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 연재-보이지 않는 경제학] 〈37〉인간, 금을 창조하다
[ST 연재-보이지 않는 경제학] 〈37〉인간, 금을 창조하다
  • 현재욱 선임기자 (jeffhyun@naver.com)
  • 승인 2019.0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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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세기에 나타난 자본주의로 인해 사람들의 생활은 풍요로워졌다. 그러나 자본가들의 무한 이윤획득에 의해 세계 경제는 불균등하고 불공정해지고 있다. 정치적으로도 강대국의 힘이 거세지면서 각종 모순적 요소가 심화되고 있는 형국이다. 이러한 문제의 원인을 알기 위해선 현대 경제의 중요한 쟁점들이 무엇인지 이해하고, 그 쟁점들의 핵심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경제학의 세계에서 벌어지는 모든 현상과 논쟁을 우리가 알아야 할까? 몰라도 무방한 것들이 있지만, 반드시 알아야 할 것들이 있다. 경제학 논쟁이 경제 정책으로 이어지고, 그 정책은 보통 누군가에게는 유리하고 누군가에게는 불리할 뿐 아니라 나라의 운명과도 연결되기 때문이다. 스트레이트뉴스는 오늘날 우리 사회에 뜨거운 쟁점으로 떠오른 경제의 주요 요소들을 비판적으로 바라볼 수 있도록 본지 선임기자 현재욱의 저작인 「보이지 않는 경제학」을 연재한다. [편집자 주]
보이지 않는 경제학

인간, 금을 창조하다

영국에 금본위제를 도입한 아이작 뉴턴은 연금술에 심취해 있었다. 사후에 그의 머리카락을 분석한 결과 수은 함유량이 자연 상태의 40배가 넘는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당시 수은은 연금술사들이 많이 쓰는 재료였다. 뉴턴은 연금술에 실패했지만 호모 사피엔스는 결국 금을 창조하는 데 성공했다. 금이 아닌 물질에서 금을 얻는 방법은 우연히 발견되었다. 심지어 그 방법을 실행한 사람들 중에 대다수는 자신이 금을 만들었다는 사실조차 알지 못했다.

이쯤 되면 눈치챘겠지만 그들이 발명한 것은 ‘종이 금’이다. 인류사에 거대한 변화를 일으킨 화폐가,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들에 의해, 어떤 의도도 없이 우연히 발명되어 전 세계로 퍼진 것처럼, 종이돈도 그렇게 세상에 나왔다.

현대인의 경제생활에 이보다 큰 영향을 미치는존재를 찾기도 쉽지 않을 것이다. 발명자가 누구인지는 불분명하지만, 종이 금이 누구에게 가장 많은 이익을 가져다주는가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바로 월가의 자본가들이다.

금은 본질적으로 경쟁 상대가 없는 ‘절대화폐’다. 화폐의 제왕인 달러조차도 금과 마주보기를 두려워한다. 금값으로 측정한 달러가치지 수가 얼마나 형편없는지 우리는 확인했다. 만약 세계 경제를 100퍼센트 ‘보이지 않는 손’에 맡기고 모든 정부가 손을 뗐다면 달러는 진즉에 찌그러져 기축통화의 위상을 잃었을 것이다. 달러를 표준화폐로 남아있게 한 힘의 원천은 석유와 종이 금이다. 석유는 실물 분야에서, 종이 금은 금융 분야에서 달러의 패권을 지탱해왔다.

실물이 아닌 종이 금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대부분의 사람은 알지 못한다.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종이 금은 금을 길들이는 마약이고 금을 잠재우는 주술이다. 종이 금은 팽창하는 거품이고, 그 거품은 현물 금을 몇 겹으로 에워싸서 감추어 버린다. 그리고 전형적인 물타기 전술로 금의 가치를 희석시킨다. 그러나 종이 금은 금이 아니다.

1971년 8월 15일, 닉슨 대통령이 금태환 중지를 선언한 시점으로 돌아가 보자. 그날, 미국이란 나라를 세계에서 가장 안전한 부富의 곳간으로 이용해온 자본가들이 깨달은 것은 무엇일까? 달러로 쌓아올린 부의 마천루가 하루아침에 무너질 수 있다는 사실은 그들의 공포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금융경제에 미치는 금의 영향력을 그냥 놓아둘 수 없다는 암묵적 합의가 이루어졌을 것이다. 월가의 자본가들은 자신들의 치명적인 약점을 인식했고, 그 약점을 극복할 방법을 찾았다. 그들이 찾아낸 해법이 바로 종이 금이다.

종이 금은 이미 오래전부터 유통되고 있었다. 금본위제 시대에 그 가치가 부각되지 않았을 뿐이다. 금과 연결고리가 끊긴 달러가 무한히 팽창할 수 있다면, 종이 금도 그러할 것이다. 현물 금 없이 문서로만, 정확히 말하면 파일로만 거래되는 금! 월가의 금융기술자들은 여기에 주목했다.

런던, 취리히, 뉴욕, 홍콩, 상하이 등 국제 금시장에서 거래되는 금은 대부분 실물이 아닌 종이 금이다. 문서상으로만 소유권이 왔다 갔다 하기 때문에 실제로 현물이 얼마나 있는지는 중요하지 않고, 신경 쓰는 사람도 없다.

중요한 것은 그 거래규모다. 금이 증권화 과정을 통해 금 선물, 금 스와프, 금 임대, 선도계약, 금지수연동형 펀드, 비할당 금 등 수많은 파생상품으로 거듭나면서 금시장은 순식간에 100배 이상 팽창한다. 초단타 프로그램 매매를 통해 한 사람이 하룻밤에 수십만 건의 거래 기록을 남기기도 한다. 그러나 금 파생상품 가운데 대부분은 현물 금을 인수할 수 없는 빈껍데기에 불과하다. 

무수히 많은 금 기반 상장지수펀드ETFs 가운데 한 상품을 보자. 이펀드의 최소매매단위(1계약)는 금 10분의 1온스다. 150달러 정도의 소액으로도 금 관련 펀드에 투자할 수 있어서 선풍적 인기를 끌었다.

그러나 그 펀드에는 ‘가입자가 10만 계약의 증권을 가져가야 현물 금을 내준다’라는 조건이 붙어있다.12 1만 온스의 금을 계약한 사람, 다시 말해 1,000만 달러 이상 동원할 수 있는 큰손만 금을 만져볼 수 있다. 개미투자자들은 펀드에 이름만 올려놓고 금이라고 생각되는 ‘숫자’를 받을 뿐이다.

이런 방식의 상장지수펀드는 사실상 사기다. 이런 괴기한 시장이 유지되는 것은 현물 금을 소유할 생각 없이 도박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대다수이기 때문이다.

국제 금시장에서는 땅속에 묻혀있는 금도 상품으로 만들어 사고 판다. 호주의 한 금 생산업체는 미래에 7년간 채굴할 금을 미리 팔았다.수많은 금 생산업체가 갱도에서 금광석을 채굴하기도 전에 미리 증서로 만들어 시장에 내놓는다. 그 배후에는 골드만삭스 같은 월가의 투자은행들이 있다. <계속>

※ 이 연재는 스트레이트뉴스가 저자(현재욱)와 출판사(인물과사상사)의 동의로 게재한 글입니다. 무단 도용을 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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