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트레이트 연재-보이지 않는 경제학] 〈16〉화폐의 기원
[스트레이트 연재-보이지 않는 경제학] 〈16〉화폐의 기원
  • 현재욱 선임기자 (jeffhyun@naver.com)
  • 승인 2018.1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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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세기에 나타난 자본주의로 인해 사람들의 생활은 풍요로워졌다. 그러나 자본가들의 무한 이윤획득에 의해 세계 경제는 불균등하고 불공정해지고 있다. 정치적으로도 강대국의 힘이 거세지면서 각종 모순적 요소가 심화되고 있다. 이러한 문제의 원인을 알기 위해선 현대 경제의 중요한 쟁점들이 무엇인지 이해하고, 그 쟁점들의 핵심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경제학의 세계에서 벌어지는 모든 현상과 논쟁을 우리가 알아야 할까? 몰라도 무방한 것들이 있지만, 반드시 알아야 할 것들이 있다. 경제학 논쟁이 경제 정책으로 이어지고, 그 정책은 보통 누군가에게는 유리하고 누군가에게는 불리할 뿐 아니라 나라의 운명과도 연결되기 때문이다. 스트레이트뉴스는 오늘날 우리 사회에 뜨거운 쟁점으로 떠오른 경제의 주요 요소들을 비판적으로 바라볼 수 있도록 본지 선임기자 현재욱의 저작인 「보이지 않는 경제학」을 연재한다. [편집자 주]

화폐의 기원

어린 시절 나는 조개껍질이 고대에 화폐로 사용되었다는 이야기를 책에서 읽고 의문에 사로잡혔다. 정말?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하지? 그럼 누구나 쉽게 부자가 될 수 있었겠네. 바닷가에 가서 바구니에다 조개껍질(돈)을 쓸어 담으면 되니까. 날마다 써레로 소금밭을 쓸고 다니는 사람에게 한때 소금이 돈으로 쓰였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듯, 바닷가에 조개가 널린 곳에서 나고 자란 아이가 조개화폐를 이해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 의문이 풀린 것은 많은 세월이 흐른 뒤였다. 한자에서 조개의 상형문자인 貝가 부수로 쓰인 글자는 대부분 돈, 재산, 부富, 상행위와 관련된 의미를 가진다. 財(재물 재), 貨(재화 화), 貢(공물 공), 貴(귀할 귀),
貫(돈꿰미 관), 貸(빌려줄 대), 賃(품삯 임), 買(살 매), 賣(팔 매), 貿(바꿀 무), 費(쓸 비), 賞(칭찬할 상), 資(밑천 자), 貯(쌓을 저), 販(장사할 판) 등 일상적으로 쓰는 한자어에서 그 용례를 풍부하게 찾아볼 수 있다. 이 정도면 한때 조개가 돈으로 인정받았다는 사실을 입증하기에 충분해 보인다.

그래도 아직 의문이 남는다. 왜 조개란 말인가? 살을 파먹고 나면 그냥 쓰레기일 뿐인데. 조개를 나타내는 상형문자가 또 있다. 바로 辰(별 진, 때 신)이라는 글자다. 지금은 다른 의미로 쓰이고 있지만, 본래 빨판을 내밀고 기어가는 조개의 모양을 본뜬 글자다. 이 글자가 만들어질 당시에 조개껍질은 농사일에 널리 사용되는 도구의 재료였다. 農(농사 농), 耨(김맬 누) 같은 글자에 그 흔적이 남아있다. 耒(쟁기 뢰)와 결합된 辱(욕볼 욕)은 손寸에 농기구辰를 쥐고 밭에서 일하는 모습을 그린 글자다.

밭일은 고되고 힘든 일이었다. 쇠붙이가 발명되기 전까지 조개껍질은 단단하면서도 가공하기 쉬운 재료로 인기를 끌었다. 게다가 조개껍질은 지도자의 권위를 나타내는 아름다운 장신구로 거듭나기도 한다. 이쯤되면 조개껍질은 돈으로 사용되기에 부족함이 없어 보인다. 누군지는 모르지만 貝라는 글자를 만든 사람에게 놀라운 영감을 주었을 별보배고둥 껍데기는 아프리카, 남아시아, 동아시아, 오세아니아 전역에서 약 4,000년간 화폐로 쓰였다.

‘발이 달린 돈’도 있었다. 고대 유럽 사회에서 소는 고액권 화폐였다. 스페인어로 돈을 페쿠니아pecunia라고 하는데, 어원은 가축을 의미하는 라틴어 페쿠스pecus다. 자본이라는 의미의 영어 단어 캐피탈capital은 황소의 머릿수를 뜻하는 라틴어 카푸트caput에서 유래했다. 요금을 뜻하는 피fee도 가축이라는 의미의 게르만어 피후fihu와 연관이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파키스탄, 인도, 스리랑카의 화폐단위인 루피rupee는 소를 뜻하는 산스크리트어 루피아rupya에서 유래했다.

