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외교 성과 확산을 위한 토론회와 도행지이성道行之而成」
「터무니도 어처구니도 없는 대통령의 경제 상황 인식」
「기업의 도행지이성이 아니라 자신이 내딛는 발자국부터 염려해야」

지난 11일, ‘경제 5단체 초청 경제외교 성과 확산을 위한 토론회’가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렸다. 토론회에 참석한 박근혜 대통령은 모두발언 도중 장자의 제물론齊物論에 나오는 ‘도행지이성道行之而成’을 언급했다.

▲ 모두발언 중인 박근혜 대통령 ⓒ뉴시스

터무니없는 모두발언

도행지이성은 ‘길은 다녀서 만들어진다’는 의미란다. 박대통령은 이 글귀를 언급하면서 “급변하는 무역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이번 멕시코와 이란에서의 경제외교처럼 새로운 시장개척 노력을 더욱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번 세일즈외교의 결과물인 MOU(양해각서)의 실제 이행 여부는 후일 따져보기로 하고, 결과물을 만들어내기 위해 정부와 시장개척단이 공동으로 노력한 점에 대해서는 일단 박수를 보낸다.

살아남기 위해 새로운 시장을 개척해야 한다는 명제는 너무도 당연하고 절실하다. 문제는 너무도 당연하고 절실한 그 명제를 구현해낼 방법이다. 마침 박대통령이 방법을 제시했다. 어떤 방법이었을까? 그 방법은 토론회에 참석한 경제 5단체장과 경제사절단 참석 기업대표 및 국민이 수긍할 만한 것이었을까? 해설을 곁들여서 한번 살펴보자.

“우리 기업인이 내수다 수출이다 구별하지 말고, 최고로 좋은 것을 만들면 내수 수출 할 것 없이 시장이 열린다. 그런 마인드로 도전하면 새 길이 열릴 것이다.”

‘내수다 수출이다 구별하지 말고’라는 발언은 장기침체의 늪으로 빠져들고 있는 우리 경제를 건져낼 돌파구로, 지금까지 해왔던 ‘수출 위주 경제정책’ 운용 기조를 유지 또는 강화할 것인지, 아니면 ‘내수 진작 경제정책’으로 선회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에서 나온 것으로 보인다.

▲ 경제정책의 운용 기조 ⓒinternetdo.com

그런데 기업인들에게 내수와 수출을 구별하지 말라는 그의 충고는 필자에게 이렇게밖에 들리지 않는다.

“경제정책 기조를 수출 위주로 가야 하는지 내수 진작으로 가야 하는지에 대해 말들이 많다. 우리 경제가 지금과 같은 어려움에 봉착해 있는 이유는 기업인들이 내수와 수출을 구별해서 기업 활동을 해왔기 때문이다. 내수, 수출 할 것 없이 시장이 열리도록, 다시 말해서 정부 경제정책 기조와 상관없이 기업인 당신들이 세상에서 가장 잘 팔리는 제품을 만들어서 여기도 팔고 저기도 팔고 그러면 우리 경제가 살아날 것 아닌가.”

최고로 좋은 것을 만들라고? 그런 마인드로 도전하라고? 한때 무역 일선에서 세계 이곳저곳을 뛰어다녀본 필자로서는 기가 차고 코가 막힐 만한 훈수다. 최고로 좋은 상품을 만들기 싫어서 안 만드는 기업이 세상 천지에 어디 있나?

그뿐인가. 그의 다음 발언은 모든 기업인들을 좌절의 수렁으로 밀어 넣기에 충분하다.

“새 아이디어로 기막힌 제품, 어디도 따라올 수 없는 최고의 제품과 서비스, 시스템을 만들고 개발한다면, 내수와 수출이 따로 없고 국내 시장에서도 인기를 끌 것이고 해외도 그럴 것이다.”

대통령의 말 한마디 한마디는 무거워야 한다. 그럼에도 ‘내수와 수출이 따로 없고’와 ‘국내 시장에서도 인기를 끌 것이고 해외도 그럴 것이다’는 두 문장은 정확한 동어반복이다. 한문 시간도 아니고 내수와 수출을 한글로 다시 풀어 설명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모르겠으나, 여하튼 그럴 수 있다 치고 넘어가자.

