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임 홍원학 대표, 삼성화재 반석 올리고 친정 돌아온 영업왕
채권중심 자산운용 포트폴리오 변화 조짐…OCIO 다각화 통할까

삼성생명 대표이사 내정자 홍원학 사장. 삼성생명 제공.
삼성생명 대표이사 내정자 홍원학 사장. 삼성생명 제공.

리스크가 상존하는 금융업계에선 2024년을 맞으며 다수의 CEO가 바뀌었다. 세대교체와 새로운 비전제시를 통한 조직 정비의 일환이다. 스트레이트뉴스는 각 금융권 대표 기업들의 새로운 수장을 통해 각 조직이 그리고자 하는 미래를 들여다본다.<편집자 주>

지난 25일 현대차와 기아는 각각 기업설명회를 통해 연간 영업이익 27조원을 합작했음을 밝혔다. 수출로 먹고 사는 대한민국에서 전통적으로 수출의 약 20%는 반도체가 책임져 왔다. 글로벌 경기 침체 여파로 반도체 수요가 줄자 삼성전자가 침묵한 사이 실적 1,2위를 현대차그룹이 차지한 것이다.

삼성전자의 고전은 그룹 전반의 인사 쇄신으로 이어졌다. 금융 계열사도 그 예외는 아니었다. 상대적으로 선전한 삼성카드 김대환 대표의 유임 외에 삼성생명, 삼성증권, 삼성화재 모두 CEO가 교체됐다.

삼성금융네트워크의 핵심기업이자 삼성전자의 지분을 보유한 삼성생명의 CEO 전영묵 대표도 지난 연말 임기 도중 하차 통보를 받았다. 오는 3월부터 그 자리를 대신하게 된 사람은 DB손해보험, 현대해상, 메리츠화재, KB손해보험 등의 거센 도전에도 꿋꿋하게 1위 자리를 지켜낸 삼성화재 홍원학 대표다.

홍 사장은 삼성생명맨이다.

64년생으로 용산공고와 고대 일어일문과를 거쳐 90년 삼성생명에 입사했다. 2010년 삼성전자 경영전략팀 상무를 잠시 맡은 것과 삼성생명에서 인사를 맡은 것을 제외하곤, 대부분의 시간을 삼성생명에서 특화영업, 전략영업, FC영업 등 영업맨으로 경력을 쌓았다. 2021년 삼성화재 부사장으로 적을 옮길 때도 자동차보험본부장을 맡았고 사장이 돼 삼성화재 실적을 극대화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아직 공식 CEO에 오른 것은 아니지만 새해를 맞으며 홍 대표는 지난 3일 신년사를 통해 향후 회사가 나아갈 방향을 명확히 했다.

홍 대표는 원론적으론 올해 도약을 위해 “보험과 연결되는 모든 영역으로 ‘사업의 판’을 확장해야 한다”고 강조했지만, 무게중심은 ‘자산운용’에 실려 있다.

그는 "우리 회사 미래 성장의 핵심은 자산운용"이라며, "자산운용은 운용 자회사뿐 아니라 금융 관계사와의 협력 관계를 강화하고 글로벌 운용사 지분 투자의 질과 양, 그리고 속도를 높여 글로벌 종합자산운용 체계를 완성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보험사의 수익구조를 거칠게 설명하면, 보험상품을 팔아 목돈의 보험료를 수취하고 그 중 일부를 설계사 임금 등 사업비로 쓰고 나머지를 잘 운용해 불려 그 돈으로 고객에게 보험금을 지급하고 남는 부분을 이익으로 취하는 방식이다.

그러기 위해선 이른바 고객이 얼마나 살지 생명표 등에 기반해 기준점을 상정하고 그 기간동안 발생할 수 있는 사건사고를 예측해 지급할 보험금을 산정하고 나머지 비용 등을 잘 통제해야 한다. 이른바 예정이율을 정하고 실제와의 차이인 ‘예실차’를 적정 수준에서 유지해야 하는데, 그를 위해 사업비를 예정보다 절약해 ‘비차익’을 남기고, 예정사망률보다 실제사망률이 낮아서 생기는 ‘사차익’을 취하고, 가지고 있는 자산을 잘 굴려 ‘이차익’을 키워야 한다.

현실적으로 비용을 통제하거나 사망률 관리는 한계가 있지만 노력과 실력으로 키울 수 있는 부분이 자산운용수익률 극대화를 통한 ‘이차익’이다.

삼성생명의 자산규모는 약 200조원으로 최근 빠른 규모로 치고 올라오는 2위 한화생명(약100조원)의 두배 규모다. 자산운용은 규모가 크면 클수록 ‘규모의 경제’가 작동한다. 돈을 굴리는 입장에서 큰 자금을 유치하기 위해 더 경쟁력 있는 수익률을 제시하기 때문이다.

다만 삼성생명 뿐 아니라 대부분의 보험사들은 채권에 가장 많은 자산을 투자한다. 단기 승부가 아니라 중장기적으로 목돈을 굴려야 하는 입장에서 주식 일변도의 투자나 물가상승률에도 미치지 못하는 예금에만 넣어둘 수 없기 때문이다.

지난 3분기 기준 삼성생명의 운용자산이익률은 3.5%로 업계 평균인 3.3%보단 높지만 KB라이프(4.7%), 교보생명(4.0%) 등 여타 대형사 대비 부진한 실력을 보였다.

