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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이 27일 국회에서 행한 2016년도 예산안 시정연설에서 역사 교과서 국정화에 대해 단호한 의지를 밝힘에 따라 정치권의 ‘역사전쟁’이 보수 대 진보의 ‘진영 대결’로 확대될 전망이다. 박 대통령을 필두로 한 범여권이 국정화 드라이브를 가속화하는 가운데 야권은 역사학계에서 시작된 반발 기류가 학계 전반으로 이어지고 있고, 시민사회와 학생들까지 결속시키며 일전을 각오한 상태다.

새정치연합 문재인 대표는 그동안 장외투쟁만큼은 소극적인 1인 시위 정도로 자제해왔지만, 드디어 23일 박근혜 대통령의 정치적 고향인 대구를 찾았다. 대구지역 역사학 교수들과 간담회를 갖은데 이어 대구 중심가 동성로에서 '국정교과서 반대 시민 서명운동'을 펼쳤다. 이 자리에서 그는 "국정화 문제를 총선 이슈로 삼겠다."고 폭탄선언을 터트렸다. 대통령의 국회 연설이 있은 27에 저녁에는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시민사회와 손잡고 첫 번째 대규모 장외집회를 열고 촛불까지 밝혔다. 이제 새정치연합은 본격적인 장외투쟁으로 나선 것으로 보인다. 전문가들은 여론전에서 야권이 우세해지고 있기 때문에 더욱 더 장외투쟁을 강화하고 국정화 반대투쟁에도 힘껏 나서라고 조언하고 있다. 총선이 6개월도 채 남지 않은 지금, 야당은 과연 어떻게 하는 것이 옳은 길일까?

최근 여론조사의 함정을 경계하는 언론보도가 나왔다. <주간동아> 1010호 기사인 <역사교과서 논란으로 본 20대 총선 예상도>이다. 속속 발표되는 각종 여론조사 결과를 살펴보면 역사교과서 국정화 이슈를 계기로 ‘새누리당 지지층+보수층+영남+50대 이상’ 대 ‘새정치연합 지지층+진보층+수도권·호남+20·30·40대’라는 명확한 대립전선이 형성된 듯하다. 지난 10월 13일 돌직구뉴스와 조원씨앤아이가 공동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도 이 같은 흐름은 분명히 확인 된 바 있다. 당시 설문과 응답 비율은 ‘한 종류 교과서’ 36.8% 대 ‘다양한 교과서’ 54.9%였다.

한편 ARS 조사를 일체 하지 않아서 꾸준하게 신뢰도를 높여온 한국갤럽의 경우, 10월 둘째 주 여론조사에서 국정화 추진 찬반이 42% 대 42% 동률로 나왔다. 그러나 <주간동아>의 지적처럼 여론조사는 실제 총선에 참여하는 연령별 할당이 아니라 유권자별 할당을 하는 것이다. 따라서 지난 19대 총선 당시 투표에 참여한 연령별 비율을 토대로 하여 다시 시뮬레이션을 해보면 54% 대 46%로 찬성이 8% 정도 앞선 것으로 나타난다. 이는 19세~20대의 투표율이 42.1%, 30대는 45.5%, 40대는 52.6%, 50대 62.4%, 60대 이상은 가장 높은 68.6%를 점하기 때문이다. 물론 역사학계와 시민사회 등의 여론전에 힙 입어 한국갤럽의 셋째 주 여론조사는 36% 대 47%로 국정화 반대가 월등하게 앞선 결과가 나왔다. 그러나 이것 역시 시뮬레이션에서는 5.95% 정도밖에는 앞서지 못한다. 이 여론조사의 표본오차가 ±3.1%포인트이기 때문에 이론적으로는 아직은 찬반 여론이 사실상 같다고 할 수 있다. 종합해보면 국정교과서 이슈를 통해 여야의 분명한 대결구도는 만들어졌지만 그것이 현재의 야권에게 유리한 국면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그렇다면 결국 총선 승리를 위해서는 야당이 역사 교과서 국정화 추진 반대투쟁에만 매진해서는 안 된다. 문재인 대표의 말마따나 더더욱 국정화 문제를 총선 이슈로 삼아 총선까지 끌고 간다면 무당층 공략에 적신호가 켜질 수도 있음이다.

“저는 선대위로부터 세대별 유권자 구성의 변화와 5060 세대의 압도적인 투표율을 감안하면 50대가 승부처가 될 것이라는 분석 보고서를 받았습니다. 선대위의 세대별 선거 전략도 20~40대는 투표율 올리기, 50~60대는 지지율 높이기에 초점을 맞췄습니다. 궁극적으로는 50대 유권자들로부터 엇비슷한 지지를 끌어내는 것을 목표로 했습니다. 저와 같은 세대인 것이 도움이 되리라는 기대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결과는 기대에 크게 못 미쳤습니다. 50대로부터 37.4%밖에 득표하지 못한 것이 특히 뼈아픈 패인이었습니다.” 2013년 말 발간한 <1219 끝이 시작이다>에서 문재인 대표가 2012년 대선을 평가하면서 극심한 세대투표에 대하여 반성한 대목이다. 대선 당시 50대는 10년 전 40대였으며 그들은 미세하게나마(0.2%) 노무현 대통령을 좀 더 지지한 475세대였다. 그런데 10년 사이 문 대표는 이 50대 한군데서만 무려 238만 표나 뒤졌다. 그들은 하루아침에 왜 보수후보 지지로 돌아선 것일까?

