은 이러한 결과를 야기하는 자본주의적 시장경제의 야만성으로부터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을 지키고 꼴찌도 사회의 일원으로 노동하고 살아갈 수 있도록 보호해야 하는 의무를 지고 있다. 그럼에도 정부가 먼저 나서서 이를 조장하는 행태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한편, 취업규칙 변경 완화는 기업 경영의 문제, 사업의 저성과 책임을 노동자에게 일방적으로 전가시키면서 임금을 깍거나 경영 편의주의적으로 임금피크제제를 도입하도록 함으로써 노동자를 쉽게 희생재물로 내몰 수 있게 하고 있다. 정부가 경영자의 일방적 갑질을 제도적으로 보호하는 형국이 되어버리고 있다.

이처럼 고용노동부가 마련한 지침들은 노동력을 선별하고, 노동자를 기업의 이윤만을 위한 감독과 감시의 대상으로 삼도록 부추기고 있다. 노동자를 기업과 노동의 노예로 만드는 악법이 아닐 수 없다.

막스베버(Max Weber)는 초기 자본주의 사회에서 소명으로서의 노동, 노동 자체가 절대적인 목적이 되고 이를 바탕으로 자본주의가 발전하여 왔음을 보았다. 베버에 따르면, 이러한 노동윤리가 자본주의가 발전하는 중요한 내적 동기가 되었다. 이 행정 지침들은 이와같이 자본주의의 근간을 이루어 왔던 노동의 가치, 자본주의 정신까지도 부정하는 반 노동, 반 인권적인 악법이 아닐 수 없다. ‘우수 노동과 열등 노동’ ‘회사의 우등생과 열등생’을 합법적으로 구별하고, 열등생은 회사로부터 퇴출시키면서 새로운 차별주의를 조장하는 반 인권적인 제도가 아닐 수 없다.

노동 문화의 관료주의 화

민주노총은 일반해고 지침이 현행법과 판례에 반하는 상시적 일반해고를 도입하려는 ‘행정독재’라고 비판한다.

이제 노동자는 매시간, 어느 장소에서든 감시와 통제, 직무 압박에 시달리는 노예화로 전락할 위험에 처하게 되었다. 또한 취업규칙 변경 요건완화 지침으로 노동자의 운명은 사용자의 독단적 결정에 내맡겨지게 되었다.

정부는 합리적인 평가 절차와 기준을 마련하고 있다고 하지만 이 탁상공론과 같은 정부의 지침들이 현장에서 실행될 수 없다는 것은 불 보듯 뻔하다. 오히려 이 지침으로 인해 노동법이 정하고 있는 노동 조건에 대한 노동자의 단체 교섭권이 무력화되고 경영자가 일방적이고 전횡적인 의사 결정을 행사할 수 있게 되었다.

또한 ‘사회통념상 합리성’이라는 가면을 쓴 경영자의 일방적 취업규칙에 대한 결정은 노동자의 신분을 더욱 불안전하게 만들고 있다. 노조들은 이 지침이 노동법이 정하고 있는 노사간의 노동조건 대등결정의 원칙을 위협하는 불법적 지침이라고 정부를 비판하고 있다. 이 지침들은 노동자와 고용자, 노동조합과 경영층과의 자율적이고 상호 견제와 균형 있는 노사관계를 무너뜨리고, 관료주의적 경영자 중심의 노동관계를 고착화시키는 결과를 낳게 될 것이다.

상호협상, 견제와 균형, 노동조합의 권리가 보장되는 노동 문화는 소멸되고, 경영자의 일방향적 의사결정에 따른 기업 경영, 그리고 노동의 종속화와 비 민주주의적 관료주의화가 심화될 것이 우려 된다.

작년에 양대 지침이 예고된 후 노동 현장에선 이미 저성과자 해고가 급증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기업들이 지침을 자신들의 편의에 따른 해고 수단으로 악용하고 있음이 드러난 것이다. 민주노총이 공개한 보고서 ‘노동위원회 판정사례로 본 일반해고 지침의 위험성’에 따르면, 작년 한 해 노동위에 접수된 저성과 해고(업무 능력 결여와 근무 성적 저조 등이 사유가 된 해고) 구제신청 건수는 183건이었다. 이는 2014년 144건 보다 27%(39건)가 증가 한 수치다.

민노총은 노동위도 태도를 바꾸면서 사업주의 손을 들어주는 경우가 많았다고 지적한다. 과연 정부의 역할이 어디에 있는지 다시금 돌아보게 된다. 국민과 다수의 노동자 보다 소수의 사업주의 이익을 대변하는 정부의 모습을 보면서 누구를 위한 정부인지 의문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

 

박태순
파리1대학 정치학 박사
성균관대학 초빙교수
미디어로드 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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