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 연재-보이지 않는 경제학] 〈43〉세계적 수준에서 더 가난해지다
[ST 연재-보이지 않는 경제학] 〈43〉세계적 수준에서 더 가난해지다
  • 현재욱 선임기자 (jeffhyun@naver.com)
  • 승인 2019.07.0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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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세기에 나타난 자본주의로 인해 사람들의 생활은 풍요로워졌다. 그러나 자본가들의 무한 이윤획득에 의해 세계 경제는 불균등하고 불공정해지고 있다. 정치적으로도 강대국의 힘이 거세지면서 각종 모순적 요소가 심화되고 있는 형국이다. 이러한 문제의 원인을 알기 위해선 현대 경제의 중요한 쟁점들이 무엇인지 이해하고, 그 쟁점들의 핵심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경제학의 세계에서 벌어지는 모든 현상과 논쟁을 우리가 알아야 할까? 몰라도 무방한 것들이 있지만, 반드시 알아야 할 것들이 있다. 경제학 논쟁이 경제 정책으로 이어지고, 그 정책은 보통 누군가에게는 유리하고 누군가에게는 불리할 뿐 아니라 나라의 운명과도 연결되기 때문이다. 스트레이트뉴스는 오늘날 우리 사회에 뜨거운 쟁점으로 떠오른 경제의 주요 요소들을 비판적으로 바라볼 수 있도록 본지 선임기자 현재욱의 저작인 「보이지 않는 경제학」을 연재한다. [편집자 주]
보이지 않는 경제학

“나는 달러 자산도 유로 자산도 없고, 한국 돈으로 매달 100만 원씩 받습니다. 미국이 금리를 더 올리면 어찌될까요?” 누가 이렇게 묻는다면 내가 해줄 말은 이것뿐이다. “당신은 세계적 수준에서 지금보다 조금 더 가난해질 겁니다.”

미국의 금리가 오른다는 것은 달러가 강해진다는 뜻이다. 달러가 강해지면 상대적으로 다른 통화는 약해진다. 원화가 약해지면 환율이 오르고, 환율이 오르면 수입 물가가 비싸진다. 우리나라는 밀가루와 석유를 수입하지 않으면 먹고살 수 없는 나라이기 때문에 환율 상승에 따른 물가 상승은 필연적이다. 따라서 대한민국의 모든 월급쟁이는 그들이 소비한 재화와 서비스의 가격이 상승한 만큼 가난해진다.

그보다 무서운 것은 모락모락 부푸는 금융비용이다. 미국이 기준금리를 올리면 한국도 금리를 올릴 수밖에 없다. 좋지 않은 경제 사정을 감안하여 최대한 버티겠지만 미국의 금리보다 한국의 금리가 낮게 책정되는 사건은 결코 일어나지 않는다. 왜냐? 세상의 모든 돈은 금리(수익률)가 낮은 쪽에서 높은 쪽으로 이동하려는 성질이 있기 때문이다. 돈은 물과 반대 방향으로 흐른다.

한 은행이 예금에 대한 이자를 1퍼센트를 줄 때 그 옆에 있는 은행이 2퍼센트를 준다면 어느 은행에 돈을 맡기겠는가? 미국의 금리가 한국의 금리보다 높을 경우, 한국에 들어왔던 달러 자금이 썰물처럼 빠져나간다. 어디로 가나? 금리가 높은 고향으로 간다. 빠져나가려는 외화를 붙잡아두려면 더 높은 금리로 유혹하는 수밖에 없다. 아니면 독일이나 일본처럼 굳이 금리를 올리지 않아도 자본을 유인할 수 있는 경쟁력을 갖추든지.

지구 반대편 미국 땅에서 금리가 살짝 오르내리는 일은 나와 상관없는 일이라고 여기는 사람도 있겠지만, 미 연준의 의사결정은 내 의사와 상관없이 내 삶의 조건을 결정한다. 그 조건들은 매우 심각한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

평범한 샐러리맨 박대성의 경우를 보자. 한 중소기업에서 부장으로 재직하는 박대성은 서울 교외에 있는 33평형 아파트에 살고 있다. 그 아파트의 시가는 5억 원이고, 집을 살 때 은행에서 3억 원의 주택담보대출을 받았다. 대출 금리가 3퍼센트일 때 박대성이 매달 은행에 물어야 할 이자는 75만 원이다. 금리가 1퍼센트포인트 오르면 매달 100만 원을 내야 하고, 2퍼센트포인트 오르면 125만 원을 내야 한다. 금리가 1퍼센트포인트 오를 때마다 가처분소득(실소득)이 월 25만 원씩 허공으로 사라진다.

만약 금리가 7퍼센트까지 상승한다면 월 소득이 일정한 임금노동자가 감당할 수 있을까? 금리가 3퍼센트였을 때 가처분소득이 월 200만 원이라고 가정하면, 금리 7퍼센트일 때 가처분소득은 100만 원으로 쪼그라든다. 이쯤 되면 금융비용을 줄이기 위해 집을 팔아야 할지도 모른다. 집을 팔려는 사람이 많아지면 집값은 떨어지게 되어 있다. 빚내어 집을 서너 채씩 산 사람에게는 하루하루가 악몽일 것이다.

도대체 우리나라 사람들은 얼마나 많은 빚을 지고 있는 걸까? 한국은행 통계에 의하면 2017년 3월 기준으로 판매신용을 합한 가계부채는 1,419조 원이다.9 그중에 3분의 1이 주택담보대출이다. 판매신용은 카드 결제, 할부 구입 등 외상구매를 뜻한다. 그것도 빚이다. 통계에 잡히지 않는 사채까지 합치면 이보다 훨씬 많을 것이다. 진짜 문제는 가계부채의 가파른 증가 추세에 있다. 일단 이 오름세를 멈추거나 떨어뜨려야만 문제를 해결할 가닥을 잡을 수 있을 것이다.

가계부채 이야기를 했더니 농사짓는 지인이 웃으며 말했다. “1920년대 독일처럼 초인플레이션이 일어나면 깨끗이 해결될 거야. 감자 한 알에 1조 원씩 해봐. 우리 밭에서 나는 감자만으로도 전 국민의 빚을 싹 갚을 수 있지.” 아주 틀린 말은 아니다. 인플레이션이 발생하면 채무자가 유리해진다. <계속>

※ 이 연재는 스트레이트뉴스가 저자(현재욱)와 출판사(인물과사상사)의 동의로 게재한 글입니다. 무단 도용을 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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