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접민주주의 요소 도입, 점진적으로 준비해야

「제주도에서 현실화된 데모크라시의 두 가지 위험성」
「대의민주제의 폐해, 보강할 필요성 제기돼」
 

강연이 있어 제주도 다녀오는 길에 한국의 잘못된 정치시스템으로 인해 생겨난 참담한 국민 피해 현장 두 곳을 목도했다. 한 곳은 제주공항, 또 한 곳은 강정마을이다.

▲ 국민이 키워가는 정치시스템, 데모크러시 ⓒdemocracyandsustainability.org

데모크라시democracy의 위험성

민주주의를 흔히 데모크라시로 번역한다. 데모크라시는 demo(국민)이 cracy(통치)하는 정치체제를 말한다. 우리나라는 데모크라시의 국가일까? 절반만 그렇다. 국민이 직접 통치하지 않고 통치를 대신해 줄 대리인을 뽑는 대의민주제를 채택하고 있기 때문이다.

스위스연방의 대통령을 지낸 파스칼 쿠세핑Pascal Couchepin은 민주주의에 다음 세 가지 위험성이 내포되어 있다고 했다.

▲ 파스칼 쿠세핑 전 스위스 대통령 ⓒswissinfo.ch

○ 사회적 권력 : 완전히 날조된 정책이라도 미디어와 정치 지도자들에 의해 지속적으로 반복되면 진실로 둔갑할 수 있다. 이러한 조작은 반대 시각을 허용치 않으며 검열까지 부를 수 있다.

○ 수적 다수의 독재 : 다수자가 소수자의 기본적 자유를 침해할 수 있다.

○ 이익집단의 전횡 : 특수한 이해의 합이 반드시 공동선과 일치하지는 않음에도, 이익집단의 입맛에 맞는 정책이 양산될 수 있다.

제주도에서 현실화된 두 가지 위험성

제주도에는 쿠세핑 대통령이 언급했던 두 가지 위험성이 이미 현실로 나타나 있다. 먼저, 강정마을이다. 마을길을 지나 해안으로 들어서는 마지막 블록 입구에 ‘군사용 차량이나 군복을 착용한 군인의 출입을 일절 엄금한다’는 현수막, ‘해군이 내건 구상권을 즉각 철회하라’는 현수막이 걸려 있다. 마을은 현수막 문구에 담긴 살벌함만큼이나 평화롭지 않다. 60대 촌로들의 전언이다.

“마을이 두 동강이 났어요.”

“해군기지 가차이(가까이) 땅 있는 넘들은 살판이 났고, 바다 나가서 벌어먹는 넘들은 죽을 지경이지 뭐...”

강정마을에 해군기지를 건설하는 문제는 엄청난 국민적 저항에 부딪쳤었고, 건설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지금도 국민들의 저항은 여전히 드세다.

 

▲ 시위 중인 강정마을 주민들 ⓒ뉴시스

다음으로, 제주공항이다. 서울에서 정시에 출발한 비행기가 예정된 시각을 한참이나 넘겨 착륙했다. 트랩을 내려서자마자 활주로를 바라보았다. 비행기들이 줄줄이 사탕처럼 꼬리를 물고 내려앉고 있었다.

‘왜 이렇게 비행기가 많냐’는 질문에 돌아온 항공사 관계자의 말이 걸작이다.

“중국 춘절이 끼어서 그런데요, 곧 일본 휴가랑 태국 휴가까지 끼이면 아마 기장들 공항 위 상공에 모여서 담배 태우면서 기다려야 할 걸요.”

공항 인근 렌트카 업체 관계자의 말도, 강연 초청을 받은 업체 대표의 말도 모두 ‘공항이 미어 터진다’는 말 일색이었다. 제2공항을 반드시 건설해야만 할 것 같았다. 그러나 제2공항 예정 부지 인근 주민들과 환경단체 관계자의 말은 정반대였다. 제2공항 건설 문제 역시 제주도를 정확히 둘로 가르고 있었다. 그리고 어느 쪽으로 결정되든 억울한 패자는 반드시 생길 수밖에 없을 터였다.

▲ 하늘의 교통체증 ⓒairwaysnews.com

대의민주제의 폐해와 자유주의자들의 거부

국민을 대리할 정치인을 뽑아 통치를 맡기는 정치시스템인 대의민주제는 그동안 몇 가지 폐해를 드러냈다. 소수의견 무시, 정치적 패자의 불만족 고조, 지역의 블록화, 국론 분열 등이 그것들이다.

이런 폐해로 인해 직접민주주의 요소를 도입해 대의민주제를 보완하자는 세계적인 요구가 지난 두 번째 새천년 이후 끊임없이 분출되어왔다. 그러나 이러한 요구는 대의민주제를 신봉하는 자유주의자들에 의해 거부당해왔다. 그들이 지금도 내세우는 거부의 변을 들어보자.

“비용이 너무 많이 든다.”

“효율적이지 않아 일대 혼란을 자초할 것이다.”

“국민은 무능하다.”

특히 국민은 무능하다는 세 번째 변에 대해, 스위스의 정치인(1850년대)이었던 제이콥 더브즈는 ‘데어 란트보테’지에 쓴 칼럼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자산이 없고 공교육을 받지 못한 자들은 확장된 정치권력을 사용하는 능력이 결여되어 있다. 국민은 책임감도 없고, 법과 정의에 대한 지식도 없으며, 긴 안목과 공동선, 교육, 문화에 대한 통찰력과 건전한 판단력도 갖고 있지 못하다. ...... 국민들이 민주적 프로그램이라는 마법의 잔을 들이키도록 하는 것, 우리는 그렇게 할 수 없다. 그것은 우리가 믿는 민주주의가 아니고, 우리가 신봉하는 자유도 아니며, 미래가 걸려 있는 진실되고 자유로운 인간성도 결코 아니다.”

