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눅들지 말고 같이 손잡고 힘을 합치면 이 고통의 역사를 바꿀 수 있어

사진제공 김영준

“양심수에게 자유를”
“저항하는 자, 인간이다”

필자가 참관한 1일 저녁 서울 장충체육관에서 열린 <2015 인권 콘서트>의 구호다. <인권콘서트>는 ‘이제 양심수는 사라졌다’는 말이 돌던 인권 호시절이던 노무현 정부에서 사라졌다가 이명박근혜 정부 들어 다시 인권 상황이 악화되면서 작년 말 8년 만에 다시 부활한 후 두 번째 행사다.

<인권 콘서트>인 만큼, 시와 음악, 연기 등이 어우러진 다채로운 공연이 펼쳐졌다. <인권중심 사람> 박래군 소장, <다산인권센터> 박진 활동가, 민변 황필규 변호사가 함께한 이야기 콘서트에 이어 킹스턴 루디스카는 흥겨운 음악으로 관객들을 자리에서 모두 일어나게 했다.

사진제공 김영준

이제는 중년이 다 된 노래마을은 ‘그 바람 앞에 서면’, ‘지금은 우리가 만나서’를 열창해 환호를 받았다. 심보선 시인과 송경동 시인은 각각 ‘거기 나지막한 돌 하나만 있다면’과 ‘솔직히 말해보자’는 시를 낭독했고, 류성국 배우는 ‘진리를 고독해도 날마다 더욱 담대하다’는 주제로 마임을 선보였다. 그리고 가수 이은미의 공연은 환호의 절정이었다.

3시간 동안 이어졌던 <인권 콘서트>는 서로의 신념과 행동을 지지하며 차례로 이어진 서로의 격려와 응원 릴레이로 마지막을 장식했다.

‘탈핵’을 외치는 밀양 할매들, 농성 중인 기아차 노동자들, 송전탑 건설 반대를 위해 싸우는 청도 주민들, 생탁 노동자와 택시 노동자, 장애인 등급제 폐지를 요구하는 광화문공동행동, 탈핵 주민투표를 승리로 이끈 영덕 주민들, 설악산 케이블카 건설을 막기 위해 애쓰는 사람들, 혐오와 차별 없는 세상을 만들고자 싸우는 무지개공동행동, 인천 구월동 철거반대투쟁 주민, 안전 사회 건설을 바라는 세월호 유가족, 강제 노점상 철거에 맞서는 상인들, 삼성에 산재피해 책임을 요구하는 반올림 황상기 씨, 장기 투쟁 중인 울산과학대 청소노동자들, 국정교과서에 반대하는 청소년들, 콜트콜텍 기타 노동자들, 발달장애인과 가족들, 강정마을 주민들, 국가보안법 피해자들, 노동개악 반대 투쟁자들, 내란음모 사건 피해자들, 용산참사 피해자들, 민주주의와 통일을 위해 애쓰는 사람들, 경찰의 물대포 직사로 중태에 빠진 농민 백남기 선생.

“사람답게 살기 위해 애쓰시는 모든 분들 힘내세요!”

자신의 양심과 신념 때문에 감금된 ‘양심수’의 숫자는 인권현실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주요 지표 중 하나다. 가장 많은 양심수를 발생시키는 주범은 역시 국가보안법이다. 민주정부시절 역사의 박물관으로 보내지 못한 국가보안법이 양심수를 양산하고 있는 것이다.

사진제공 김영준

<2015 인권 콘서트> 준비위원회가 기자회견을 열었던 지난달 12일께만 해도 감옥에 있는 양심수의 숫자는 50명이었다. 그러나 2주 만에 73명으로 늘었다. 열흘 남짓 동안 국가보안법, 11월 14일 민중총궐기 참가, 노동사건 등의 이유로 23명이 구속된 셈이다. 감옥과 영장의 숫자만 헤아리자면, 한국사회의 인권은 계속 후퇴하는 중이다.

<2015 인권 콘서트>에서는 UN 자유권위원회의 강력한 권고도 무시로 일관하는 정부의 태도를 비판하며 자꾸만 뒤로 가는 인권 현실에 대한 개탄을 쏟아냈다. UN 자유권위원회는 신체의 자유, 표현의 자유 등 자유권과 관련된 인권을 다루는 UN 기구다.

