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 연재-보이지 않는 경제학] 〈39〉금, 불변의 가치
[ST 연재-보이지 않는 경제학] 〈39〉금, 불변의 가치
  • 현재욱 선임기자 (jeffhyun@naver.com)
  • 승인 2019.0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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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세기에 나타난 자본주의로 인해 사람들의 생활은 풍요로워졌다. 그러나 자본가들의 무한 이윤획득에 의해 세계 경제는 불균등하고 불공정해지고 있다. 정치적으로도 강대국의 힘이 거세지면서 각종 모순적 요소가 심화되고 있는 형국이다. 이러한 문제의 원인을 알기 위해선 현대 경제의 중요한 쟁점들이 무엇인지 이해하고, 그 쟁점들의 핵심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경제학의 세계에서 벌어지는 모든 현상과 논쟁을 우리가 알아야 할까? 몰라도 무방한 것들이 있지만, 반드시 알아야 할 것들이 있다. 경제학 논쟁이 경제 정책으로 이어지고, 그 정책은 보통 누군가에게는 유리하고 누군가에게는 불리할 뿐 아니라 나라의 운명과도 연결되기 때문이다. 스트레이트뉴스는 오늘날 우리 사회에 뜨거운 쟁점으로 떠오른 경제의 주요 요소들을 비판적으로 바라볼 수 있도록 본지 선임기자 현재욱의 저작인 「보이지 않는 경제학」을 연재한다. [편집자 주]
보이지 않는 경제학
보이지 않는 경제학

금, 불변의 가치

나는 미국의 달러화가 실제보다 고평가되었다고 생각한다. 그 이야기는 금이 실제보다 저평가되었다는 뜻이다. 그것도 적정한 시장가치와 굉장히 큰 차이가 있을 거라고 짐작한다. 이 정도를 판단하는 데 엄청난 기밀문서나 치밀한 조사가 필요하지는 않다. 세상이 다 아는 사실과 몇 가지 상식만으로 충분하다.

종이돈 공급이 20배 넘게 느는 동안 금 공급은 1퍼센트 늘었다.

지난 몇 년 동안 시중에 풀린 어마어마한 유동성이 반영되면 금값은 온스당 3,000달러를 넘을 것이라는 예측도 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미 연준은 인쇄기를 돌려서 4조 5,000억 달러의 본원 통화를 공급했다. 본원통화는 최대 10배의 통화량을 창출한다.

막대한 통화 공급에도 달러인덱스가 큰 폭으로 떨어지지 않는 이유는 다른 통화도 같이 공급량을 늘렸기 때문이다. 2012년 5월까지 일본은 82조 엔, 영국은 5,400억 파운드, 유로존은 8,800억 유로, 중국은 44조 위안을 인쇄기로 찍어서 풀었다.17 세상의 모든 돈이 저렴해지고 있는데, 금값이 제자리걸음을 한다는 것은 이상하지 않은가?

달러 추종자들에게 미안한 이야기지만 달러는 과거의 그 달러가 아니다. 영광의 시대는 저물었다. 미국인들은 더 이상 제조업을 살리겠다는 의지가 없는 것 같다. 단지 달러 강세를 유지함으로써 금융자산을 부풀리는 데 관심이 있을 뿐이다. 미국 기업의 경영자들이 설비투자보다 자사주 매입으로 주가 띄우기에 열중하는 것이 그 증거다.

월가의 자본가들에게는 공장가동률이나 소비지수 따위의 실물지표보다 칠레의 지진 소식이 더 흥미로울지 모른다. 달러를 굴려서 쉽게 세계의 부를 긁어모을 수 있는데 뭐 하러 골치 아프게 공장을 짓고 사람을 고용하겠는가? 장하준의 지적처럼 미국은 2008년 금융위기 이후 7년을 낭비했다.

미국의 금융자본가들이 달러 강세에 집착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자산의 안전한 피난처’라는 아름다운 이미지다. 달러 강세를 위협하는 유일한 적은 금이다. 금은 시장의 진실을 드러내고 달러의 약점을 여과 없이 까발린다. 월가의 자본가들은 2008년 금융위기 직후 금값이 온스당 1,800달러까지 치솟았던 공포를 결코 잊지 못할 것이다. 정확히 이야기하면 금값은 그대로인데 달러값이 곤두박질친 것이다. 그때 하마터면 달러의 시대가 아주 끝장날 뻔했다.

상식에 근거하여 추정하면 지금의 금값은 터무니없이 저렴하다. 일단 시장가격이 생산원가에 못 미친다. 쑹훙빙의 분석에 따르면, 2012년 4분기에 금 생산원가는 온스당 1,399달러였다. 2018년 1월 20일 현재 뉴욕상품거래소의 금 가격은 온스당 1,332달러다. 생산할수록 적자가 쌓인다면 누가 광산을 운영하려 하겠는가? 결국 문을 닫게 되고, 금 공급량은 줄어들 것이다. 공급이 줄면 가격이 오른다.

금값을 인위적으로 억제하는 세력이 있다. 금값 상승을 억제하는 이유에 대해서는 앞에서 충분히 살펴보았다. 우리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금과 달러는 사력을 다해 싸우고 있다. 국가권력을 등에 업은 이익집단과 시장의 싸움인데, 결국은 시장이 이길 거라고 생각한다.

그 이야기는 금값이 오른다는 뜻이다. 도전하는 상대가 사람이라면 강한 공격으로 주저앉힐 수 있다. 그러나 시장가격을 제압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대증요법으로 일시적 효과를 거둘 수는 있다. 하지만 돌아서면 곧바로 일어나 원래 있어야 할 자리를 찾아가는 것이 가격이다.

철석같던 달러의 위상도 여기저기서 조금씩 금이 가는 게 보인다. 45년간 달러의 지배력을 공고하게 뒷받침해온 석유가 이제 와서 달러에 등을 돌리려 한다. 2017년에 중국은 위안화로 대금을 결제하고 이를 금으로 전환할 수 있는 원유선물상품을 내놓았다. 충분한 금을비축한 중국의 자신감이 엿보인다.

금과 연계된 원유선물상품의 출시, 의미심장한 변화가 아닐 수 없다. 도도히 흐르는 장강長江의 물결도 샘물에서 시작된다. 2016년 중국은 하루 평균 760만 배럴의 원유를 수입했다. 석유시장의 큰손이다. 산유국들이 석유를 팔아서 번 위안화를 상하이와 홍콩에서 금으로 바꿀 수 있다면 굳이 달러에 목맬 이유가 없다. 그리고 산유국들은 금을 중국인민은행에 예치해 놓고 금 또는 위안화로 중국의 공산품을 구입할 수 있다. 사실상 현물 금은 중국 밖으로 빠져나가지 않는다.

금은 월가의 자본가들을 긴장하게 만드는 유일한 적수다. 아마 그들은 금값을 떨어뜨리기 위해서라면 종이 금의 과도한 발행과 허수매도도 서슴지 않을 것이다. 문제는 어떤 방법으로도 금을 길들일 수 없다는 점이다. 가짜는 진짜를 대체할 수 없다. 금은 궁극의 믿음이고, 불변의 가치다. 화폐의 정점에 있으며, 시장의 자연법칙을 반영한다. 월가의 자본가들이 금을 완벽하게 통제하는 유일한 방법은, 지구의 모든 금을 우주선에 실어서 우주 밖으로 날려 보내는 것뿐이다. <계속>

※ 이 연재는 스트레이트뉴스가 저자(현재욱)와 출판사(인물과사상사)의 동의로 게재한 글입니다. 무단 도용을 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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