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 르포-서울역①] 폭염 속 서울역 노숙인 찾은 성당 아이들
[ST 르포-서울역①] 폭염 속 서울역 노숙인 찾은 성당 아이들
  • 고우현 기자 (straightnews@gmail.com)
  • 승인 2018.0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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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가 1994년 폭염 기록을 연일 갈아치웠다. 북태평양고기압과 티베트 열풍에 의한 열돔현상, 거기에 기후변화에 의한 이상기온까지 겹친 탓이다. 일반 시민들에게도 힘겨운 폭염을 ‘인내’ 하나로 버티는 이들이 있다. 서울의 관문인 서울역을 집 삼아 살아가는 노숙인들이다. 이글이글 타오르는 서울역 광장을 다녀왔다.<편집자주>

<목차>
① 폭염 속 서울역 노숙현장 찾은 성당 아이들
② '노숙 지키미' 경찰관과 폭염 식히는 소방교

한낮 서울 기온이 38℃를 기록한 지난 3일, 서울의 관문인 서울역 광장의 아스팔트 온도는 56℃를 훌쩍 넘어섰다. 20분 만에 계란 프라이가 만들어질 정도. 올 여름 들어 벌써 2,800여 명이 온열질환에 걸렸고, 그중 35명이 사망했다.

하늘에서 내려다본 서울역 광장 ⓒ스트레이트뉴스
하늘에서 내려다본 폭염 속 서울역 광장 ⓒ스트레이트뉴스

 

문화공간으로 재탄생한 구 서울역사 주변. 폭염에 무방비로 노출된 노숙자들이 삼삼오오 앉아 있다. ⓒ스트레이트뉴스
문화공간으로 재탄생한 구 서울역사 주변. 폭염에 무방비로 노출된 노숙자들이 삼삼오오 앉아 있다. ⓒ스트레이트뉴스

열차 이용객 외에는 행인이 뜸한 광장의 오후, 구석구석에 폭염에 무방비로 노출된 남루한 삶들이 있다.

해수욕장 대신 사회문제 찾아 나선 학생들

서울역 광장 북쪽 끝 지하철 2번 출구 인근에는 ‘서울시립 다시서기 희망지원센터’와 ‘서울남대문경찰서 서울역파출소’가 20여 미터를 사이에 두고 마주보고 있다. 그곳에 20여 명의 일반인들이 모여 있었다. 그들을 따라가 봤다.

서울시립 다시서기 희망지원센터(진회색 건물). 이 건물은 2006년 대한성공회 임영인 신부가 20ft 컨테이너 세 개 동을 설치하면서 노숙인들을 돌보기 시작한 시설이다. 3년 전 박원순 서울시장이 시비를 지원하면서 시설 증축 및 부서 확장을 통한 노숙인 지원 시스템의 개선이 이루어졌다. ⓒ스트레이트뉴스
서울시립 다시서기 희망지원센터(진회색 건물). 이 건물은 2006년 대한성공회 임영인 신부가 20ft 컨테이너 세 개 동을 설치하면서 노숙인들을 돌보기 시작한 시설이다. 3년 전 박원순 서울시장이 시비를 지원하면서 시설 증축 및 부서 확장을 통한 노숙인 지원 시스템의 개선이 이루어졌다. ⓒ스트레이트뉴스

“다시서기 희망지원센터는 노숙인 선생님들을 돕기 위한 시설입니다. 노숙인 선생님들은 이런저런 이유로 서울역에 와 계시는데요, 가장 힘든 것은...”

원불교 종단의 노숙인지원시설인 원봉공회 소속 강민수 간사가 일반인 20여 명에게 시설에 대해 설명하고 있었다. 일반인들의 인솔자에게 어디서 왔는지 물었다.

