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77) 전 대통령이 재판 개시 80여일 만에 최대 위기를 맞고 있다. 위기의 진앙은 '이팔성 비망록'이다. 여기엔 이 전 대통령 금전공여 경위 등이 상세히 담겨있다. 이 전 대통령의 대응 논리가 쉽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지난 7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으로 퇴원 후 처음으로 공판에 출석하고 있는 모습.
이명박 전 대통령이 지난 7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으로 퇴원 후 처음으로 공판에 출석하고 있는 모습.

검찰은 지난 7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7부(부장판사 정계선) 심리로 열린 이 전 대통령의 특정경제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뇌물) 등 혐의 17차 공판에선 이팔성(74) 전 우리금융지주 회장의 비망록을 공개했다. 

지난 5월23일 이 전 대통령 첫 재판이 열린 후 사건 관련자의 비망록이 공개되는 건 이날이 처음이다. 여기엔 이 전 대통령에 대한 인사청탁 및 금전공여를 둘러싼 경위, 당시의 심경 등이 날짜별로 소상히 담겨있다.  

이 전 대통령은 2007년 1월~2008년 4월 금융위원회 위원장이나 산업은행 총재 임명 혹은 국회의원 공천에 도움을 주는 대가로 이 전 회장으로부터 19억6230만원, 2010년 12월~2011년 2월 우리금융지주 회장 연임 대가로 3억원 등 총 22억6230만원의 뇌물을 수수한 혐의를 받는다. 

이 전 회장의 비망록이 이 전 대통령에게 뼈 아플 수 밖에 없는 결정적 이유는 기재 내용과 관련된 객관적 증거가 일치하는 부분이 많아 재판부도 내용의 신빙성을 높게 평가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일례로 이 전 회장이 이 전 대통령 취임 후인 2008년 3월~4월 청와대에 들어갔다고 비망록에 써놓은 날짜는 '3월7일, 14일, 4월3일, 11일, 16일, 18일'이다.

검찰은 "그래서 청와대 출입기록을 확인해보니 시간대까지 맞다"며 "고도의 정확성을 보인다. 그날 그날 적지 않았으면 도저히 불가능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그는 2월9일에 '여행. 게이오 백화점에서 화장품 샀음'이라고도 적었는데 이 역시 실제 대한항공 탑승 기록으로 확인된다. 

검찰은 이 화장품이 이 전 대통령 부인 김윤옥(71) 여사에게 건네진 것으로 보고 있다. 비망록엔 3월26일자로 '김윤옥 여사님 생신. 김희중 비서관 통해 일본 여행 중 산 시세이도 코스메틱 16만엔 선물로 보냄'이라고 돼 있다.

여기에 이 전 대통령 측은 이 재판을 시작하면서 "검찰의 모든 증거에 동의하고 입증 취지만 부인하겠다"고 밝힌 상태이다.

국정농단 사건 '안종범 수첩'처럼 '증거 능력' 여부를 가지고는 다투지도 못하는 자충수가 돼 버린 셈이다.

이 전 대통령은 검찰 수사 때나 구속 이후 법정에서도 일관되게 혐의를 부인하며 '나는 그렇게 살아오지 않았다'는 점을 강조해 왔다. 심지어 자신의 '집사'로까지 불리는 김백준(78) 전 청와대 총무기획관의 진술조차 전면 부인하면서 '경도(輕度)인지장애’ 등 정신적 문제가 의심스럽다는 취지로 역공을 취하기도 했다.

이 전 회장도 70대 나이이긴 하지만 진료기록 같은 것도 없고 조사 당시 구속상태의 피고인도 아니었기 때문에 김 전 기획관의 경우처럼 증거 자체 신빙성을 의심하는 전략을 쓰기는 곤란하다.

결국 이 전 대통령 입장에선 피고인 측 반대 의견을 통해 재판부로 하여금 비망록에 대한 신뢰성을 최대한 떨어뜨리는 전략을 쓸 것으로 보인다.

예를 들어 전날 김 전 비서관 재판에서 김 전 의원으로부터 받은 5000만원이 담긴 검은 비닐봉투를 청와대로 가지고 들어오면서 "난 총무기획관이라서 소지품 검사를 받지 않았다"고 한 진술과 관련, 강 변호사가 "청와대 영풍문을 들어올 땐 총무기획관이 아니라 민정수석도 엑스레이를 통과해야 한다"고 대응한 식이다.

이 전 대통령은 지난 6월15일 공판에서는 서울시장 시절 공관에서 다스(DAS) 보고를 받았다는 의혹에 대해 김성우 전 다스 사장 등이 계단에 오르면 삐그덕 소리가 나는 특징을 진술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공관에 안 와 봤다는 얘기"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비망록과 관련해 피고인 측 반대 의견까지 7일 열렸다면, 이 전 회장이 2008년 3월28일 "약 30억원을 지원했다"고 한 것에 대해 공소사실상 공여 금액(22억6230만원)과 차이가 크다며 메모 내용을 있는 그대로 믿기 힘들다고 이 전 대통령은 반박했을 수도 있다.
  
다만 이 부분은 검찰이 "30억원 부분은 이 전 회장이 나중에 화가 나서 좀 과장해서 얘기한 것이라고 전했다. 돈 전달 사실 여부를 따질 사안은 아니다"라며 '사전 차단'을 한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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