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대선이 문제가 아니라 현 대통령 하의 국정 공백이 더 큰 문제

「정치・경제・국방・법무에서 이어지는 국정 공백」
「검찰개혁을 검찰에 맡기겠다는 것은 개혁 의지가 없다는 뜻」
「롯데그룹 신동빈 회장에 기소편의권 발동할까 우려」


박근혜 대통령의 임기 말 국정이 그야말로 엉망진창이다. 공백도 이런 공백이 없을 정도다.

세월호가 304명의 미래와 함께 가라앉은 이후, 국민의 안전을 책임지겠답시고 설치한 국민안전처는 몇 차례 지진에 ‘얼음 땡’처럼 얼어붙어 국민들보다 더 정신 못 차리는 국민불안처임이 확인되었다.

군사적으로는 느닷없는 개성공단 폐쇄 조치에 이은 고고도미사일방어시스템 배치 문제로 국론이 분열되었고, 연이어 터져 나온 정치권의 핵무장론 탓에 민생은 어디론가 증발해버렸다.

경제적으로는 대우조선해양 사태로부터 서별관회의, 박수환 뉴스커뮤니케이션스 대표, 남상태 전 사장, 송희영 전 조선일보 주필, 강만수 전 기획재정부 장관 등이 고구마 줄기처럼 줄줄이 엮여 나왔다.

정부가 수수방관하는 사이, 한진해운 사태는 수십 년 동안 닦아온 한국의 국제 해운네트워크를 송두리째 잃을 위기에 몰려 있고, 공식 청년실업률은 9%를 넘어 10%를 바라보고 있다. 그뿐인가, 1,500조 원을 이미 넘어선 실질 가계부채는 한국 경제의 숨통을 조여오고 있다.

▲ 국정 공백으로 침몰 중인 대한민국호 ⓒfineartamerica.com

이처럼 국정 여기저기에서 누수가 진행되고 있는 가운데, 국가질서 최후의 보루인 검찰 인사들까지 나서서 파렴치한 행태로 국정 공백의 틈을 키우고 있다.

NXC(넥슨지주회사) 김정주 대표로부터 ‘더러운 돈’을 받은 진경준 전 검사장, 고등학교 동창에게서 ‘검은 돈’을 받은 것도 모자라 금융기업 임원들로부터 정기적으로 술 접대를 받아온 김형준 부장검사, 수임 비리로 세상을 시끄럽게 한 검사장 출신 홍만표 변호사, 폭언으로 부하 직원을 자살하게 만든 김대현 전 부장검사 등이 그 파렴치범들이다.

“검찰에 대한 민주적인 통제를 강화하겠습니다.”

검찰개혁에 대한 사회의 목소리가 커지자, 정권 초기 박근혜 대통령이 직접 한 말이다. 2013년 봄, 정치적인 수사를 일삼았던 대검 중앙수사부가 폐지될 때만 해도 어느 정도의 검찰개혁이 가능하리라는 기대가 있었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그 기대는 지난 1월 부패범죄특별수사단이 대검 산하에 설치되면서 망상이 되고 말았다.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 감찰 당시 도마에 올랐던 특별감찰관제도 역시 검찰이 강제수사권조차 양보하지 않은 ‘무늬만 개혁’이라는 비아냥을 들어야했다.

검찰을 개혁해야 한다는 국민적 요구가 일어난 것은 비단 어제 오늘만의 일이 아니다. 그러나 노무현 정부만이 ‘국민참여재판’을 도입하고 ‘재정신청’을 확대하는 등 검찰개혁을 위해 노력했을 뿐, 김영삼 정부 이후 어떤 정부도 검찰을 실제적으로 개혁하려는 노력을 보이지 않았다.

▲ 이명박 대선후보의 BBK 관련 검찰수사 결과 규탄집회(2007.12.06) ⓒ뉴시스

잊을 만하면 불거져 나오는 검찰의 비위・비리 사건의 배경에는 기소독점권과 기소편의권이 도사리고 있다. 기소독점권은 오직 검사만이 기소할 수 있는 권리를 말하고, 기소편의권은 죄가 명백함에도 기소하지 않을 권리를 말한다.

이 두 가지 독점적 권리, 특히 기소편의권을 남용한 탓에, 그동안 일반 시민과 동일한 죄를 저지르고도 그룹 총수나 정치적 영향력이 막강한 인사는 기소되지 않을 수 있었다. “유전무죄, 무전유죄”는 바로 그 때문에 생겨난 국민적 분노의 말이다.