우리나라는 ‘모호하고 자의적이며 사실상 통제를 위한 수단’이기 때문에 국보법에 대해 UN 자유권위원회로부터 수없는 권고를 받았다. 특히 7조 ‘찬양 고무죄’는 반드시 폐지시켜야 한다고 명확하게 밝힌 바 있다.

정당 해산 역시 최후의 수단으로 가장 엄격히 적용돼야 한다고 권고했지만, 정부는 누구나 동의할 수 있는 일반적 원칙 아래 한 것이므로 UN 권고는 신경 쓸 필요 없다는 식으로 나오고 있다. 최근 발의된 복면금지법도 마찬가지다.

11월 14일 열린 민중총궐기는 거의 막다른 골목에 내몰린 국민들이 절망의 벽 앞에서 지르는 일종의 비명이었다. 수백일째 하고 있는 콜트콜텍 단식 농성, 삼성 앞 반올림 농성, 하늘에서 농성하는 기아차, 생탁, 풀무원 노동자들, 국정교과서 문제도 있고, 세월호 참사는 600일이 다 되어 가는데 해결된 건 없다.

마땅히 그 손을 잡아주고 국민들을 어루만져줘야 하는데 국가는 그렇게 하지 못하고 있다. 농민 백남기 선생은 물대포를 맞아 사경을 헤매고 있는데 정부는 일언반구 언급이 없다. 미안하다는커녕 유감이라는 표현조차 없다. 아예 무시하고 가는 것이다. 공권력 남용으로 인한 국민 피해는 아예 없는 것처럼 하고, 시위 참가자들만 폭도로 몰아가고 있다.

물대포를 쏘는 규정은 불분명한데 그조차도 제대로 지키지 않았다. 법치주의가 존재하지 않았다. 여기엔 이론의 여지가 없다. 명확한 불법이다. 경찰은 시계가 확보되지 않아서 쏜 것이라 잘못이 없다고 하면서 선진국에서는 시위대에 대해 발포하기도 한다고 주장한다. 그래 우리나라도 시위대에게 발포한 역사가 있었다. 5.18과 4.19가 그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희망’이 없는 것은 아니다. 이제 더 이상 물러날 곳이 없고 벼랑 끝으로 자꾸 떨어져가고 있고, 정권은 브레이크를 밟지 않은 채 계속 질주해 몰아대지만 여기에 주눅들지 말고 같이 손잡고 힘을 합치면 이 고통의 역사를 바꿀 수 있다.

이날 수천 명의 시민이 함께한 <2015 인권 콘서트>도 좌절과 한숨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힘겨운 상황 속에서도 서로의 선택과 행동을 지지하는 격려가 넘쳤다. 다시 ‘희망’을 말했다.

<인권 콘서트>는 ‘나 혼자 있는 건 아니다. 곁에 누군가 있다’는 것에 의미를 두고 있다. 각자가 행동하며, 그래서 잊지 않고 가만히 있지 않겠다는 것을 보여주자는 것으로 희망을 노래했다.

공포와 혐오를 내세워서 반대하는 국민을 배제하고 억압하는 자들은 대한민국의 일부가 될 수 없다. 법치주의를 부정하고 진정한 민주주의를 무력화시키려는 시도에 당당히 맞서기 위해서는 여럿이 함께 공포와 혐오를 극복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인간에 대한 존중은 두려움에서 나온다. 살아 있는 인간은 빼앗으면 화를 내고 맞으면 맞서 싸운다”는 최근 인기리에 종영된 웹툰을 드라마 한 <송곳>의 대사는 의미 있는 말이다.

끝으로 송경동 시인이 <2015 인권 콘서트> 현장에서 직접 낭독한 시 ‘솔직히 말해보자’를 소개한다.

