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국민은 언론·출판의 자유와 집회·결사의 자유를 가진다

표현의 자유는 천부 인권

민주주의 사회에서 공동체가 추구하는 중요한 가치 중의 하나가 표현의 자유다. 근대 인권사상이 출현하고 근대 국가가 형성되는 과정에서 표현의 자유는 천부인권적 권리로 여겨지면서 지켜야 할 중요한 가치가 되었다.

1789년의 프랑스 인권선언 제11조는 “생각 및 의견의 자유로운 소통은 인간의 가장 가치 있는 권리 중의 하나이다. 모든 시민은 자유롭게 말하고, 쓰고, 출판할 수 있다. 다만 법이 정한 경우에 따른 이 자유의 남용은 제외한다”고 선언하고 있다. 이로써 사람이 생각하고 표현하는 자유는 천부적 권리로 천명되었으며, 법과 제도적으로 이를 보장해야함이 명시되었다. 1791년 미국헌법 개정 제1조는 연방의회가 언론·출판의 자유를 제한하는 어떠한 법률도 제정할 수 없다고 규정함으로써 언론·출판의 자유가 처음으로 헌법으로 보장해야 하는 권리가 되었다.

1919년 대한민국 임시헌장 제4조도 대한민국의 인민은 종교, 언론, 저작, 출판, 결사, 집회, 통신, 거주이전, 신체 및 소유의 자유를 향유한다고 규정하였다. 우리헌법 제21조의 제1항은 “모든 국민은 언론·출판의 자유와 집회·결사의 자유를 가진다.”고 명시하고 있다. 이렇게 헌법에서 명시한다는 것은 천부적 권리를 제도적으로 보장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이제 국가는 헌법에 의해서 표현의 자유, 언론과 출판의 자유를 인간 기본권으로 보존하고 진흥해야할 적극적 의무를 지게되었다. 그러나 전 세계 곳곳에서 국가 권력은 자신에게 맡겨진 이 적극적 의무를 이행하기보다는 오히려 표현의 자유, 언론의 자유를 억압하고, 탄압하는 주범이 되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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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권력과 자본에 한숨 쉬는 천부 인권

표현의 자유, 언론의 자유에 대한 위협이 우리사회에서도 심각한 문제가 된 것은 어제 오늘이 아니다. 국경없는기자회(RSF : Reporters Sans Frontières)에 따르면, 2006년 우리나라의 언론자유 지수는 180개국 중에 31위였다. 그러나 2008년 이명박 정부 들어서 언론자유가 급격히 위축되어 2009년 69위, 2014년 57위, 그리고 2016년 올해는 70위로 추락했다. 국경없는기자회는 우리나라의 언론 상황에 대해 언론과 박근혜 정부 사이에 노골적인 갈등이 일어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 지적은 우리의 언론이 여전히 정치권력에 의해서 억압되고 있음을 국제적으로 공표했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2009년 YTN노조원의 긴급체포, 2010년 사장 퇴진을 촉구하는 노조에 대한 MBC 사측의 고소고발, 2016년 세월호 추모집회 시 공무원U신문 기자의 강제 연행, 그리고 최근에 대통령의 행적을 담은 <대통령의 7시간> 다큐멘터리 제작 등을 이유로 또다시 중징계를 받고 사표를 낸 MBC 이상호 기자 등. 우리의 언론은 여전히 공권력과 특정 정치세력의 이익을 위해 희생을 강요받고 있는 상황에 놓여 있다.

이러한 언론에 대한 공권력의 강요와 더불어 자본의 압박이 병행되고 있다. 공권력이나 언론사주측은 고소고발, 피해배상청구, 언론인에 대한 징계를 통해 저항하는 언론인들에 대한 경제적 압박을 가함으로써 언론자유의 목소리들을 잠재우고 있다. 또한 거대 광고주들은 자신들에 비판적인 목소리를 내는 언론이나 자신들과 색깔이 맞지 않는 언론에게는 광고를 주지 않거나 통제를 가하기도 한다.

