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중국, 벨기에보다 높은 한국의 신용등급, 문제는 없나?

「무디스에 이어 S&P도 한국의 신용등급을 Aa2로 상향 조정해」
「외부에서 보는 눈과 내부에서 체감하는 경제상황은 전혀 달라」

2015년 12월 19일, 국제신용평가사 무디스(Moody's)가 한국의 신용등급을 Aa2로 상향 조정한 데 이어, 지난 8일, 스탠더드앤푸어스(S&P) 역시 Aa2로 상향 조정하면서 우리나라의 신용등급이 사상 최고치를 기록하게 됐다.

한 국가의 신용이 좋아졌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당연히 살림살이가 나아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조목조목 짚어보자.

 

S&P의 한국 신용등급 상향 조정 이유

무디스와 S&P가 한국경제에 대해 이처럼 후한 점수를 매긴 배경에는 선진 주요국들의 성장세가 답보상태이거나 1% 내외에 그치는 데 비해 한국은 2% 중후반의 성장세를 기록하고 있고, 재정과 통화 정책 측면에서 아직은 여력이 있다는 점이 크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 주요국별 국가신용등급 비교(A등급 이상/자료: 기획재정부) ⓒ돌직구뉴스

S&P가 밝힌 두 가지 주요 신용등급 상향 조정 이유를 보면 이런 사실이 더 명확해진다.

S&P는 먼저 한국의 성장세에 관해, “주요 선진국들의 성장이 정체되어 있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한국 경제는 비록 느리지만 서서히 덩치를 키우고 있다”고 말했다. 또한 정부 재정에 관해서도, “GDP 대비 정부 부채 비율이 낮은 건전한 재정 상황이 국가신용등급 상향 조정에 기여했다”고 밝혔다.

이밖에도 S&P는 다변화된 산업구조, 개선된 대외건전성 지표, 지난해에 갚아야 할 외채보다 받아야 할 외채가 더 많은 순채권국으로 전환한 사실, 그리고 52개월째 흑자행진을 이어가고 있는 경상수지 등을 등급 상향 조정의 이유로 들었다.

 

한국경제에 대한 우려

그러나 이번 신용등급 상향 조정은 수출 부진에 따른 내수경기 침체 등으로 비관론이 확산되는 가운데 발표된 것이라, 일부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우려스러운 지적들이 나오고 있다.

▲ 스탠더드앤푸어스 본사 ⓒcompliancex.com

먼저, 국제신용평가사들이 국가의 신용등급을 결정하는 가장 큰 변수가 ‘빚을 갚을 수 있는 능력’이며, 신용등급이 상향되었다는 것은 미래의 자본 수익을 위해 더 많이 투자할 수 있는 국가라는 의미가 부각되었을 뿐이라는 지적이다.

이 표현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독자 제위의 신용등급을 떠올리면 된다. 은행에 대출을 받으러 갔을 때, 은행이 가장 심혈을 기울여 보는 것은 대출자가 대출금을 원활히 갚아나갈 수 있을지 없을지 여부다. 이런 우려는 국가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투자자의 측면에서 보면, 이는 말 그대로 미래의 수익에 ‘베팅’할 때 두려움이 조금 더 줄어들었음을 의미할 뿐이다.

ⓒgarageautofix.nl

두 번째, 경제성장률이 현저히 차이 나는 선진국과 한국을 동일선상에 놓고 비교한 것이 무리라는 지적이다. 국민소득 3만 달러를 넘지 못하고 있는 한국과 4만, 5만, 6만 달러가 넘는 선진국들의 경제성장률을 단순 비교한 데서 오는 오류성 등급조정이라는 것.

초국적기업과 대기업은 사업 규모나 활동 영역에 있어서 전혀 다른 부류다. 이 둘을 신용이라는 측면에서 동일선상에 놓고 비교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마찬가지로 미국, 중국, 일본 등 엄청난 경제 규모를 자랑하는 국가들과 한국을 신용이라는 동일선상에 놓고 단순 비교할 수는 없다.

▲ 체급이 다른 월스트리트 소와 한국거래‘소’ ⓒ돌직구뉴스

한국경제의 실제 상황

우리의 경상수지 흑자가 무려 52개월째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내실을 따져보면 간이 덜컥 내려앉을 정도다.

건전한 경상수지 흑자는 수출이 수입에 비해 지속적으로 늘어나서 현금이 국내로 들어오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기록하고 있는 흑자는 수출도 감소하고 수입도 감소하는 가운데, 수입이 수출보다 더 큰 폭으로 줄어든 데 따른 전형적인 불황형 흑자다.

S&P가 한국의 신용등급을 상향 조정한 이유로 대외건전성 개선을 들었지만, 이는 우리의 대외건전성이 개선된 것이 아니라 착시일 뿐이라는 사실을 고려하지 않은 결정이다.