황소가 값다 해도 공산품에는 비할 바가 아니다. 고대 그리스의 유랑시인 호메로스에 의하면, 일류 장인이 만든 최고급 갑옷은 황소 100마리 값에 필적했다. 멕시코의 아즈텍인들은 무엇을 사고 싶을 때 코코아 콩이나 피륙을 지불했다. 그들은 금에 대한 스페인 사람들의 열망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화폐는 왜 생겼을까? 애덤 스미스는 분업에 따른 교환의 필요성 때문에 화폐가 생겼다고 했는데, 화폐의 기원을 추적하는 데는 약간의 상상력만으로 충분할 것 같다. 한 사람이 자기 가족에게 필요한 모든 재화를 혼자 힘으로 다 생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고대에는 조개껍질이 화폐로 사용되었다. 기원전 16세기~8세기 중국에서 화폐로 사용되던 조개껍질. 일본 화폐박물관 소장.
고대에는 조개껍질이 화폐로 사용되었다. 기원전 16세기~8세기 중국에서 화폐로 사용되던 조개껍질. 일본 화폐박물관 소장.

그렇다면 자기가 생산한 물건과 다른 사람이 생산한 물건을 맞바꾸겠다는 생각을 자연스럽게 하게 된다. 그런데 이 교환이 성공하려면 두 가지 조건이 맞아떨어져야 한다. 첫째, 내게 필요한 물건을 가진 사람과 만날 수 있어야 한다. 둘째, 그 사람도 내가 가진 물건을 원해야 한다. 이게 고대사회에서는 생각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깊은 산골에서 살아가는 사냥꾼의 삶을 생각해 보자. 어느 날 출산을 앞둔 아내가 생선이 먹고 싶다고 했다. 사냥꾼은 담비 가죽 다섯 장을 짊어지고 산 아래 마을로 내려갔다. 그런데 마을에 있는 모든 집을 다 방문해 보았지만 생선을 가진 사람이 없었다. 할 수 없이 이웃마을로 갔다. 다행히도 생선을 가진 사람이 있었다. 하지만 그 사람은 담비 가죽이 필요 없다며 손을 내저었다. 실망한 사냥꾼은 먼 길을 걸어서 바닷가 마을까지 갔다. 발품을 판 보람이 있어서 그는 담비 가죽 한 장과 생선 다섯 마리를 바꿀 수 있었다.

사냥꾼은 내려온 김에 화살촉을 구하려고 대장간에 갔다. 담비 가죽을 본 대장장이는 며칠 전에 이미 여우 가죽을 장만했다면서 소금은 없는지 물었다. 사냥꾼은 다시 소금 캐는 사람이 사는 곳을 수소문해서 알아냈다. 이번에는 거래가 쉽게 이루어졌다. 소금장수는 소금을 담을 가죽 주머니가 필요했던 것이다. 사냥꾼은 담비 가죽과 맞바꾼 소금을 가지고 다시 대장간으로 갔다. 화살촉 10개와 소금 한 자루의 주인이 바뀌었다.

대장장이는 소금장수가 담비 가죽을 아주 좋아하더라는 말을 흘려듣지 않았다. 그는 나중에 소금을 구할 때 쓰겠다며 남은 담비 가죽을 모두 달라고 했다. 그 대신 대장장이는 잘 드는 칼 한 자루를 내주었다. 가죽 벗기는 작업이 한결 수월해질 거라고 생각하자 사냥꾼은 기분이 좋아졌다. 이렇게 해서 사냥꾼, 대장장이, 소금장수는 모두 원하는 물건을 갖게 되었다.

사냥꾼은 산 아래 마을 사람들도 대부분 소금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음식 맛을 돋울 뿐만 아니라 날고기를 소금에 절이면 오래 보관할 수 있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소금은 차츰 모든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틈날 때마다 물건을 소금과 바꾸어 집안 깊숙한 곳에 보관하는 사람이 늘기 시작했다.

소금은 쥐가 먹지 않고 썩지 않아서 보관하기 좋고, 교환할 물건의 가치에 따라 얼마든지 양을 맞출 수 있어서 편리했다. 소금을 찾는 사람이 많다 보니 소금을 가진 사람은 언제든 필요한 물건을 구할 수 있었다. 화폐의 역사는 아마도 이렇게 시작되었을 것이다. <계속>

※ 이 연재는 스트레이트뉴스가 저자(현재욱)와 출판사(인물과사상사)의 동의로 게재한 글입니다. 무단 도용을 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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