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트레이트특집-온라인마권③] 세계인 즐기는 레저스포츠 경마, 한국은?
[스트레이트특집-온라인마권③] 세계인 즐기는 레저스포츠 경마, 한국은?
  • 김태현 선임기자 (bizlink@hanmail.net)
  • 승인 2020.0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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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마 기원, 고대 그리스 올림픽 넘어 B.C. 8세기까지 거슬러 올라
경마 통한 영국 귀족들의 봉사와 기부정신, 현대에 자선으로 확대
말과 단단히 연결된 한반도 역사, 그러나 경마는 출발부터 부정적
부정적 인식 책임, 전쟁자금 확보 위해 경마 도입한 일제에 있어
경마를 세수 확보 수단으로만 본 정부 탓에 부정적 인식 고착화
자본주의 대표 스포츠 경마, 북한도 도입해 시행하는 등 보편화
기마민족, 이범석, 김구, 곽낙원 이어진 말의 역사, 정부 풀어내야

영국에서 귀족들의 ‘노블리스 오블리제(noblesse oblige, 사회적 지위에 상응하는 도덕적 의무)’로 출발한 경마, 유럽연합(EU) 회원국과 미국, 호주, 독일, 프랑스 등 경마선진국에서는 이미 국민레저스포츠로 자리를 잡았지만, 한국경마는 일제 강점기에 우리 국민의 반감을 사면서 출발한 데다 ‘시행은 하되 장려는 하지 않았던’ 정부 정책 탓에 부정적인 인식이 매우 강하다.

경마는 정말 도박일 뿐인가? 그렇지 않다. 우리나라 합법 사행산업 7종 중 가장 큰 세수 확보원으로 공공재정 조성에 일조하고, 일자리를 창출하며, 건전한 여가문화를 제공한다. 사회와 문화의식이 발전하고 힐링(healing) 활동에 대한 수요가 늘어감에 따라 차츰 공익적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현재 ‘온라인 마권발매’와 관련된 법안이 국회에 계류 중이다. 여론은 둘로 갈려 있다. 지금도 문제가 많은데 온라인까지 허용하면 ‘도박공화국’이 된다는 쪽과 온라인 마권발매야말로 급팽창 중인 온라인 불법도박시장을 잡을 가장 확실한 방안이라는 쪽이다.

스트레이트뉴스는 국내외 합법 사행산업의 규모와 우리 국민이 경마를 부정적으로 보는 이유, 불법도박의 규모와 실태, 한국마사회의 사회공헌 정도 등에 대해 살펴보고, 한국마사회가 추진 중인 온라인 마권발매가 시의적절한지 여부를 독자 여러분이 스스로 판단할 수 있도록 특집 기획기사 시리즈를 준비했다.<편집자주>

고대경마 조각상(오른쪽 상단은 고대 그리스 올림픽 당시 경마 부문 우승자에게 수여됐던 메달 ‘KELHS’)(자료:tamilandvedas) ⓒ스트레이트뉴스/디자인:김현숙
고대경마 조각상(오른쪽 상단은 고대 그리스 올림픽 당시 경마 부문 우승자에게 수여됐던 메달 ‘KELHS’)(자료:tamilandvedas) ⓒ스트레이트뉴스/디자인:김현숙

 

[스트레이트뉴스=김태현 선임기자] 경마는 프로축구와 프로야구를 비롯한 우리나라 관람 스포츠 중 입장객 규모가 가장 큰 종목이다. 그러나 국민 70% 이상이 경마를 도박으로 바라보는 등 부정적 인식에 시달리고 있다. 세계경마는 언제 어떤 가치로 시작됐으며, 경마에 대한 우리 국민의 인식이 부정적으로 바뀐 이유는 무엇인지, 부정적인 인식을 풀어낼 해법은 있는지, 사회주의 국가인 북한은 경마를 어떻게 바라보는지 등에 대해 살펴본다.

◆경마 종주국 키워드는 봉사와 기부

말은 소와 함께 인류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 학계에서는 기원전 4000~3000년경 유라시아 일대에서 야생마가 가축화됐다고 본다. 가축화 초기 단계의 말은 인간에게 중요한 단백질 공급원이었다. 말고기는 지금도 유럽 전역에서 소비되고 있다. 이후 기원전 2000년경부터는 수렵과 농경, 운송에 이용됐다.

