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제공=뉴시스]

역사 교과서 파동 와중에 새정치연합 소속 국회의원 79명이 '의원평가 하위 20% 공천 배제' 등 당 공천혁신안과 배치되는 오픈프라이머리 입법화를 촉구하고 나섰다.

범주류로 분류되는 최규성 의원이 주도해서 만든 이 법안은 20대 총선에서 살인‧강도‧강간‧절도‧폭력 등 5대 중대범죄자를 제외하고 국민의 직접투표(또는 국민 70% 권리당원 30%)로 공천자를 결정하자는 제안이다. 이들은 서명자 명부가 포함된 법안을 이종걸 원내대표에게 제출하며 빠른 시일 내에 의원총회를 열어줄 것을 요청했다. 이들 79명이 표면적으로 내세우는 것은 오픈프라이머리 도입의 공론화를 말하지만 그 속내는 현역 물갈이 20%를 골자로 하는 공천혁신안을 그대로 따르기 어렵다는 불만의 표출이다. 소속의원 중 무려 61.7%가 서명하였고 이해찬·박지원·안철수 등 주요 계파의 수장들은 물론이고 지난 대선 당시 문재인 후보의 비서실장을 역임한 노영민 의원까지 두루 동참한 것을 보면, 이미 중앙위에서 압도적으로 통과시킨 혁신안을 스스로 부정하는 격이다.

한편 연판장 내용을 살펴보면 “우리를 평가할 수 있는 주체는 당대표도 아니고 계파도 아니며 오직 국민들만이 할 수 있다는 명확한 원칙이 있어야 한다.”고 적시하고 있다. 현역의원 평가에서 하위 20%를 배제하는 혁신안에 대한 반대로 해석할 수 있는 대목이다. 법 개정을 주도한 최규성 의원 역시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기득권 지키기보다 더 중요한 것은 당대표나 대통령이 마음대로 사람을 자르고 '자기 사람'을 공천하려는 것"이라며 "혁신위가 현역 의원 20%를 물갈이하는 안을 낸 것도 현실적으로 공정하게 될 수 없다.”라고 단정했다. 그리고 평가 기준과 관련하여 “법안 발의와 국회 상임위·본회의 출석 등으로 의정활동 점수를 매겼을 때 문재인 대표는 꼴찌 수준"이라며 "그렇다고 문 대표를 자를 수 없는 것 아닌가. 정치를 모르는 혁신위가 낸 안은 옳지도, 가능하지도 않다.”고 비판했다.

하필이면 현역의원 20% 배제를 담당할 선출직공직자평가위원장에 동국대 조은 교수가 선임된 즈음에 사실상 평가위의 현역의원 평가를 반대하는 안을 내놓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일까?

이러한 이유 때문에 공천혁신안을 마련했던 혁신위는 "현역의원 기득권 사수를 위한 반 혁신기도"라고 강력하게 반발하고 나섰다. 19일 해단식을 갖는 자리에서 김상곤 혁신위원장은 "현역의원 평가를 통한 하위 20% 공천배제, 강화된 예비후보자 검증을 통한 도덕성 강화 등 당헌 ·당규로 채택된 혁신위의 시스템 공천안을 무력화시키기 위한 시도이자 기득권 사수를 위한 반 혁신"이라며 날 선 비판을 쏟아냈다.

조국 교수도 SNS에 올린 글을 통해 안철수 의원의 실명을 거론하며 서명에 참여한 이유를 물었다. 그는 “부정부패로 하급심에서 유죄판결을 받은 자는 원칙적으로 공천 배제하기로 한 혁신안은 철저하지 못하다며 기소만 돼도 당원권을 정지하자던 안 의원은 왜 서명을 했는가?”라고 되물었다. 그러면서 “오픈프라이머리를 실시하는 나라는 반드시 비현역의 정치활동의 자유를 현역과 동일하게 인정한다. 정치신인 활동의 자유에 대한 언급은 왜 없느냐”라며 서명에 참여한 79명 의원의 명단 공개를 요구했다.

2016년 4·13 총선이 채 6개월도 남지 않았는데 이와 같이 야당은 여전히 밥그릇이라고 불리는 공천권 다툼에 여념이 없다. 역사교과서 국정화 반대투쟁에 나서고는 있지만 이런 일이 한 번씩 벌어지면 국민들로부터도 그 진정성을 의심받게 된다. 지난 5월 말 조국 교수가 혁신위원으로 정식 참여하면서 그가 공개 제안한 4선 이상 중진 공천배제, 현역의원 교체율 40% 이상 실행 등 ‘육참골단(肉斬骨斷·자신의 살을 베어 내주고, 상대의 뼈를 끊는다)’의 파격적인 공천쇄신안이 주목을 받은 적이 있다. 치열한 논란 끝에 혁신위가 선출직공직자평가위원회라는 시스템을 마련하고 이를 통해서 최소한의 기준선인 현역 20% 물갈이를 하겠다고 이미 중앙위에서 합의하였다. 그런데 개정된 그 당헌당규에 잉크가 채 마르지도 않았는데 난데없이 100% 오픈프라이머리라니? 당원과 지지자들, 나아가 국민들은 기가 찰 노릇이며 육참골단은커녕 십중팔구는 소탐대실이다.

