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론에 대한 여론조사인가, 여론을 위한 여론조사인가?

수의 정치(arithmetic politics) 프레임에 갇힌 정치

현재 한국 정치는 여론조사 프레임에 갇혀 수의 정치에 몰입되어 있는 모습이다. 여야를 불문하고 모든 정당과 총선에 출마하는 후보자들은 여론에 목매있는 상황이다. 정당들은 여론조사의 지지율에 따라 전략을 수정하고 상대 당에 대한 대응의 수위를 조절한다. 대선 주자들도 여론조사 결과 순위에 울고 웃고 하면서 대세론을 펴기도 한다.

또한 총선 시기를 맞이하여 각 정당은 경선 룰에 여론조사 결과를 중요한 평가 기준으로 채택했다. 총선 출마자들은 여론조사에 대비하여 자신의 이름을 알리기 위해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처럼 정치가 여론조사에 의존하는 경향이 강해지면서 몇몇 여론조사 기관이 시행하는 여론조사가 정당과 정치인들의 생명을 좌지우지하는 형국이 되어가고 있다. 여론조사가 만들어가는 ‘수의 정치(arithmetic politics)’라는 프레임이 정당, 정책, 후보자들을 경마식 순위 결정으로 서열화시키고 선택과 배제의 메커니즘을 작동시키면서 정치를 이끌어가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경마식 경쟁을 유도하는 이러한 산술적 정치 프레임은 정치적 혼란과 대립, 내분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얼마 전 새누리당을 혼란에 빠뜨렸던 경선 여론조사 누출사건은 대표적인 사례라 할 수 있다. 최근 선관위는 결과가 의심되는 여론조사 44건에 대한 전담팀을 구성해 특별조사에 들어갔다. 선관위는 지난 3월 26일 정당관계자와 주요 여론조사업체 대표들을 대상으로 특별 대책회의를 개최해 ‘특정 후보자를 부각시키는 질문지 작성’ ‘예비후보자 등록 시 제출한 경력 이외의 경력 사용’ ‘추가 가중값 부여 시 조사결과의 왜곡’ ‘표본의 대표성 미확보’ ‘공표·보도 전 여론조사결과의 미등록’ 등을 위반사례 규정하고 단속하겠다는 방침을 제시했다.

그렇다면 선관위가 제시한 이같은 기준을 준수하면 여론조사가 정치 현실을 그대로 반영할 수 있을까? 이 부분에 의문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 여론조사가 가지고 있는 본질적이고 구조적인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데이터는 말하지 않는다. 해석하고 결정하는 것은 모두 사람의 몫이다.”

여론조사가 작금의 정치 현실을 설명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여론조사는 다양한 정치 현실과 정치 행위를 산술적으로 재현(representation)하는 행위이다. 여론조사 기관들은 인구사회학적 문항, 인물 혹은 주요 정책에 대한 인지 및 지지 여부를 묻는 질문 등을 포함해서 10개 내외의 문항으로 설문을 구성한다. 그리고 유·무선을 이용하여 RDD 방식으로 설문을 진행한다. 성, 연령, 지역 할당 후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데이터베이스나 패널에서 무작위로 표본을 추출한다. 이때 조사대상 전수(全數)의 현황을 고려하여 성별, 연령별, 지역별 가중값을 부여하여 조사 결과를 %로 산출한다.

최근에는 휴대전화 안심번호를 도입하여 경선 여론 조사에 적용코자 하고 있다. 불공정 시비를 차단하기 위해 ‘특정일자 이후 착신전환 배제’ ‘한 사람이 여러 대의 전화를 착신전환 한 경우 1번호만 추출’ ‘1인 다회선인 경우 최초 가입 휴대전화만 추출’ ‘주소 변경의 경우 특정일자 기준으로 대상자 선정’ 등의 기준을 마련하여 당내경선을 진행하고자 하고 있다.

이와 같은 여론조사의 재현 시스템은 기계적이고 통계학적인 합리성을 갖추고 있으며, 그 결과 역시 통계학적 사실을 결과로 도출한다. 그러나 여기서 숙고해 봐야 할 것은 과연 통계학적으로 생산한 사실과 현실의 정치적 실재와 동일한가 하는 문제다.

먼저, 다양한 사회 문화적 요소가 작용하고 개입하는 정치 현실과 그것을 퍼센트로 환원한 산술적 실재와의 사이에는 커다란 간극이 있다는 점이다. 개념 중심과 5점 척도 중심의 설문 문항이 정치 현실과 응답자의 복잡한 사유구조를 담아내기에는 한계가 있다. 응답자들의 인식은 끊임없이 유동하며, 한 점에 고정되지 않는다.

