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7주년특집 힐링코리아365] 이제학 힐링산업협회장, “힐링은 미래 먹거리”
[창간7주년특집 힐링코리아365] 이제학 힐링산업협회장, “힐링은 미래 먹거리”
  • 김태현 선임기자 (bizlink@hanmail.net)
  • 승인 2019.0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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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궁기 쌀 꾸러 다니며 ‘굶식’을 밥 먹듯 한 담양의 소작농 아들
인구분산정책에 상경 후 집안 형들과 자취하며 실업고 진학
서강대 3년 때 총학생회장 당선 직후 수배령으로 도피생활 시작
학생대표로 명동성당 연설 후 신부 차량 트렁크에 실려 빠져나와
20년 인연 손학규 대표 향한 일부 의원의 모욕, 참담하고 안타까워
사회적 힐링의 시대, 국내 붐업과 케이힐링(K-Healing)으로 도약할 때
힐링산업협회와 평창군의 제1호 ‘평창치유센터’ 탄생 머지않아

[스트레이트뉴스=김태현 선임기자] “서강대 총학생회장 할 때, 민주화 연대운동을 하면서 이화여대 김수영 총학생회장을 만났습니다. 그냥저냥 지내다가 4학년 때 두 사람 모두 수배상태가 됐는데, 그때 비밀 아지트에서 회의하고 세미나하면서 ‘저 여자가 날 엄청 좋아하네?’ 이런 생각이 들었죠. 나중에 인천으로 노동운동 갔다가 제가 사랑을 받아줬습니다. 연대운동이 연애사업이 된 거죠.”

현재 서울 양천구청장으로 재직 중인 아내 김수영의 사랑을 받아줬다는 얘기다. 착각도 이런 착각이 없다. 김수영 구청장의 생각은 전혀 달라서다. “그거 아닌데? 남편이 절 너무 사랑하는 거 같아서 저러다가 상사병이라도 걸리면 불쌍하다, 남자 뭐 별거 있나 싶어서 결혼해 준건데요?”

지인들은 두 사람의 결혼을 ‘착각 속에 이루어진 사랑’이라고 했다. 아내가 알면 놀라 자빠질 일이지만, 사실 청년 이제학이 처녀 김수영과 학생운동을 연대할 때, 그의 심중에는 ‘첫사랑 그녀’가 자리 잡고 있었다.

힐링(healing)이 필요한 시대, 스트레이트뉴스는 ‘힐링코리아 365’ 릴레이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농림축산식품부 이개호 장관과 세계 생화학 분야 석학 천병수 박사, 이찬열 국회 교육위원장, 김재현 산림청장, 한국문인협회 이광복 이사장 등으로부터 우리 사회가 나아가야 할 치유의 방향에 대해 들어왔다.

이번 달에는 창간7주년 특집으로 이시형 박사, 고도원 작가 등 한국 힐링을 대표하는 ‘힐링 구루’들과 (사)힐링산업협회 이제학 회장을 만나 그들이 보낸 시간과 꿈, 그리고 영혼의 궤적을 함께하는 시간을 마련했다.

이제학 (사)힐링산업협회장과 아내 김수영 양천구청장이 용왕산 용왕정에서 열린 ‘무술년 해맞이 행사’에서 ‘양천의 청년시대를 열자’는 메시지를 작성에 소망나무에 매달고 있다.(2019.01.01)(자료:힐링산업협회) ⓒ스트레이트뉴스
이제학 (사)힐링산업협회장과 아내 김수영 양천구청장이 용왕산 용왕정에서 열린 ‘무술년 해맞이 행사’에서 ‘양천의 청년시대를 열자’는 메시지를 작성에 소망나무에 매달고 있다.(2019.01.01)(자료:힐링산업협회) ⓒ스트레이트뉴스

_어릴 때 흔히 하는 말로 ‘사흘에 풀죽도 못 먹을 만큼’ 가난했다고 들었다.

