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적으로는 사회주의 비전 실현 압박 커
WSJ "서방국 압력·공산당 통제서 딜레마 발생"

세계 주요2개국(G2)인 미국과 중국이 4일 전면적인 무역전쟁을 피하기 위한 협상에 돌입했다. 글로벌 시장경제 표준을 요구하는 미국 정부의 압박과 중국 방식의 사회주의 비전 실현을 요구하는 국내 여론 사이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운신 폭이 크지 않을 것으로 관측되면서, '시진핑 딜레마'가 양국 간 합의에 이르는 데 최대 걸림돌로 작용할 것이라는 분석이 제기되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 역시 지난 2일(현지시간) 보도를 통해 “시진핑 주석이 장기집권 기반을 갖춘 강력한 지도자로 부상한 만큼 미국의 통상 압력에 굴복하는 모습을 보일 경우 국내 반발이 적지 않을 것”이라며 미중 무역갈등이 수월하게 마무리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지적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지난달 10일 하이난성 보아오에서 열린 일명 보아오포럼에서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 시 주석은 이날 연설에서 중국 시장을 대폭 개방하고 지재권 보호를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뉴시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지난달 10일 하이난성 보아오에서 열린 일명 보아오포럼에서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 시 주석은 이날 연설에서 중국 시장을 대폭 개방하고 지재권 보호를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뉴시스

스티븐 므누신 미국 재무장관을 비롯해 로버트 라이트하이저 미국 무역대표부(USTR) 대표, 래리 커들로 백악관 국가경제위원회(NEC) 위원장, 피터 나바로 백악관 무역·제조업정책국장 등 미국의 경제·통상 사령탑들이 무역 불균형과 지식재산권, 합작 기술 투자 등 양국 간 무역 현안을 논의하기 위해 지난 3일 베이징을 찾았다.

보호무역주의와 미국 우선주의를 표방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취임 이후 미국과 중국은 서로 고율의 관세부과 카드를 교환하는 난타전을 벌여왔다. 최근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의 첨단 기술 분야를 집약한 '중국 제조 2025' 관련 1300개 품목에 25% 고율 관세를 매기고 추가 관세 조치를 예고했다.

이에 시 주석은 미국의 ‘팜 벨트(농업지대)’와 ‘러스트 벨트(공장지대)’를 겨냥한 농축산물 및 자동차 고율 관세 부과 카드로 맞불을 놓았다. 오는 11월 치러지는 미국 중간선거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표밭에 타격을 주려는 의도로 해석된다.

미국은 그동안 중국 측에 ▲지난해 3752억 달러에 달했던 대미 무역흑자를 1000억 달러 수준으로 줄이고 ▲국제 규정에 따라 지식재산권을 엄격하고 보호하며 ▲자국기업들에 대한 보조금 지급을 중단하고 ▲자국 기업과 미국 기업에 대한 차별을 폐지할 것 등을 요구해 왔다.

그러나 이 같은 미국의 요구를 들어줄 경우 시 주석이 그리는 중국 경제발전 청사진은 큰 차질을 빚게 된다. 지난달 3일 USTR이 발표한 25% 고율관세 부과대상으로 지목한 중국산 수입품 1300개 목록은 시 주석이 추진하는 ‘중국제조 2025’를 정면으로 겨냥하고 있다.

‘중국제조 2025’는 중국이 이제까지 ‘양적 제조업 강국’에서 탈피해 ‘질적 제조업 강국’으로 도약한다는 목표를 담고 있다. 지난 2015년 5월 중국 국무원이 발표한 ‘중국제조 2025’은 중국의 10대 핵심 육성 산업으로 ▲5G 통신을 포함한 차세대 정보기술(IT) ▲로봇 및 디지털기기 ▲항공우주 ▲해양엔지니어 및 첨단기술 선박 ▲선진 궤도교통 ▲신에너지 자동차 ▲전력장비 ▲농기계 장비 ▲신소재 ▲ 바이오의약 및 고성능 의료기기 등을 선정했다. 당시 중국 국무원이 발효한 '중국제조 2025' 행동강령은 이 분야의 산업들을 2025년까지 세계 1~3위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내용을 담고 있다.

미국과 중국이 정면으로 충돌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중국제조 2025’를 통해 중국이 집중적으로 육성하려는 산업들은 바로 미국이 ‘안보수호’라는 이름으로 내주지 않으려는 첨단산업 분야들이다.

시 주석이 안고 있는 딜레마도 이 지점에서 발생한다. WSJ은 만일 시 주석이 중국과의 무역마찰을 피하기 위해 중국기업들에 대한 정부 보조금을 중단하고, 지식재산권 보호의 고삐를 더욱 조이며, 자국기업과 외국기업 간 차별을 없앨 경우 중국을 첨단 기술 강국으로 도약하려는 자신의 계획이 막대한 차질을 빚을 수밖에 없을 것으로 내다봤다. 또 지방정부와 업계, 관료들의 반발도 거세질 수밖에 없다는 게 WSJ의 분석이다.

WSJ는 시 주석의 또 다른 딜레마는 시장에 대한 국가 간섭 및 통제를 중단하라는 서방국들의 압력과 국가 경제에 대한 공산당 통제를 유지해야 하는 입장 사이에서 발생한다고 설명했다. 시 주석이 미국의 통상압력에 굴복하는 모습을 보일 경우 국내 여론이 좋아지지 않을 것이라는 게 WSJ의 분석이다.

한편 중국 외교부는 “미중 양국은 평등과 상호존중의 기초하에 협상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중국 외교부에 따르면 화춘잉 대변인은 지난 3일 정례브리핑에서 관련 질문에 "이번 협상과 연관해 추가로 소개할만한 내용이 없다"면서 "어제 언급했듯이 우리는 협상을 환영한다"고 말했다.

화 대변인은 "그러나 협상은 반드시 평등과 상호 존중을 기초로 진행돼야 하고, 결과는 모두에게 이익이 되는 것이어야 한다"면서 "우리 함께 그 결과를 지켜보자"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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