여론조사 결과는 응답자들의 인식이 흐르는 가운데 한 시점의 결과를 가장 단순하게 산술적으로 재현한 결과다. 따라서 이 결과는 지속성과 보편타당성이 결여될 수밖에 없다. 또한 재현된 실재(reality represented)와 재현한 실재(reality representing)사이에는 시간적으로 그리고 공간적으로 커다란 간극이 있어서 응답자의 진정한 인식이 변조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즉, 해석자의 정치적, 사적 이익이 개입되어 왜곡될 개연성이 매우 높다는 점이다. 해석자는 이 간극사이에 개입하면서 커다란 권력을 행사하게 된다.

둘째, 조사 방식에서의 문제점을 들 수 있다. 갤럽은 1936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루스벨트 대통령의 재선을 정확하게 맞힘으로써 여론조사의 부흥기를 이끌기 시작했다. 당시 '리터러리 다이제스트(The Literary Digest)'지(誌)가 1000만 명에게 엽서를 보내 3개월간 237만 명의 응답지를 집계하여 공화당의 앨프리드 랜던 후보가 이긴다고 예측했다. 반면 갤럽은 불과 5000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의 승리를 장담했다. 갤럽의 예측 비결은 연령과 계층을 대표하는 표본 인구 조사의 노하우였다.

현재 여론조사도 이 방식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고 있다. 20세기 초반에 이용했던 방식이 과연 지금도 통용될 수 있을까? 특히 디지털 융합 미디어 환경에서 현재 대부분의 조사는 온라인을 이용한 간접 조사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당시 갤럽이 명확한 표본을 설계하여 면대면 조사를 한 반면에 오늘날에는 익명을 상대로 온라인 조사를 함으로써 샘플의 불명확성, 응답자의 거짓진술, 역 선택 과 같은 왜곡을 통제하기가 불가능하다.

데이터는 어떠한 답변도 내놓지 않는다. 데이터는 기계적이고 통계적 사실만을 단순한 수치로 나타낼 뿐이다. 이 결과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고, 가치를 매기느냐는 사람의 몫이다. 1천명 대상으로 한 여론 조사에서의 1%의 차는 실재 십 여 명의 차이일 뿐이다. 그럼에도 이 결과를 3천 700만의 유권자 인식으로 귀납시키는 해석 방식에는 중대한 오류와 음모가 개입될 수 있다.

요즘 많은 여론조사 기관과 언론들이 지속적으로 여론조사를 공표하고 있다. 유권자들은 정치 현실이나 후보자들에 대하여 충분한 정보를 수용하지 못한 상태에서 여론조사가 강요하고 있는 이름과 개념에 대하여 판단해야하는 상황으로 몰리고 있다.

월터 리프만(Walter Lippmanne)은 시민들이 스테레오타입(stereotype)화된 사고 속에서 사회나 외부세계를 판단하고, 여론조사는 이러한 스테레오타입을 생산하는 공장이라고 묘사하였다. 리프만의 주장처럼 현재의 여론조사가 시민들에게 산술적 정치 프레임 속에서 자신들이 제시하고 있는 개념과 이름을 강요하고 스테레오타입화시키고 있지 않은지 돌아보아야 할 것이다.

최근, 짐 클리프턴(Clifton ·64) 갤럽 회장은 국내의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여론조사의 한계에 대하여 아래와 같이 솔직한 심정을 털어놓았다.

"솔직히 말하자면 여론조사를 통해 어떤 결과 자체를 예측하는 것이 점점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랜덤(무작위)으로 조사 대상자를 정한 후 조사를 진행합니다. 과거에는 조사 대상자의 집으로 전화를 걸었습니다. 갤럽이라고 말하면서 인터뷰를 요청하면 사람들은 굉장히 협조적이었습니다. 하지만 모바일 기반의 조사가 시작되면서 상황이 달라졌습니다.

휴대폰으로 걸려온 여론조사 전화에 사람들은 매우 비협조적입니다. 여론조사 담당자들이 휴대폰으로 전화를 걸면 60~80%의 사람들이 조사에 응하지 않고 전화를 끊어버립니다. 여론조사 대상자가 협조적이지 않다는 것은 여론조사 결과가 수학적으로 정확하지 않다는 뜻입니다. 매우 신경 써서 표본을 선정했지만 응답률이 낮다면 표본이 가지는 의미가 줄어듭니다"

이러한 문제의식 없이 무차별적으로 진행되는 우리사회의 여론조사는 과연 여론에 대한 여론조사인지, 여론을 위한 여론조사인지가 의심스럽다. 그 상황에서 여론조사 기관이라는 또 다른 왜곡된 권력의 출현을 걱정스런 시선으로 보게 된다.

 

박태순
파리1대학 정치학 박사
성균관대학 초빙교수
미디어로드 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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