“말도 마라. 어떤 집은 6남 6녀, 한 타스 집안도 있었지만, 우리 집은 5남 2녀밖에 안 됐는데도 소작농 집안이라 찢어지게 가난했다. 소 먹이러 가고, 소꼴 베어다가 여물 쒀서 먹이고, 고향이 담양인데 바구니 만들어서 5일장에 내다 팔고. 그래도 춘궁기를 못 버텨서 온 식구가 쌀 꾸러 다녀야 했다. 실컷 농사 지어봐야 지주가 심할 때는 반까지 떼어가 버리는 통에. 너무 가난해서 형님들이 모두 초등학교만 졸업하고 직업전선으로 나갈 정도였다.”

_서울은 언제 올라왔나?

“부모님이 고흥 간척지로 일하러 가시는 바람에 중학교 졸업하고 바로 올라왔다. 그때 가족이 모두 뿔뿔이 흩어졌다.”

_가난했다면 공부하기도 어려웠을 것 같은데.

“5남 중에 막내고 형들이 엄호해주고 해서 좀 시망스럽게 컸다. 문제아까지는 아니지만, 애들 막 때리고 다니는 ‘똘망한 개구쟁이’였다. 중3 때 철이 들어서 공부 좀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_일반고가 아닌 국제실업고등학교(전수학교)로 진학했다. 성적 때문이었나?

“아니다. 형님들과 사촌형님이 서울 양평동에서 자취를 하고 있었는데, 부모님과 헤어지고 거기로 갔다. 당시 인구분산정책이라는 게 있어서 부모가 서울로 올라오지 않으면 인문계 진학 자체를 할 수가 없었다. 고등학교 때는 정말 열심히 공부했다. 거의 빼놓지 않고 전교 1등을 도맡아 했으니까.”

_이제 세상 모든 아내가 찜찜해 하는 결혼 전 연애 스토리로 들어가 보자. 부부싸움 붙이는 건 아닌지 모르겠지만, 솔직하게 터놓자. 상대가 누구였나?

“아, 이거 집에서 쫓겨나는 거 아닌지 모르겠다.(웃음) 자취집 옆집에 동갑내기 여자애가 살고 있었다. 사근사근하고 이 세상 사람 같지 않은 외모에, 그렇게 예쁘더라. 첫눈에 반했다. 사귄 지 한 달쯤 됐을 때, 여학생 어머니가 고향이 어딘지 물으셨다. 죽세공마을 담양이라고 했더니, ‘전라도네? 근데 전라도 사람이 착하네?’ 그러셨다. 그게 태어나서 처음으로 들은 지역감정 발언,”

_잠깐만, 옆길로 새지 말고 연애 스토리에 집중하자. 그래서 어떻게 됐나?

“아이고... 뭐, 그래서 둘이 함께 교회에 다녔다. 얼마나 설레던지. 그랬는데 1년쯤 후에 그 여학생이 이사를 가버렸다. 그때 왜 쫓아가지 않았는지 모르겠다. 거의 몇 날 며칠을 밥도 못 먹고 찔찔거리면서 노래 부르고, ‘이사 가던 날, 뒷집아이 돌이는, 각시 되어 놀던 나와, 헤어지기 싫어서’ 그 노래. 그걸로 뭐, 손도 한번 못 잡아보고 그걸로 끝이었다.”

_1년을 사귀었는데 손도 한번 못 잡아봤다? 그건 좀... 아무튼 그즈음에 실업계 학생이 대학 들어가기가 정말 어려웠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용케 명문인 서강대로 진학했다. 특별 과외라도 받았나?

“돈은 먹고 죽으려고 해도 없었으니(웃음) 과외는 생각도 못했고, 고2 때 운명의 교생실습 선생님을 만났다. 그분이 대학 갈 생각이냐고 물으시길래, 육군사관학교 갈 거라고 했다. 돌아온 답이 ‘인문계 학생들은 매일 국영수 하는데, 일주일 중에 절반을 실습을 하고 있으니, 여기서는 아무리 해도 대학 못 간다’였다.”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①소녀와 1년 동안 사귀면서도 손 한번 못 잡아봤다는 고교 시절, ②서강대 총학생회장 시절, ③외아들 원영, 아내 김수영과 함께한 신혼 시절, ④20년 인연 손학규 대표와의 한때(자료:힐링산업협회) ⓒ스트레이트뉴스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①소녀와 1년 동안 사귀면서도 손 한번 못 잡아봤다는 고교 시절, ②서강대 총학생회장 시절, ③외아들 원영, 아내 김수영과 함께한 신혼 시절, ④20년 인연 손학규 대표와의 한때(자료:힐링산업협회) ⓒ스트레이트뉴스

_집안의 기대주였으니 대학은 꼭 가야 하고, 어떻게 했나?

