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소운영수입보장(MRG)이라는 악마의 속삭임」
「지적 마사지사들은 국민(시민)을 힌덴부르크호에 태워」
「연구용역보고서를 마사지하는 학자들에게 가습기 살균제 처방해야」

지난 9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는 법안심사소위원회를 열어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들을 구제하는 방안에 대해 논의했다. 그러나 ‘가습기 살균제의 흡입 독성 화학물질에 의한 피해 구제에 관한 법률안’을 의결하는 데는 실패했다. 이에 따라 이 법안은 19대 국회 종료와 함께 자동 폐기될 것으로 보인다.

가습기 살균제 사태가 발생한 지 무려 5년이 경과하는 동안, 정부는 아무것도 한 일이 없다. 마찬가지로 수수방관만 했던 국회 역시 외양간을 고치자는 합의마저 이루어내지 못했다.

▲ 독성물질을 뿜어내는 가습기 ⓒkuratur.com

가습기 살균제 사태가 이처럼 수많은 피해자를 양산한 직접적인 원인은 당연히 제조사인 옥시레킷벤키저(옥시)에 있다. 그러나 옥시가 사람 죽이는 사업을 할 수 있도록 멍석을 깔아준 악마 같은 이들이 있다. 사회간접자본Social Overhead Capital 건설에 얽혀 있는 공공연한 비밀을 통해 그들이 누구인지 알아보자.

최소운영수입보장(MRG)

사회간접자본(SOC)을 건설하려면 수백억, 수천억, 수조원의 목돈이 든다. 투자할 여력이 없는 국가나 지방자치단체는 불편을 감수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돈 없는 국가나 지방자치단체가 도로나 항만을 손쉽게 건설하는 방법이 있다. 민자民資, 즉 민간의 자본을 유치하는 방법이다. 이때 가습기 살균제가 필요한 사람들이 등장한다.

목돈이 없는 국가나 지방자치단체에 사회간접자본을 건설해주는 기업은 그 대가로 수익을 챙기려 한다. 기업의 궁극적인 목적은 수익이니 당연하다. 그리고 기업은 최소한의 수입이 보장되기를 바란다. 손해보고 장사할 바보는 없기 때문이다. 그런 요구에 맞춰 국가나 지자체가 기업에 최소한의 수익을 보장해주는 시스템을 ‘최소운영수입보장(MRG, Minimum Revenue Guarantee)’ 시스템이라 한다.

그래서 그들이 건설한 도로를 달리려면 도로공사가 건설한 도로보다 비싼 통행료를 지불해야 한다. 그들이 건설한 항만을 이용하려 해도 국가나 지방자치단체가 건설한 항만보다 비싼 요금을 물어야 한다. 가끔 성질이 나기도 하지만, 그래도 여기까지는 웬만큼 수긍할 수 있다.

그러나 최소운영수입보장(MRG)이라는 시스템으로 조금 깊이 들어가는 순간, 시민을 위해 도로와 항만을 건설해준 천사 같은 기업의 실체가 사실은 악마였음을 발견할 수 있다.

최소운영수입보장 시스템을 학술적으로 서술하는 것으로는 정확한 이해에 도달하기가 쉽지 않다. 두 사람이 대화하는 형식으로 간단한 사례 하나를 듦으로써 최소운영수입보장 시스템의 악마성을 알아보려 한다.

악마적 시스템의 작동 기제

A마을과 B마을 사이에 강이 있는데 건널 다리가 없다. A마을 사람들이 B마을로 가려면 다리가 있는 C마을까지 가야 한다. 불편하다. 그래서 A마을 사람들은 이장님한테 가서 다리를 좀 지어달라고 요청한다.

마을 사람들의 요청을 받은 이장님은 난감하다. 마을에 다리를 지을 만한 돈이 없기 때문이다. 그때 천사 같은 김선달이 나타나 다리를 지어주겠단다.

▲ 마창대교 조감도 ⓒmacquarie.com

이장과 A마을 사람들은 그저 고마울 뿐이다. 그런데 김선달이 이장의 귀에 대고 속삭인다. 두 사람의 대화를 들어보자.

 

이장님 : 하이고 김선달님 감사합니다.

김선달 : 아닙니다. 그런데 이장님, 이렇게 봉사만 하시지 말고 돈도 좀 버셔야죠?