위 언급은, 말인즉슨, 지금까지 새롭지 않은 아이디어로 기막히지 않은 제품, 누구나 다 따라할 수 있는 레드오션red-ocean식 제품과 서비스, 시스템밖에 없었다는 의미다. 멕시코와 이란에서 거둔 성과가 얼마나 확고하고 그 행보가 얼마나 혁신적이었기에, 여태껏 정권의 입맛을 맞추기 위해 이 눈치 저 눈치 봐가며, 민주적 경제시스템까지 도외시해가며, 대한민국 발전을 위해 각고의 노력을 기울여온 기업인들을 이런 식으로 깎아내릴 수 있는 것일까.

▲ 박근혜 대통령과 하산 루하니Hassan Rouhani 이란 대통령 ⓒaa.com.tr

대기업은 물론이고 단 한 명의 근로자라도 고용하고 있는 사업주라면 누구나 이골이 날 정도로 깊이 생각하고 있는 것이 바로 새 아이디어와 기막힌 제품과 최고의 서비스, 즉 블루오션 사업이다.

아무도 따라올 수 없을 정도로 기가 막힌 제품? 그건 이미 기업인들에게 신앙이 되어버린 지 오래인 가치다. 돈벼락을 맞는 꿈을 꿔보지 않은 기업인이 한 명도 없을 만큼 말이다. 새 아이디어와 기막힌 제품, 최고의 서비스는 이미 기업인뿐 아니라 우리 국민의 뇌리에도 트라우마처럼 박혀 있는, 전혀 새롭지 않은 것들이다.

그런데 그렇게 치열하게 고민하고 있는 기업인들에게 하나마나한, 아니, 아니한 만 못한 말을 그렇게 천연덕스럽게 하시다니. 그런 용기는 도대체 어디에서 나올 수 있는 것일까. 토론회에 참석했던 경제인들의 면면에서 골 깊은 좌절감을 발견한 사람이 비단 필자뿐이었겠나, 싶다.

국민의당 안철수 공동대표는 지난달 말 경기도 양평에서 가진 국회의원 당선인 워크숖에서 천정배 공동대표와 박지원 의원에게 “경제를 모르는 사람이 청와대에 앉아 있어 가지고... 고집만 세고...”, “박근혜 대통령이 양적완화가 뭔지 모를 것 같은데요”라고 했단다. 결코 허언이 아닌 것 같다.

어처구니없는 즉석발언

세계 최고의 국산 제품들이 제법 있었고, 지금도 적지 않다. MP3의 선두주자였던 팬텍, 헬멧을 만드는 HJC, 독일을 누르고 세계 손톱깎기 시장을 점령한 777, 파나소닉과 소니, 히타치 등 일본 전자업체를 패닉으로 몰아간 삼성전자와 LG전자...

그들은 하나의 제품을 기획하는 단계부터 장기적이고 전체적인 목표를 설정하고 그 목표에 따라 구체적인 추진계획을 작성한 다음, 비로소 실행에 옮긴다. 대단한 경력을 가진 연구원들이 계획하고, 해당 분야 최고의 전문가들이 돌다리를 두드리듯 치밀하게 실행하는 것이다. 물론 계획과 목표 모두 당연히 세계시장을 겨냥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어디선가 펑크가 나고, 그 펑크는 곧바로 손실과 연결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박대통령은 그런 그들 앞에서 어떻게 훈수를 두셨던가? 들어보자.

“예를 들어서 대나무를 그리겠다고 한다면 그리기 전에 마음속에 대나무가 이미 그려져야 되지 않겠는가. 그만큼 어떤 개념과 생각, 전체를 바라보는 시각을 갖느냐 하는 것은 구체적인 일을 추진해 나가는 데 있어서 중요한 요소가 된다.”

스티븐 코비의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 또는 피터 드러커의 어느 자기개발서에서 본 듯도 한 문장이다. 블루오션blue-ocean만 생각하느라 온 일상이 레드red인 기업인들이 이미 오래전부터 하고 있는 일을 마치 초등학생들한테 들려주듯 한 말, 이 말에 대체 무슨 새로운 의미가 있는지 필자로서는 알 재간이 없다.