“일주일을 심각하게 고민하다가 결국 자퇴원서를 내버렸다.(이후 양천구청장이 되고 현 광영고등학교의 명예졸업장을 받았다) 자퇴한 후에 1년 동안 검정고시 마치고 육군사관학교 시험을 봤다. 떨어졌다. 다시 1년 동안 독하게 마음먹고 정신이 나태해진다 싶으면 혈서까지 써가면서 재수했다. 1차 합격, 2차 신체검사도 합격했는데, 3차 면접에서 떨어졌다. 가서 엄청나게 항의했지만, 지금까지도 떨어진 이유를 모른다. 아마도 연좌제 때문이었을 거다. 외삼촌께서 좌익 활동을 하셨는데, 그것이 걸렸던 것 같다. 그날로 바로 서강대에 원서를 접수했다.”

_대학생활은 어땠나?

“80년 초는 5・18 광주민주화운동부터 정말 엄중한 시대 아니었나. 대자보와 독일인이 찍은 영상, 일본 영상 같은 걸 보면서 울분이 터져 나왔다. 집안의 모든 기대를 걸머지고 있어서 고민을 많이 했지만, 안 할 수가 없었다. ‘전두환 군부독재 타도’를 외치면서 시위현장으로 들어갔다. 3학년 때 보니 맨 앞에 서 있더라. 총학생회장이 되는 순간, 바로 수배가 떨어졌다. 그때부터 도피생활이었다.”

_참 많은 사람들이 잡혀가던 시절이다.

“그런데 저는 노태우 전 대통령이 6・29선언을 하고 수배가 풀릴 때까지, 끝까지 잡히지 않았다. ‘도바리원칙’이라고, 도망치는 원칙이 있었다. 버스를 타면 반드시 사각지대인 운전석 맞은편 두 번째 자리에 앉고, 흔적을 남기지 않고, 만나기로 한 사람이 늦으면 정확히 30분 기다리다가 아예 보따리 싸서 도망치고, 도수 없는 안경 쓰고 그런 것들이다. 나중에 들으니 도망친 직후에 경찰이 들이닥치고 그랬다더라.”

박종철 고문치사사건 당시 명동성당에서 성명을 발표하는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 김승훈 신부. 이 사건은 1987년 6월 9일 이한열 열사 사망으로 이어지면서 6월 민주항쟁의 도화선이 됐다.(자료: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6월 민주항쟁 30주년 기념영상 화면 갈무리)
박종철 고문치사사건 당시 명동성당에서 성명을 발표하는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 김승훈 신부. 이 사건은 1987년 6월 9일 이한열 열사 사망으로 이어지면서 6월 민주항쟁의 도화선이 됐다.(자료: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6월 민주항쟁 30주년 기념영상 화면 갈무리)

_박종철 고문치사사건 때 명동성당에서 학생대표로 연설하지 않았나. 노출된 장소라 빠져나오기가 거의 불가능했을 텐데.

“주요대학 총학생회장들이 다 잡혀갔다. 하지만 저는 정말 운이 좋았다. 당시 전대협추진위원장이었고, 저한테 걸린 포상이 현상금 800만 원에 1계급 특진이었는데, 명동성당에서 연설하던 날 김현희 KAL기 폭파사건이 터지는 바람에 우리 사건은 관심에서 멀어졌다. 그날 명동성당으로 출동한 경력이 5개 팀이었지만, 성당 캐비넷에 숨어 있다가 경찰들이 우왕좌왕하는 틈에 신부님 차 트렁크에 실려 빠져나왔다.”