이장님 : 당연히 벌고 싶죠. 하지만 저는 돈 벌 줄을 몰라서, 허허...

김선달 : 저만 따라 오시면 돈 법니다. B마을로 가는 사람들이 하루에 몇 명이나 되죠?

이장님 : 글쎄, 뭐 하루에 100명 정도?

김선달 : 그렇군요. 그럼 제가 돈을 투자해서 다리를 놓을 테니까, 최소한의 수익만 보장해주세요. 밑지고 장사할 순 없는 거니까요.

이장님 : 당연하죠. 그렇게 하겠습니다. 100명한테 100원씩, 아니지 왕복이니까 200원씩 통행료를 받으시면 하루에 20,000원이니까,

김선달 : 잠깐 잠깐, 지금 장난하십니까? 그게 아니구요, 하루에 다리를 건너는 사람을 10,000명으로 합시다. 10,000명한테 200원씩이니까 2,000,000원. 어때요?

이장님 : 예에!? 미쳤어요? 마을 사람들이 그걸 믿겠어요? 그러다가 나 잘려요.

▲ 최소운영수입보장(MRG), 뻥튀기 귀신들의 돈 장난 ⓒlitrg.org.uk

김선달 : 아니지. 하루에 10,000명이 다닐 거라는 걸 누가 보증해주면 되잖아.

이장님 : 누가요?

김선달 : 거 참... 훈장님 있잖아! 그러구 마을 사람들 쥐어짜서 9,900명 분 통행료 1,980,000원을 매일 나한테 주시구요. 그게 최소한의 수익이니까.

이장님 : 근데 나는 어떻게 돈을 벌어요?

김선달 : 다리 만드는 데 2,000,000만 원이 드니까, 돈을 투자하세요. 투자한 만큼 이자를 20%로 쳐서 매일 드릴게요. 이거 정말 돈 돼요. 이자만 받아먹어도...

이장님 : 으아, 그럼 내 친구들도 투자해도 돼요?

김선달 : 거럼!

이장님 : 그럼 훈장님한테는 어떻게 말하죠?

김선달 : 말은 무슨 말... 돈만 처먹이면 다 된다니까! 내말 믿고 훈장한테 가서 만 원만 줘 봐요. 매일 통행하는 사람이 곧바로 만 명 된다니까.

이장님 : 아하!

이처럼 터무니없이 과도한 ‘교통수요예측’을 설정한 다음, 국민의 혈세를 뜯어먹는 사례가 실제로 있다. 서울춘천간고속도로, 마창대교, 서울지하철 9호선, 서울 우면산터널, 광주 제2 순환고속도로, 인천공항고속도로, 천안논산고속도로, 부산 수정산터널, 부산 백양터널, 부산항 신항 2-3단계, 부산항대교, 인천대교, 대구 제4차 순환도로, 대구부산고속도로 등등이다.

위 사례에 나온 김선달의 실제 모델은 호주 멕쿼리그룹의 한국 내 자회사 멕쿼리한국인프라투융자회사(MKIF)다. 이장님은 그들에게 사업 허가를 내준 정치인들이고, 이장님과 함께 김선달에게 투자한 친구들은 군인공제회를 비롯, 각 은행과 건설사, 투자사 등이다.

그럼 훈장님은? 환경영향평가, 교통량 예측 등 각종 연구용역보고서를 마사지해 준 교수들이다. 이들 모두 가습기 살균제가 필요한 사람들, 즉 악마에게 기꺼이 영혼을 내준 사람들이다.

지난 7일 옥시레킷벤키저(옥시) 사태로 구속된 서울대 수의과대학 조모 교수(57세), 그리고 서울중앙지검 특별수사팀의 압수수색을 당한 호서대 유모 교수(61세)도 그런 훈장들 중 하나일까? 특히 조모 교수는 유서까지 써놓고 극렬하게 변명하고 있으니, 마녀사냥에 대한 우려를 접지 않은 상태에서 찬찬히 두고 볼 일이다.

마케팅과 지적知的인 마사지사들

연전에 미국의 어느 마케팅 어워드를 수상한 한국 청년이 TV에 출연해 마케팅에 대해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저는 세상의 모든 마케팅을 사기로 봅니다.”

