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과 10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몽상가적 제안으로 여겨지던 ‘기본소득’이 주목받고 있다. 기본소득이란 “모든 사회구성원의 ‘적절한 삶’을 보장하기 위해 정치공동체가 모든 구성원에게 개별적으로 아무런 조건 없이 정기적으로 지급하는” 정책을 말한다.

즉 기본소득은 보편성, 무조건성, 정기성이라는 세 가지 속성을 지닌다. 이를 통해 시민권에 기초해 모든 시민에서 지급된다는 점에서 낙인이나 의존성의 문제를 극복하며, 기존 사회부조의 ‘사각지대’ 문제를 해결할 수 있으며, 충분하고 정기적인 급여 제공을 통해 절대적 빈곤층의 규모를 감소시켜 공정하고 평등한 사회를 구축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강남훈(앞줄 가운데) 기본소득한국네트워크 이사장이 지난해 8월 서울 종로구 광화문 이순신동상 앞에서 열린 기본소득 개헌운동 출발 기자회견에서 기본소득 개헌을 촉구하는 발언을 하고 있다. / 뉴시스
강남훈(앞줄 가운데) 기본소득한국네트워크 이사장이 지난해 8월 서울 종로구 광화문 이순신동상 앞에서 열린 기본소득 개헌운동 출발 기자회견에서 기본소득 개헌을 촉구하는 발언을 하고 있다. / 뉴시스

<기본소득이 온다>는 기본소득의 기본 개념과 논의의 세계적 흐름, 그리고 한국 현실에 근거한 한국형 기본소득 실현의 로드맵까지 제시한다. 현재 한국에서 시행 중인 국민연금, 의료보험 등 사회보장 정책을 실증분석하고, 기본소득으로 ‘이행’할 수 있는 현실적인 방안을 모색한다. 

저자들이 제안하는 기본소득 ‘안’은 중위소득(2017년 기준)의 30%에 해당하는 약 50만 원의 현금을 매달 아무 조건 없이 모든 시민에게 지급하는 것이다. 언뜻 파격적이고 또 급진적으로 보이는 주장이다.

하지만 단순히 그러한 주장에 머물지 않고 사회적인 논의로 확장시킬 수 있는 풍부한 근거 자료와 논점들을 제시한다. 이를 통해 기본소득에 대한 의구심들인 ‘그만한 재원을 마련할 방법은 무엇인가?’, ‘노동에 대한 유인이 줄어들지 않을까?’, ‘기존 사회보장제도와 어떻게 조화시킬 것인가?’와 같은 질문들에 대한 답을 제시한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한국의 사회보장제도와 시스템 전반을 고려한 복지국가 설계도를 제시’했다는 점이다. 실제 한국에서 기본소득을 시행할 수 있는지, 시행한다면 어떤 전략과 과정을 통해야 하는지를 이해할 수 있다.
이 책은 사회부조, 사회보험, 사회수당, 사회서비스라는 한국 사회보장제도의 분류틀과 현재 시행되고 있는 정책의 구체적인 내용을 면밀히 검토하고 있다. 

2016~2017년은 기본소득 논의의 중요한 분기점이었다. 2016년에는 스위스에서 기본소득 실현에 관해 국민투표를 실시했고, 이탈리아의 리보르노시 정부가 기본소득 실험을 시작했다.

지난해에는 핀란드에서 1월부터 실업수당을 받는 25~58세 국민 중 2000명을 무작위로 선발해 2년 동안 월 560유로(약 70만 원)을 기본소득으로 지급하는 기본소득 시범사업을 시작했다.

이 외에도 네덜란드, 캐나다, 스코틀랜드 등이 시범사업을 통해 기본소득제도를 실험하며 기본소득은 전 세계적 이슈로 떠올랐다.

한국도 이런 세계적인 흐름에서 예외가 아니었다. 기본소득의 기본 개념을 일부 공유하는 청년배당 등의 정책이 일부 지자체에서 시행되었고, 2017년 대통령 선거에서도 기본소득을 공약으로 제시하고 논쟁하는 과정이 있었다. 

이처럼 기본소득이 실제 정책을 구상하는 수준으로 논의되기 시작한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현대적인 의미의 ‘기본소득’ 개념은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하더라도 현실 세계와 동떨어진 몽상가적 제안으로 취급됐다.

한국에서는 2007년 대선에서 사회당의 금민 후보가 기본소득을 공약으로 제시했지만, 군소 정당의 급진적 주장으로 여겨진 정도였다. 하지만 2010년을 전후해 기본소득에 대한 학술적 논의가 활성화되기 시작했다.

서울시의 청년수당, 성남시의 청년배당처럼 기본소득의 속성 일부를 공유하는 정책들이 시행되며 정책 입안자들 및 대중의 관심 역시 확산됐다. 미래 복지국가의 새로운 패러다임으로서 기본소득이 ‘진지하게’ 논의되기 시작한 것이다.

「기본소득이 온다」 김교성 外 지음(사회평론아카데미)
「기본소득이 온다」 김교성 外 지음(사회평론아카데미)

몽상 수준의 이야기로 치부되던 기본소득이 최근 진지하게 논의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가장 핵심적인 변화는 ‘노동’의 변화다. 4차 산업혁명을 주제로 열린 세계경제포럼에서 발표된 '일자리의 미래' 보고서는 로봇이 사람들의 일자리를 대신함으로써 2020년까지 200만 개의 일자리가 새로 만들어지겠지만, 710만 개의 일자리가 사라짐으로써 ‘노동 없는 미래’가 펼쳐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 보고서는 사무행정 직업군에서 가장 많은 480만 개의 일자리가 사라지는 것을 비롯해 제조업, 건설, 예술, 디자인, 스포츠, 법률 직업군에서 일자리가 감소할 것으로 전망했다. 

