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세기에 나타난 자본주의로 인해 사람들의 생활은 풍요로워졌다. 그러나 자본가들의 무한 이윤획득에 의해 세계 경제는 불균등하고 불공정해지고 있다. 정치적으로도 강대국의 힘이 거세지면서 각종 모순적 요소가 심화되고 있는 형국이다. 이러한 문제의 원인을 알기 위해선 현대 경제의 중요한 쟁점들이 무엇인지 이해하고, 그 쟁점들의 핵심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경제학의 세계에서 벌어지는 모든 현상과 논쟁을 우리가 알아야 할까? 몰라도 무방한 것들이 있지만, 반드시 알아야 할 것들이 있다. 경제학 논쟁이 경제 정책으로 이어지고, 그 정책은 보통 누군가에게는 유리하고 누군가에게는 불리할 뿐 아니라 나라의 운명과도 연결되기 때문이다. 스트레이트뉴스는 오늘날 우리 사회에 뜨거운 쟁점으로 떠오른 경제의 주요 요소들을 비판적으로 바라볼 수 있도록 본지 선임기자 현재욱의 저작인 「보이지 않는 경제학」을 연재한다. [편집자 주]

석유값과 달러

2014년 이후 석유값이 배럴당 110달러 선에서 50달러 대로 추락한 이유는, 기름이 남아도는데도 사우디아라비아가 계속 원유를 뽑아올리기 때문이다. 미국의 셰일가스shale gas도 기름값 하락을 부추겼다.
셰일가스는 세계 에너지시장을 뒤흔들고 있다. 

러시아를 예로 들어보자. 러시아는 석유와 가스가 수출의 60퍼센트를 차지한다.22 한마디로 기름을 팔아 먹고사는 나라다. 이렇게 석유 의존도가 높은데, 요즘처럼 저유가가 장기화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수출액이 확 떨어진다. 수출액이 줄면 판매대금으로 받는 달러가 줄고, 달러가 줄면 환율이 올라간다.

환율이 오르기 시작하면, 다시 말해 루블화의 가치가 떨어지기 시작하면 사람들은 너도나도 루블화를 팔아치우고 달러를 사재기한다. 결국 달러 가치는 더 올라가고 루블화 가치는 더 떨어진다. [도표 5]와 [도표 6]이 현재 러시아가처한 상황을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유가가 반 토막 나자 2013년 달러당 30루블이었던 환율은 2016년 1월에 80루블 선을 뚫고 최고점을 기록했다. 2017년 하반기에 접어들면서 60루블로 가라앉긴 했지만 고통스럽기는 마찬가지다. 긴 병에 효자 없다는 한국 속담을 푸틴은 알까?

환율이 폭등한다는 것은 러시아에서 달러 가치가 폭등하고 루블화 가치가 폭락한다는 뜻이다. 2014년 12월 16일, 러시아 중앙은행은 루블화를 방어하고 외화가 빠져나가는 것을 막기 위해 기준금리를 10.5퍼센트에서 17퍼센트로 무려 6.5퍼센트포인트나 올리는 특단의 조치를 단행했다.

그럼에도 루블화 환율은 잠시 떨어졌다가 다시 꾸역꾸역 고개를 쳐들고 있다. 정부가 시장을 이기기란 연어가 폭포를 거스르는 것 이상으로 지난한 일이다.

유가 폭락은 사우디아라비아와 미국이 짜고 치는 고스톱이란 이야기가 있다. 크림반도를 병합하고 우크라이나 사태를 일으킨 러시아를 응징하려는 미국의 속셈이 숨어있단 뜻이다. 시리아의 시아파 정부를 지원하는 러시아의 돈줄을 말릴 수 있으니, 사우디아라비아와도 이해가 맞아 떨어진다. 러시아의 곤두박질은 시장 논리에 정치 논리가 더해짐으로써 빚어진 특이한 현상이라고 볼 수 있다.

이처럼 환율은 그 나라의 경제 사정을, 때로는 정치·사회적 상황을 짐작케 해주는 유용하고도 객관적인 지표다. 이런 자료를 ‘시장지표’라고 한다. 지표指標, 손가락으로 가리켜서 알려준다는 뜻이다.

유가 하락과 함께 세계 경제가 장기 침체에 빠지면서 러시아, 브라질, 인도네시아 등 자원 수출로 먹고사는 신흥국들이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하나같이 고환율의 몸살을 앓는다. 특히 수출의 90퍼센트 이상을 석유에 의존하는 베네수엘라는 최악의 경제난에 빠졌다. 연 720퍼센트에 달하는 인플레이션으로, 돈을 세지 않고 무게를 재서거래할 정도다. 위조지폐를 만드는 범죄조직도 자국 화폐는 위조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런데 이 대목에서 한 가지 의문이 떠오른다. 왜 저 나라들은 모두 미국 돈에 목을 매고 있는 걸까? 유로화도 있고 영국 파운드화도 있고 일본 엔화, 중국 위안화, 인도 루피화, 스위스 프랑화, 멕시코 페소화 등 하고많은 돈 중에 하필이면 왜 ‘달러 대비 환율’로 자신들의 가치를 평가받아야 할까? 그 이유는 딱 하나, 달러가 세계의 기축통화이기 때문이다.

신흥국들은 자원을 팔아서 번 달러로 공산품과 식량을 수입한다. ‘21세기형 사회주의’를 표방하면서 미국에 반기를 든 베네수엘라도달러 없이는 먹고살 수 없다. 한국은 신흥국 시장에 공산품을 수출한다. 신흥국의 경제가 어려워지면 한국의 수출도 위축된다. 이렇게 세계 경제는 사방팔방으로 엮여 있다. 어딘가에서 문제가 생기면 줄줄이 영향을 받는다. <계속>

※ 이 연재는 스트레이트뉴스가 저자(현재욱)와 출판사(인물과사상사)의 동의로 게재한 글입니다. 무단 도용을 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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