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숙인 관련 예산, 서울시만 530억 원
노숙현상에 지속적 관심 보여 온 박원순 서울시장
노숙현상 해법 찾아 나선 국제 비영리기관
마음의 상처 치유 위한 성숙한 시민의식 요구


[스트레이트뉴스=김태현 선임기자] “더러워요.”, “무서워요.”, “주정뱅이들...”, “세금도둑들 아니에요?” 노숙인을 바라보는 시민들의 반응이다. 맞는 말이다. 그들은 잘 씻지 않아 더럽게 보일 수 있다. 동전이라도 줄 요량으로 가까이 다가가면 지린내가 진동한다.

일부 노숙인들은 음주 후 행인들을 향해 고래고래 악다구니까지 질러댄다. 우리가 낸 세금이 그들에게 지원된다.

사전답사 기간 중 대회 참가자들에게 노숙인 현황을 설명하는 서울시 복지본부 자활지원과 이진산 주무관 ⓒ스트레이트뉴스
사전답사 기간 중 대회 참가자들에게 노숙인 현황을 설명하는 서울시 복지본부 자활지원과 이진산 주무관 ⓒ스트레이트뉴스

“형제복지원 사건을 기억하십니까? 예전에는 노숙인을 부랑자, 행려자로 불렀는데, (중략) IMF 외환위기 이후에 정부가 노숙인 문제에 본격적으로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습니다. 노숙인 관련 예산은 해마다 증액되어 왔습니다. 올해 노숙인 지원을 위해 서울시에서 편성된 예산은 추경 포함 540억 원 수준입니다.”

서울시 복지본부 자활지원과 이진산 주무관의 설명이다. 무려 540억 원, 그럼에도 해결이 안 된다. 보건복지부나 서울시, 노숙인 지원 기관 및 단체들이 내놓는 자료를 보면, 노숙인 수는 매년 12,000여 명에 불과하다. 그 많은 돈을 쏟아 붓고도 해결을 못하다니, 언뜻 이해가 가지 않는다. 왜 그럴까?

노숙인이 생기는 이유는?

“노숙인들은 어떤 사람들일까? 몇 년에 걸쳐 조사했다. 그 결과는 놀라웠다. 노숙인의 약 30%가량은 고아원 출신이었고, 약 60%가량이 결손가정, 알코올중독가정, 폭력가정에서 성장했다. 평균 나이는 50세. 이들 중 약 60%가량은 한 번도 가족관계를 형성해 본 경험이 없었다.”

대한성공회 임영인 신부의 저서 <내가 누구인지 알려주세요>(2009.삶이보이는창)에 나오는 대목이다. 임영인 신부는 지금의 ‘서울시립 다시서기 희망지원센터’를 설립한 인물이다.

노숙인 100명 중 90명이 비정상적인 성장 과정을 겪었고, 그중 60명은 가정(home)조차 가져보지 못했다는 얘기다. 그래서 ‘홈리스(homeless)’라는 호칭이 붙었을까.

서울역 광장에 위치한 ‘서울시립 다시서기 희망지원센터’와 설립자 임영인 신부(임 신부는 노숙인 인권을 위해 노력해 오다 지난 2005년 노숙인들과 함께 투쟁해 서울역 광장에 서울시립 다시서기 희망지원센터의 전신인 ‘노숙인지원 다시서기센터’를 설립했다) ⓒ스트레이트뉴스
서울역 광장에 위치한 ‘서울시립 다시서기 희망지원센터’와 설립자 임영인 신부(임 신부는 노숙인 인권을 위해 노력해 오다 지난 2005년 노숙인들과 함께 투쟁해 서울역 광장에 서울시립 다시서기 희망지원센터의 전신인 ‘노숙인지원 다시서기센터’를 설립했다) ⓒ스트레이트뉴스

이것만 해도 노숙인이 생기는 이유 중 90%를 차지하지만, 기자가 만난 임영인 신부는 여기에 사회구조적인 요인을 덧붙였다.

