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이 내리는 징벌적 레임덕에 두 다리가 한꺼번에 잘리는 오리 신세

축구경기에 ‘극장’이라는 말이 있다. 언저리^^ 타임에 극적으로 결승골이 들어갈 때 종종 쓰는 말이다. 이번 총선이 딱 그짝이다.

▲ 2016, 국민의 승리 ⓒgoal.com

사전투표가 끝날 때까지 게거품을 물고 떠들어댔던 전문가들의 예측? 출구조사? 말짱 ‘황’이었다. 아니, 무슨 정치 전문가들이 이런 결과의 근처도 못 갈만큼 엉터리였을까? 그 많고 많은 언론들의 눈이 얼마나 정치공학과 정치역학 쪽으로 획 돌아가 있었으면 이렇게 극장 같은 결과를 조금도 눈치 채지 못했을까?

더불어민주당 123석 vs 새누리당 122석, 이건 여소야대 정도가 아니다. 야당이 제1당이 된 이런 결과는 그야말로 박근혜 대통령을 탄핵하고자 하는 민심이다. 총선 이전에 몇 차례 사퇴 의사를 밝혔던 김무성 대표, 오늘 새벽 병실에 듦과 동시에 ‘나홀로’ ‘집으로’, 그것도 얼른 가야 할 초라한 운명이 되고 말았다. 반면 토사구팽 당한 후 헌법 제1조를 읊조렸던 유승민 의원은 국민의 회초리를 맞고 너덜너덜해진 ‘집으로’ 금의환향하게 생겼다.

▲ 살아있는 대통령의 참패 ⓒtodayus.com

나는 김대중 전 대통령이 늘 했던 말을 기억하고 있다. “마지막에는 국민이 승리합니다.” 그 말을 믿지 않았었다. 아니, 국민들이 어쩌면 이렇게도 멍청할까, 하는 생각까지 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믿어야 할 것 같다. 어떻게 두부 자르 듯 이처럼 정교하게 절반을 똑 갈라놓고, 그것도 모자라서 국민의당이라는 안전장치까지 두는가 말이다!

가고 없는 대통령의 승리 ⓒtheguardian.com

내가 이미 열흘 전에 예측한 대로, 이번 총선의 최대 승리자는 안철수 대표의 국민의당이다. 새누리도 더민주도 국민의당에 머리를 조아릴 수밖에 없는 정국이 펼쳐질 것이기 때문이다.

새누리당 당직자들은 선거 전에 대구의 아스팔트에 무릎을 꿇었던 것처럼, 국회 로텐더 홀에 모두 모여 석고대죄를 해야 한다. 그게 국민의 명령이다. 대구의 김부겸 의원은 차치하고라도 야당에 8석이나 맡긴 PK의 민심만 봐도 반드시 그래야 한다.

걸핏하면 국회를 무시하곤 했던 박근혜 대통령 역시 청와대 앞마당에서라도 오만의 고개를 숙여야 한다. 국민이 내리는 징벌적 레임덕에 두 다리가 한꺼번에 잘리는 오리가 되고 말았으니 말이다. 이런 성적표를 들고 어떻게 남은 시간을 때우겠는가? 처절한 패배와 절망의 꼬리표를 단 대통령에게 남은 시간이란, 국민들이 고스란히 받아내야 할 고통의 시간이 아니겠는가 말이다!

그러나 국민의 두려운 명령이 새누리당에만 내려진 것은 아니다. 더불어민주당 당직자들 역시 잠시의 기쁨을 접고 국민들, 특히 호남 국민들 앞에 무릎을 꿇어야 한다. 그들이 국민의당이라는 또 다른 대안세력을 지지했으니 말이다.

호남이 왜 더불어민주당 대신 국민의당을, 그것도 압도적인 표차로 선택했는지를 모른다면, 선거에 승리하고도 향후 정국 주도권을 왜 쥐지 못하는지 이유를 알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 패배의 읍소 ⓒhankyung.com/segye.com

호남은 더불어민주당을 버렸다. 호남 민심에 더불어민주당은 이제 없다. 그들이 이처럼 냉정해질 수 있었던 것은 더불어민주당이 호남에 무엇을 해주었는지에 대한 대답에서 찾을 수 있다. 더불어민주당, 당신들은 호남에 무엇을 기대했고, 그 기대에 무엇으로 보답했던가? 호남은 더불어민주당의 지속적인 호소에 지속적인 표로 답하며 응원했지만, 보답은 전혀 받지 못했던 것이 아닌가!

안철수 대표와 국민의당은 그래서 호남에 예쁘다. 이제 안철수 대표의 대선가도는 참으로 탄탄해졌다. 이겨도 어찌 이리 오묘하게 이길 수 있단 말인가. 새누리당과 더불어민주당은, 아니 더불어민주당과 새누리당은 이제 향후 정국 운영의 키를 받아 쥔 쪽이 국민의당이며, 안철수 대표의 합리적인(?) 전횡에 피골이 상접해질 공동운명체임을 하루속히 인정하고, 그의 면전에 찾아가 고개를 숙일 일이다.

▲ 총선 최대의 승리자ⓒ뉴시스

안철수 대표가 김한길 전 선대위원장을 비롯한 야권연대파들의 종용을 물리쳤던 이유가 표로 여실히 드러났다. 그렇다고 국민의당 역시 기고만장할 수 없다. 아니, 그래서는 안 된다. 이제부터 꼬리가 몸통을 흔드는 왝더독wag the dog 정국이 이어지겠지만, 우리 국민들이 끝도 없이 몸통을 흔들어대는 꼬리를 그냥 두고 볼 정도로 ‘유순이’, ‘멍청이’는 아니기 때문이다.

이번 총선 결과는 대놓고 국회를 무시하곤 했던 박근혜 대통령에게 “당신은 국민을 대리하는 사람들을 좀 무시하는 경향이 있군요”라며 속삭이는 국민들의 은유다. 이번 총선 결과는 대놓고 개헌선을 입에 올렸던 새누리당에 “당신들은 좀 오만방자한 경향이 있군요”라며 속삭이는 국민들의 경멸이다.

야권이 승리했다. 그러나 이번 총선 결과는 또한 더불어민주당에 “당신들이 좋아서 표를 준 것이라 생각하면 조만간 그 착각만큼의 아픔을 겪게 될 것이오”라는 국민들의 채찍이다. 이는 정국의 주도권을 쥐게 될 국민의당에도 공히 적용되는 말이다.

준엄한 심판, 준엄한 심판, 말을 많이 들어왔다. 그러나 준엄함은 죽었다. 대신 절묘함이 그 자리를 채웠다. ‘국회를 무시하는 대통령’과 ‘정당독재를 꿈꾼 오만한 여당’을 말없이 징계하는 국민들의 손끝이 이토록 절묘하다니! 깊이 반성하며, 김대중 전 대통령의 영전에 삼가 이 말을 바친다.

“무섭다, 국민!”


 

김태현 두마음행복연구소 소장, 인문작가, 강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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