그런데 검찰의 기소편의권이 또 한 번 남용될지도 모른다는 의구심이 인구에 회자되고 있다. 3개월여 동안 진행되었던 롯데그룹 수사의 정점, 신동빈(61) 회장의 구속 여부 때문이다.

롯데장학재단 신영자 이사장은 면세점 입점 비리, 자식들이 부당급여를 받게 한 혐의 등으로 이미 구속되었고, 거기에 탈세 혐의까지 추가될 전망이다. 신동주(62) 전 부회장도 400억 원 상당의 부당급여를 받은 혐의로 기소될 것으로 보이고, 신격호(94) 총괄회장과 그의 셋째 부인 서미경(56)씨 및 딸 신유미(33)씨도 증여세 탈루 혐의로 기소가 확실시된다.

법조계에서는 검찰이 지금까지 밝혀낸 결과와 지난 6월 실시한 롯데그룹 압수수색 당시 조직적인 증거인멸을 시도한 정황만으로도 수천억 원대의 배임 및 횡령 혐의를 받고 있는 신동빈 회장이 사법처리를 피할 수는 없을 것이라는 관측을 내놓고 있다.

그러나 서울중앙지검 롯데수사팀의 언론플레이에서 이상한 기류가 감지된다. 현재 문제가 되고 있는 사안은 신동빈 회장이 구속될 경우 롯데그룹의 경영권이 일본으로 넘어간다는 것이다.

재계에서는 신 회장이 구속될 경우 비리를 저지른 경영자의 사표를 받는 일본 재계의 관례에 따라 롯데그룹 지배구조의 정점에 있는 롯데홀딩스가 신 회장을 해임시켜 롯데그룹 자체가 일본 주주들에게 넘어갈 것으로 보고 있다.

이에 대해 검찰 관계자는 표면적으로는 “그런 주장은 검찰이 검증할 수 있는 방법이 없고, 신병을 정하는 데 결정적인 요인도 아니”라고 말하고 있지만, “국가경제 등 검찰 외적인 주장에 대해서도 다각도로 고려하고 있다”며 기소편의권 발동에 대한 여지를 완전히 배제하지는 않은 상태다.

실제로 서울중앙지검 수뇌부도 그룹 경영에 미칠 영향 등 외부적인 요인들을 고려해 신 회장의 사법처리 방향을 결정한다는 입장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분명 ‘성역 없는 수사’를 외쳐댄 현 정부 하에서 ‘성역 있는 수사’가 자행될 개연성을 드러낸 것이다.

ⓒ뉴시스

여야 대표가 청와대를 찾은 지난 12일, 박근혜 대통령은 검찰개혁을 요구하는 야당 대표들에게 ‘검찰이 자체 개혁을 하겠다고 하니 지켜보자’는 취지로 말했다. 그의 언급은 대검의 검찰개혁추진단을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지금까지 검찰의 자체 개혁이 대책에 중점을 두었던 전례에 비추어, 대검이 지난 8월 31일에 내놓은 개혁안, 즉 암행감찰, 변론 관리대장 비치, 선임서 미제출 변론 금지와 같은 수준이라면 모를까, 기소독점권이나 기소편의권의 포기를 비롯, 검사장 직선제, 수사권 이양, 공수처(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 신설 등 만족할 만한 개혁안을 내놓을 리는 만무하다.

그런 점에서 검찰개혁추진단의 결과를 지켜보자는 박 대통령의 언급은 “검찰을 개혁할 의지가 나에게는 없다”는 말로밖에 들리지 않는다.

각종 비리로 넘쳐나는 대우조선해양의 구조조정을 대우조선해양에 맡길 수는 없다. 방위산업 비리로 국방부가 몸살을 앓을 때, 국방부가 스스로 자정능력을 회복하기를 기대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마찬가지로 온갖 비위・비리 사건으로 위상이 추락할 대로 추락한 검찰이 스스로 개혁을 한다는 말,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는 척하는 대통령을, 국민들은 어떻게 봐야 하는가?

현재 이 나라는 대통령 유고 상태가 아님에도 정치・경제・국방・법무 등 다방면에 걸쳐서 실로 다양한 국정 공백 상태가 벌어지고 있다. 임기가 아직 1년 4개월이나 남았는데도 이 정도이니, 앞으로 벌어질 국정 공백 상태가 누수 정도가 아닌 홍수로 발전한다 해도 이상할 게 없을 지경이다.

내년 대선에 누가 대통령이 되는가가 문제가 아니다. 지금 있는 대통령이 앞으로 얼마나 더 큰 국정 공백 사태를 불러올 것인지를 지켜보는 것이 우리 국민들이 지금 당장 해야 할 급선무가 되어버린 시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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