“경쟁 위주의 신자유주의 시스템 하에서는 탈락자가 생길 수밖에 없고, 그렇게 탈락된 이들이 1997년 IMF 외환위기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거리로 쏟아져 나왔던 겁니다. 물론 지금도 멀쩡했던 사람들이 거리로 나오고 있고요. 이런 현상은 앞으로도 계속되겠죠?”

세상 바꾸기 해법 찾아 나선 사람들

지난 8월 31일부터 9월 1일까지 이틀간 노숙인 문제에 대한 해답을 찾는 대회가 열렸다. 국제적인 비영리기관 넷임팩트글로벌(Net Impact Global) 한국지부가 개최한 ‘홈리스 챌린지 해커톤대회’다.

스트레이트뉴스는 넷임팩트글로벌 한국지부와 함께 박원순 서울시장을 찾았다. 차기 대선주자 1순위로 거론되는 박 시장은 지난 여름 강북지역 현황 파악 차 한 달 간 옥탑방에서 생활하고, 휠체어 대중교통 체험을 계획하는 등 취약지역・계층을 위해 노력해왔다.

특히 최고 취약계층인 노숙인을 위한 활동이 인상적인데, 오세훈 전 시장이 무상급식 관련 주민소환투표로 하차한 후 실시된 보궐선거에서 당선되자마자 첫 시정으로 국화꽃을 들고 무연고 노숙인 사망자를 찾기도 했다.

학생과 일반인, 퍼실리테이터(촉진자), 노숙인으로 구성된 봄날밴드, 각계 전문가 등 총 130여 명이 참여한 이날, ‘노숙인 자가 구직 애플리케이션’, ‘자활을 위한 노숙인 자가진단 애플리케이션’, ‘노숙인・일반인 관계형성 애플리케이션’ 등 ICT 기술이 접목된 다양한 결과물들이 탄생했다.

대회를 주최한 넷임팩트코리아(Net Impact Korea)의 제임스 리(James Lee) 대표를 만났다.

_ 넷임팩트는 어떤 기관인가?

“넷임팩트는 ‘다양한 사회・환경 문제에 비즈니스 기법을 지원한다’는 모토로 1993년 미국에서 설립된 국제 비영리기관입니다. 전 세계 300여 곳에 지부가 있고, 삼성, 코카콜라, 토요타, 스타벅스, 맥도널드, 3M 등 세계적인 기업들도 스폰서십으로 함께하고 있습니다.”

_ 구체적인 활동은?

“저희는 우리 청년들이 보다 나은 세상을 만들어 갈 수 있도록 돕고 있습니다. 이번 대회 주제는 ‘노숙인’인데요, 시민들이 노숙현상이라는 사회문제를 정확히 바라보고, 그들을 공동체의 일원으로 포용할 수 있는 나름의 해법을 찾아봤습니다.”

대회 참가자들에게 프로그램의 개요를 설명하는 넷임팩트코리아 제임스 리 대표 ⓒ스트레이트뉴스=넷임팩트코리아
대회 참가자들에게 프로그램의 개요를 설명하는 넷임팩트코리아 제임스 리 대표 ⓒ스트레이트뉴스=넷임팩트코리아

_ 지난 2015년 대회 때는 유력 정치인들도 참여했다고 들었다.

“예, 2015년 대회 때 박원순 서울시장님, 안철수 전 대표님이 오셔서 청년실업에 대해 함께 고민하기도 했습니다.”

_ 대회 진행방식은?

“지난달 25일, 26일에 노숙인들이 계시는 서울역 광장, 후암동 쪽방촌 부근을 현장답사하면서 전문가들로부터 현황을 들었고요, 참여 신청자 중에서 4~6인 1조로 총 76명 14개 팀을 선발해 이틀 동안 문제 해결을 위한 아이디어 구체화작업, 가상 프로토타입 제작, 결과물 도출작업을 실행했습니다. 그 과정에 IoT, AI, VR, ICT 등 각 분야 전문가들이 촉진자로서 멘토링, 아이디어 피칭 등의 도움을 제공했습니다.”