불안정 노동의 증가, 즉 노동의 형태 변화 역시 기본소득이 주목받게 된 이유의 하나다. 불안정 노동은 1970년대 이후 서비스경제로의 전환으로 표준적 고용관계가 해체되며 지속적으로 증가해 왔다.

불안정 노동은 이미 한국에서도 일상화된 개념이며, 특히 청년과 노인, 여성들의 불안정 노동 비율이 높아 사회적인 문제로 여겨지고 있다.

임금노동자 중 29세 이하 청년들의 비정규직 비율은 보수적인 통계치를 제시하는 통계청 발표에 근거해도 2010년 33.6%에서 2015년 35%로 증가 추세에 있으며, 노인의 경우는 2014년 8월 기준 60세 이상의 임금근로자가 170만 명 중 약 68%에 해당하는 120만 명이 비정규직에 종사하고 있다.

여성의 경우는 더욱 심각한데, 청년이든 노인이든 여성청년, 여성노인이 더욱 불안정한 노동시장에서 일하고 있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불안정 노동에 관련돼 있고, 이런 사회의 변화는 우리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일자리의 변화와 표준적 고용관계의 해체, 그로 인한 불안정 노동의 일상화와 같은 변화의 핵심은 자본주의가 질적으로 변화하고 있다는 점에 있다.

전통적 산업자본주의에서는 상품화된 노동력에 의해서 가치가 창출되었다. 그러나 지금과 같은 인지자본주의의 단계에서는 지식과 정보에 의해서 가치가 창출된다.

전통적 산업사회에서 만들어진 사회보험 중심의 복지체제는 노동을 전제한 재분배 시스템이나, 인지자본주의에서 노동시장은 전통적 사회보험 시스템에 포괄되지 못하는 광범위한 사각지대를 만들어 내고 있다. 특히 인지자본주의에서 기업들이 지식과 정보로 축적한 부를 지금의 시스템에선 사람들에게 분배하기가 어렵다. 

문제는 현재의 노동중심적인 사회보장 시스템이다. 국가마다 차이가 있기는 하나, 근대 복지국가는 상대적으로 안정된 노동시장 구조와 인구·가족 구조를 기반으로 복지의 황금기를 구가할 수 있었다.

국가는 다양한 사회적 위험에 대해 연대적 처방을 제공하면서 사회적 평등을 추구하였다. 그러나 경제·사회적 기반의 균열과 함께 성장 동력이 떨어지고, 노동 중심의 국가의 재분배 기능도 축소되면서 사회보장 시스템 역시 변화를 요구받고 있다. 

저자들은 기본소득을 “노동중심에서 권리중심으로 재분배 시스템을 수정함으로써 인간의 진정한 탈상품화를 가능하게 하는 복지국가 혁명”이라 말한다.

기본소득은 달라진 자본주의의 변화에 맞추어 새로운 분배/재분배 구조의 확립과 단계적 확산을 통해 ‘평등한 사회’를 실현하기 위한 장기적 기획인 것이다. 노동 없는 시대는 생각보다 아주 가까이 다가왔고, 기본소득은 지금의 시스템을 대체할 유력한 대안으로 논의될 수 있다. 

저자들이 제시하는 기본소득 중심의 사회보장 시스템은 기존의 사회보험이나 사회서비스를 기본소득으로 모두 대체하는 사회보장 개혁안이 아니다. 따라서 사회보험과 사회부조, 사회서비스와 기본소득 간의 관계 속에서 형성될 ‘복지국가 한국’을 설계해나갈 필요가 있다. 

이 책에서 제시하는 한국형 기본소득 모형은 크게 다음과 같다.

먼저 현금형 사회부조 방식의 급여는 기본소득으로 대체된다. 연금과 실업급여의 내용은 일부 조정되며, 교육이나 보육, 의료, 직업훈련과 같은 사회서비스는 기본소득으로 대체되지 않고 오히려 적극적으로 확충된다.

기존의 사회보장제도에 존재하는 급여들이 기본소득으로 대체된다고 하면 걱정이 될 수 있다. 하지만 기본소득 도입 시 수급자가 받게 될 금액을 비교해 보면 차이가 난다.

예를 들어 현금형 사회부조인 생계급여와 기본소득을 비교해 보면, 2017년 기준으로 생계급여는 4인 가구가 134만214원을 받게 되지만, 이 책에서 주장하는 한국형 기본소득 모형에 의하면 200만원을 받게 된다. 모든 개인과 가구에게 현재 지급되는 급여보다 높은 수준의 급여제공이 보장된다면, 이런 생계급여는 폐지하는 것이 합리적인 선택이다. 

기본소득 중심의 사회보장 시스템은 단순히 현재 가용 예산을 1/n으로 나누어 시민들에게 얼마씩의 기본소득을 배분하자는 논의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이 책에서 제시하는 한국형 기본소득 제안은 기본소득의 실제 실행 단계를 구성하고, 그 경로를 혁명형, 개혁형, 온건형으로 나눠 기본소득의 실현 단계를 구분한다.

아울러 재원 문제 등의 현실을 고려하여 온건형을 독자들에게 제시한다. 재원은 물론이고 제도나 일반대중들의 심리적 거부감 등까지 고려해 기본소득의 실현가능성을 살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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