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 연재-보이지 않는 경제학] 〈49〉거품으로 만든 금융상품
[ST 연재-보이지 않는 경제학] 〈49〉거품으로 만든 금융상품
  • 현재욱 선임기자 (jeffhyun@naver.com)
  • 승인 2019.0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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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세기에 나타난 자본주의로 인해 사람들의 생활은 풍요로워졌다. 그러나 자본가들의 무한 이윤획득에 의해 세계 경제는 불균등하고 불공정해지고 있다. 정치적으로도 강대국의 힘이 거세지면서 각종 모순적 요소가 심화되고 있는 형국이다. 이러한 문제의 원인을 알기 위해선 현대 경제의 중요한 쟁점들이 무엇인지 이해하고, 그 쟁점들의 핵심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경제학의 세계에서 벌어지는 모든 현상과 논쟁을 우리가 알아야 할까? 몰라도 무방한 것들이 있지만, 반드시 알아야 할 것들이 있다. 경제학 논쟁이 경제 정책으로 이어지고, 그 정책은 보통 누군가에게는 유리하고 누군가에게는 불리할 뿐 아니라 나라의 운명과도 연결되기 때문이다. 스트레이트뉴스는 오늘날 우리 사회에 뜨거운 쟁점으로 떠오른 경제의 주요 요소들을 비판적으로 바라볼 수 있도록 본지 선임기자 현재욱의 저작인 「보이지 않는 경제학」을 연재한다. [편집자 주]
보이지 않는 경제학

거품으로 만든 금융상품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지기 전, 그러니까 월가의 내로라하는 금융기술자들이 한창 거품에 취해 질펀한 돈 잔치를 벌이고 있을 때, 미국 경제의 붕괴를 예측한 사람이 몇 있었다. 그들에게 남다른 예지능력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들은 단지 주의 깊게 관찰했을 뿐이다. 구글 검색으로 단서를 포착하고, 현장조사로 균열의 징후를 확인해 가며 한 발 한 발 진실에 접근해갔다.

15억 달러 규모의 펀드를 운용하는 마이클 버리, 유대인 펀드 매니저인 마크 바움, 도이체방크Deutsche Bank의 채권 트레이더 재러드 베넷, 11만 달러를 몇 년 만에 3,000만 달러로 불린 아마추어 투자자 찰리
와 제이미, 그리고 은퇴한 전직 트레이더 벤 리커트. 이들이 영화 〈빅쇼트〉를 끌고 가는 주요 등장인물이다.

마이클 버리는 이미 2005년 초에 주택시장housing market이 이상하게 돌아간다는 낌새를 감지했다. 모기지론mortgage lawn(주택담보대출)의 연체가 서서히 늘고 있었던 것이다. ‘주택시장은 바위처럼 단단하다’,
‘주택시장은 안정적이고 리스크가 거의 없다’는 것이 월가의 오래된 믿음이자 상식으로 통할 때였다. 월가의 투자은행들이 부실채권을 우량채권과 한데 엮어서 산뜻하게 포장한 신상품으로 돈을 긁어모으고 있을 때, 마이클 버리는 잘나가는 금융상품이 시한폭탄이라는 사실을 알아챘다.

그러니까 주택저당증권MBS에서 파생된 부채담보부증권CDO은 거품으로 만든 과자였던 것이다. 입에 넣으면 스르르 녹아 버리는 과자. 여기에 신용평가기관들이 설탕을 발랐다. 증권화 과정을 통해 평균 B+급 모기지론의 70퍼센트가 최고등급인 AAA로 둔갑했다. 과다하게 평가된 신용을 ‘거품’이라고 부르지 않으면 뭐라고 부를 것인가?

남들이 못 보는 것, 혹은 안 보는 것을 본 소수의 이단자들은 동원할 수 있는 모든 자산을 긁어모아 월가를 상대로 건곤일척의 승부를 벌인다. 이때 그들이 투자한 금융상품이 바로 신용부도스와프Credit Default Swap, CDS다. 투자대상이 망할 때 보상받는 파생금융상품이다. 흔히 투자라고 하면 투자대상이 잘되거나 가격이 올랐을 때 수익을 낸다고 생각하기 쉬운데, 꼭 그렇지는 않다. 재앙과 불행이 돈이 되는 경우도 많다. 심지어 남의 불행이 나의 축복이 되기도 한다.

보험을 떠올리면 이해가 쉽다. 자동차보험은 가입자가 매년 보험료를 꼬박꼬박 내기 때문에 사고가 안 나면 보험료는 모두 보험사의 수익이 된다. 그러나 자동차가 부서지거나 운전자가 죽기라도 하면 보험사는 약관에 따라 목돈을 지급해야 한다. 이런 개념을 주택저당증권Mortgage-Backed Securities, MBS을 비롯한 다양한 파생상품에 적용한 것이 신용부도스와프다.

