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인북] 열심히 일할수록 노동이 불편한 이유
[뉴스인북] 열심히 일할수록 노동이 불편한 이유
  • 김세헌 기자
  • 승인 2018.07.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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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7년 1월 21일 광주 동구 금남로에서 열린 '13차 박근혜 퇴진 광주시국 촛불대회'에 참여한 시민들이 재벌 개혁 등을 촉구하는 촛불을 밝힌 모습.
지난 2017년 1월 21일 광주 동구 금남로에서 열린 '13차 박근혜 퇴진 광주시국 촛불대회'에 참여한 시민들이 재벌 개혁 등을 촉구하는 촛불을 밝힌 모습.

지난 '촛불 시민혁명'에 모인 사람들이 소리 높여 외친 구호 중 하나는 ‘재벌 개혁’이었다. 사람들은 여전히 소수가 부(富)를 독점하는 지금의 경제상황이 부조리하다고 느끼고 있다. 노동은 생산에 기여한 만큼 보상받지 못하고, 자원은 낭비되고, 경제학은 사람을 배제하고 숫자에만 매달리는 현실이다.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보면 한국 경제를 압축성장시킨 것으로 평가 받는 박정희 개발체제는 한마디로 ‘정부 주도-재벌 중심’ 발전전략이었다.

박정희 개발체제의 성공요인은 크게 세 가지다. 먼저 저개발 상태에서 시장과 제도의 부재 문제를 정부와 재벌이 효과적으로 해결했고, 둘째로는 모방을 통한 추격형 경제에서 매우 효과적이었다는 것, 셋째로는 수출을 잘하고 많이 하는 기업들에게 특혜를 주는 식으로 친경쟁적인 보상체계를 구축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경제가 발전돼 모방형 성장에서 혁신형 성장으로 이행해야 하는 오늘날 박정희 개발체제는 더 이상 작동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산업의 진화를 단절시키고 사회 양극화를 심화시키는 역작용만 낳고 있다.

이런 상태가 지속된다면 한국은 ‘일본의 잃어버린 20년’을 답습하는 게 아니라 경제위기와 양극화의 심화가 반복되는 ‘제2의 중남미’가 될 수 있다는 지적이 쏟아진다. 

재벌의 경제력 집중이 시장경제, 민주주의와 양립할 수 없음은 20세기 초 미국의 진보적 운동을 통해 이미 드러났다. 때문에 재벌 개혁을 통해 시장경제와 민주주의의 근간을 바로잡는 것은 보수와 진보의 문제가 아니라 시장경제와 민주주의의 가치를 믿는 모두가 동참해야 하는 과업이다. 2013년 이스라엘의 재벌 개혁을 주도한 세력도 다름 아니라 우파 정부였다. 

박근혜·최순실의 국정농단 사건은 정경유착과 우리 사회의 부패 구조를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급기야 삼성그룹의 세습 과정에서 뇌물을 제공한 혐의로 이재용 부회장이 구속되기에 이르렀다. 이로 인해 재벌의 적폐와 재벌 개혁의 필요성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가 어느 때보다 높아졌다. 

그러나 개혁에 대한 여망과 조건이 무르익었다고 재벌 개혁이 제대로 이뤄지는 것은 아니다. 1910년에 일어났던 멕시코 혁명은 정치 세력의 교체만 가져온 채 유의미한 경제 개혁에는 미치지 못했고, 결국 1930년대 이후 멕시코 재벌은 더 높이 철옹성을 쌓아갔던 역사적 경험도 있다.

전문가들은 현 정권이 재벌 개혁의 시늉만 하고 재벌의 경제력 집중이 더욱 심화된다면 한국 경제와 사회는 마지막 남은 희망의 불씨마저 꺼질 수 있다고 경고한다.

실제로 전체 인구의 1퍼센트에 해당하는 사람들이 나머지 사람의 부를 합친 것보다 많은 부를 소유하고 있다. 슈퍼리치 61명의 재산은 하위 50퍼센트의 재산과 동일하다.

경제학의 창시자로 불리는 애덤 스미스(Adam Smith)는 부의 원천이 노동(勞動, labour)이라고 말했다. 그 말대로라면 일을 하면 부유해지고, 일을 안 하면 가난해진다. 현실은 다르다. 두 사람이 동일한 장소에서 동일한 업무를 수행하고도 임금이 다른 경우가 많다. 이는 어느 한쪽이 다른 한쪽의 노동 성과를 훔치는 것이라고 설명된다.

오늘날 동일노동에 대한 임금격차는 ‘노동시장의 유연성’이라는 이름으로 정당화되고 있다. 이러한 부조리를 해소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저자 현재욱은 "국가의 부가 국민의 행복으로 이어지려면 성장 지향의 경제에서 나눔의 경제로 전환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최근 국내에서 이슈가 되고 있는 ‘공유경제’나 ‘사회적 경제’와 일맥상통한다.

