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이 곧 일어날 것처럼 두려워하는 국민들」
「애드호크러시, 다양한 가치가 공존하는 국가 운영에는 맞지 않아」
「국민을 끊임없이 동요하게 만드는 이유는?」

이 정권 들어 방송과 신문은 북한 핵, 고고도미사일THAAD, UN 안전보장이사회 등에 대해 떠들어대는 것도 모자라, 연일 김정은과 측근들의 동태까지 알리기에 여념이 없다. 그런 탓에 국민들은 극도의 불안감에 휩싸여 있으며, 행복지수는 날로 곤두박질치고 있다.

이런 현실은 왜 일어나는 걸까? 많은 이들이 총선을 이유로 지목하고 있다. 언론이 ‘살아 있는 정권’의 눈치를 보기 때문이라 생각하는 이들도 많다. 그러나 과연 그런 것들이 전부일까? 조금 더 깊이 들여다봐야 하는 이유는 없는 것일까?

▲ 애드호크러시 ⓒpinterest.com

전쟁 때문?

지난 주말, 업무 차 강릉으로 향하는 길에 있었던 일이다. 차량에 시동을 거는데 이웃집 80대 할머니가 다가와 말을 걸었다.

“아이구, 이 전쟁통에 어디를 갈라구랴?”

“예? 전쟁이라뇨?”

“쯧쯧... 이 냥반이 암끗도 모르는구마이. 테레비도 안 보고 사는 겨? 북한이 미사일 쏨서 곧 쳐들어 온당만...”

“아, 예...”

“그랴서 나가 요새 잠을 통 못자.”

“어머니, 그런 일 없을 테니까, 맘 놓고 푹 주무세요. 만약에 쳐들어온다 해도 걱정하다가 맞는 거랑 안 하다가 맞는 거랑 똑같으니까요. 아셨죠?”

하기야 요즈음 채널A, 조선TV, MBN, jtbc 등 종편은 물론이고 지상파 방송도 눈만 뜨면 ‘미사일’, ‘사드’, ‘안전보장이사회’, ‘김정은’ 하고 떠들어대면서 미사일 발사 장면을 연속으로 보여주고 있으니, 전쟁의 참혹함을 직접 경험했던 어른들이 밤잠 설쳐가며 걱정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지 싶었다.

▲ 한산했던 고속도로 ⓒ김태현

비가 오는 탓인지, 차량으로 빽빽해야 할 중부고속도로가 한산했다. 그런데 그 한산함이 영동고속도로로 접어들 때까지 이어졌다. 횡성 휴게소, 9년째 휴게소에서 라면만 삶았다는 요리사 아줌마가 푸념을 늘어놓으며 말을 걸어왔다.

“에휴... 고맙습니다. 손님이 오늘 열다섯 번째에요.”

“시간이 벌써 오훈데 그것밖에 못 파셨어요?”

“살다 살다 이렇게 장사가 안 되기는 처음이라니까요.”

“하긴, 오늘 도로가 뻥 뚫렸어요. 꼭 1980년대처럼요.”

“그게 왜 그런 줄 아세요? 북한이 전쟁 준비를 하는 통에 그렇잖아요.”

또 전쟁 타령이다. 마침 휴게소 텔레비전에 미사일 발사 장면이 방영되고 있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 날만 새면 김정은의 발언이요, 북한 내부사정 얘기다. 이쯤 되면 아무리 총선용이 아니라 강변해도 총선용이 아닐 수 없지 싶다.

▲ 한국 최고의 인기 탤런트 ⓒbet.com

정부의 책무 중 가장 중요한 것은 국가의 안녕과 국민의 안전이다. 민주주의도, 자본주의도, 국민의 행복도, 국가가 없고서는 성취될 수 없기 때문이다. 오늘은 국가의 안녕과 국민의 안전에 관한 두 정부의 상이한 행태를 지적하려 한다.

‘가만히 있으라’ 정부

1950년 6월 27일 새벽 1시, 이승만 당시 대통령은 비상국무회의를 소집했고, 두 시간 후인 새벽 3시, 대통령을 태운 특별열차는 피난길에 올랐다. 그날 저녁, 한국방송(KBS)은 다음과 같이 이승만 대통령의 육성 녹음을 송출했다.

“UN에서 우리를 도와서 싸우기로 했습니다. 국민들은 안심하시기 바랍니다.”

이 방송은 인민군이 서울을 점령할 때까지 계속 송출되었고, 시민들은 안심했다. 안심한 이유는 대통령이 서울에 없다고는 전혀 생각지 못했기 때문이다.

당시 신문들의 보도행태는 어땠을까?

“국군 정예 북상, 총반격전 전개: 국군이 황해도 해주시를 완전히 점령했다”(6월 27일자 동아일보)

“아군의 용전: 괴뢰군이 전선에서 패주하고 있다. 해주시로 진군한 국군이 상륙을 기도하는 소련 배를 격침시켰다.”(6월 27일자 경향신문)

“국군이 의정부를 탈환했다: 장(하도다)! 국군이 전면적으로 일대 공세를 펼쳤다.”(6월 28일자 조선일보)

▲ 국군에 의해 폭파된 한강 인도교 ⓒgongmini.com

방송과 신문의 보도행태는 ‘전쟁이 일어나면 점심은 평양에서, 저녁은 신의주에서 먹겠다’던 이승만 대통령의 호언장담과 딱 맞아떨어지고 있었다. 그러나 조선일보가 기사를 준비하던 6월 28일 새벽 2시 30분 경, 500명-800명(추정치)이 한강 인도교 상에서 목숨을 잃었다. 육군 참모총장 최병덕 일행이 다리를 건넌 직후였다.