50대는 2012년 총선 때도 새누리당보다는 민주통합당과 통합진보당 등 야권연합에 더 많은 표를 던진 유권자들이다. 또한 그들은 2010년 당시 지방선거 사상 역대 두 번째로 높은 투표 참가율을 보이며 2004년 총선 이후 실시된 전국 단위 선거에서 야권에게 유일한 승리를 안겨준 주역들이다. 그들은 당시 민주당을 필두로 한 야권연합이 친환경 무상급식 전면실시, 0∼5세 영·유아 무상보육 실시, 기초노령연금 급여 대상 확대 등 한나라당과 차별화된 공약을 발표하도록 견인했다. 따라서 당연하게도 이들 유권자들은 정치개혁에 대한 열망도, 경제민주화에 대한 요구도 상대적으로 높은 세대에 속한다. 이들은 ‘사오정’, ‘오륙도’라는 말이 유행하듯 50대 초반만 넘어서면 대다수가 직장에서 명예퇴직을 강요당하는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이렇게 사회로부터 밀려난 50대들에겐 준비된 노후 자금이나 연금도 제대로 없으니 누구보다도 더 복지 확대에 대한 요구가 절실했다.

그런데 18대 대선 당시 야당은 이들 50대의 피부에 와 닿는 이슈를 전면적으로 제기하지 못했다. 오히려 안보 불안으로 여당의 공격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 그러나 여당은 야당의 핵심 공약인 '경제 민주화'와 '복지국가'를 가로챘다. 박근혜 후보는 민주진보진영의 전유물이었던 각종 진보적 의제를 흉내 내고 여러 가지를 공약으로 내걸었다. 김종인 국민행복추진위원장 등의 영입과 “대기업 규제만을 위해 별도의 법률인 대규모기업집단법의 제정”, “기초노령연금 20만원 지급” 등이 대표적이다. 특히 기초연금 20만원 지급 공약은 직접적인 수혜 계층인 60대 이상은 물론 잠재적인 대상인 50대에게도 폭발적이었다. 야당도 ‘기초노령연금 2배로 인상’이라는 공약을 내걸었으나 차별성이 없었고 구체성에서도 각인이 되지 못했다. 결국 새누리당의 보수와 진보의 이념을 뒤섞은 선거공약은 성공적으로 마무리됐다.

최근 선거를 보면 생존의 문제가 중요하게 등장한다. 2004년 열린우리당이 과반수를 획득한 이후 지금의 야권이 승리한 선거는 모두 생존권과 결합됐을 때였다. 생존권은 먹고 사는 문제와 안전문제가 우선이다. 2004년 이후 연전연패를 거듭하던 민주당이 처음으로 승리한 건 2008년 6월 4일 실시된 9개 기초단체장 재보선이다. 이명박 대통령 취임 직후 치러진 선거였지만 민주당은 광우병 소고기 파동이라는 안전과 직결된 싸움에 국민과 동참하면서 재보선을 압승했다. 이후 야권은 2008~2009년 재·보궐선거 연승을 거쳐 2010년 지방선거까지 압승을 기록했다. 이때도 민주당을 필두로 한 야권연합은 한나라당이 저소득층부터 순차적으로 무상급식을 확대한다는 방침인 것과 달리 2011년부터 전면적으로 초중고 무상급식을 실시하겠다고 공약했다. 한 마디로 먹는 문제였으며 이는 결국 그대로 적중했다.

지난해 지방선거에서는 17개 시·도 교육감 중 13개 교육감을 민주진보 교육감이 석권했다. 민주진보 교육감 후보들은 거의 대부분의 선거구에서 후보 단일화에 성공하며 승기를 잡았지만, 세월호 참사로 인해 안전문제를 제1의 과제로 삼은 30~40대 학부모 유권자들이 적극 나선 영향이 컸다.

갈수록 유권자들은 생존권과 관계된 정책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구체적인 대안을 듣고 싶어 한다. 일자리, 기초연금, 국민연금, 임금피크제, 청년 실업 등 사회 문제에 보다 더 구체적인 정책 대안을 요구한다. 덮어놓고 여당을 비난한다고 하여 야당의 책임을 다하는 것은 아니다. 유권자의 의식은 변하고 있는데 야당의 선거 전략은 ‘보수 대 진보’라는 과거의 관성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사람들은 항상 이성적이지는 않다. 공약만 보면 민주진보정당의 것이 보수정당의 것보다 훨씬 합리적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러나 유권자들은 이성보다 정서에 반응하는 일도 흔히 발견된다.

선거에서 유권자의 표심을 결정하는 주된 요인은 이성적인 판단보다는 다소 정서적이고 즉흥적인 반응일 수 있다는 연구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이인식 소장이 <지식의 대융합>에서 소개한 바에 따르면, 사회신경과학은 2006년 3월 미국에서 <사회신경과학>이라는 전문학술지가 창간되고 2006년 6월 <사회인지 및 정서 신경과학>이 첫 호를 내면서 하나의 독립된 학문의 모습으로 선을 보였다. 인간의 사회생활과 뇌의 구조와의 관계를 연구하는 사회신경과학의 주제는 정치성향까지 그 범위가 확대되고 있다. 세대문제만으로 국한해도 미래가 불안한 50대는 야권이 결코 포기할 수 없는 스윙보터들이다. 지금 진행하는 야권의 장외투쟁도 총선 승리가 없다면 별무소용이다. 새정치연합, 국정화 반대투쟁만이 결코 총선 승리를 담보하지 않는다.

 

최 광 웅

참여정부 인사제도비서관
민주당 조직사무부총장
현 데이터정치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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