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 연재-보이지 않는 경제학] 〈62〉도박의 논리는 시장의 논리를 거스른다
[ST 연재-보이지 않는 경제학] 〈62〉도박의 논리는 시장의 논리를 거스른다
  • 현재욱 선임기자 (jeffhyun@naver.com)
  • 승인 2019.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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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세기에 나타난 자본주의로 인해 사람들의 생활은 풍요로워졌다. 그러나 자본가들의 무한 이윤획득에 의해 세계 경제는 불균등하고 불공정해지고 있다. 정치적으로도 강대국의 힘이 거세지면서 각종 모순적 요소가 심화되고 있는 형국이다. 이러한 문제의 원인을 알기 위해선 현대 경제의 중요한 쟁점들이 무엇인지 이해하고, 그 쟁점들의 핵심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경제학의 세계에서 벌어지는 모든 현상과 논쟁을 우리가 알아야 할까? 몰라도 무방한 것들이 있지만, 반드시 알아야 할 것들이 있다. 경제학 논쟁이 경제 정책으로 이어지고, 그 정책은 보통 누군가에게는 유리하고 누군가에게는 불리할 뿐 아니라 나라의 운명과도 연결되기 때문이다. 스트레이트뉴스는 오늘날 우리 사회에 뜨거운 쟁점으로 떠오른 경제의 주요 요소들을 비판적으로 바라볼 수 있도록 본지 선임기자 현재욱의 저작인 「보이지 않는 경제학」을 연재한다. [편집자 주]
보이지 않는 경제학

 

도박의 논리는 시장의 논리를 거스른다

월가의 금융가들은 증권투자가 제로섬 게임이라는 사실을 누구보다도 잘 아는 사람들이다. 누가 돈을 따려면 반드시 그만큼 돈을 잃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 도박에 참가한 사람 전원이 두둑한 현금을 챙기고 웃으면서 일어서는 도박판은 있을 수 없다.

시장에는 사회의 희소한 자원이 가장 필요한 사람에게 배분되도록 만드는 자연적 질서가 있다. 어떤 자원을 가장 간절하게 원하는 사람이 그 자원에 가장 높은 값을 지불하기 때문에 국가가 배분을 지휘하지 않아도 최적의 배분이 이루어진다. 예를 들어 가난한 바이올리니스트는 스트라디바리우스의 바이올린을 사기 위해 평생 모은 재산을 기꺼이 투척할 준비가 되어 있다. 그러나 보통 사람들은 악기상이 최고의 명품을 반값에 판다 해도 관심을 갖지 않는다. 결국 스트라디바리우스는 수많은 부호를 제치고 무명의 음악가가 차지하게 된다.

도박판에서는 어떤가? 경쟁자들보다 좋은 패(정보)를 가진 자가 판돈으로 나온 자원을 독식한다. 필요와 욕구는 철저히 무시된다. 도박의 참여자들이 원하는 것은 오직 시세차익뿐이다. 한 사회의 부를 구성하는 실물자원이 증권으로 바뀌어 증권시장에서 거래될 때, 시장의 논리가 아닌 도박의 논리가 자원의 소유주를 결정한다. 스트라디바리우스를 수집한 경매회사의 주가가 며칠 후에 2배로 뛴다는 정보가 시장에 유출되는 순간, 높은음자리와 낮은음자리도 구별할 줄 모르는 투기꾼들이 벌떼처럼 달려들어 품평하기도 어려운 현악기의 소유권을 사재기한다. 남보다 좋은 패를 가졌다는 이유만으로 희소한 자원을 갖게 된 투기꾼은 그 자원에 눈곱만큼의 애착도 없다. 값이 떨어질 기미가 보이면 즉각 팔아치운다.

전통적인 시장에서는 시장참여자가 많을수록, 다시 말해 시장의 규모가 클수록 상품 가격이 적정선에 수렴하는 경향이 있다. 이기적인 소비자는 상품 가격이 너무 비싸다고 불평한다. 이기적인 공급자는 너무 싸다고 불평한다. 이기적인 소비자와 이기적인 공급자는 밀고 당기기를 거듭하다가 적정선에서 타협한다. 이렇게 타협이 이루어지는 지점을 경제학에서는 ‘균형equilibrium’이라고 말한다. 소비자와 공급자가 많은 시장은 균형이 쉽게 이루어진다. 예를 들어 노량진수산시장을 방문한 사람은 어느 가게에서 어떤 상품을 고르든 가격과 품질에서 큰 차이를 느끼지 못한다. 열심히 발품을 팔아도 매우 신선한 생선을 무척 저렴한 가격으로 만나는 기적은 일어나지 않는다.

