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 연재-보이지 않는 경제학] 〈61〉“우리가 이겼다”
[ST 연재-보이지 않는 경제학] 〈61〉“우리가 이겼다”
  • 현재욱 선임기자 (jeffhyun@naver.com)
  • 승인 2019.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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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세기에 나타난 자본주의로 인해 사람들의 생활은 풍요로워졌다. 그러나 자본가들의 무한 이윤획득에 의해 세계 경제는 불균등하고 불공정해지고 있다. 정치적으로도 강대국의 힘이 거세지면서 각종 모순적 요소가 심화되고 있는 형국이다. 이러한 문제의 원인을 알기 위해선 현대 경제의 중요한 쟁점들이 무엇인지 이해하고, 그 쟁점들의 핵심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경제학의 세계에서 벌어지는 모든 현상과 논쟁을 우리가 알아야 할까? 몰라도 무방한 것들이 있지만, 반드시 알아야 할 것들이 있다. 경제학 논쟁이 경제 정책으로 이어지고, 그 정책은 보통 누군가에게는 유리하고 누군가에게는 불리할 뿐 아니라 나라의 운명과도 연결되기 때문이다. 스트레이트뉴스는 오늘날 우리 사회에 뜨거운 쟁점으로 떠오른 경제의 주요 요소들을 비판적으로 바라볼 수 있도록 본지 선임기자 현재욱의 저작인 「보이지 않는 경제학」을 연재한다. [편집자 주]
보이지 않는 경제학

“우리가 이겼다”

희대의 도박꾼이자 공매도 수법에 달통한 조지 소로스의 솜씨를 감상해 보자. 낼모레 아흔을 바라보는 조지 소로스가 중국과 한판 붙기로 작심했다. 그는 2016년 1월 21일 블룸버그TV에 얼굴을 내밀고 ‘중국 경제의 경착륙hard landing’ 가능성을 강력히 주장했다.

“중국의 경착륙은 사실상 불가피하다. 예상이 아니다. 내 눈으로 보고 있다A hard landing is practically unavoidable, I’m not expecting it, I’m observing it.” 중국의 경착륙을 기정사실로 간주하는 도발적 발언이었다. 그때 소로스는 보통 ‘다보스포럼Davos Forum’으로 불리는 세계경제포럼World Economic Forum, WEF 연차총회에 참석하고 있었다. 다보스포럼은 자본주의 세계에서 가장 잘나가는 자본가들이 주관하는 모임이다. 선전포고를 하기에 그보다 좋은 장소를 구하기도 어려울 것이다.

중국은 강력히 경고하고 나섰다. 중국 공산당 기관지인 『인민일보人民日報』가 먼저 포문을 열었다. “인민폐와 홍콩 달러에 대한 소로스의 도전은 실패로 끝날 것이다. 그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신화통신新華通訊』, 『환구시보環球時報』 등의 중국 언론은 연일 소로스를 맹렬히 비난하며 투기세력에 대한 응징을 다짐했다. 그러나 늙은 사냥꾼은 자신감이 넘쳐 보였다. 그는 아시아 통화, 즉 위안화와 홍콩 달러의 공매도를 진행 중이라고 노골적으로 밝혔다. 남의 집을 털러 가면서 집주인에게 미리 알려주는 강도를 보았나? 언뜻 이해가 안 될 수도 있지만 여기에는 두 가지 뜻이 숨어있다. ‘막을 테면 막아 봐. 나는 네 약점을 알고 있어.’ ‘세계의 투기꾼들아, 중국을 공격하라.’

첫 번째는 중국의 자산가들을 겁주어 금융시장을 공포와 혼란에 빠뜨리려는 의도다. ‘나는 이미 네 약점을 속속들이 간파하고 있다. 너희 정부가 통계 조작한 거 다 안다. 경제성장률 6.9퍼센트? 웃기고 있네. 실제로는 5퍼센트도 안 될 걸? 위안화는 지나치게 고평가되어 있어. 지금보다 한참 더 떨어져야 돼. 내가 제자리를 찾아주지. 물론 세상에 공짜가 없다는 거 알지?’ 첫 번째 메시지는 대략 이런 뜻이다.

두 번째는 다른 헤지펀드들의 동참을 유도하여 공격력을 최대한 끌어올리려는 속셈이다. 환투기꾼은 하이에나와 같다. 병든 짐승의 희미한 피 냄새를 감지하는 동물적 후각을 가졌다. 조지 소로스와 빌 애크먼Bill Ackman 같은 투기꾼은 코뿔소의 몸집을 가진 하이에나다. 그들이 침을 흘리며 다가선다는 것은, 사냥감의 살이 어딘가 썩고 있다는뜻이다. 한 마리가 사냥감을 포착하면 떼로 덤빈다.