직접민주주의 요소의 폐해, 사실일까?

정치인들은 국민의 투표를 통해 권력을 장악한다. 하지만 정치인들은 그저 국민을 위해 통치하고자 할 뿐, 국민과 함께 갈 생각은 없다. 이는 거의 세계 공통이다. 위에 언급한 거부의 변들을 하나하나 따져보자.

▲ 마을 광장에 모여 시민발의안을 투표 중인 광경(스위스) ⓒnewlyswissed.com

먼저, 직접민주주의 요소는 정말로 비용이 많이 들까? 그렇지 않다. 현재 세계에서 직접민주주의가 가장 발달한 나라는 스위스인데, 스위스의 기업인들이 공동으로 연구백서를 발간해 ‘사회적 갈등으로 인한 비용을 고려하면, 의사결정의 공정성과 사회적 합의에 따른 경제적 수혜는 돈으로 따질 수조차 없다. 직접민주주의는 경제적으로 가장 효율적인 제도다’라고 할 정도다. 비용, 오히려 덜 든다고 보는 게 옳다.

다음으로, 효율적이지 않아 혼란을 자초할 것이라는 두 번째 변에 대해, 2007년 기준 스위스에서 국민발의된 162 건 중 투표를 통과한 안건은 고작 15개에 불과했다. 특히 비핵발전, 핵발전소 건설 중단 연장, 장애인 권리 보장, 건강보험, 청소년 직업훈련 등 우리에게도 매우 민감한 사안들이 모두 통과에 실패했다. 그리고 패자는 말이 없었다. 자유주의자들이 염려했던 일대 혼란은 전혀 일어나지 않았으며, 오히려 정치 발전의 속도가 빨라졌고 국론 분열까지 막아냈던 것이다.

마지막으로, 그렇다면 국민은 정말로 무능할까? 이에 대해 핀란드의 정치학 교수인 괴랑 듀프스운트는 이렇게 말했다.

“국민투표가 시민에게 해를 입히는 상황을 상상해 볼 수 있다. ...... 사형제가 부활하고, 유류세가 대폭 인하되는 그런 상황 말이다.”

이러한 주장을 ‘국민 무능력 주장’이라 한다. 여성의 참정권을 인정하기까지 엄청난 희생이 따랐지만, 지금은 어느 누구도 여성으로부터 참정권을 빼앗으려 하지 않는다. 그리고 스위스 국민들이 무능력했다면 스위스가 어떻게 직접민주주의의 요람이 되었겠는가. 국민이 무능하다는 주장은 어떤 것도 증명할 수 없다. 오히려 그 주장 자체가 증명되어야 한다.

직접민주주의 요소의 도입, 진중하게 고려할 때

직접민주주의 요소 중 대표적인 것이 국민투표와 국민발안이다. 그중 국민발안이란, 국회를 통과한 법이라도 그 법이 효력을 갖기 100일 전에 5만 명, 10만 명, 100만 명 등 사안별로 일정 수의 국민이 참여해 반대 안건을 내면 투표에 부칠 수 있는 직접민주주의 요소를 말한다.

강정마을 해군기지 건설 문제는 국민을 통치하고자 할 뿐 국민과 함께 가는 일에는 별 관심이 없는 정치인들에 의해 결정되고 추진 중인 사안이다. 제주 제2공항 역시 유사한 방식으로 추진되고 있다. 그런 탓에 제주도 내 시민들은 이해득실에 따라 사분오열되었고, 국민의 여론 역시 둘로, 셋으로, 넷으로 갈라져 들끓고 있다.

▲ 분열로 치닫는 국론 ⓒmondolithic.com

만일 해군기지 건설 문제가 시민발의를 통해 서귀포시 투표를 필두로, 제주도와 대한민국 전체로 확장되어 시민적(국민적) 결론이 도출되었더라면, 땅값이 8배나 폭등하고, 마을이 두 쪽으로 동강나고, 여론이 분열되는 것과 같은 엄청난 사회적 기회비용은 물지 않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 결론이 찬성이었든 반대였든 말이다.

비단 강정마을 문제뿐만이 아니다. 현재 국론 분열의 최 첨예 현안인 위안부 할머니 문제, 개성공단 문제, 한국사 교과서 문제 등에 대해서도, 전북 부안 시민들이 방폐장 문제를 해결했던 사례를 참고하여 직접민주주의 요소를 도입한다면 국론 분열을 막을 수 있을 뿐 아니라, 정치적 책임의 경감까지 도모할 수 있을 것이다.

먹거리가 차츰 줄어들어 국민적 원성이 높아지는 이때야말로, 직접민주주의 요소의 도입에 관해 신중히 고려해보고 점진적으로 여론을 수렴해 나가야 할 때이다.


 

김태현 두마음행복연구소 소장, 인문작가, 강연가

 

<돌직구뉴스>후원회원으로 동참해주십시오. 눈치 보지 않고 할 말 하는 대안언론! 시민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당당한 언론! 바른 말이 대접받는 세상을 만드는 데 앞장서겠습니다!

 

 

 

 

 

저작권자 © 스트레이트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키워드

Tags #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