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핵실험장 폐쇄에 한미 전문가·언론인 초청
김정은 "못쓰게된 풍계리? 큰 실험장 2개 건재"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지난 27일 열린 남북정상회담에서 올해 안에 종전을 선언하고, '완전한 비핵화'를 통해 핵 없는 한반도를 실현하겠다는 공동의 목표를 확인했다. 이어 29일에는 김 위원장이 오는 5월 북한이 풍계리핵실험장을 폐쇄하고 이를 한국과 미국 언론 등을 통해 국제사회에 공개하겠다고 약속한 사실이 공개됐다. 일각에선 북한이 전 세계에 '비핵화 로드맵'의 시작을 알림으로써 진정성을 피력하려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다.

김 위원장은 이번 정상회담에서 '완전한 비핵화'라는 표현을 공동선언문에 명시하는 것에 동의함에 따라 공동선언문 3조4항에 이같은 내용이 담긴 선언이 발표됐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지난 27일 오후 판문점 평화의 집에서 열린 남북정상회담에서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 통일을 위한 판문점 선언문에 서명 후 서로 손을 잡고 위로 들어 보이고 있다/ 뉴시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지난 27일 오후 판문점 평화의 집에서 열린 남북정상회담에서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 통일을 위한 판문점 선언문에 서명 후 서로 손을 잡고 위로 들어 보이고 있다/ 뉴시스

지난 29일에는 윤영찬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이 춘추관 브리핑을 통해 "김정은 위원장은 남북 정상회담에서 핵실험장을 5월 중 폐쇄, 한국과 미국의 전문가와 언론인을 초청할 의사를 밝혔다"고 전했다.

특히 김 위원장은 "일부에서 못 쓰게 된 것을 폐쇄하겠다는 거라고 하는데, 와서 보면 알겠지만 기존보다 큰 실험장이 2개 더 있고, 이는 건재하다"고 강조하며 비핵화 이행 의지를 뒷받침했다고 윤 수석은 부연했다.

북한은 지난 20일 노동당 전원회의를 열어 핵실험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시험발사를 중지하고, 진정성을 담보하기 위한 조치로 풍계리핵실험장을 폐기하겠다는 내용을 담을 결정서를 채택했다. 이를 두고 일부에선 기존 핵실험장이 이미 사용 불가능한 상태라고 주장하며 북한의 비핵화 입장 표명에 의구심을 가졌다. 김 위원장의 정상회담 발언은 이와 같은 부정적 평가까지 감안한 것으로 보인다.

김 위원장이 언급한 '2개의 건재한 핵실험장'은 기존에 핵실험을 진행했던 북쪽 갱도가 아닌 남쪽 갱도와 서쪽 갱도라는 관측이다. 북한전문매체 38노스에 따르면 북한은 지난해 9월 6차 핵실험 이후 풍계리 서쪽과 남쪽 갱도에서 굴착공사를 꾸준하게 진행했다. 38노스는 지난 3월 새로운 서쪽 갱도가 포착됐으며, 남쪽 갱도 또한 추가 핵실험이 가능한 상태라는 분석을 내놨다.

북한은 지난 2008년 6월 6자회담 9·19공동성명 이행 차원에서 플루토늄 생산을 위한 핵심 시설인 냉각탑을 공개적으로 파괴하는 핵시설 불능화 조치를 취했다. 그러나 미국에서 '강제사찰'의 필요성을 제기하면서 갈등을 빚었고, 그해 12월 6자회담의 모든 프로세스가 중단됐다. 그리고 북한은 이듬해 2차 핵실험을 감행했다.

전례를 비춰볼 때, 북한의 이번 핵실험장 폐쇄 방침을 신뢰할 수 없다는 주장이 제기되지만, 현재의 흐름을 부정적으로만 봐서는 안 된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았다. 지난 2008년 북한의 냉각탑 폭파는 실질적인 '불능화' 조치였으며, 이후 합의가 상호 이행되지 않으면서 결과적으로 실패하게 됐다는 것이다.

국내 한 전문가는 "김 위원장의 발언은 '무너진 갱도'가 있음을 인정하는 동시에 또 다른 갱도가 가동할 수 있는 상태임에도 그것까지 다 폐쇄하겠다는 것"이라며 "비핵화 합의 이행 의지를 분명하게 담은 메시지"라고 진단했다.

이와 관련, 워싱턴포스트(WP)는 28일(현지시간) 이전에도 이런 합의를 본 적이 있다고 지적했다.

1992년과 1994년 북미 간 비핵화 협정이 체결됐고, 2005년에는 북한이 4개국과 비핵화 협정을 맺었으며, 지난 2012년에도 북한은 미국과 또 다른 비핵화 협정을 체결했었다는 것이다.

WP는 북한은 수차례 이뤄진 합의들 중 그 어떤 것도 지키지 않았고 현 상황에서 향후 북한의 행동을 예측하기 가장 쉽고 현명한 방법은 북한이 과거와 같다는 데 베팅하는 게 될 것이지만, 그런 회의적 생각을 주저하게 만드는 충분히 다른 요소들이 이번에는 존재한다고 강조했다.

WP는 우선 김 위원장이 자신의 아버지와는 매우 다른 성격 유형의 지도자라는 게 그 같은 판단을 가능케 하는 이유라고 설명했다. 김 위원장은 ICBM을 미국을 향해 발사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데다, 문 대통령에게 군사분계선을 깜짝 월경할 것을 제안하는 것을 꺼리지 않는 외향적 성격의 소유자다.

또 김 위원장이 우리나라를 한국이라고 부르는 등 언어를 사용하는 데 있어서도 우리와의 우정을 희망한다는 메시지가 담겨 있었던 것도 다른 판단의 근거가 될 수 있다. 심지어 김 위원장은 북한의 도로와 철도가 한국보다 훨씬 열악하다는 것을 인정하기도 했다.

이번 합의 내용들이 지지율 70%에 가까운 문 대통령으로부터 지지를 받고 있거나, 전략적 인내를 참아내지 못하는 충동적 성향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버티고 있는 것도 이번에야말로 비핵화와 관련해 성과를 낼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들고 있다고 WP는 설명했다.

물론 트럼프 대통령은 원치 않을 수 있지만, 지난해 한반도 긴장이 고조됐을 당시를 감안하면 북미정상회담을 통해 북핵 프로그램 동결만 당장 이끌어내더라도 진전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WP는 이런 이유들로 인해 이번 비핵화 협상은 예전과는 다를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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