반면에 도박장에서는 도박 참가자가 많아질수록 판돈이 커지고 승부의 진폭이 커진다. 증권시장에서는 적게는 5배, 많게는 수십 배까지 판돈을 키울 수 있는 레버리지 투자가 일반화되어 있다. 따면 크게 따고 잃으면 쪽박 찬다. 가격은 한미약품의 사례에서 보았듯이 천당과 지옥 사이에서 요동친다. 이때가 바로 타짜들이 판돈을 쓸어 모을 기회다. 전통적 시장에서는 ‘가격 대비 효용’을 중시하지만 증권시장에서는 ‘매수가 대비 매도가’가 판단의 유일한 척도다.

수산시장에서 장사하는 사람이 생선을 싱싱하게 보이려고 색소를 바른다든지 순진한 고객에게 바가지를 씌웠다가는 조만간 시장에서 퇴출당할 가능성이 높다. 해물요리를 파는 음식점은 고객의 믿음을 얻기 위해 투명한 유리로 칸막이를 하여 주방을 공개한다. 손님이 도다리회를 주문하면 주방장은 두 팔을 걷어붙이고 수족관에서 펄떡거리는 생선을 뜰채로 건져서 곧바로 회를 뜬다. 그가 감추고 싶은 것은 위생모로 감싼 몇 올의 머리카락뿐이다.

도박판에서는 많이 감출수록 이롭다. 속임수는 전문가가 터득해야 할 기본적 기술이다. 감추고 속이는 것을 전문용어로 ‘정보의 편향성’이라고 한다. 나만 알고 상대는 몰라야 내가 돈을 딸 수 있기 때문에, 가능한 많은 것을 감추려고 한다. 실물시장에서 모두가 알아야 할 정보는 신뢰의 원천이지만 증권시장에서는 쓰레기에 불과하다. 증권시장의 도박꾼에게 필요한 것은 오직 ‘나만 아는 정보’다.

인간의 실존을 구성하는 많은 요소, 이를테면 먹거리, 의복, 주택, 직장, 건강, 자동차, 크루저보드, 자전거, 노트북, 카메라, 모바일, 안경, 책, 예술, 종교, 오락, 모험, 여행, 취향, 개성, 낭만, 사랑, 연애, 결혼, 연민, 관용, 사교, 유대, 협동, 동질감, 휴식, 존엄성, 인권, 가족, 이웃 등의 개념을 싹 지우고 ‘시세차익’ 하나만 남겨놓은 곳. 그곳이 바로 증권시장이다. 실존의 시장에는 정치적·경제적·윤리적·종교적·문화적 입장에 따라 수많은 가치기준이 존재하지만, 숫자의 언어로 철저하게 추상화된 증권시장에는 시세차익이라는 하나의 가치기준만 존재한다.

주류 경제학의 논리에 따르면, 증권시장에서는 합리적이고 이기적인 인간들이 무한한 욕망을 충족하기 위해 가장 시세차익이 큰 시점을 선택하여 종이 쪼가리를 사고판다. 그 결과 시장에서 거래된 모든 종이 쪼가리에는 적절한 값이 매겨지고, 종이 쪼가리를 팔거나 산 사람 모두가 이익을 보며, 종이 쪼가리를 파는 사람의 선의에 기대지 않고도 세상은 점점 윤택해진다. 국가는 종이 쪼가리를 다루는 도박꾼들이 패를 바꾸는 일이 없도록 감시만 잘하면 된다. 금융자유화, 즉 증권시장의 규제 철폐를 요구하는 사람들의 주장은 대략 이런 맥락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시장의 논리와 도박의 논리가 결합하면 제 꼬리를 먹는 뱀이 만들어진다. 그러나 논리적 모순은 사소한 문제다. 이익이 중요할 뿐이다.

“봉이 없는지 늘 포커 판을 자세히 둘러보라. 만약 눈에 띄지 않는다면, 당신이 봉일 확률이 높다.” 리먼브라더스의 베테랑 트레이더였던 래리 매카시Larry McCarthy가 한 말이다.17 그의 말에서 확인할 수 있듯 월가의 선수들은 일찌감치 고객을 봉으로 생각해왔고, 도박과 투자를 구분하지 않은 지 오래되었다. 그중에 한 사람이 스스로 도박꾼이었음을 고백했으니, 미국 최고의 엘리트들에게 고액 연봉과 스톡옵션을 지급하는 최첨단 금융산업이 한낱 도박업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증명하려고 애쓸 필요는 없다.

미국은 ‘도박공화국’이고, 아메리칸드림은 ‘한탕주의’의 다른 표현이다. 미국식 시장경제가 아시아,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에 이식되면서 우리가 사는 세상은 24시간 365일 운영되는 거대한 도박장이 되었다. 시골 농부가 본 증권시장은 100퍼센트 도박판이다.

※ 이 연재는 스트레이트뉴스가 저자(현재욱)와 출판사(인물과사상사)의 동의로 게재한 글입니다. 무단 도용을 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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