_ 노숙인 문제와 관련해서, 향후 계획은?

“노숙현상은 우리나라뿐 아니라 미국과 일본, 유럽 어디나 있습니다. 또 지속적으로 늘어나는 추세입니다. 우리는 이번 대회를 기점으로 사회공헌에 대한 각 기업들의 인식을 조금 더 높이는 노숙인 지원프로그램을 확대해 나갈 예정입니다.”

‘노숙인 자가 구직 애플리케이션’을 개발 중인 참여 학생들 ⓒ스트레이트뉴스=넷임팩트코리아
‘노숙인 자가 구직 애플리케이션’을 개발 중인 참여 학생들 ⓒ스트레이트뉴스=넷임팩트코리아

12,000여 명, 보건복지부가 매년 발표하는 우리나라 거리노숙인의 수다. 그러나 쪽방이나 만화방, PC방, 찜질방, 고시원 등에서 언제든 나락으로 떨어질 수 있는 ‘잠재노숙인’까지 포함하면 노숙인의 수는 대략 40만 명까지 늘어난다. 많은 예산을 쏟아 붓고도 노숙현상을 해결할 수 없는 원인들 중 하나다.

학계에서는 노숙현상의 원인으로 ‘고아원 출신’, ‘폭력가정・알코올중독가정 출신’, ‘불평등한 교육’ 등에 ‘경쟁 위주의 신자유주의 경제시스템’과 ‘공동체 몰락’을 꼽는다.

노숙현상을 없애자고 경제시스템을 한순간에 바꿔 버릴 수는 없는 일이다. 그렇다고 이대로 방치할 수도 없다. 현 경제시스템 하에서는 경제가 발전할수록 경쟁이 치열해지고, 그럴수록 노숙인이 더 많이 생겨나기 때문이다. 실제로 인구 대비 노숙인 수에서는 미국과 일본, 영국 등 선진국들이 압도적 우위를 점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다행히 1997년 발생한 IMF 외환위기 이후 정부와 각 지자체는 물론, 기업계, 종교계, 시민단체 등 노숙현상을 해결하기 위한 각계의 동참이 이어지고 있다.

서울역 광장에서 노숙인들을 보살피는 서울남대문경찰서 서울역파출소 소속 노숙전담경관 한진국 경위 ⓒ스트레이트뉴스
서울역 광장에서 노숙인들을 보살피는 서울남대문경찰서 서울역파출소 소속 노숙전담경관 한진국 경위 ⓒ스트레이트뉴스

“‘웰컴 투 동막골’이라는 영화 아시죠? 거기 바보 소녀가 나오잖아요. 제가 어릴 때만 해도 동네마다 바보나 노숙인이 꼭 한 명씩은 있었는데요, 그 사람들 다 동네 아주머니, 할머니들이 먹이고 입히고 씻겼거든요. 하지만 지금은 마을공동체가 거의 다 사라져서...”

한 퍼실리테이터(촉진자)의 설명이다. 마을공동체가 맡았던 역할이 이제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로 넘어왔다. 이는 노숙현상을 시민들에게 이해시키고, 노숙인들을 보듬어 안아야 할 책임을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떠맡아야 한다는 의미다. 실제로 그렇게 하고 있고, 이 또한 많은 예산이 필요한 이유다. 문제는 시민 개인의 대응이다.

노숙현상은 ‘사회의 온정’이 얼마나 강한지를 체크하는 리트머스 시험지다. 가슴에 저마다 상처를 가진 채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의 한쪽 귀퉁이로 떠밀려 이슬을 맞으며 섬처럼 살아가는 한국 국적의 정신적 난민들, 그들을 사회구조적 문제에서 바라보려는 인식이 점점 더 시급해지는 시대다.

이제는 ‘나 사는 것도 벅차다’는 시각에서 ‘죽어가는 생명이 있다’는 시각으로 조금씩 이동해 그들이 가진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려는 성숙한 시민의식을 발휘해 보면 어떨까.
bizlink@straigh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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