경마(競馬, horse racing)는 ‘말 달리기’다. 법적 정의는 ‘기수가 기승한 말의 경주에 대하여 승마투표권을 발매하고, 승마투표 적중자에게 환급금을 지급하는 행위’를 말한다(한국마사회법 제2조).

경마는 언제 시작됐을까? 인류가 말을 타기 시작한 때로 추정된다. 기록상 출발지는 고대 그리스의 올림픽이다. 그러나 그리스 시인 호메로스(Homeros)가 대서사시 ‘일리아드(Iliad)’에서 ‘사회적 지위에 상응하는 도덕적 의무(noblesse oblige)’를 노래하던 B.C. 8세기경 영국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영국 최대 경마대회인 로열 에스코트(Royal Escot) 개막식에 참석하기 위해 마차를 타고 등장하는 엘리자베스Ⅱ 여왕과 부군인 필립(에든버러)공(자료:bbc)
영국 최대 경마대회인 로열 에스코트(Royal Escot) 개막식에 참석하기 위해 마차를 타고 등장하는 엘리자베스Ⅱ 여왕과 부군인 필립(에든버러)공(자료:bbc)

북유럽 일대에 거주하던 켈트족이 호전적인 민족성과 라텐(La Tene) 문화로 불리는 강력한 철기문화를 앞세워 갈리아(오늘날의 프랑스)와 브리타니아(영국)를 침공하기 전, 브리타니아의 귀족들은 단순한 오락 차원에서 ‘말 달리기 내기’를 시작했다.

당시 힘겹게 살아가던 평민과 노예들에게 귀족들의 말 달리기는 큰 구경거리였다. 귀족들은 자신들만 즐기던 ‘말 달리기 내기’의 덩치를 키워 평민들과 노예들도 즐기게 했고, 그런 행위를 귀족들이 베푸는 봉사 또는 기부, 즉 ‘노블리스 오블리제’라고 여겼다.

귀족들의 봉사와 기부 정신은 지속적으로 발전해 자선(慈善, charity)으로까지 확대됐으며, 오늘날 경마 종주국인 영국은 물론, 프랑스, 미국, 호주, 독일 등 대부분의 경마 선진국에서 경마가 건전한 여가활동으로 자리 잡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주요국의 경마 시행 규모(자료:한국마사회 국회업무보고, 2016) ⓒ스트레이트뉴스/그래픽:김현숙
주요국의 경마 시행 규모(자료:한국마사회 국회업무보고, 2016) ⓒ스트레이트뉴스/그래픽:김현숙

2020년 현재 경마는 일부 사회주의 국가와 소국을 제외한 100여 개국에서 시행될 정도로 보편화됐다. 그러나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권에서는 봉사나 기부보다 도박의 성격이 강하다. 도박에 친화적인 아시아 특유의 문화 탓이다.

실제로 홍콩 유일의 국가 공인 사행산업 운영자인 홍콩쟈키클럽(HKJC)의 추산에 따르면, 5,000억 달러(약 582조 원)에 달하는 전 세계 불법도박 중 3,500억 달러(약 407조 원)가 아시아권에 집중돼 있다.

◆출발부터 부정적이었던 한국 경마

한민족은 유라시아 대륙을 재패한 기마민족 ‘동이족’의 후예이고, 한반도는 군마(軍馬)를 애지중지하는 그들의 땅이었다. 고조선 시대, 말과 함께 부여(夫餘) 만주벌판을 내달리던 주몽(朱蒙)은 남쪽 졸본부로 내려와 기마민족의 전통을 잇는 나라, 광개토대왕과 장수왕의 나라, 고구려를 세웠다.

기마민족의 역사는 가야와 신라, 백제로 이어졌다. 삼국시대 이후 고려에서는 지금의 폴로(polo)처럼 말을 타고 막대기나 봉으로 공을 치는 ‘기마격구’가 유행하기도 했다. 당시 한반도의 위정자들은 “나라에 중요한 것은 군사요, 군사에서 중요한 것은 말”이라고 강조했다.