아무리 돈이 많다 해도 한 개인이 국가를 상대로 통화전쟁을 벌일수 있을까? 그것도 3조 3,000억 달러가 넘는 외환보유고를 자랑하는 중국이라는 거대한 나라를 상대로 말이다. 『환구시보』의 말마따나 소로스가 노망이 든 걸까? 아니면 평생 하고 싶은 바를 다 이룬 그가 다음 시대의 대제국으로 떠오르는 중국을 공격함으로써 불멸의 명성을 쌓으려는 걸까?

소로스는 무모한 모험가인가? 그는 1992년에 영국을 공격하여 파운드화를 완전히 굴복시킨 적이 있다. 영란은행이 사력을 다해 방어했지만 파운드화는 똥값이 되었고, 소로스의 퀀텀 펀드Quantum Fund는 한 달 만에 20억 달러의 이익을 챙겨서 투자자들에게 엄청난 배당금을 안겨주었다.

중국은 2015년 12월 초, 달러에 연동했던 환율 페그제peg system를 포기하고 본격적으로 양적완화에 뛰어들겠다는 의지를 표명했다. 페그제는 고정환율제의 일종으로, 한 나라의 통화가치를 특정 국가의 통화에 고정해두고 정해진 환율로 교환을 약속한 것이다.

아마도 중국은 일본과 유럽이 인쇄기에 불이 나도록 돈을 찍어내는 걸 구경만하다가는 수출경쟁에서 뒤진다고 인식했을 것이다. 이쯤 되면 필연적으로 위안화가 절하될 것임을 모를 사람이 어디 있을까. 돈 냄새에 민감한 소로스는 위안화 절하에 베팅했을 것이다. 그냥 베팅이 아니라 어마어마한 돈을 실어서 건곤일척의 승부수를 던졌다. 콜? 어디 한번 패를 까보시지.

공격, 베팅, 방어 같은 도박 용어를 들으면서 환투기꾼이 한 나라의 통화를 어떻게 공격하고 어떻게 이득을 취하는지 궁금한 사람이 많을 것이다. 앞에서 이야기한 공매도는 환투기꾼이 애용하는 전형적인 투기수단이다. 영국의 파운드화가 그랬던 것처럼, 태국의 바트화도 소로스의 공매도 수법에 걸려들어 국가 경제가 완전히 거덜 난 적이 있다.

공매도는 문자 그대로 ‘없는 돈 팔기’다. 돈이 없으니까 빌려야 한다. 먼저 공격 대상으로 점찍은 국가의 돈을 빌린 다음 그 돈을 되판다. 물론 판매대금은 달러로 받는다. 공매도한 통화의 가치가 확실히 떨어진다면 이익도 확실하게 보장된다. 왜냐? 돈값이 확 떨어진 다음에 헐값으로 그 돈을 사서 원금을 갚아버리면 되니까. 

아주 간단한 방법이다. 물론 당신도 시도할 수 있다. 단, 수억 달러를 일시에 동원할 수 있고, 공격 대상의 약점을 정확히 꿰뚫어보는 안목이 있어야 한다. 잘못 건드렸다가 수억 달러를 손해 볼 수도 있기 때문에 두둑한 배짱은 필수다.

1997년 5월, 조지 소로스는 세 번째로 태국을 공격했다. 앞서 두 차례 공격은 실패로 끝났고, 소로스도 적지 않은 상처를 입었다. 몸을 추스른 소로스는 바트화를 무자비하게 공격했다. 방법은 앞에서 이야기한 대로다. 1억 달러를 태국 은행에 담보로 맡기고 35억 바트를 빌린다. 35억 바트를 시중에 풀고 달러를 사들인다. 그 달러를 담보로 맡기고 다시 35억 바트를 빌린다. 그 돈으로 다시 달러를 매수한다.

달러를 담보로 바트화를 빌리고, 다시 달러를 산다. 이 행위를 수십 번 반복하면 태국 시장에 바트화는 넘치고 달러화는 품귀 현상이 일어난다. 달러값은 치솟고, 바트화는 똥값이 된다. 바트화 가격이 바닥에 떨어졌을 때, 달러의 일부를 바트화로 바꾸어서 빚을 갚아 버리면 엄청난 환차익이 투기꾼의 계좌에 찍힌다.