저자 현재욱은 상위 1퍼센트가 아닌 나머지 99퍼센트를 위한 경제로 전환하면 내수시장이 살아나고 중소기업이 튼튼해진다고 말한다. 중소기업이 살면 자영업이 살고, 자영업이 살면 중산층이 복원된다. 한국 경제는 커질 만큼 커졌으니, 이제는 양(量)이 아니라 질(質)을 따져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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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사의 많은 부분이 경제적 기초 위에서 결정된다. 경제는 세상을 보는 창이다. ‘나와 세상의 관계’를 이해하려면 경제를 알아야 한다. 그런데 왜 경제학 교과서는 우리의 일상생활을 설명하지 못할까?

현대 사회에서 경제를 모른다는 것은 글을 읽지 못하는 것과 같다. 우리의 모든 삶은 경제적 선택의 연속이기 때문이다. 교육, 취업, 결혼, 재테크, 부동산, 세금, 노후 등 어느 것 하나 경제적 문제와 관련되지 않는 것이 없다. 그럼에도 일부 경제학을 전공한 사람들을 제외하고 우리들 대부분은 경제학에 관해서 한 번도 제대로 배워본 적이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초·중·고등학교에서 배운 ‘경제’라고는 그저 시험문제를 풀기 위한 학습에 지나지 않았으며, 혹여 대학에서 경제학을 접했다 하더라도 이해하기 힘든 수식이나 도표, 그리고 어려운 전문용어 때문에 친해지기 어려운 학문으로 생각되어 왔던 것이 사실이다. 이 책은 “어떻게 하면 가장 효율적으로 세상을 살아갈 수 있을까?”라는 경제학의 기본 명제를 실생활과 관련지어 설명하고 있다. 

경제는 우리와 동떨어진 개념이 아니다. 내가 카페라테를 마실지 아메리카노를 마실지 선택하는 문제는 미시경제학(micro-economics)이고, 최저시급과 실업률의 상관관계를 따지고 들면 거시경제학(macro-economics)이다. 경제학이 다루는 문제는 한마디로 ‘인간의 일상생활’이라 할 수 있다. 

오늘날 주류 경제학은 구매력이 뒷받침된 수요, 즉 유효수요(有效需要, effective demand)에만 관심을 기울인다. 아프리카 어린이의 배고픔과 갈증, 지구상에서 굶주리는 8억 인구의 삶은 다루지 않는다. 가난한 자의 필요와 욕구는 유효수요가 아니기 때문이다.

20세기 이후 자본주의 체제에서 금융경제는 실물경제를 완벽하게 제압했기 때문이다. 원래 돈이란 상품과 상품의 교환을 편리하게 해주는 도구였다. 즉 산업이 목적이고 금융은 수단이었다. 그러나 금융시장이 팽창하면서 금융 자체가 목적이 됐다.

「보이지 않는 경제학」 현재욱 지음(인물과사상사·2018)
 「보이지 않는 경제학」 현재욱 지음(인물과사상사·2018)

이제 실물경제는 금융의 식민지로 전락했다. 대표적인 예가 미국식 ‘주주자본주의’다. 주주의 이익은 중시하고 기업의 사회적 책임은 경시하다 보니, 장기적 비전보다는 단기 실적에 경영의 초점을 맞춘다. 기업사냥꾼은 기업을 싸게 사서 비싸게 되팔기 위해, 구조조정이란 이름으로 노동자를 해고하고 회계장부의 당기순이익을 끌어올리는 수법을 즐겨 쓴다.

저자는 금융시장에 대해 “금융시장은 노동 없이 돈을 벌고 싶어 하는 사람끼리 경쟁하면서 실물산업이 생산한 부를 재분배하는 시장이다. 금융시장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파생상품과 시세차익”이라고 강조한다. 결국 분배구조가 중요하다는 주장이다.

이 책이 가진 가장 큰 장점은 그 시각이 균형적이며 포괄적이라는 점이다. 정부 정책, 세계화 등과 관련해 기존 좌파나 우파 경제학자들의 극단적 관점을 지양하고 세부적인 문제들을 파고들면서 실제적인 대안을 제시하려고 노력한다.

그렇게 하는 이유는 "경제학이 어떤 이념에 종속돼서는 안 되며, 경제학이란 기본적으로 세상을 가장 효율적으로 살아가기 위한 수단"이라는 게 저자의 출발점이기 때문이다. 이를 통해 삶의 매 순간 부닥치게 되는 경제적 문제들에 대해 효율적으로 대처하는 방법과 궁극적으로 자신의 행복을 늘릴 수 있는 비결을 제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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