‘동요하라’ 정부

2013년 박근혜 정부가 들어선 이후, ‘가만히 있으라’는 정부의 명령은 300여 명의 생때같은 목숨을 앗아간 세월호 사태 때뿐이었다. 그 전이나 이후나 방송과 신문은 연일 김정은과 북한을 국민의 뇌리에 주입시켜가며 불안감을 조장해왔다.

‘가만히 있으라’ 정부가 아니라, ‘동요하라’ 정부다. 고속도로 휴게소 장사가 안 되는 이유를 북한에 돌리는 사람이 있다. 북한이 장사정포와 노동미사일을 쏘아 올리는 장면을 반복해서 본 탓에 끔찍했던 전쟁 상황이 떠올라 잠을 못 이루는 할머니가 계신다.

2016년 대한민국 정부는 도대체 왜 국민을 상대로 불안감을 조장하는가? ‘총선이 임박했기 때문에’라는 대답이 가장 쉽지만, 오로지 그것 때문이라 할 수는 없다. 애드호크 가설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다.

애드호크 가설

점쟁이들은 완벽하다. 그들이 하는 말은 절대로 틀린 적이 없다. 틀리지 않아서가 아니라, 틀린 예측에 대해 그들은 늘 ‘부정을 탔다’, ‘정성이 부족했다’, 또는 ‘조상에게 제사를 지내지 않았다’와 같은 구실을 대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의 예측이 빗나간 책임은 사라진다.

이처럼 자신의 이론이나 믿음에 반하는 사실을 회피할 목적으로 그럴듯한 가설을 만들어 설명하려는 현상을 애드호크 가설ad hoc hypothesis이라 한다.

* 애드호크ad hoc: 라틴어로 ‘특정한 목적을 위해(for the purpose)’라는 의미

어떤 개인이 애드호크 가설을 잘 활용한다면 말로써 그를 설득할 가능성은 별로 없다. 이런 말에 저런 변명으로, 저런 말에 이런 구실로 대응해올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솔직하지 않은 사람에게는 사람이 붙지 않는다. 그는 얼마 지나지 않아 외톨이가 될 수밖에 없다.

그런데 만일 주장이나 이론에 구멍이 뚫릴 때마다, 정부가 그런 방식으로 국민들을 향해 땜질식 처방을 내놓는다면 어떻게 될까?

이 정부는 지금까지 보여 온 ‘부처 간 좌충우돌’, ‘대통령의 공약 파기’, ‘장관의 말 바꾸기’, ‘외교적 실패’에 어떻게 대응해왔던가. 그럴듯한 구실과 변명으로 일관해오지 않았던가. 이 정부의 구성원들이야말로 애드호크 가설의 신봉자들임에 틀림없다.

▲ 애드호크 가설의 신봉자들 ⓒ김태현

국가 운영에 성과주의는 금물

위에 언급한 애드호크 가설은 워런 베니스Warren G. Bennis와 필립 슬레이터Philip Slater의 『일시적 사회(The Temporary Society, 1968)』, 앨빈 토플러(Alvin Toffler)의 『미래의 충격(Future Shock, 1970)』, 경영학자 헨리 민츠버그Henry Mintzberg의 『조직의 구조(The Structuring of Organization, 1979)』에서 보듯, 정치보다는 주로 경제 분야에서 큰 반향을 일으켜왔다.

그러한 흐름은 로버트 워터먼Robert Waterman에 이르러 『애드호크러시(Adhocracy, 1990)』로 발전했다.

* 애드호크러시: ‘특정한 목적을 위해(for the purpose)’라는 의미의 ad hoc와 ‘주의ism’를 의미하는 cracy의 합성어.

그의 규정에 따르면, 애드호크러시는 ‘기회를 포착하고 문제를 해결하고 성과를 달성하기 위해 기존의 관료주의를 탈피하는 모든 형태의 조직’을 말한다. 말하자면 ‘경제적 성과주의’의 총아다.

이러한 성과주의는 기업 활동에나 적합할 뿐, 수없이 많은 가치가 공존하는 ‘국가 운영’에는 어울리지 않는다. 그럼에도 이 정부를 운영하는 이들의 뇌리는, 누군가에게 잘 보이려 하든 아니든, 성과주의로 가득 차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그런 성과주의는 (누군가의 지시에 의한 것이든 아니든) 마치 틀린 적이 한 번도 없는 점쟁이들처럼 완벽한 변명과 구실을 만들어내며, 그런 변명과 구실이 막힐 때면 또 다른 우회로detour를 선택한다. 바로 국민들의 불안감이다. 국민들이 불안해 할 만한 일? 북한 핵과 미사일이면 충분하지 않을까!

▲ 누가 진정한 종북인가? ⓒdailynk.com

광화문 앞 빌딩에 설치된 대형 TV를 봐도, 식당에 켜져 있는 TV를 봐도, 박근혜 대통령보다 언론에 더 많이 노출되는 사람이 있다. 북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 김정은이다. 보수진영이 진보진영을 공격할 때 걸핏하면 ‘종북’을 내세우지만, 이쯤 되면 누가 종북인지 도대체 알 수가 없다.

정말이지 대한민국이 이처럼 치졸하게 변해가는 모습에 가슴이 아려온다. 봄을 앞둔 오늘, 인민군이 파죽지세로 치고 내려오는 상황임에도 거짓말로라도 국민을 안심시키려 했던 이승만 정부가 차라리 부러울 지경이다.

 

 

김태현 두마음행복연구소 소장, 인문작가, 강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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