환투기꾼은 이런 과정을 거쳐 막대한 환차익을 빨아들인다. 그런데 조지 소로스 같은 거물은 환차익 가능성만 고려하지 않는다. 달러 대비 환율이 지나치게 낮은 국가, 다시 말해 통화가치가 실제보다 높게 평가되어 있는 국가를 골라서 융단폭격을 퍼붓는다. 기둥에 금이 간 집을 골라 망치로 때려서 주저앉히는 격이다. 집이 무너지면 전리품 을 챙겨서 휘파람을 불며 초원 저편으로 사라진다.

굶주린 하이에나를 막을 방법은 없는가? 물론 있다. 방법은 두 가지다. 외국인의 대출을 금지하거나 금리를 올리는 것이다. 

소로스가 동남아시아를 공격했을 때, 말레이시아는 첫 번째 방법을 썼다. 외국인에게는 링깃화를 빌려주지 않았다, 단순하지만 효과적인 방법이다. 게다가 말레이시아는 만기가 된 국채도 못 갚겠다고 나자빠졌다. 배 째라, 하고 버텼는데 당연히 국제사회의 응징이 따랐다.

그래도 말레이시아 국민은 얼어 죽거나 굶어 죽을 염려가 없었다. 사철 티셔츠와 반바지만 입어도 되는 따뜻한 기후, 숲에 가면 과일이 주렁주렁 달려있는 나라에 살면 그래도 된다.

대한민국에 외환위기가 터진 때는 한겨울인 1997년 12월이었다. 달러가 없으면, 다시 말해 석유와 가스를 수입하지 못하면 굶어 죽기 전에 얼어 죽을 판이었다. 당시 대통령선거에 후보로 나섰던 이회창, 김대중, 이인제가 모두 국제통화기금IMF이 내민 각서에 서명할 수밖에 없었던 배경이다. ‘대통령에 당선되면 국제통화기금이 제시한 조건을 성실히 이행하겠다’는 각서였다.

헤지펀드의 공격을 막는 두 번째 방법은 금리 인상이다. 소로스가 바트화를 공격했을 때 달러를 담보로 맡기고 바트화를 빌렸음을 상기하라. 바트화를 빌려주는 은행이 이자를 많이 받으면 빌리는 사람의 부담이 커진다.

방어하는 쪽은 금리를 계속 올리고, 공격자는 고금리를 무릅쓰고 그 나라 통화를 빌려서 달러를 계속 사들인다. 전쟁이 따로 없다. 빌리는 쪽도 괴롭지만 금리를 올리는 쪽에서도 피가 철철 흐른다. 금리가 30퍼센트, 40퍼센트, 50퍼센트로 계속 오를 때 국내 기업들은 온전하겠나? 1997년 외환위기 때 대우그룹이 망하는 걸 본 사람은 이해가 빠를 것이다. 당시 한국의 시중금리는 29퍼센트까지 치솟았다.

달러가 무지하게 많으면 환투기꾼의 공격이 먹히지 않는다. 환투기꾼이 달러를 사들일 때마다 그만큼 달러를 풀어서 환율을 방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이라면 절대로 이런 공격을 받지 않을 것이다. 인쇄기로 찍어서 달라는 대로 무한정 내주면 되니까. 달러를 찍어낼 수 없는 태국은 금리를 올리고 달러를 풀면서 최대한 버텼지만 결국 외환보유고가 바닥나고 말았다. 소로스를 위시한 환투기꾼들은 막대한 이익을 챙기고 유유히 전장을 빠져나갔다.

1997년 10월 23일, 태국에서 단맛을 본 환투기꾼들은 창끝을 돌려서 홍콩을 공격했다. 홍콩의 금융당국은 헤지펀드의 공격을 받자마자 엄청난 달러를 푸는 동시에, 금리를 49퍼센트로 왕창 올렸다. 그날 자정 무렵에는 금리가 무려 100퍼센트까지 치솟았다. 홍콩의 외환시장이 깊이 잠든 사이에, 뉴욕 외환시장에서 홍콩 달러와 헤지펀드 간에 피 튀기는 싸움이 벌어졌다. 다음 날 아침, 홍콩의 재정책임자인 도널드 창Donald Tsang은 기자회견을 열고 부르튼 입술로 선언했다. “우리가 이겼다.”

2016년 소로스의 중국 공격은 실패로 끝났다. 소로스가 실패한 것은 적을 경시했기 때문이다. 급하면 증권 거래를 원천적으로 봉쇄해 버리는 중국 공산당의 강력한 독재 체제를 과소평가하지 않았나 싶다. 아무래도 소로스는 자본주의 세계에서 너무 오래 산 것 같다. 

※ 이 연재는 스트레이트뉴스가 저자(현재욱)와 출판사(인물과사상사)의 동의로 게재한 글입니다. 무단 도용을 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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