그의 말대로, 이제 자사 제품의 기술력을 홍보하는 데 그치는 ‘얌전한’ 마케팅은 찾아볼 수 없는 시대가 되어버렸다. 도로를 달리던 비행기가 갑자기 하늘로 날아오르고, 찡그렸던 얼굴이 알약 하나로 대번에 환해진다. 이런 과장광고는 건강보조식품에 이르면 극에 달해서, 세상 모든 건강보조식품은 진시황이 찾던 불로초에 만병통치약이다.

이런 과장광고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직업군이 의사와 교수 등 지적 능력을 장착한 마사지사들이다. 그들이 등장하는 광고는 음식, MSG(monosodium glutamate), 치약, 비료, 가구 등 셀 수 없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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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중 국민(시민)들에게 가장 큰 해악을 끼치는 이들은 각종 연구용역보고서를 마사지해주는 해당 분야 전문가들, 특히 자신의 삶을 다른 어떤 가치보다 최우선으로 여기는 이른바 ‘돈과 출세에 미쳐버린’ 학자들이다.

그들은 정부나 기업이 추진하는 프로젝트에 좋지 않은 이미지를 줄 수 있는 연구 결과를 아예 없애버리거나 최소한으로 줄이고, 미미하게 발생하는 이익을 부풀려 하늘을 떠다니는 기구로 만들어준다. 프로젝트 주체가 호주머니에 찔러주는 돈의 액수가 클수록 그들의 연구 결과는 힌덴부르크호가 되어간다. 그러다가 결국에는 공중에서 폭발하고 만다. 힌덴부르크호에 타고 있던 이들, 즉 국민(시민)이 갈 곳이라고는 천당뿐이다.

▲ 뉴저지에서 폭발하는 힌덴부르크호(1937.5.6) ⓒcraighill.net/2012/05/06/

가습기 살균제 처방

염치廉恥에 관한 한 타의 추종을 불허하던 이 나라가 어쩌다가 이런 나라가 되고 말았을까? 우리는 땅이 바다보다 낮은Nether 나라land에 사는 아이가 주먹으로 구멍 난 제방을 막아낸 사실을 배워서 안다. 모든 거대한 불의는 ‘사소한 불의에 대한 용인’으로부터 시작된다. 이런 나라가 되고 만 이유는 바로 그 ‘사소한 불의에 대한 용인’ 때문이다.

만천하에 드러난 잘못된 정책들이 적지 않다. 그리고 그런 정책들의 배후에는 잘못된 연구용역보고서를 만들어준 훈장들이 숨어 있다. 4대강 사업으로 녹조라떼가 창궐할 것을 예측했으면서도 ‘별 문제가 없다’는 보고서를 작성한 훈장들, 용인과 김해 등 각지에서 추진된 경전철사업에 터무니없는 교통량 예측 보고서를 작성한 훈장들...

▲ 가습기 살균제 처방이 필요한 훈장 ⓒbostoncatholicinsider.wordpress.com

상식이 다시 통하는 사회, 시민들이 안전을 느끼는 사회가 되려면 망국병처럼 번져 있는 수많은 ‘사소한 불의에 대한 용인’부터 뿌리 뽑아야 한다. 배고파 빵을 훔친 가장을 질타하기 전에, 경쟁에서 도태된 사람들을 보살피기 위한 복지예산을 확충하기 전에, 서민들이 마땅히 가져가야 할 보수를 빼앗은 세력들에게 잘못된 연구용역보고서를 면죄부로 선물한 지적 마사지사들부터 단죄해야 한다.

이번 가습기 살균제 사태뿐 아니라, 국민적 의혹에 휩싸여 있는 ‘냄새가 진동하는’ 모든 사건에 대해 철저한 조사를 진행해야 한다. 그래서 자신의 삶을 위해 국민(시민)을 희생양으로 삼은 훈장들이 드러날 경우, 그런 그들의 악마적 성향에 가습기 살균제부터 처방해야만 한다. 아무리 직업에 귀천이 없고 만민이 동등한 세상이라고는 하나, 교수와 의사와 학자들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스승임에 분명하고, 그런 스승들이 더러워진 나라는 미래를 기대할 수 없기 때문이다.


 

김태현 두마음행복연구소 소장, 인문작가, 강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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