_역사서 <사기>의 저자 사마천은 “좋은 정치는 국민의 마음을 따르는 것이고, 최악의 정치는 국민과 다투는 것”이라고 했다. 정치권이 여전히 국민의 신뢰를 받지 못하고 있다. 틈만 나면 싸우기 때문일 것이다. 전직 기초단체장으로서 어떻게 보나?

“지역에서 사람들을 만나 보면 가장 많이 듣는 말이 ‘제발 좀 싸우지들 말라’는 것이다. 맞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틀린 말이다. 정치인은 지지자들을 대신하는 사람이다. 그 사람들이 안 싸우면 누가 싸우나. 다만, 뜨겁게 싸우되, 품격 있고 지혜로워야 한다. 정치란 조화와 타협의 예술이기 때문이다. 투쟁만 있다면 그건 시민운동일 뿐이다. 기본적인 사고의 틀을 넘어설 정도는 해야 국민께 감동을 주는 정치라고 할 수 있다.”

_바른미래당 손학규 대표와 인연이 깊다.

“제가 서강대 총학생회장을 했고 손대표님이 교수님을 하신 인연으로 90년대 말부터니까... 근 20년 가까운 세월 동안 모시면서 서로 일거수일투족을 알고 지냈다. 지금은 우여곡절 끝에 당이 달라져서 먼발치에서만 지켜보고 있다.”

_지난 창원・성산 보궐선거 전후로 손학규 대표에 대한 일부 의원들의 공격이 시작됐다. 세간에는 “아무리 정치라지만 어른에게 그러면 안 된다”는 평이 적지 않다.

“얼마 전에 우연히 뵈었을 때 ‘얼굴이 어떻게 그렇게 팽팽하시냐’고 물었더니, ‘속이 없어서 그렇다’면서 그냥 웃으시더라. 4선 의원에 복지부장관, 경기도지사를 지내셨고, 제1야당 대표도 두 번이나 하신 백전노장 아닌가. 그런 분이 제자 같고 자식 같은 사람들에게 수모를, 모욕을 당하고 계시니... 간단한 분이 아니다. 뚝심도 있으시다.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선거제 개편안과 공수처법, 검경수사권 조정안을 패스트트랙에 태웠듯이, 수모를 뚫어내고 이를 관철해 내시리라 믿고 기대한다.”

_이제 힐링에 대해 이야기하자. 우리 국민은 급속한 경제성장을 이루는 과정에 많은 것을 잃었다. 심적으로 고통 받는 이들이 너무 많다. 힐링이 필요한 시절이다. 힐링산업협회장에게 힐링은 무엇인가?

“입가에 잔잔한 미소가 지어지는 것이다. 인간만큼 욕심 많은 동물은 없다. 동물들은 배부르면 욕심을 부리지 않지만, 인간은 죽을 때까지 미래를 걱정하고, 죽어가는 지경에도 자손이 남보다 잘 살기를 바란다. 정말 이기적이다. 이런 이기적인 인간 77억 명이 살아가는 세상이다. 아무도 손해를 보려고 하지 않는다. 배 고픈 건 참아도 배 아픈 건 못 참는다는 말이 있지 않나. 결국 마음을 다스려야 한다. 내가 좀 손해 본다는 생각으로, 위만 쳐다보지 말고 아래도 보고 뒤도 돌아보면서 살아야 한다. 프로그램이나 훈련을 통해 마음에서 욕심과 이기심을 덜어내고 내적 평안을 찾아야 한다. 그럴 때 사회는 잔잔한 미소를 짓는다. 그게 힐링 아니겠나.”

인터뷰 중 협회 관련 자료를 준비하는 이제학 회장(2019.06.20) ⓒ스트레이트뉴스
인터뷰 중 협회 관련 자료를 준비하는 이제학 회장(2019.06.20) ⓒ스트레이트뉴스

_농림축산식품부 이개호 장관은 “힐링은 시대정신이자 새로운 블루오션”이라고 했다. 그 정의를 받아서 힐링산업을 정의하자면?