진보와 보수의 문턱에서 허덕이는 표현의 자유

우리 언론의 자화상은 정치권력과 자본에 의한 왜곡 뿐만 아니라 진보와 보수라는 넘을 수 없는 문턱에서 허덕이는 모습이다. 현재 우리사회의 대립과 갈등의 주요 원인 중의 하나로 이데올로기의 과잉을 들 수 있다. 민주와 반민주, 진보와 보수, 반공과 종북이라는 이데올로기 담론이 공론장을 가르고, 관념적 대립을 첨예하게 만들고 있다. 2015년 8월 조선일보와 서울대아시아연구소의 조사에 따르면, 정치에 관심 없다가 66%, 호감정당이 없다가 63%, 스스로 판단한 정치성향에 대한 질문에서 중도가 47.4%, 보수 28.7%, 진보 20.5%로 나타났다.

이처럼 현실의 민심은 이데올로기적 논쟁에 대한 피로와 기존 정치 구조에 대한 반감이 매우 높음을 볼 수 있다. 그럼에도 언론들은 이러한 국민의 생각을 제대로 반영하기 보다는 스스로 이데올로기적 진영논리에 갇혀서 정치 투쟁의 대리자 역할을 자임하는 모습들을 보였다. 이번 총선에서 조·중·동과 종편은 자극적 정치 상업주의, 야당에 대한 친노·운동권 세력 프레임을 지속적으로 생산하면서 여당의 선전선동대 역할을 자임했다.

소위 진보 언론들은 야권의 분열 속에서 자신이 지지하는 특정 정치인과 정치세력을 옹호하기 급급한 모습으로 일관했다. 총선 결과는 진보 혹은 보수 정책에 대한 제대로 된 어떠한 검증과 비판도 없이 선언적 이데올로기의 전파자 역할에 머물고 있는 언론에 대한 심판의 성격도 강했다. 사유와 성찰이 없는 저널리즘, 정치적 상업주의와 자극적 노출주의(exhibitionism)에 빠진 언론, 이러한 언론의 자화상은 스스로 표현의 자유를 자신의 이데올로기적 틀 속에 가두어 버리는 결과를 야기했다.

정론은 사회의 도덕성과 정의의 기준

언론에 대해 저널리즘을 강조하는 이유는 바른 언론이 사회의 도덕성과 정의의 판단 기준이 되기 때문이다. 언론 활동에서 저널리즘의 기본을 지키려는 노력은 존 밀턴(John Milton)이 아레오파지티카(Areopagitica, 1644, 언론출판 자유에 대한 선언)에서 강조했듯이 표현의 자유가 어떤 자유나 인권 보다 우선적이기 때문이며, 의견의 시장이 진리와 거짓이 공개적으로 대결하는 사회적 공간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저널리즘은 진보와 보수 이전에 거짓에 대한 진리의 투쟁이라는 가치를 앞세우는 것이다.

“부끄러워 붓을 놓는다” 이것이 바로 저널리즘 정신이라는 생각이 든다. 오늘날 많은 언론인들이 방송에서, 신문에서 그리고 SNS에서 무수한 언어들을 쏟아 놓는다. 그러나 진정 저널리즘을 가슴속에 간직한 언론정신은 찾아보기 힘들다. 표현의 자유, 언론·출판의 자유는 스스로의 자유를 위한 자유가 아니다. 이는 인간 기본권을 지키는 자유이며, 진실과 진리를 추구하는 공동체적 가치를 담지하고 있는 자유다. 우리사회가 민주주의의 새판을 짜기 위해서는 언론이 바로 서야한다. 정치화된 언론이 아닌 정치를 견제하는 언론, 물신화되기 보다 사회의 물신화를 감시하는 언론, 사회적 윤리와 공동체적 가치를 위한 소통의 장 회복이 시급하다.

 

박태순
파리1대학 정치학 박사
성균관대학 초빙교수
미디어로드 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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