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채용비리 혐의로 수사의뢰한 공공기관의 명단을 공개, 15개 부처 산하 33개 기관이 비리혐의로 수사당국의 조사를 받는다.

이번에 드러난 채용비리 백태를 살펴보면 소위 '빽'과 연줄을 무기로 채용 합격자가 결정된 사례가 부지기수였다. 합격자가 내정된 사례는 오히려 점잖은 축에 속했다. 면접관도 아닌 고위인사가 면접장에 난입해 특혜를 주고, 서류도 제출하지 않은 고위 인사의 자녀가 채용되는 등 기만적 행태가 만연했다.

특히 이번 채용비리에서는 '고위인사'라는 단어가 가장 많이 등장한다. 일부 '고위인사'들이 자신의 영향력을 행사해 가장 공정해야할 공공기관의 채용 과정을 좌지우지 한 것이다.

'신의 직장' 공공기관 채용비리 '백화점 수준'

고위인사들이 면접 과정에 개입한 사례는 그야말로 수두룩했다. 

한국건강증진개발원의 면접장에는 허락되지 않은 고위인사가 입실했다. 그는 면접위원도 아니었지만, 면접에 참석해 특정인에게만 질의하면서 다분히 의도를 드러냈다. 

항공안전기술원에서도 고위인사가 직접 면접위원으로 참석해 지인을 채용한 사례가 적발됐다. 국민체육진흥공단은 고위인사의 지시로 특정인 단독면접을 진행한 뒤 특혜채용했다.

세종학당재단, 국립해양생물자원관, 한국벤처투자, 한국장애인개발원,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 등도 고위인사가 면접 과정에서 영향력을 행사한 것으로 나타났다. 

정해진 절차를 무시하고 채용된 경우도 즐비했다.

한식진흥원에서는 경력도 없고 서류도 제출하지 않은 이가 채용됐다. 알고보니 고위인사 지인의 자녀가 특별채용 형식으로 서류와 면점심사를 보고 채용된 것이다.

워터웨이플러스에서도 고위인사의 지시로 채용절차 없이 특정인이 특혜채용된 경우가 밝혀졌다. 서류전형과 같은 절차는 물론 채용 공고도 내지 않고 채용이 진행됐다.

한국원자력의학원은 인사위원회에서 특정인 채용이 부결되자 고위인사의 지시로 다시 위원회를 열어 결정을 번복했다. 한국직업능력개발원도 인사위원회에서 부결된 특정인을 채용했다. 한국에너지기술연구원과 동남권원자력의학원, 국제원산지정보원 등은 자격미달 응시자를 최종합격시켰다.

특정인을 일단 계약직으로 채용한 뒤 정규직으로 전환시켜주는 '꼼수채용'도 곳곳에서 발견됐다.

한국광해관리공단은 고위 관계자의 자녀를 계약직으로 채용한 뒤 면접에서 최고점을 주고 정규직으로 전환했다.

한국에너지기술평가원도 고위인사가 지인에게 소개받은 특정인을 계약직으로 채용한 뒤 무기계약직으로 전환시켜줬다. 국립중앙의료원도 특정인을 계약직으로 채용해 정규직으로 전환했다.

아예 공모기준을 특정인에 맞게 뜯어고친 사례도 적지 않았다. 

경제인문사회연구소는 당초 공고를 다른 기준으로 변경해 내부인과 친분이 있는 특정인을 뽑았다. 강원대병원은 공고 이후 채용인원을 조정해 특혜를 줬고, 한국법무보호복지공단은 공고일을 임의로 단축해 내부 계약직원을 채용했다.

이 밖에도 한국수출입은행과, 서울대병원, 환경보존협회,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은 채용과정에서 배점을 조정하는 등의 방식으로 특정인에게 특혜를 제공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10월 30일 서울 한국무역보험공사에서 산업통상자원부 주최로 열린 '채용비리 근절을 위한 공공기관 회의'에서 산업부 산하 공공기관 채용담당 임원들이 채용비리 근절 서약서에 서명하고 있다.
지난해 10월 30일 서울 한국무역보험공사에서 산업통상자원부 주최로 열린 '채용비리 근절을 위한 공공기관 회의'에서 산업부 산하 공공기관 채용담당 임원들이 채용비리 근절 서약서에 서명하고 있다.

정부 칼 빼들었지만…실효성은?

이와 함께 정부는 공공기관 채용비리 특별점검의 후속조치로 피해자 구제를 추진하기로 했다.  피해자가 특정되면 예비합격자 순번을 부여하는 등의 방식으로 잘못을 바로잡겠다는 것인다.

그러나 실제 구제 사례가 나오기까지는 적지 않은 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보여 실효성 논란이 일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부는 현재까지 채용비리 관련 사건으로 수사의뢰된 부정합격자를 50명으로 추산했다. 최대 50명의 피해자가 구제 조치에 따라 뒤늦은 합격증을 손에 쥘 수도 있다는 뜻이다.

하지만 정부가 이같은 방침을 정했음에도, 실제 피해자가 다시 채용되기까지는 넘어야할 산이 많다.

먼저 이같은 피해자 구제가 추진되기 위해서는 부정합격자의 채용비리 사실이 확정돼야한다. 부정합격 사실이 법적으로 입증되지 않은 상황에서 피해자 구제를 시작했다가 정작 무죄 판결이 나면 수습이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정부는 합격자 본인이 채용비리에 직접 가담해 기소될 경우 직접 가담하지 않더라도 채용비리 사건의 공소장에 명시되는 경우 퇴출 절차를 밟기로 했다.

결국 수사가 어느정도 마무리되야 퇴출이 가능해진다는 뜻인데, 정부의 수사의뢰 건수가 109건에 달하는 점을 감안하면 빠른 시간 내에 결론이 나기는 어려워 보인다.

구제 요건인 피해자를 특정하는 문제도 쉽지 않아 보인다. 

부정합격자로 인해 채용 과정에서 불이익을 받은 사실이 확연히 드러나야하는데, 적지 않은 비리 사례에서 피해자를 특정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일례로 한국법무보호복지공단은 채용공고를 공단 홈페이지에만 공고하고 공고일을 임의로 단축한 뒤 내부 계약직원을 채용했다. 이같은 상황에서는 채용비리 혐의가 확정되더라도 피해자를 특정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정부는 공공기관 별로 구제조치를 시행할 계획이라 형평성 문제도 불거질 수 있다. 이번 조사가 과거 5년간 채용 전반을 살핀 만큼, 상당한 시일이 지난 사건은 구제조치가 진행되도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도 나올 수 있다.

만일 2013년 채용과정에서 비리가 있어 특정 피해자에게 5년 만에 다시 채용기회를 준다면, 피해자 입장에서는 실질적인 피해보상이 아닐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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