이유는 보수적인 포트폴리오 구성 때문이다. 지난해 3분기 기준 삼성생명 일반계정 운용자산(공정가액 기준 유가증권자산)은 약182조원으로 이중 절반이 훌쩍 넘는 105조원 가량이 채권이다. 지난 3분기까지 예상외의 고금리 상황이 유지됐고 4분기부터 금리 하락 기대감으로 채권가격이 상승했던 것을 생각하면 지금쯤 삼성생명의 운용수익률이 상당 폭 개선됐을 것이라는 예상을 어렵지 않게 할 수 있다.

그런 것을 감안해 신년사에서 운용수익률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은 아닐 테지만, 원론적인 입장임에도 향후 운용 수익이 개선될 가능성이 높아질 것은 부동의 사실이다.

채권중심의 투자가 변해야 하는 것은 삼성생명 뿐 아니라 운용업 및 자산관리 전반의 고민이다.

한국은행이 25일 밝힌 바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의 경제성장률은 1.4%로, 우리보다 선진국인 미국(2.5%), 장기 침체로 저성장을 이어온 일본(1.8%전망)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다. 성장이 멈춘다는 것은 당연히 주식이든 채권이든 투자 매력이 떨어진다는 뜻이다.

개인들조차 국내 증시를 떠나 미국증시로 향하는 상황에서 큰 돈을 굴리는 금융기관들이 투자자산을 찾아 해외로 나서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선택이다. 고갈돼 가는 국민연금 수익률 제고를 위해서도 해외투자자산 비중을 늘려야 할 판이다.

삼성생명은 그런 관점에서 운용자회사를 활용하는 것을 넘어 글로벌 운용사에 지분투자를 늘여가며 포트폴리오 조정에 나서는 상황이다. 홍 대표가 신년사에서 글로벌 운용사 지분 투자 확대를 언급한 이유다.

앞서 2021년 삼성생명은 영국 부동산 운용사 세빌스(Savills) IM 지분 25%를 취득하는가 하면 사모펀드 블랙스톤과 펀드 투자 약정을 체결하는 등 해외 대체투자(AI) 시장 공략에 나섰다.

지난해 봄에도 인프라투자 전문 운용사인 메리디암(Meridiam SAS)의 보통주 20%를 취득해 2대 주주에 등극했다. 향후 메리디암 감독이사회 참여, 사업협력협의체 신설 등 협력을 확대해 간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코로나19를 지나며 증권사들이 해외 부동산 등 대체투자 자산을 들여와 셀다운(재매각)을 통해 국내 기관들이 나눠 투자했지만 그 수익률에 대한 위기감이 커진 상황이다. 현지투자자와 달리 중후순위 투자에 나선 사례들이 있기 때문이다. 코로나19로 비대면 근무 환경이 정착하면서 사무실로 돌아오지 않는 근로자들 때문에 건물에 공실이 다수 발생한 것이 주 원인이다.

자본시장연구원 김재칠 펀드·연금실장은 “현재 해외 부동산 자산 가격이 고점 대비 20~21% 하락했는데 부동산펀드 상품 특성상 펀드 기준가에 그때그때 하락분이 반영되지 않는다”며, “부동산 펀드 자금에는 일반투자자 돈만 있는 게 아니라 은행들이 펀드에 절반 정도 자금을 넣었기 때문에, 투자한 부동산 가격이 20% 떨어지면 지분 투자자들은 40% 가치 하락이라는 뜻”이어서 손실 우려가 크다고 우려를 나타냈다.

장기간의 대규모 자금을 안정적으로 운용하는 일에 대한 해법 찾기가 만만치 않음을 보여주는 단면이다.

한 보험업계 고위 관계자는 “CEO는 운도 실력인데 홍원학 대표는 그런 면에서 운도 좋은 사람”이라며, “3분기까지 실적이 좋았던 삼성화재는 4분기 실적이 상당 폭 저하될 수 있고, 오히려 동생 회사한테 밀렸던 삼성생명은 4분기 상대적인 호조를 보일 수 있을 것으로 보여 마치 CEO 대관식을 위해 준비된 상황처럼 보인다”고 말했다.

정준섭 NH투자증권 연구원은 최근 보고서에서 삼성화재의 4분기 지배주주 순이익을 전분기 대비 63.9% 하락한 1545억원으로 추정하면서 그 이유로 보험손익 부진과 투자손익 손실을 꼽았다. 고금리가 장기화되는 상황에서 기존의 저금리 채권 만기 도래시 이를 고금리 채권으로 교체하는 과정에서 교체매매에 따른 처분손실이 발생하는 게 크게 작용했다는 설명이다.

한편 삼성생명은 투자손익이 더욱 개선될 거라는 전망이 나온다.

SK증권 설용진 연구원은 최근 보고서에서 “삼성생명의 투자손익이 FVPL평가손익 개선 등에 따라 이전 분기 대비 전반적으로 개선된 수준을 예상한다”며, “보수적인 운용자산 포트폴리오 등을 감안할 때 투자자산 등에 대한 재평가 관련 영향은 크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영업왕의 친정 귀환이 자산운용 수익률 상승이라는 결과로 귀결될지 이목이 쏠린다.

[스트레이트뉴스 장석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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