“역시 대한민국 힐링산업의 전도사답다. 정확한 표현이고, 100% 공감한다. 이제 힐링은 개인적인 힐링을 넘어 집단적 힐링, 즉 힐링사회로 발돋움하고 있다. 힐링이 돈이 되는, 산업으로서의 힐링이 전개되고 있는 것이다. 힐링산업은 미래 먹거리를 책임질 신성장 동력 중 하나다.”

_힐링산업이라고 하면 어느 정도 분야가 있을 것이다. 대략 어떤 분야가 있으며, 회원 규모는?

“먹고 마시는 힐링푸드, 화장품처럼 바르는 힐링뷰티, 생활공간의 힐링가구, 요가나 명상 같은 힐링플레이, 힐링투어, 힐링부동산, 산림치유, 해양치유, 직장힐링 등으로 정리해 볼 수 있지만, 사실상 힐링과 연계되지 않는 분야는 거의 없다. 각 분야 수백 곳 회사와 전문가들이 함께 활동하고 있는데, 지난 4월에 개최된 2019힐링페어에는 250여 개 기업, 기관이 참여했다. 그 정도로 말씀 드리겠다.”

_올해 힐링페어는 불과 세 번째임에도 불구하고, 프로그램이 지난해 대비 400% 이상 확대되고 관람객이 2만 명을 넘기는 등 한국 힐링의 현주소와 미래를 가늠할 수 있는 강력한 전시회로 떠올랐다. 처음 기획할 때 어떤 의도였나?

“5년 전에 몇 사람이 모여서 대한민국의 미래 먹거리 산업에 대해 고민한 적이 있다. 결과물이 힐링산업이었다. 우후죽순처럼 성장하는 각 분야의 힐링산업을 한데 모아 널리 알리는 것부터 시작해보자는 취지에서 탄생한 것이 힐링페어다. 이제 우리나라 힐링산업은 사단법인 힐링산업협회가 주도한다는 인식이 확산됐다. 그만큼 우리 위상이 많이 높아졌다. 사실 그동안은 투자 상태였지만, 올해 드디어 BP(손익분기)가 맞아 들어갔다. 내년부터는 돈 되는 페어, 미래 먹거리 산업으로 발돋움하는 페어가 될 것 같다. 더 알찬 구성으로 크게 붐업을 이뤄낼 것이다.”

_협회의 주 업무는 다양한 힐링 관계자들을 묶어내는 일일 것이다. 쉽지는 않다. 힐링페어 외에, 미래의 한국 힐링산업을 위해 추진하는 정책에는 어떤 것들이 있나?

“매년 가을에 각계 전문가들을 모시고 국회에서 힐링세미나를 개최한다. 콘텐츠 개발을 위한 거다. 올 가을에는 특히 국제적인 세미나로 열 계획이다. 또 전국 팸투어도 진행 중인데, 회원사들이 각 지역 특성에 맞는 일정에 따라 참가해 상호 교류하고 경험을 공유한다. 그 과정에 각 분야 산업이 힐링으로 단단히 묶이고, 또 일자리도 만들어지고 있다.”

_평창군과 함께 힐링센터 건립에 착수했다고 들었다.

“기대가 큰 사업이다. 며칠 전에도 한왕기 군수님과 소통했다. 6만여 평 부지 매입절차를 마쳤고, 한국노총이 평창으로 가기로 결정돼 그 인원만으로도 프로그램을 충분히 진행할 수 있게 됐다고 자랑하시더라. 현재 평창치유센터(가칭) 설립을 위한 연구용역이 진행 중인데, 7월말쯤에 보고회가 있을 예정이다. 우리 협회와 평창이 만들어내는 자랑스러운 제1호 평창힐링센터가 탄생할 날이 멀지 않았다.”

_유럽, 미주, 일본 등 힐링산업 선진국과 비교할 때, 우리의 현주소는 어떤가?

“규모 면에서 걸음마단계라고 볼 수 있다. 세계 힐링산업시장은 약 4,700조 원에 달하는데, 우리는 75조 원 정도다. 하지만 경제순위가 10위, 11위 하고 있으니, 우리 역시 조만간 470조 원으로 최소 6배 이상 성장할 수 있다고 본다. 부지런히 가려 한다.”