“저희는 천안 쌍용동성당에서 왔습니다. 지금까지 여름이 되면 중고등학생들과 함께 해수욕장이나 계곡으로 여름학교를 다녀오곤 했는데, 이번 여름에는 우리 아이들이 사회적인 문제를 고민해 보는 여름학교를 생각했습니다. 학생들의 호응도 좋았습니다. 그 일환으로 여러 팀을 나눴는데, 그중 한 팀이 노숙현상을 알아보기 위해 이곳에 왔습니다.”

내년 1월이면 사제 서품을 받는다는 파스칼 최 부제(사제 직전 직급)의 대답이었다. 강민수 간사의 설명을 듣는 중간 중간, 학생들은 지원센터 앞에 모여앉은 노숙인들에게 불안한 시선을 보냈다.

서울시립 다시서기 희망지원센터 앞에서 학생들에게 노숙현상에 대해 설명하는 원봉공회 강민수 간사 ⓒ스트레이트뉴스
서울시립 다시서기 희망지원센터 앞에서 학생들에게 노숙현상에 대해 설명하는 원봉공회 강민수 간사 ⓒ스트레이트뉴스

"우와, 이건 뭐예요?"

“이 지하도는 서울역에서 가장 먼저 만들어진 겁니다. 예전에는 노숙인들 사이에 속칭 ‘명당’으로 통했던 곳이죠.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매년 300여 명의 노숙인들이 추위로, 또 더위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세월호가 일 년에 한 번씩 침몰한 셈이죠. 그런데 박원순 서울시장이 오고 나서 여러분 뒤쪽에 보이는 대피소가 만들어졌어요. 11월부터 다음해 2월까지 혹한기 4개월 동안 추위를 피할 수 있게 말입니다. 그 덕분에 사망자가 거의 1/10 이상 확 줄었답니다.”

김태현 작가가 노숙생활의 실상에 대해 설명했다. 김태현 작가는 자신의 노숙생활을 바탕으로 노숙인에 대한 시민의 관심을 제고하는 웹툰 기반 만화 ‘길리언(Gillian)’을 출간한 바 있다.

"저, 인터넷에서 길리언 봤는데요, 스토리펀딩 한 거잖아요. 그거 보고 막 울었어요."

노숙생활의 실상을 전하는 김태현 작가(중앙의 키 큰 남성은 인솔자인 파스칼 최 부제) ⓒ스트레이트뉴스
노숙생활의 실상을 전하는 김태현 작가(중앙의 키 큰 남성은 인솔자인 파스칼 최 부제) ⓒ스트레이트뉴스
혹한기 대피용 노숙인 숙소. 최대 150명까지 수용할 수 있으며, 세면대와 샤워실, 화장실을 갖추고 있다. ⓒ스트레이트뉴스
혹한기 대피용 노숙인 숙소. 최대 150명까지 수용할 수 있으며, 세면대와 샤워실, 화장실을 갖추고 있다. ⓒ스트레이트뉴스

“여기 이 시설은 노숙인들에게 식사를 제공하는 곳입니다. 예전에는 교회나 성당, 사찰, 개인이 서울역 광장에서 따로 따로 식사를 제공했는데요, 그렇게 하다 보니까 어떤 날은 식사가 남아도는데 어떤 날은 또 식사가 전혀 없는 그런 일들이 반복됐어요. 그래서 우리나라 4대 종단 있죠, 기독교, 천주교, 불교, 원불교, 그런 곳과 봉사단체들이 모여서 일정을 짜서 중복되지 않게 했어요. 또 거리에서 식사를 하는 것보다는 식당에 모여서 식사하면 노숙인들의 인권도 보호되고, 시민들이 눈살을 찌뿌릴 일도 없겠죠?”

서울역 남쪽 끝 14번 출구 아래쪽 거리에는 의료지원센터, 쪽방 상담소, 따스한 채움터 등 노숙인 지원 시설들이 밀집해 있다.