한편 여당인 새누리당조차 청와대와의 공천 갈등이 심각하지만 이를 돌출행동이나 기득권 챙기기 방식으로 풀지는 않는다. 오히려 자기희생과 결단을 통하여 국민에게 잔잔한 감동마저 주는 정당이 바로 새누리당이다. 요란스럽지 않게 육참골단을 실천하는 정당이 바로 새누리당인 것이다.

초선인 김회선 의원은 지난 13일 국회 대정부질문 과정에서 “20대 총선을 꼭 6개월 앞둔 오늘, 저 김회선은 다음 총선에 출마하지 않기로 결심했음을 밝힌다.”며 차기 총선 불출마 의사를 공개했다. 김 의원은 “20대 총선 출마여부를 두고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다. 기준은 단 하나, ‘무엇이 진정 국가와 국민을 위하는 길이냐’였다. 내가 무엇을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열정과 능력이 뛰어난 다른 사람에게 기회를 주는 것 또한 또 다른 애국의 방법이라고 믿는다.” 결국 그는 다른 사람에게 기회를 주기 위해 불출마를 결심했음을 설명했다. 김 의원은 1978년 사법시험 20회에 합격하여 줄곧 검사 한길을 걸었으며, 참여정부 시절 검사장으로 승진했다. 그는 이명박 정부에서 국정원 2차장을 지내기도 했다. 여당 강세지역(서울 서초갑) 초선인 김회선 의원의 불출마 선언은 연쇄 불출마 선언을 불러올 수 있는 신호탄이다. 이로써 새누리당은 지금까지 이한구(대구 수성갑), 강창희(대전 중구), 손인춘(비례대표, 광명갑 당협위원장), 김태호(경남 김해을) 의원 등 모두 5명이 20대 총선 불출마를 선언한 상태다.

17대 총선을 앞두고 당시 한나라당은 무더기 불출마 릴레이 선언이 이어졌다. 박근혜 대표는 차떼기 정당이라는 오명을 벗기 위해 천막당사로 옮기는 초강수를 던졌고, 초선인 오세훈 의원을 비롯한 20여명 의원의 줄 사퇴가 잇달았다. 강삼재·김용환·김찬우·박종우·박헌기·신경식·윤영탁·양정규·주진우 의원 등이 그들이다.

오세훈 의원은 “정치생명을 연장하기 위해 구습과 타협을 할 수밖에 없는 제 자신이 한없이 작게 보이더군요. 결국 ‘너를 살리기 위해서는 나를 버릴 수밖에 없다’는 결론에 이르게 되더군요.”라는 변을 남기고 여의도를 떠났다. 경륜 있는 정치인 한승수 의원 역시 “오랫동안 번민했습니다. 아쉬움은 많지만 (떠남으로써) 기성 정치권에 무엇인가 메시지를 주고 싶었습니다.”라는 짤막한 고별사를 뒤로 하고 정치인생을 마감했다. 여론조사 전문가들은 다들 차떼기 오명에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탄핵 역풍까지 겹쳐 한나라당은 100석도 어렵다고 전망했지만 이들의 희생이 바탕이 되어 121석이나 챙길 수 있었다. 한나라당은 이 121석을 바탕으로 재·보궐선거 40연승을 이어갈 수 있었고 2007년 정권탈환도 가능했다.

그렇지만 새정치연합 사정을 들여다보면 아직까지도 불출마가 확실하게 결정된 의원은 없어 보인다. 문재인 대표의 경우 당초 2·8 전당대회 경선과정에서 총선 불출마를 선언했지만, 혁신위가 마지막 혁신안을 통해 부산 출마를 요구하면서 지역구 출마도 검토하겠다는 유연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최재성 의원은 지난 대선 과정에서 총선 불출마를 선언했는데 최근에는 명확하게 불출마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고 확인 된 바가 없다. 지금 새정치연합 안에서는 스스로 던지는 불출마 선언보다 이른바 사지 출마론이 유행이다. 혁신위가 마지막 혁신안을 발표하면서 전직 대표들에게 요구한 것이 바로 사지 출마론이다. 19대 총선 당시에도 민주통합당은 박상천(5선)·정장선(3선)·장세환(초선) 정도만 자진해서 불출마를 선언했을 정도이다. 정장선 前의원은 지난해 재선거에 다시 출마했고, 장세환 前의원은 20대 총선을 준비 중이다.

이에 반하여 새누리당은 18대 의원 중 이상득(6선)·김형오(5선)·원희룡(3선)·홍정욱(초선) 등 의원이 불출마를 선언하며 박근혜 비대위원장의 25% 현역 교체라는 시스템공천에 힘을 실어주었다. 특히 당내 소장 개혁파 모임인 미래연대 공동대표 출신 원희룡 의원은 2011년 6월 전당대회에 출마하면서 차기 총선 불출마를 선언하며 배수진을 치고 당당히 4위 최고위원에 입성했다. 홍정욱 의원은 2011년 12월 초 한미FTA비준안을 물리적으로 통과시킨 직후 불출마를 선언하였다.

‘국민에게 좋은 정치란 다리를 놓는 것과 같아서 누군가 물에 잠길 돌이 되고 나무가 되어야 한다.’ 마키아벨리의 지적처럼 정치개혁을 위해서는 누군가는 돌이 되고 나무가 되어야 한다. 굳이 어려운 육참골단을 예로 들지 않아도 ‘불출마의 정치학’이 말해준다.

 

최 광 웅

참여정부 인사제도비서관
민주당 조직사무부총장
현 데이터정치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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