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불법지시를 단호히 거절하고, 정권이 아닌 국민을 위한 본연의 업무에 더욱 진력할 것을 약속해야 마땅하다.

[사진제공=뉴시스]

국가정보원이 해킹장비를 들여와 민간인 해킹의혹이 불거지고 그 정황들이 속속 드러나고 있는 가운데 한 국정원 해킹담당직원이 용인시 야산에 주차 된 자신의 차량 안에서 번개탄을 피워놓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 불행한 일이 발생했다.

그는 자살하기 직전 국정원장 등 상관들에게 ‘국정원의 위상이 중요하다고 판단하여 오해를 일으킬 자료를 실수로 삭제하였지만 자신의 행위는 우려하실 부분이 전혀 없으니 조직을 잘 이끌어 달라’며 감사하다는 글을 남겼다.

하지만 그가 마지막 남겼다는 글 중 실수로 대북공작 활동 내용을 삭제했다는 내용은 도저히 납득할 수 없으며, 합법적 활동인데 왜 극단적인 자살의 길을 택했는지 오히려 더 큰 의혹을 가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다.

헌데 더 가관인 것은 사찰의혹에 대한 제대로 된 해명은 고사하고 동료의 죽음을 기회삼아 야당과 언론, 국민을 향해 협박성 성명을 낸 국정원 직원일동의 행태이다. 그들은 성명서에서 이탈리아 해킹팀사로부터 같은 프로그램을 35개국 97개 기관이 구입했지만 이들 나라에서는 아무런 논란이 없는데, 정보기관을 나쁜 기관으로 매도하기 위해 매일 근거 없는 의혹을 경쟁적으로 쏟아내는 곳은 우리나라밖에 없다고 항변하고 있다.

하지만 그들의 주장과는 달리 다른 나라들이 조용하다는 말은 거짓말이다. 지난 11일 키프로스에서는 자국 정보기관이 사찰용 해킹 프로그램을 해킹팀으로부터 구매한 사실이 드러나자 정보기관 수장이 이에 대한 책임을 지고 전격 사퇴했다. 또한 유럽의회 한 의원은 이탈리아 업체인 해킹팀이 수단과 같이 EU 제재조치가 내려진 나라와 거래를 한 사실이 드러나자 EU 규정을 위반한 게 아니냐며 EU 집행위원회에 서면 질의서를 제출했다.

이뿐 아니라 해킹팀이 판매하는 기술의 합법성 여부 때문에 정부기관이 해킹 프로그램 구매를 포기한 사례도 발견됐다. 유출된 해킹팀 내부 메일에는 영국 런던 경찰국이 해킹팀으로부터 제 3자의 단말기에 비밀리에 침투해 일거수일투족을 ‘보고, 듣고, 따라갈 수 있는’ 소프트웨어 구매를 고려했던 내용이 담겨있다. 하지만 해킹팀 프로그램을 통해 수집하는 일부 정보의 합법성 여부에 대한 우려 때문에 내부 검토 후 지난해 구매를 포기한 것으로 나타났다.

오히려 잠잠했던 건 우리나라 공영방송과 유력 신문들이다. 영국 BBC, 가디언, 미국 워싱턴포스트가 해킹팀 데이터가 유출되자마자 신속하게 보도했던 것과 대조적으로 국내 주요 언론들은 국정원이 해킹팀의 고객 명단에 포함돼 있다는 사실에 대해 거의 일주일째 침묵을 지켰다.

더구나 국정원은 2012년 최초 구입 이후 현재에 이르기까지 카카오톡 외에 국내에서 사용되는 각종 보안 메신저 프로그램과 국내 스마트폰 시장의 60% 이상을 점유하고 있는 삼성 갤럭시폰에 대한 해킹을 지속적으로 요청해 온 것으로 확인되었다. 심지어 해당 해킹 프로그램이 국내 백신 프로그램에 포착되었다며 이에 대한 해결책을 문의하기도 했다.

국정원 직원일동에 물어보자. 과거 독재시절 공포의 대상이었던 국정원의 전신인 중앙정보부와 안전기획부의 행태는 들먹거리지 않더라도 최근 대선개입 댓글사건과 간첩조작사건에 이어 해킹사건의 당사자로 이어지는 국정원에 대해 책임을 통감하고 대국민 사과를 언제 한번이라도 한 적이 있는가.

오히려 이번기회에 국정원 직원일동은 동료를 떠나보낸 참담한 심정을 승화시켜 책임자를 스스로 가려내고, 대국민 사과와 함께 향후 모든 불법지시를 단호히 거절하고, 정권이 아닌 국민을 위한 본연의 업무에 더욱 진력할 것이라고 약속해야 마땅한 처사이다. 자살한 국정원 직원의 명복을 빌며 남은 국정원 직원일동의 뼈를 깎는 각성과 변화를 촉구한다.

 

김상환(전 인천타임스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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