노숙인 식사제공 서비스를 지원하는 따스한 채움터 앞에서 설명하는 김태현 작가 ⓒ스트레이트뉴스
노숙인 식사제공 서비스를 지원하는 따스한 채움터 앞에서 설명하는 김태현 작가 ⓒ스트레이트뉴스
이날 점심 당번인 ‘사랑의 밥차’ 책임자가 학생들에게 현황을 설명 중이다. ⓒ스트레이트뉴스
이날 점심 당번인 ‘사랑의 밥차’ 책임자가 학생들에게 현황을 설명 중이다. ⓒ스트레이트뉴스

종교나 민관 구분 없는 도움의 손길 이어져

김태현 작가에 따르면, 우리나라 4대 종단인 기독교, 천주교, 불교, 원불교는 노숙인 지원에 함께 손발을 맞추고 있다. 김 작가가 보건복지부의 지원을 받아 제작한 웹툰 기반 만화 ‘길리언’ 역시 4대종단의 공동기획에 의해 탄생한 작품이다.

노숙인 지원에는 민관의 구분도 없다. 서울시는 서울시대로, 또 삼성이나 마사회, 기업은행 등 기업들은 기업들대로 ‘따로 또 같이’ 노숙인 지원에 발 벗고 나서고 있다. 개인의 노력도 이어지고 있다.

이번 천안 쌍용동성당 학생들의 노숙현장 방문에도 한 기업의 조용한 지원이 숨어 있었다.

학생들에게 노숙현상에 대해 설명하는 넷임팩트코리아(wework)의 제임스 리 대표(자료:넷임팩트코리아/wework) ⓒ스트레이트뉴스
학생들에게 노숙현상에 대해 설명하는 넷임팩트코리아(wework)의 제임스 리 대표(자료:넷임팩트코리아/wework) ⓒ스트레이트뉴스
강의를 경청하는 학생들(자료:넷임팩트코리아/wework) ⓒ스트레이트뉴스
강의를 경청하는 학생들(자료:넷임팩트코리아/wework) ⓒ스트레이트뉴스

“노숙현상은 한국뿐 아니라 미국과 일본, 유럽 어디나 존재합니다. 저희 회사는 사회공헌을 큰 가치로 생각합니다. 지금까지 미력이나마 후암동 쪽방촌 일대에 거주하시는 노숙인 분들을 도와오고 있지만, 앞으로는 지원 프로그램을 더 확대할 예정입니다. 이렇게 노숙현장을 찾아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오늘 프로그램을 통해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이 노숙인의 실상을 알고 더 많이 알리는 씨앗이 되어주기를 바랍니다.”

서울역 맞은편에 위치한 스퀘어빌딩(구대우빌딩) 13층에 자리한 넷임팩트코리아(Net Impact Korea) 한국지부(wework) 제임스 리(James Lee) 대표의 당부다.

노숙인이 생길 수밖에 없는 이유와 대책

넷임팩트코리아 회의실에서 노숙현장 방문을 마친 학생들과 선생님들, 김태현 작가의 워크숍이 열렸다.

김태현 작가는 약 40여 분가량 ‘세계경제시스템에 대한 이해’와 ‘노숙현상 및 노숙인에 대한 이해’, ‘공동체와 함께의 의미’ 등에 대한 강의를 이어갔다.

"선생님, 노숙인이 선진국에 많다고 그러셨는데요, 아프리카 같이 못사는 나라에 많을 거 같은데 왜 그래요?"

“좀전에 신자유주의가 뭔지 알아봤죠? 우리나라 경제시스템도 신자유주의, 다시 말해서 ‘시장’에 기초해 있으니까, 당연히 경쟁이 우선일 수밖에 없겠죠? 그럼 어쩔 수 없이 낙오하는 사람이 생기겠죠? 특히 가족이 없다면, 그리고 그 사람이 초등학교도 나오지 못했다면, 그런 상태에서 열심히 일하다가 어디 한 군데 삐끗했다면 어떻게 될까요? 누가 도와줘야 할까요?”

“저는 도와주기 싫은데요...”

