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들이 바라는 것은 ‘상생’이지 논쟁과 비판이 아니라는 독일선거의 교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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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선을 목전에 두고 있는 지금 우리 정치권의 거부할 수 없는 화두 가운데 하나는 ‘미디어선거’다. 소셜미디어가 핫(hot)한 정치 도구로 뜨고 있는 가운데, TV 방송의 힘도 여전히 막강하다. 더구나 미디어선거 컨설팅은 이미 주요 선거전략의 하나이기도 하다. 선거에서 언론의 역할이 아주 크니 승리를 위해서라면 이를 잘 활용해야 한다는 전략에 이의를 달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짚어봐야 할 대목은 문제 없어 보이는 이런 주장에 정말 문제가 없는가 하는 점이다. 이는 선거에서의 승리가 정치인만의 승리인지 국민의 승리인지를 따져봐야 하기 때문이다. 미디어정치는 정말 국민의 정치적 삶에 득일까, 독일까. 여기에서 독일의 사례를 좀 들여다보면 다소간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지 몰라 소개해 본다.

요즘 많은 사람들의 관심사인 리더십에 관한 이야기에서 빠지지 않는 세계적인 지도자가 독일의 메르켈 총리다. 그런데 지난 2009년 총선 당시 그녀가 언론에서 보여준 것은 뚜렷한 리더십이라기보다는 다소 싱거운 것이었다. 당시 메르켈과 슈타인마이어 총리 후보는 선거 기간 내내 이념에서도 정책에서도 도대체 차이를 발견할 수가 없었다.

여러 차례 실시된 방송토론에서조차 박진감 넘치는 대결 장면 하나 연출하지 못했으니 메이웨더-파퀴아오의 졸전이 따로 없었다. 메이웨더 VS 파퀴아오의 대결은 지난해 미국에서 개최된 권투 경기로, 언론이 '세기의 대결(The Fight of the Century)'이라며 마케팅에 열을 올렸으나 실전에서는 아주 싱거운 경기를 보여주었다. 이 경기는 오히려 소문 난 잔치에 먹을 것 없다는 사실을 확인시켜준 사례가 되었다. 

당시 독일은 치열한 논쟁 속에서 합의를 이끌어내야 할 여러 중대 사안들을 안고 있었다. 아프가니스탄 파병, 경제위기 극복, 미래 에너지, 교육·의료보험 구조 개선 등 해결해야 할 문제들이 산적해 있었다. 따라서 막강한 사회민주주의 시스템에 대한 막연한 기대감과 유럽 경제의 견인차라는 자부심에 젖어 있을 때가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후보는 이런 민감한 사안들을 적당히 피해 가는 선수다운(?!) 모습을 연출했고, 결국 스핀닥터(spindoctor)와 베를린 주재 정치부 기자들의 지도편달에 충성하기 급급했다는 소리를 듣게 된다. 즉 미디어가 오히려 긴박한 정책 대결을 가로막았다는 평가가 가능한 대목이다.

국민들이 바라는 것은 ‘상생’이지 논쟁과 비판이 아니라는 것, 심각한 논쟁보다는 한때 히틀러 독재에 대항하던 ‘민주대연합’류의 기억을 되살려 화합에 올인해야 한다는 지도편달의 말씀이었던 것이다.

사정이 이러하니 중도좌파 성향의 사민당과 보수우파 기민당의 두 후보는 언론 앞에만 서면 작아지는, 다정한 연인이나 부부처럼 핫해 보였다. 토론이라야 여름 휴가 행선지가 바다인지 산인지를 놓고 티격태격하는 수준이었다. TV 연예프로그램 <우결(우리 결혼했어요)>을 방불케 할 정도였다. 영화 <스타워즈>에서 스카이워커와 다스 베이더의 숙명적인 결투처럼 날선 비판과 대결이 오가는 한판 승부를 기대했던 유권자들에겐 김빠진 선거였다.

TV토론에서 슈타인마이어의 적극적이고 화려한 언변이 돋보였고, 메르켈은 실수만 하지 않으려는 소극적 모습으로 일관했다는 점이 특징이라면 특징이었다. 이는 예컨대 최저임금제 같은 복지정책을 두고 두 후보가 속한 정당이 견해 차이를 보이기 때문인데, 슈타인마이어가 사민당 후보로서 당의 입장과 큰 마찰이 없는 인물이어서 적극적으로 견해를 밝혔다면, 메르켈은 기민당이 친기업 성향의 보수정당이어서 마음 편하게 복지확대를 주장할 수 없는 입장이었다. 더욱이 메르켈은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의 전도사라는 이미지를 벗고 독일식 사회시스템을 유지하겠다는, 보수의 입장에서 보면 일종의 ‘변절’을 감행하고 있어서 당의 외면을 받을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선거는 메르켈의 재선으로 마무리된다.

오늘날 바야흐로 선거‘전(戰)’은 미디어선거 ‘마케팅’으로 변하고 있다. 정치인이 ‘미디어 트레이닝’에 쏟아붇는 시간이 늘고 정치마케팅이 논쟁보다 힘을 얻고 있다. 독일의 사례는 선거 때마다 심화되고 있는 정치마케팅의 폐해를 보여준다.

독일에서는 그동안 항상 논쟁보다 상생과 정치 마케팅이 더 좋은 가치이자 전술이었던가? 천만에! 독일의 전 총리들만 해도 가히 논쟁의 달인들이어서 ‘총리논쟁’이라는 말이 유행할 정도였는데, 브란트는 거짓을 말하는 상대 후보에게 거침없이 호통치고 비판하는 정치인으로 유명했고, 그의 포효하는 모습에 유권자들의 표심은 브란트를 지지하게 되었던 것이다.

권력을 추구하는 정치 지망생들은 정당한 비판과 뚜렷한 이념 추구 속에서 국민들의 지지를 이끌어낼 수 있을 것이다. 기억에 남을 정도의 정책 대결, 이념 대결의 화끈한 난타전으로.. 그런데 미디어선거 시대가 도래한 지금 이를 회피하고 현란한 말잔치로 이미지 마케팅에만 몰두하는 정치인에게 권력을 맡겨도 될 것인가. 수준 높은 선진 정치의 나라 독일도 미디어선거의 영향권에 접어들었다. 우리의 사정은 어떠한가.

베를린자유대 언론학 박사
경희대 강사
정책소통연구소 연구실장

서 명 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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