한 발짝 더 들어가자. 파생상품derivatives이란 무엇인가? 한 상품에서 파생된 상품, 즉 특정한 상품의 거래방식을 변형함으로써 새로운 형태와 가치를 갖게 된 상품이다. 주식, 채권, 통화 같은 금융상품뿐만 아니라 금, 석유, 밀, 옥수수 같은 현물상품도 파생상품으로 거듭날 수 있다. 원자재의 선물과 옵션은 모두 현물상품의 파생상품이다.

마이클 밀러가 아이오와 농장에서 생산한 옥수수 10만 톤은 현물상품이다. 그가 카길Cargill이라는 곡물유통업체에 옥수수 5만 톤을 팔아넘기면, 트럭에 실린 옥수수는 카길의 곡물창고에 잠시 머물렀다가 카길의 유통망을 통해 전 세계로 팔려나간다. 이 옥수수는 우리가 눈으로 볼 수 있고 손으로 만질 수 있는 실물이다.

물론 먹을 수도 있다. 가축의 사료가 될 수도 있고, 한국의 식품공장에서 과자 원료로 쓰일 수도 있다. 나머지 옥수수 5만 톤은 이미 2개월 전에 다른 곡물상을 거쳐 시카고상업거래소CME에 이름이 올라가 있다. 마이클 밀러는 밭에서 여물어가는 옥수수 5만 톤을 부셸당 300센트 가격으로 곡물상 그랜트에게 넘겼다. 그랜트는 3개월 후 현물 옥수수 5만 톤을 부셸당 350센트에 인도하는 조건으로 선물시장에 내놓았다. 그때부터 마이클 밀러가 생산한 옥수수는 볼 수도 없고 만질 수도 없는 추상적 존재로 변신했다.

아직 수확되지도 않은 옥수수 5만 톤의 소유권은 두 달 동안 3,000번쯤 바뀌었다. 시세차익을 노린 투자자들이 사고팔기를 거듭했기 때문이다. 이것이 파생상품이다. 현물 옥수수는 마이클 밀러의 농장에서 수확을 기다리고 있다. 사실 그랜트에게는 창고도 없다. 만기가 되면 마이클 밀러의 농장에서 직접 현물을 인도하거나, 다른 유통경로를 통해 팔아치우면 그만이다.

이번에는 구매자 입장에서 선물을 살펴보자. 서부텍사스유WTI의 현재 가격이 배럴당 49달러인데 ‘3개월 뒤 배럴당 50달러에 10만 배럴을 인수할 수 있는 선물’을 샀다면, 그 선물상품은 석유라는 원자재의 파생상품이다. 만기가 되었을 때 유가가 배럴당 52달러를 찍으면 지금 현물을 산 것보다 20만 달러 이익이고, 49달러면 10만 달러 손해다.

물론 중간에 그 파생상품을 팔 수도 있다. 만기 때 약속대로 대금을 지급하고 물건을 인수해야 하는 파생상품을 선물先物, futures, 사도 되고 말아도 되는 파생상품을 옵션option이라고 한다. 모기지론 파생상품은 합쳐지고 쪼개지며 증식에 증식을 거듭한다. 무려 40단계의 증식 과정을 거친 파생상품도 있었다. 이게 무슨 이야기냐 하면, 주택 한 채에 대한 저당권이 전 세계 수천, 수만 명에게 분산되었다는 뜻이다. 

저당권抵當權, hypothec이란, 담보로 제공된 부동산에 대한 채권자의 권리를 말한다. 채무자는 저당권이 설정된 토지나 건물을 마음대로 팔거나 증여할 수 없다. 또한 채무자가 만기에 빚을 못 갚을 경우, 채권자는 저당권을 행사함으로써 담보물의 처분을 통해 우선변제를 받을 수 있다.

그러나 최초의 저당권은 다른 수천 건의 저당권과 통합된 파생상품으로, 다시 수십 종의 증서로 재편성된 파생상품으로, 다시 이 파생상품이 다른 파생상품과 통합된 형태로 채권시장을 통해 전 세계로 팔려나갔다. 전 세계에 흩어진 채권 소유자들이 모두 모여서 최초의 저당권을 행사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주택 소유자가 빚을 갚지 않으면 대출을 해준 은행 한 곳만 떼이는 구조에서 수만 명의 피해자가 생기는 구조로 바뀐 것이다.

이 모든 파생상품을 일일이 기억하고 이해할 필요는 없다. 우리가 공부하는 목적은 재테크 기술을 익혀서 돈을 벌기 위함이 아니라,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이 도대체 어떻게 생겼는지 이해하는 데 있기 때문이다. 어쨌든 세상에는 파생상품을 비롯하여 무수한 금융상품이 증권시장에서 24시간 거래되고 있음을 기억하자. 그 거래에서 어떤 사람은 이익을 보고 어떤 사람은 손해를 본다. 손익이 발생하는 구조는 매우 단순하다. 팔아서 이익 보는 사람이 있으면 사서 손해 보는 사람이 있다. 증권투자는 제로섬 게임zero-sum game이다. 

※ 이 연재는 스트레이트뉴스가 저자(현재욱)와 출판사(인물과사상사)의 동의로 게재한 글입니다. 무단 도용을 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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