학생들의 폭소가 터졌다. 그러나 강의가 진행됨에 따라 노숙인들을 무섭고 더럽다고 여겼던 학생들의 표정도 차츰 진지해졌다. 김태현 작가에게 대책에 대해 물어봤다. 의외로 쉬운 대답이 돌아왔다.

“노숙인은 마음의 상처를 털어놓을 사람 하나 없는 외로운 세계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거시적으로 쉘터(쉼터)를 짓고 지원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들에게 정말로 필요한 것은 모르는 상태에서 욕하기보다 알고 이해해주는 것입니다. 물론, 이해한다고 해서 지금 당장 다가가서 뭘 어떻게 할 필요는 없습니다. 노숙현상이 왜 일어나는지 인터넷 키보드만 두드려보면 다 나와요. 그런 걸 읽어보면 현상을 이해할 수 있게 됩니다. 이해했다면 조용히 알리는 것, 그것만 해주셔도 사회는 지금보다 훨씬 더 밝아질 겁니다.”

12,000여 명, 보건복지부가 매년 발표하는 우리나라 거리노숙인의 수다. 그러나 김태현 작가는 쪽방이나 만화방, PC방, 고시원에서 언제든 나락으로 떨어질 수 있는 사람들은 빠져 있다고 했다. 이들을 ‘잠재노숙인’이라고 부르는데, 사회복지분야 학자들에 따르면 잠재노숙인까지 합친 우리나라 노숙인의 수는 무려 40만 명에 육박한다고 한다.

학계에서는 노숙현상의 원인으로 ‘경쟁 위주의 신자유주의시스템’과 ‘공동체 몰락’을 꼽는다. 김태현 작가 역시 이 두 가지를 꼽았다.

“‘웰컴 투 동막골’이라는 영화 아시죠? 거기 바보 소녀가 나오잖아요. 제가 어릴 때만 해도 동네마다 바보나 거지, 그때는 거지라고 불렀어요, 그런 사람이 꼭 한 명씩은 있었는데요. 그 사람들 다 동네 아주머니, 할머니가 먹이고 입히고 씻겼거든요. 하지만 지금은 마을공동체가 거의 다 사라져서...... 여러분들이 청년이 되고 40세가 될 때쯤에는 노숙인들을 더럽고 무섭고 세금도둑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보다 불쌍히 여기는 사람들이 지금보다 훨씬 더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서울역 노숙인들에게 형님, 동생, 삼촌으로 불리는 한진국 경위(서울역파출소 소속 노숙전담경관) ⓒ스트레이트뉴스
서울역 노숙인들에게 형님, 동생, 삼촌으로 불리는 한진국 경위(서울역파출소 소속 노숙전담경관) ⓒ스트레이트뉴스

노숙현상을 없애자고 경제시스템을 한순간에 바꿔 버릴 수는 없는 일이다. 그렇다고 이대로 방치할 수도 없다. 신자유주의 경제가 발전할수록 경쟁이 치열해지고, 그럴수록 노숙인이 더 많이 생겨나기 때문이다. 실제로 인구 대비 노숙인 수에서는 미국과 일본, 영국 등 선진국들이 압도적 우위를 점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마을공동체가 맡았던 역할은 이제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로 넘어왔다. 이는 노숙현상을 시민들에게 이해시키고, 노숙인들을 보듬어 안아야 할 책임을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떠맡아야 한다는 의미다.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의 한쪽 귀퉁이로 떠밀려 섬에 갇힌 것처럼 살아가는 한국 국적의 정신적 난민들’, 김태현 작가가 노숙인을 부르는 또 다른 이름이다. 성장도 좋고 분배도 좋지만, 그들이 가진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는 일이 점점 더 시급해지는 시대다.

워크숍 말미, 한 학생이 배포한 자료에 적혀 있는 '어느 신원 미상 노숙인의 묘비에 새겨진 비문'을 조용히 읽고 있었다.

"지금의 당신 모습은 과거의 내 모습이었고,
지금의 내 모습은 미래의 당신 모습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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