ⓒ스트레이트뉴스/그래픽:김현숙
ⓒ스트레이트뉴스/그래픽:김현숙

말, 특히 기병대 소속 군마는 중국 운남성 육군강무학교(陸軍講武學校) 기병과를 졸업하고 만주독립군 기병대 교관을 지낸 철기 이범석 장군이 청산리전투를 대승으로 이끄는 등 일제 강점기 독립투쟁 당시에도 크게 활약했다.

그러나 이처럼 화려한 역사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 경마는 출발부터 부정적이었다. 대륙진출 야욕을 불태우던 일본에 의해 시작돼서다.

1905년 일본은 대륙 침략을 위한 군수·병참용 자금을 확보하기 위해 자국 내 8개 지역에 마권을 발매하는 경마장을 설립했다. 그런 정책은 수탈 대상이던 식민지 국가로 이어졌다.

1922년, 조선총독부는 우리나라에도 동일한 목적으로 ‘조선경마구락부’를 설립해 침략용 전쟁자금을 끌어 모았다. 반일감정이 극에 달했던 우리 국민이 그런 경마를 곱게 볼 리 없었다. 당시 지식인들은 일본의 행태에 분노하면서 경마에 대해 강한 반감을 표출했다. 이것이 우리나라 경마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의 출발점이다.

더 나아가 조선총독부는 1924년 북한에 ‘평남레이스구락부’를, 1927년 동래에 ‘부산경마구락부’를, 1928년 경성에 ‘신설동경마장’을 세웠다. 모두 군수・병참 자금 확보용이었다.

일제 강점기, 부산경마구락부에서 경마가 개최되고 있다(자료:부산박물관)
일제 강점기, 부산경마구락부에서 경마가 개최되고 있다(자료:부산박물관)

특히 부산 시민들에게 ‘캠프 하야리아(Camp Hialeah)’로 잘 알려졌던 초읍동 부산경마구락부에는 1937년 중일전쟁 당시 일본군 기마부대가, 태평양전쟁이 발발한 1941년에는 일본군 제72병참경비대가 주둔한 바 있다. 경마를 보는 우리 국민의 정서가 어땠을지 짐작되는 대목이다.

◆한국경마, ‘시행은 하되 장려는 하지 않았던’ 정부

해방 이전까지 남쪽에는 서울 신설동, 군산, 대구, 부산 등 4개 지역에서, 북쪽에는 평양, 신의주, 청진, 함흥, 웅기 등 5개 지역에서 경마가 시행됐다. 그러나 1945년 해방 직전에는 운영난으로 인해 평양과 서울, 부산, 대구 경마장만 남았다.

경마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은 해방 후에도 지속됐다. 이번에는 정부 정책이 문제였다.

일제가 설립한 조선경마구락부라는 명칭은 조선경마협회와 조선마사회를 거쳐 한국마사회로 개칭됐다. 한국마사회가 1954년 뚝섬경마장을 개장하면서 순수한 한국경마가 출발했다. 일제에 의해 형성된 부정적 인식을 해소할 수 있는 시점이었다.

그러나 한국마사회법(법률 제1012호, 1962.1)이 제정되는 등 경마가 본격 궤도로 들어섰지만, 우리 정부는 경마를 ‘필요악(必要惡)’ 정도로 치부했다. 경마의 전통이나 장점에는 눈귀를 닫은 채 그저 세수 확보 수단으로 보고 매출 확대에만 주력하는 ‘시행은 하되, 장려는 하지 않는’ 정책을 폈던 것이다.

사실상 일제 강점기의 연장이었고, 부정적 인식의 방관이었다. 그런 정부 정책 탓에 우리 국민의 경마에 대한 부정적 인식은 더욱 견고해지면서 구조화됐다. 일제에 의해 형성된 경마 이미지에 잘못된 정부 정책이 더해지면서 지금처럼 경마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가 고착화된 셈이다.

