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국 혼란으로 경제 불안에 유로존 긴장

이탈리아의 정치적 혼란 상황이 경제 위기를 불러올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면서, 막대한 부채를 지고 있는 이탈리아가 '제2의 그리스' 신세로 전락할 수 있다는 우려까지 나오고 있다.

지난 3월 총선 이후 80일 넘게 무정부 상태에 있는 이탈리아는 이르면 오는 7월 29일 새 총선을 치를 예정이다. 세르조 마타렐라 이탈리아 대통령이 총선에서 승리한 두 포퓰리즘 정당의 경제 장관 후보승인을 거부하자 연립정부 구성이 무산돼서다.

중국 베이징의 한 증권 중개업자가 30일 침통한 표정으로 시황 전광판을 바라보고 있다. 이탈리아 정국 불안은 중국 증시까지 흔들었다. 뉴시스
중국 베이징의 한 증권 중개업자가 30일 침통한 표정으로 시황 전광판을 바라보고 있다. 이탈리아 정국 불안은 중국 증시까지 흔들었다. 뉴시스

마타렐라 대통령은 지난 27일 국제통화기금(IMF) 고위 관료 출신인 카를로 코타렐리 보코나대학 교수를 과도 중립 내각의 임시 총리로 지명하고 정국 수습에 나섰으나, 의회 과반을 차지하고 있는 반체제 정당 오성운동과 극우 동맹당이 총리 인준을 반대하고 있어 정치적 혼란은 계속될 전망이다. 코타렐리 총리 지명자는 현재까지도 새 내각 명단을 제출하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탈리아의 정국 혼란은 글로벌 금융시장에 충격을 줬다. 지난 29일(현지시간) 이탈리아 FTSE MIB 지수는 2.6%나 하락했다. 범유럽 지수인 유로스톡스 50 지수는 1.56%, 미국 다우존스 30 산업평균지수는 1.58%씩 떨어졌다.

유럽 은행주가 직격탄을 맞았다. 이탈리아 우니크레디트 은행 주가는 이날 5.6%나 크게 떨어졌다. 스페인 산탄데르 은행(-5.4%), 프랑스 BNP파리바(4.5%), 독일 코메르츠 은행(-4.0%) 등의 주가도 동반 약세를 보였다.

이탈리아 정치 불안이 글로벌 금융 불안을 불러오고 있는 이유는 이탈리아의 취약한 재정 건전성 문제가 꼽힌다.

지난 3월 말 기준 이탈리아의 공공부채는 2조3000억 유로(약 2891조원)에 달했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부채 비율은 131%에 달해 유럽연합(EU) 회원국 중 그리스 다음으로 높은 편이다. 이에 이탈리아가 재정 위기로 8년 동안 구제금융 신세를 졌던 그리스 신세로 전락할 수 있다는 걱정이 커지고 있다. 

더욱이 오성운동과 동맹당이 내세운 연금 개혁 완화, 최저 소득, 감세 등의 정책들은 재정 적자 규모를 크게 늘릴 가능성이 높아졌다. 마타렐라 대통령 '미스터 시저스(가위)'로 불리는 재정 구조조정 전문가 코타렐리를 임시 총리로 임명한 것은 금융 시장의 불안감을 누그러뜨리기 위한 의도가 컸다는 분석이다.

아울러 두 포퓰리즘 정당이 반(反) EU 성향인 관계로 '제2의 브렉시트'(영국의 EU 탈퇴) 사태를 불러올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친(親) EU 성향의 코타렐리 대통령은 두 정당이 추천한 파올로 사보나 경제 장관 후보가 강한 반 EU 성향이라는 이유로 지명을 거부했다. 그렇지만 다음 총선에서도 오성운동과 동맹당이 선전할 가능성이 높아 앞으로 이탈리아 내에서 EU와 유로존 탈퇴 이슈가 재부상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전문가들은 이탈리아의 재정 위기나 유로존 탈퇴가 현실화되면 그리스 사태 때보다 파급 효과가 훨씬 클 것으로 보고 있다.

이탈리아는 재정 위기로 유럽을 뒤흔들었던 그리스보다 경제 규모가 10배 더 크다. 유럽 통화협정에서 탈퇴한다면 단일 통화(유로)는 현재의 형태로 유지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일각에서는 최근 정치적 혼란이 두 포퓰리즘 정당의 입지를 강화시켜 EU와 유로존 체제에 대한 의문을 더욱 증폭시킬 수 있다는 전망도 내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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