 

솔직히 말해보자
(송경동)

솔직히 한번 말해보자
이게 민주주의 세상인가
국가정보원이 선거에 개입하는 나라
부정선거로 권력을 탈취한
국적, 태생, 절차 불명의 정부가
합법정당을 해산하고 법내노조들을 법외로 내모는 세상
국민의 심부름꾼이 아니라 독재자, 여왕을 뽑는 나라
이게 제대로 된 현대인가

솔직히 한번 말해보자
이게 모두의 국가인가
온갖 굴욕의 자유무역협정
부자에겐 감세, 기업에는 규제완화, 해고의 자유
민중들에겐 복지후퇴, 생존권 박탈
임금피크제, 성과연봉제, 비정규직 사용기간 확대
공공부문 민영화, 언론통제
숨쉴 틈조차 없이 모두의 목을 천천히 조여오는
저 부드러운 파괴의 손들
저 ‘보이지 않는’ 자본의 주먹과
살상과 융단 폭격들만 합법인 국가

솔직히 솔직히 한번 말해보자
봉건을 넘어 전근대를 넘어
근대를 넘어 현대까지
수많은 시민 민주 민중 민족 계급 혁명을 넘어
수백 억 인간들의 피눈물나는 투쟁과
노동과 땀으로 일구어 온
자유라는 낱말은, 평화라는 소망은
평등이라는 깃발은, 자주라는 외침은
인권이라는 합의는, 인간존엄이라는 숭고함은
지금 다시 어느 역사의 골짜기에서 신음하고 있나
어떤 기득권자 협잡꾼 기회주의자들의 시궁창에서
버림받은 달처럼 박해받고 있나

솔직히 솔직히 한번 말해보자
혹 우리는 차벽이 두려운 게 아니라
사라져버린 어떤 인간적 유대와
사라져버린 동지적 연대가 두려운 것 아닌가
혹 우리는 저 무수한 채증카메라와 소환장이 두려운 게 아니라
신자유주의의 굴레 속에서
파편화되어버린 우리 스스로들이 두려운 건 아닌가
물대포와 연행과 구속이 두려운 게 아니라
대중의 여론과 공안몰이가 두려운 게 아니라
경찰폴리스라인을 넘는 게 두려운 게 아니라
패킷도감청이 두려운 게 아니라
사라져버린 역사에 대한 믿음과 신뢰가 두려운 것은 아닌가
다시 꽃도 무덤도 십자가도 없이
역사의 암흑기를 반딧불 하나의 빛이라도 되어 걷겠다는
고뇌와 고독의 선택이 두려운 것은 아닌가

솔직히 나도 가끔은 그게 두렵다
이렇게 험난하게만 전투적으로만
칼끝 같은 긴장 속에서만 사는 게 두렵다
그렇게 고립되어 가는 게
마모되어가는 게 두렵다
그게 설령 진실의 목소리였다 해도
다시 역사의 소수자가 되는 게 두렵다
사후에 어떤 명예와 칭송보다
지금 현재의 안락과 풍요를 얻고 싶다
지금껏 헌신했으니 보상되는 삶을 얻고도 싶다
내 대에 다시 혁명의 시대는 오지 않을 것 같으니
적당히 가능한 양심의 선을 찾고 싶기도 하다
나도 그래서 누군가에게
함부로 말할 수 없다
그런가 그런 것인가
그러나 아직 우리
물러서지 않았으니

솔직히 한번 말해보자
정세분석? 맨날 그 나물에 그 밥이 되고 마는
정치공학 헛된 계산 그만두고
누구나 알고 있는 정당한 시대의 분노와
굽힘없는 시민불복종
비타협적 투쟁이라는 오래된 무기들의
무뎌진 날들을 다시 벼려보면 어떤가
우리가 먼저 진실의 깃발들이 되어
저들을 향해 달려 나가면 안되겠는가
그 길 위에서, 다시 새로운 세상을
새로운 노동자민중 정부를 꿈꿔보면 안되겠는가
새로운 인류의, 자연의, 진보의 강령을
부족하더라도 선명하게
용기있게 제시해보면 안되겠는가
세월호 학살 노동법 학살
역사 살인 민주주의 살해
이제 구체적인 공권력 살인까지
이 새로운 죽임의 겨울공화국에서
갇히지 않은 자
짓밟히지 않는 자
구속당하지 않는 자, 따로 없어
구시대 공안탄압 반북 색깔공세로
이 모든 착취와 폭압의 진실을 감추고
이 땅 전체를 역사의 무덤으로 만들려는
박근혜 재벌 정권에 맞서
더 거대한 분노를 조직해야 할 때
노동자민중 연대 항쟁으로
총파업 총단결 총투쟁 전선으로
여기 모인 우리 모두가 먼저
더 힘차게 당당하게 나아가야
하지 않겠는가

 

김상환(전 양천신문/인천타임스 발행인)

※외부 필자의 원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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