특별승마투표권(속명복표) 발매를 알리는 한국마사회 발매광고(1947.09.24)(자료:한국마사회) ⓒ스트레이트뉴스
특별승마투표권(속명복표) 발매를 알리는 한국마사회 발매광고(1947.09.24)(자료:한국마사회) ⓒ스트레이트뉴스

이후 한국마사회는 1988년 7월 경기도 과천시에 77,0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과천경마장(렛츠런파크 서울)을 개장했고, 1990년에는 제주마 보호・육성 및 축산·관광산업 진흥을 위해 제주경마장을, 2005년에는 아시안게임 승마장을 개조한 부산경마장을 개장했다.

2011년에는 세계 최초로 ‘말산업 육성법’이 제정・공포되면서 고부가가치 산업인 말산업의 경쟁력 강화와 국민 삶의 질 향상을 위한 초석이 마련됐다. 전반적으로, 외형적으로는 경마 선진국의 가치를 따라가는 모양새를 밟아온 게 사실이다. 하지만 말산업 진흥에 가장 큰 걸림돌, 즉 경마에 대한 우리 국민의 부정적 인식은 여전히 풀지 못한 숙제로 남아 있다.

현재 남한에서는 경마장 3개소와 장외발매소 30개소가 운영 중이다. 그렇다면 기마민족의 피를 나눈 북한, 사회주의를 표방하는 북한은 경마를 어떤 시각으로 바라볼까? 자본주의의 대표적 레저스포츠인 경마를 시행할까?

◆북한에서 말은 ‘항일투쟁의 상징’

얼핏 생각하기에, 사회주의 국가, 특히 북한과 대중적인 승·경마는 어울리지 않아 보인다. 북한경마에 대해 우리가 아는 사실은, 조선총독부가 세운 평양, 신의주, 청진, 함흥, 웅기 등 5개 지역 경마장 중 평양경마장만 해방 직전까지 운영됐다는 것뿐이었다.

한국전쟁 이후 북한이 대중적인 승・경마를 시행하고 있는지 여부는 알려지지 않았다. 노무현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평양에서 남북정상회담을 가졌던 2007년 10월, 김정일 위원장이 시속 45~60㎞ 속보를 자랑하는 대단한 승마애호가라는 사실이 언론을 통해 밝혀지기도 했지만, 그뿐이었다.

평양시 사동구역 미림지구에 들어선 ‘미림승마구락부’에서 경마가 시행되는 모습(2017.10)(자료:조선중앙통신)
평양시 사동구역 미림지구에 들어선 ‘미림승마구락부’에서 경마가 시행되는 모습(2017.10)(자료:조선중앙통신)

북한이 승・경마를 시행한다는 사실이 세상에 드러난 것은, 2013년 10월 조선인민군 534기마부대 훈련장이었던 평양시 사동구역 미림지구에 ‘미림승마구락부’가 들어서면서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승・경마장을 재건한 목적은 “노동자와 청소년에게 승마 기술을 널리 보급해 대중 승마운동을 활발히 벌리며, 재능 있는 기마수들을 많이 키워서 국제무대에서 북한의 영예를 빛내기 위한 것”이었다(노동신문, 2013.10.26).

미림승마구락부는 일단 규모부터 엄청나다. 렛츠런파크 서울(서울경마공원) 대비 무려 5배나 큰 62만7,000㎡ 면적에 잔디주로와 토사주로, 인공산, 인공연못, 트래킹 코스가 갖춰져 있다. 실내승마장과 마사, 승마학교, 봉사건물(관리동), 병원 등 각종 건물이 4만4,200㎡ 규모 부지에 들어서 있고, 말 보유 두수는 경주마를 포함해 110여 두 수준이다.

2013년 11월 정식 개장한 직후, 6개월 만에 수만 명의 인민이 방문했고, 평양 중심가에서 경마장까지 4㎞ 남짓 되는 거리를 전용 셔틀버스가 운행하고 있다(자유아시아방송, RFA). 2015년 제1기 청소년 승마 강습 졸업생이 배출되는 등 기수 양성 프로그램도 운영 중이다.

2017년 10월에는 해방 이후 처음으로 ‘가을철 승마애호가경기’라는 타이틀을 내건 경마가 시행됐다. 우승 기수에게 시상이 주어졌으며, 마권을 구입하는 ‘경마추첨사업’도 진행됐다. 경마추첨은 선진경마의 초기 단계로 보인다.

