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의 선거는 ‘가나안의 혼인잔치’

총선이 50여일 남았다. 시민들은 또 한 번 이 나라의 주인임을 피부로 느끼는 시간들이다. 머리를 조아리면서 인사하는 많은 후보자들 앞에서 당당해질 수 있는 유일한 시간들일 것이다. 그럼에도 다수 국민들은 총선에 무관심하거나 애써 외면하고 있다. 시민들은 벌써 선거 피로감을 호소하면서 짜증 섞인 목소리로 ‘정치 얘기 그만 해라’라고 이야기한다. 왜 그럴까?

대의민주주의 정치체제에서 선거는 민주주의의 꽃이라고 이야기한다. 선거는 현실 정치로부터 소외되어 방관자로 있던 국민 개개인을 정치의 주체로 호명한다. 그리고 각자의 의사 표현을 통해 대표자를 선출하고 그들로 하여금 정치적 의사결정과 정책 추진의 권한을 위임해준다. 그러므로 선거는 권력의 생성과 위임, 그리고 상징의 정치가 작동하는 일종의 의식(retual)인 것이다.

선거에 당선된 개개인은 구청장, 시장, 국회의원, 대통령이라는 상징들을 현현화(incarnation)하여 각 상징이 의미하는 권력에 대하여 절대적인 권한을 위임 받는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우리는 절차적 민주주의라고 부른다. 따라서 선거는 경건한 것이고 사회구성원 모두가 참여하여 민주적 정치의 장을 여는 축제이며, 이러한 선거 과정을 통해 민주주의에 대하여 절대적인 신념을 갖게 된다.

그런데 현실은 어떠한가? 오늘날 다수 시민들은 이러한 절대적 신념에 대해 점점 더 크고 강하게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선거를 왜 해야 하는지, 정치가 일상의 생활과 무슨 관계가 있는지, 내가 투표한 정치인들이 나의 목소리를 대변하는지 등.

정치에 대한 시민들의 의구심에 대해 정치학자들은 대의민주주의의 위기라고 부른다. 소르본느 정치학 교수인 루시앵 스페즈(Lucien Sfez)는 현대 사회 위기의 근원을 대표성(representation)의 위기, 즉 대의적 시스템의 위기로 진단하고 있다.

현대인의 사유 시스템, 가치 시스템, 경제 시스템 그리고 정치 시스템은 모두 대의시스템(representation system)과 연결되어 있다. 그리고 이 대의시스템은 신뢰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 그러므로 신뢰가 무너지면 대의시스템은 정당성을 상실하고 위기를 맞게 된다. 피 대표자와 대표자 간의 신뢰상실이 우리사회 곳곳에서 나타난다.

기업에서 일반 주주 및 사원과 대표 사이의 불신, 유권자와 선출된 정치인 사이의 불신, 시민과 정부 관료 사이의 불신, 교인과 종교지도자 사이의 불신들이 만연하면서 사회의 리더십은 상실되고, 혼란은 가중되고 있다.

Lucien Sfez

그 중에서도 정치적 대표성에 대한 불신은 우리사회에서 대의 민주주의의 근본적인 위기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시사잡지 편집자인 시몬 스트런스키(Simeon Strunsky)는 “민주주의를 이해하려는 사람들은 도서관에서 아리스토텔레스를 읽기 보다는 버스와 지하철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내야한다”고 이야기한다.

정치적 대표성의 위기는 바로 버스와 지하철의 풍경에서 보여지는 시민들의 삶, 시민들의 열망을 정책과 국가운영을 위해 효과적으로 전달하고, 반영해야하는 선출된 대표자들이 자신의 역할을 방기하고, ‘국회의원’ 혹은 ‘대통령’이라는 직책에 의해 상징적으로 주어진 권력을 탐욕하는데 몰두하기 때문이다.

이 대목에서 리처드 스위프트이 이야기를 들어보자

“정치체제에 대한 선택에서 민주주의는 승리했지만, 대중의 불만은 점증하고 있다. 투표율을 비롯한 참여의 지표들은 급격한 하락세를 보인다. 평범한 시민들은 정치 과정에서 멀어지고 있고, 정치를 지배하는 것은 항구적인 정치 계급이다. 돈과 돈을 통제하는 사람들은 쉽게 민주적 정책 결정의 결과를 주조한다. 국제적인 여론조사 결과는 다수의 사람들이 여전히 다수결이 민주주의라고 믿고 있다는 것을 보여 주지만, 이런 현상은 민주주의 개념의 위기를 낳고 있다.”

우리사회에서 민주주의는 평범한 서민이자 약자인 나에게 과연 희망이 될 수 있을까? 총선 과정에서 보여지는 일련의 행태를 보면, 그 어떤 희망도 찾아 볼 수 없는 것 같다. 자신들만의 리그 속에서 공천을 위한 쟁투, 그리고 상대 당에 대한 공허한 비방과 모욕적인 담론 투쟁이 난무하는 가운데, 시민들은 총선이후 자신들의 실생활이 어떤 변화를 맞을까에 대해 전혀 예측되지 않는다. 과연 선거는 국민 모두가 주인이 되는 민주주의의 축제인가?

루브루 박물관을 가면, 16세기 이탈리아의 화가 파올로 베르네제가 그린 ‘가나안의 혼인잔치’가 있다. 16세기 베네치아를 배경으로 화려한 의복을 한 귀족들이 1세기 당시의 초라한 옷을 입고 있는 예수님을 가운데 모시고 잔치를 벌이고 있다. 음악과 술이 넘쳐나는 축제 속에서 예수님은 무표정하게 정면만 응시하고 있다. 그리고 초대받지 못한 베네치아의 가난한 서민들과 개 한 마리가 먼 테라스에서 이 잔치를 무표정하게 바라보고 있다.

지금 총선의 모습을 보면 16세기에 그린 이 그림이 떠오른다. 축제의 본질(예수 그리스도)과 축제의 주인(시민)이 소외된 가나안의 혼인잔치, 마찬가지로 민주주의의 축제라는 총선에서 정치의 본질과 진정한 주인인 유권자가 배제된 현재의 정치 행태가 평행이론처럼 스쳐지나간다.

 

 

박태순
파리1대학 정치학 박사
성균관대학 초빙교수
미디어로드 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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