두 번째로 중요한 것이 중국의 경제 보복이다. 우리 정부는 사드 한국 배치에 대한 중국의 경제 보복 움직임이 없다고 잘라 말하고 있지만, 현실적으로는 문화계와 관광업계가 이미 직격탄을 맞고 있는 실정이다. 아무런 액션도 취하지 않고 있는 정부가 오죽 답답했으면, 야권 초선의원들이 중국을 다 방문했을까. 한국경제의 실제상황은 그리 녹록치 않아 보인다.

다음으로 고려해야 할 사안은 세계적인 보호무역주의 확산 움직임이다. 우리 철강업계는 미국 상무부의 반덤핑관세 및 상계관세 부과로 몸살을 앓고 있다. 중국의 보호무역주의 움직임도 현실화되고 있다. 한국이 늘 들어오던 용어인 ‘넛 크래커’가 또 회자되고 있는 요즈음이다. 수출로 먹고 살아야 하는 우리에게는 참으로 걱정스러운 현실이다.

마지막으로 국내 현실을 들 수 있다. 세계적인 경기침체로 선박은 남아돌고, 그나마 건조되는 선박도 중국이 가져가 버리는 실정이다. 한때 세계 최고의 ‘배 공장’이었던 거제도가 유령도시로 변하고 있다. 대우조선 비리의 불똥이 강만수 전 산업은행장에게까지 튈지도 모르는 상황에 조선업계 구조조정이 단행되고 있다.

▲ 구조조정 여파가 밀어닥친 조선업계 ⓒ뉴시스

거기다가 중앙정부와 각 지방자치단체, 그리고 민간이 혼연일체가 되어도 실타래를 풀기 어려운 청년실업 문제는 이미 심각한 지경을 넘어섰다. 공식적으로야 10%를 갓 넘긴 정도라지만, 취준생과 취업 포기자를 포함한 실질 청년실업률은 40%에 육박하고 있다.

그뿐인가. 생산가능인구(15-64세)가 2017년 말이면 3,612만 명을 정점으로 감소세로 돌아선다는 보고가 이미 오래전부터 나와 있었음에도, 복지 확대는커녕 부양 인구를 위한 별다른 대책도 없는 실정이다. 이래저래 국제신용평가사들의 신용등급 상향 조정이 와 닿지 않는 대목들이다.

 

착시에 현혹된 정책으로 서민들 울리지 말아야

지역별 최고 기온이 38℃를 오르내리는 요즈음, 서민들은 누진세 때문에 집안에 설치해놓은 에어컨조차 3시간 이상 가동하기가 두렵다. 미세먼지의 주범을 찾던 정부의 노력은 고등어와 화력발전소를 거쳐 10년이 지난 경유 차량으로 화살을 돌렸다. 노후 경유 차량의 서울 출입도 막겠단다.

우리 신용등급의 상향 조정은 분명 한국경제에 대한 해외 투자자들의 부정적인 인식을 바꾸어 줄 것이다. 해외투자자들에 의한 對한국 직접투자 및 간접투자도 늘어날 것이다. 이를 반영하듯 8일 코스피 마감 장세 역시 올해 최고치를 갈아치웠다.

그러나 위에 언급한 대로, Aa2라는 한국의 신용등급과 우리 국민들이 느끼는 경제 체감도 사이의 거리는 멀어도 한참 멀어 보인다. 이제라도 정부는 신용등급 상향 조정 사실을 정부정책 홍보용으로 쓰지 말아야 한다. 착시와 통계 수치에 의한 신용등급임을 감안하고, 서민들의 고단함을 해소하려는 정책으로 선회해야 한다.

▲ 국가신용등급과 괴리된 서민의 삶 ⓒthebarrpursuit.com

자본의 수익 가능성에 방점이 찍힌 국제신용평가사들의 국가신용등급 판정은 우리 서민들이 먹고 살기 위해 매일 매일 흘리는 진짜 땀방울과 하등 상관이 없다. 일거리가 없어 흘리는 청년들의 눈물방울, 누진세가 두려워 흘리는 가족의 땀방울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말이다.

국제신용평가사들이 국가에 대해 매기는 신용등급이 그 국가 국민들이 느끼는 경제 체감도를 제대로 반영하는 시절, 그런 시절이 올까. 이 질문에 대해 박근혜 정부는 “반드시 오게 할 것이다”라고 답해야 한다. 2013년 겨울에 빨간 점퍼 차려입고 힘들게 고개 꾸벅여가면서 했던 약속들을 잊지 않았다면 말이다.

한국의 신용등급이 높아졌다는 보도에 한층 더 더워지는 한증막 서민들이다.

 

김태현 두마음행복연구소 소장, 인문작가, 강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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