▲ 전기자동차 상용화를 앞당긴 테슬라 모터스의 신 모델 ⓒelectrical-cars.net

그는 또 대기오염에 대한 예를 들면서 “대기오염이 심각한 문제인데, 이것이 우리한테 엄청난 부담이라고 부정적으로만 보면 기회가 없을 것이다. 그렇기에 신에너지 산업을 일으킬 수밖에 없다. 기왕 일으킬 거라면 적극 나서서 새로운 산업을 일으키면서 시장도 선점해보자고 마음을 먹는다면 기회가 된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만큼 인식의 전환이 중요한데, 인식의 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다”고도 했다.

우주에 산재해 있는 쿼크 입자에서 에너지를 뽑아보자는 식의 거창한 요구는 하지 않겠다. 세상은 이미 전기차 대량생산 시대로 접어들었는데, 우린 지금 뭘 하고 있는가? 남미 전역에서 보듯, 곡물에서 에너지를 생산한 지도 이미 오래되었는데, 우린 그동안 뭘 했던가?

전기차 충전소를 열심히 만들어 거시적인 창조경제를 할 생각은 않고 석유에서 나오는 세수에 아직도 목을 매고 있지 않은가! 원자력발전소는 기간이 경과했음에도 후쿠시마 사례를 조롱하며 끊임없는 ‘계속 가동’을 외치고 있지 않은가 말이다!

▲ 후쿠시마가 보내는 경고 ⓒdailymail.co.uk

세상의 에너지 대세를 따라갈 생각도 하지 않으면서, 탄소배출권의 매입과 매출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면서, 도대체 어느 구석이 신에너지 산업이고, 어느 산업이 신산업이란 말인가! 그리고 이처럼 원론적인 발언이 무에 그리 대단하다고 ‘인식의 전환’이라는 거창한 표현까지 동원하시는가?

절망적인 맺음말

이어진 규제완화에 관한 발언 역시 한숨이 나오기는 마찬가지다.

“아주 선제적으로 네거티브 규제를 전면 도입하는 등 과감해야 한다. 국무조정실을 중심으로 해서 빠른 시일 내에 네거티브 규제방식이 확산될 수 있도록 했으면 좋겠다.”

‘네거티브 규제를 전면 도입하자’는 말은 ‘기업이 일할 수 있도록 규제를 풀자’는 말을 두 번 꼬아놓은 것에 불과하다. 이게 새로운 말인가? 애덤 스미스가 18세기에 이미 했고, 대처리즘과 레이거노믹스 이후 전 세계적으로 줄기차게 주창되어온 신자유주의의 대표적 표어 아닌가! 그리고 대한민국 역사에서 그 반대로 해본 적이 단 한 번도 없을 만큼 친기업적 발언 아닌가 말이다! 부유한 유럽 제국의 사회적 경제 요소를 일정 부분 도입하자는 말 정도면 모를까, 이게 무슨 새로운 것이며, 인식의 전환인가?

박근혜 정권의 경제정책은 실패했다. 센터 몇 개 세운다고 경제가 살아난다면 어느 누가 먹거리 창조에 나서지 않겠는가! 창조경제는 애초부터 실체도 없는 그림, 마음속에 대나무가 없는 상태에서 그리려 했던 박대통령만의 대나무 그림이었을 뿐이다.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 나라 빚, 미래 세대를 옥죄는 양적완화를 동원해 장기침체에 대응하려는 사고, 방법론적으로 원론 이상을 넘어서지 못한 박대통령의 도행지이성道行之而成, 그리고 기존 시스템에 그대로 머문 빈껍데기 발언이 그 증거다.

▲ 금일아행적 수작후인정 ⓒjuliemagerssoulen.blogspot.kr

알맹이 없는 ‘새 아이디어’와 방법론이 결여된 ‘최고의 제품’을 언급하는 그에게, 중국 고사까지 인용해가며 정책 대신 기업인을 몰아붙이는 그에게, 조선의 고승, 휴정(休靜)의 절구 하나를 드린다. 이는 그가 하는 말과 그가 가는 길이 뒷사람들을 혼란에 빠뜨릴까 심히 우려되기 때문이다.

답설야중거踏雪野中去     눈 쌓인 들판을 걸어갈 때,
불수호난행不須胡亂行     어지럽게 걷지 말라.
금일아행적今日我行跡     오늘 새긴 나의 발자국은
수작후인정遂作後人程     뒤에 오는 이의 이정표이니...

-서산대사-

 


 

김태현 두마음행복연구소 소장, 인문작가, 강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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