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새 돌풍이 불고 비가 무섭게 내렸다. ​아침에 일어나 보니 솥뚜껑이 바람에 날려 우물가에 쳐박혀 있었다. 다행히 차양은 멀쩡하고, 비가 들이친 곳도 없었다. 차양 밑으로 물이 흐르지 않도록 마당에 물길을 낸 덕분에 흙바닥이 뽀송뽀송하다.

오후가 되자 비가 긋고 바람이 잠잠해졌다. 농사 동무와 고원이네 식구가 놀러 와서 솥뚜껑에 삼겹살과 목살을 구워 먹었다. 솥뚜껑에 얹어서 익힌 김치가 맛있다며 한 포기를 다 먹었다. ​김치는 이웃 할머니가 갖다 주셨다. ​집주인의 숙모 되는 분이다. 냉장고 한 층을 다 차지할 만큼 큰 플라스틱 통에는 김치가 무려 열 포기나 담겨 있었다. 이 집에 살면서 정식으로 초대한 손님은 산고양이, 고원이네가 두 번째다. 고원이는 올해 다섯 살이다. 팔월이면 동생이 태어난다.

그러니까 고원이 동생은 엄마 입을 통하여 내가 구운 고기를 맛있게 먹은 셈이다. 타지도 설지도 않게 노릇노릇 굽느라 신경 많이 썼다. ​고기 두 근을 샀는데 몇 점 남아서 불청객에게 나눠주었다. 내가 '길동이'라고 부르는 녀석이다. 무심히 앉아 있으니 경계심을 풀고 조금씩 가까이 다가온다. ​이곳엔 고양이가 많다. 때로 서너 마리씩 무리 지어 제 집처럼 드나든다.

​오랫동안 이웃으로 지낸 황소걸음께서 집 이름을 지어 주셨다. '소래당', 아주 마음에 든다. 해석은 자유다. 작명료는 없다. 그 대신 황소걸음께서는 언제든 마음 내킬 때 와서 머무실 수 있다.

素來堂

​우아한 이름이 생겼지만 집은 누추하고 살림살이는 허술하다. 안채는 냉골이고 조리 시설도 없다. ​밥은 전기밥솥으로 지을 수 있지만 찌개와 국은 등산용 버너로 끓여 먹고 있다. 혼자 사는 데는 불편이 없지만 ​여름이나 돼야 묵어 갈 손님을 받을 수 있을 듯싶다.

​뒷산에 올랐다가 쑥 캐는 할머니와 한참 수다를 떨었다. 연세를 여쭈었더니 일흔넷이다. 슬쩍 농을 걸었다. "그럼 어머니라고 불러야 되겄네요. 난 또 누님인 줄 알았지." 누님으로 불릴 뻔한 할머니의 박장대소, 뻔뻔스러운 농담이 통했다. ​뒷밭에 머위와 방앗잎이 지천이라 내가 집에 있든 없든 캐다 잡수시라고 하였다. ​

​밤이 되자 기온이 뚝 떨어졌다. 지나는 길에 잠깐 들른 이웃집 형님이 옷깃을 여미며 말했다. "이러다 서리 내리겠어." 그 형님이 쌀을 한 말 갖다 주신다는 걸 다음에 쌀 떨어지면 말씀 드리겠다며 간신히 말렸다. 이웃의 형님들은 물론이고 동네 어르신과 할머니들이 허물없다.

'국민 동생'은 아니지만 어느 결에 '동네 아들'이 된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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