평양시 사동구역 미림지구의 ‘미림승마구락부’ 완공식에 참석한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2013.10)(자료:중국신화통신)
평양시 사동구역 미림지구의 ‘미림승마구락부’ 완공식에 참석한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2013.10)(자료:중국신화통신)

지난해 10월,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백마를 타고 백두산에 올랐다(조선중앙통신, 2019.10.16). 김일성 전 주석의 항일투쟁 이미지를 차용했다는 평가다. 아버지인 김정일 위원장도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선물한 ‘매봉(Orlov Trotter종)’을 타고 종종 유사한 퍼포먼스를 펼친 바 있다. 진위 여부를 불문하고, 최소한 북한에서 말은 ‘항일투쟁의 상징’이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항일투쟁의 상징이라는 말의 가치에 승마와 경마를 통한 경제 활성화 및 생활스포츠의 가치를 더하려 하고 있다. 경마는 이처럼 사회주의 국가인 북한까지 대중화 노력을 기울일 만큼 보편적인 세계 스포츠로 자리매김했다.

◆정부, 결자해지 차원에서 ‘부정적 인식’의 책임 떠안아야

일제 강점기, 일본은 군수·병참용 자금 확보를 목적으로 경마를 시작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백범 김구 선생은 독립운동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주말마다 신설동 경마장을 찾았다.

김구 선생의 모친 곽낙원 여사 역시 독립운동자금 마련에 평생을 바쳤다. 여사가 사망하자, 경마 기수들이 여사의 유해를 호송하기도 했다. 칠기 이범석 장군만큼 말과 항일독립투쟁이 긴밀히 연결되는 인물도 드물다. 이처럼 한반도의 역사는 말과 단단히 결속돼 있다.

신설동 경마장을 찾은 백범 김구 선생(자료:한국마사회)
신설동 경마장을 찾은 백범 김구 선생(자료:한국마사회)

그러나 승마와 경마를 포함한 지금의 한국 말산업에서 말이 항일독립투쟁의 상징이라는 사실, 우리가 기마민족의 후예라는 전통은 사라지고 없다. 해외에서는 봉사와 기부, 자선의 가치를 바탕으로 이미 국민레저스포츠로 자리 잡은 지 오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그저 “경마는 도박”이라는 부정적 인식만 가득하다.

몇 년 전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 당시, 대부분의 국민은 ‘말’ 하면 ‘정유라’를 떠올렸다. 어쩌다 부정・불법경마 사건이나 장외발매소 문제, 또는 기수 사망사건이 불거지면, 그 즉시 “그럴 줄 알았다”는 국민적 비아냥부터 앞서고, 건전한 말산업에 종사하는 수많은 사람들은 ‘의문의 1패’를 당하기를 반복해왔다.

“부정적인 이미지가 제일 힘들다. 사실 마사회를 보는 우리 국민의 시선은 경마에 편중돼 있다. 경마는 말산업 중 일부일 뿐이다. ‘경마는 도박’이라는 편견을 바꿔내려고 ‘국민을 향해, 말과 함께’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노력해왔지만, 하루아침에 되겠나. 일제 강점기부터 굳어진 인식인데... 계속 노력할 생각이다.”

우리나라 경마산업을 진두지휘하는 한국마사회 수장 김낙순 회장의 토로다.

이 모든 부정적 인식의 1차적 책임은 조선총독부에 있고, 2차적 책임은 경마를 세수 확보 수단으로만 보고 ‘시행은 하되, 장려는 하지 않았던’ 정부에 있다. 이제 결자해지(結者解之)가 필요한 때다. 조선총독부는 물러가고 없으니, 말산업 부흥과 승마 및 경마 저변 확대에 이은 대중화를 위해 정부가 “제2의 말산업 육성법을 제정한다”는 각오로 모든 책임을 떠안아야 한다.

후속기사에서는 한국마사회 경마산업의 입장객수와 매출액 변동 추이는 어떤지, 한해 동안 벌어들인 경마 수입을 어디에 쓰는지, 어떤 사회공헌에 임하는지 등 한국 경마산업의 현주소를 살펴본다.
bizlink@straightnew.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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