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기척이 있어 나가봤더니
감나무에서 감 떨어지는 소리였다.
감나무는 가을이 깊어질 때까지 이 아이와 함께하고 싶었을 것이다.
버티고 또 버티다가 결국 손을 놓아 버렸다.
가뭄 때문이다.
버려진 감의 항변이 들리는 것 같다.
"내가 뭘 잘못했지? 썩지도 않고, 벌레 먹지도 않았어."
나쁜 사회는 이렇게 대답한다.
"알아서 잘했어야지. 다들 형편이 안 좋잖아? 각자 제 살길을 찾는 것이 자유민주주의야.
너는 더 좋은 가지를 타고났어야 돼. 아니면 몸집을 줄이든가."
더불어 사는 사회라면 벼랑끝에 내몰린 약자를 끝까지 붙들고 가야 한다.
우리가 세금을 내는 이유다.
학교는 주저앉으려는 마지막 아이까지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가 학교를 만들어 아이들을 보내는 까닭이다.
알아서 견뎌 봐, 그럴 거면 세금 낼 필요도 없고, 군대 갈 필요도 없고, 투표할 필요도 없다.
국가와 정부 따위는 알아서 엎어 버렸을 것이다.
함께 가야 한다.
가다가 못 미치면, 그것이 우리의 최선이었다고 목표를 수정하면 된다.
목표는 목표일 뿐이다.
지금 여기, 각자가 처한 동시대의 다양한 조건 속에서 우리가 서로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으며
어떤 태도로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가 중요하다.
결과 따위는 아주아주 사소하다.
보릿고개, 산업화 과정, 민주화 운동, 외환위기, 글로벌 금융위기, 세월호 참사, 촛불혁명을 다 겪고
육십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어서야 겨우 깨달은 진리다.
결과는 아무것도 아니다.
왜냐하면 우리 모두 최종적으로는 죽음에 도달하기 때문이다.
케인스도 비숫한 말을 했다.
"In the long run, we are all dead."
관련기사
- 열심히 일할수록 노동이 불편한 이유
- [힐링PLUS] 팔자 늘어지다
- [현재욱의 馬耳童風] 단칸방 무소유
- [현재욱의 馬耳童風] 감자와 옥수수 절로 잘 크오
- [힐링PLUS] 새싹과 도란도란
- [현재욱의 馬耳童風] 비오는 날의 두견새
- [현재욱 馬耳童風] 돈으로도 살 수 없는 오늘
- [현재욱 馬耳童風] 할머니 누님과 동네 아들
- [현재욱 馬耳童風] 풋내기 너른 농사
- [현재욱의 馬耳童風] 살아 살아 기억하리 '4·16 꽃바람'
- [현재욱의 馬耳童風] 4·16참사 4주기 '기억다짐'
- [현재욱 馬耳童風] 쌈 情
- [현재욱 馬耳童風] 한밤의 소나기
- [현재욱의 馬耳童風] 이상한 잡부
- [스트레이트 연재-보이지 않는 경제학] 〈1〉내 삶은 훌륭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