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 연재-보이지 않는 경제학] 〈58〉돈이 되는 정보는 사람을 가린다
[ST 연재-보이지 않는 경제학] 〈58〉돈이 되는 정보는 사람을 가린다
  • 현재욱 선임기자 (jeffhyun@naver.com)
  • 승인 2019.10.2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15세기에 나타난 자본주의로 인해 사람들의 생활은 풍요로워졌다. 그러나 자본가들의 무한 이윤획득에 의해 세계 경제는 불균등하고 불공정해지고 있다. 정치적으로도 강대국의 힘이 거세지면서 각종 모순적 요소가 심화되고 있는 형국이다. 이러한 문제의 원인을 알기 위해선 현대 경제의 중요한 쟁점들이 무엇인지 이해하고, 그 쟁점들의 핵심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경제학의 세계에서 벌어지는 모든 현상과 논쟁을 우리가 알아야 할까? 몰라도 무방한 것들이 있지만, 반드시 알아야 할 것들이 있다. 경제학 논쟁이 경제 정책으로 이어지고, 그 정책은 보통 누군가에게는 유리하고 누군가에게는 불리할 뿐 아니라 나라의 운명과도 연결되기 때문이다. 스트레이트뉴스는 오늘날 우리 사회에 뜨거운 쟁점으로 떠오른 경제의 주요 요소들을 비판적으로 바라볼 수 있도록 본지 선임기자 현재욱의 저작인 「보이지 않는 경제학」을 연재한다. [편집자 주]
보이지 않는 경제학

 

돈이 되는 정보는 사람을 가린다

주가는 기본적으로 기업의 (미래)가치를 반영한다. 특정 기업의 주가가 오르는 이유는 그 기업의 가치가 상승할 것이라고 많은 사람이 기대하기 때문이다. 어떤 기업이 획기적인 신기술을 개발하여 큰 이익을 낼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해지면 그 기업의 주가는 가파르게 상승한다.

의약품 제조업체인 한미약품은 2015년 2월 초까지만 해도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하던 평범한 기업이었다. 수년 동안 긴 횡보를 유지했던 한미약품의 주가는 2015년 2월 13일 10만 원 선을 돌파하더니 9개월 만인 11월 27일에 최고점인 810,867원을 찍었다. 주가 폭등에 불을 지른 것은 신약(항암제) 개발에 성공했다는 소식이다.

이후 등락을 거듭하며 2016년 9월 50만 원 대까지 떨어지긴 했으나, 2015년 이전에 한미약품 주식을 산 사람들에게는 그야말로 대박이었다. 만약에 2015년 2월 6일 한미약품 주식 1,000주를 사서 그해 11월 27일에 팔았다면 1억 원이 채 안 되는 종잣돈으로 7억 원이 넘는 시세차익을 실현했을 것이다.

2016년 9월 30일은 수많은 개미투자자가 악몽의 날로 기억할 것이다. 9월 29일 장이 마감되었을 때 한미약품의 종가는 62만 원이었다. 다음 날 오전 9시, 장이 열리자마자 한미약품의 주가는 가파르게 상승하여 30분 만에 65만 원을 넘어섰다. 1,000주를 갖고 있었다면 30분 만에 3,000만 원이나 부풀었으니 투자자들이 얼마나 흥분했을까.

그러나 행복은 잠깐이었다. 개장 후 30분 무렵부터 곤두박질치기 시작한 주가는 그날 오후 3시 30분에 18퍼센트 하락한 50만 8,000원으로 마감되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전날 장 마감 이후인 오후 4시 35분, 한미약품은 미국의 바이오테크 기업인 제넨텍Genentech과 1조 원 규모의 항암제 기술 수출 계약을 체결했다고 발표했다.8 9월 30일 개장 초에 주가가 반짝 오른 것은 이런 대형 호재 덕분이었다.

한미약품 주가 추이(2013~2017)
한미약품 주가 추이(2013~2017)

 

그러나 9시 29분, 2015년 한미약품과 베링거인겔하임Boehringer Ingelheim이 맺은 8,500억 원 규모의 기술 수출 계약이 해지되었다는 악재가 공시되었다. 독일 인겔하임에 본사를 둔 베링거인겔하임은 전세계 145개 지사에 4만 7,500명의 직원이 근무하는 세계적인 제약회사다.

한미약품은 9월 29일 저녁에 이미 계약 취소 통보를 받았음에도, 다음 날 장이 열리고 30분이 지나서야 그 정보를 공표했다. 누가 계약이 깨졌다는 정보를 미리 입수했다면 개장 초 개미투자자들이 매수 주문을 쏟아낼 때 가진 주식을 죄다 팔아치웠을 것이다.

실제로 9월 30일에 이루어진 한미약품 주식의 공매도 물량은 전일(7,658주) 대비 13배에 달하는 10만 4,327주였다. 그 가운데 절반이 악재가 공시되기 직전에 이루어졌다.

공매도空賣渡, short selling는 말 그대로 없는空 주식을 빌려서 파는 투자기법이다. 예를 들어 한미약품 주식을 1,000주 빌렸다 치자. 장부(파일 서버)에만 있는 이 가상의 주식을 장이 열리자마자 전날 종가인 62만 원에 팔아치운다.

편의상 수수료와 증권거래세가 없다고 가정하면 내 통장에 6억 2,000만 원이 들어온다. 일주일 후인 10월 7일의 종가는 42만 3,000원이다. 주당 42만 원으로 1,000주를 사서 빌린 주식을 갚아 버린다. 매수자금으로 4억 2,000만 원이 들어갔으니 일주일 만에 간단히 2억 원을 벌 수 있다.

돈 벌기가 무척 쉬워 보인다. 다만 이런 식으로 돈을 벌려면 한미약품과 베링거인겔하임 간의 계약이 해지되었다는 사실을 공시 전에 알고 있어야 한다. 누가 알까? 그 고급 정보가 어떤 경로로 유출되었는지는 모르지만, 대다수 투자자가 돈이 되는 정보에서 소외되었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한미약품의 주가는 2016년 9월 30일 이후 추락을 거듭하여 석 달이 지난 2017년 1월 6일에 29만 원 대로 푹 주저앉았다. 하지만 이 정도의 시가도 액면가 2,500원에 비하면 엄청나게 팽창한 가격이다(2018년 1월 30일 종가가 249만 원인 삼성전자 주식의 액면가는 5,000원이고, 같은 날 종가가 93만 1,000원인 네이버 주식의 액면가는 500원이다).

문제는 한미약품 주가가 정점을 찍었을 때 주식을 산, 시쳇말로 ‘상투를 잡은’ 투자자들이다. 80만 원 대에 매수한 주식이 20만 원 대로 꺼졌으니 거의 망한 꼴이다. <계속>

※ 이 연재는 스트레이트뉴스가 저자(현재욱)와 출판사(인물과사상사)의 동의로 게재한 글입니다. 무단 도용을 금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