이제학 회장 ⓒ스트레이트뉴스
이제학 회장 ⓒ스트레이트뉴스

_2019힐링페어 당시 중국국제문화체육교류센터 리 주유안(Li Zhuyuan) 센터장 내정자와 일본 의회 협력 그룹사인 스페이스미디어재팬(Space Media Japan Co. Ltd)의 히로유키 스가노 대표, ㈜이즈월드와이드의 황광만 대표 등과 힐링산업의 미래에 대해 좌담회를 가진 적이 있다. 힐링의 국제화도 염두에 둬야 할 텐데.

“물론이다. 케이팝(K-POP)이 한류 열풍을 타고 세계를 재패했듯이, 케이힐링(K-HEALING)의 세계시장 석권을 확신한다. 그 작업의 일환으로 올해 초에 중국 청도로 건너가 힐링산업협회 청도지부를 결성했다. 또 가을에 국회에서 개최하는 국제힐링세미나도 그런 차원이다. 내년에는 아예 중국판 힐링페어까지 계획하고 있다. 선비정신으로 무장한 케이힐링이 세계 힐링시장을 재패하는 날을 보게 될 것이다.”

_현대인이라면 스트레스는 누구도 피해갈 수 없다. 대한민국의 힐링산업을 이끌어가는 수장으로서 스트레스도 많을 것이다. 본인만의 힐링활동이 있는지?

“좋아하는 걸 하면 스트레스는 사라진다. 스트레스를 여하히 다스리는가가 중요하다. 불안과 걱정으로 스트레스가 쌓일 때, 저는 먼저 수첩에 적어본다. 대개 5가지를 넘지 않는다. 그걸 우선순위를 정해서 하나하나 풀어갈 해법을 적다 보면, 헝클어져 있던 것들이 객관화되면서 답이 나온다. 그러니까 정리가 힐링인 셈이다. 또 저는 등산을 다니면서 자연과 하나 되고 심신을 건강하게 유지하고 있다.”

_힐링의 중요성이 세계적으로 증대되고 있다. 마지막으로 힐링산업협회장이 국민께 드리는 말씀은?

“짧고 굵게 살겠다는 생각으로 심신을 대하면 위험하다. 우리나라도 이미 고령사회에 진입했는데, 병으로 갖은 고초를 겪다가 사망하는 평균 기간이 무려 10년이 넘는다. 100세 시대가 중요한 게 아니라, 어떻게 100세까지 사느냐가 중요하다. 그야말로 ‘구구팔팔 이삼사’, 그러니까 99세까지 88하게 살다가 2, 3일 만에 죽는 게 답이다. 평소 자신에게 꼭 맞는 힐링활동으로 몸과 마음을 잘 다스리는 우리 국민들이 되시면 좋겠다는 말씀을 드린다. 개인이 건강해야 사회와 나라도 건강해지니까 말이다. 성취와 ‘이룸’에 매인 바쁜 일상 조금씩만 내려놓으시고, 건강하고 활력 넘치는 생활 영위하시기를 바란다. 저희도 열심히 돕겠다.”

죽세공으로 유명한 시골 담양에서 바구니 만들고 쌀 꾸러 다니던 소작농 집안의 막내에게 삶은 킬링(killing)이었다. 고등학교를 자퇴한 것도, 연좌제 탓에 육군사관학교 3차 면접시험에 떨어진 것도, ‘전두환 군부독재 타도’를 외치다 소위 ‘도바리’가 된 것도 모두 킬링이었다.

그랬던 그가 이제 자신의 시간을 힐링(healing)과 연관산업으로 채워나가고 있다. ‘국내 붐업’과 ‘케이힐링(K-HEALING)의 세계화’라는 대상을 두고 양다리 짝사랑에 빠졌다. 이래저래 아내 김수영 구청장에게 또 한소리 듣게 생겼다. “저러다가 상사병이라도 걸리는 거 아닌지 몰라.”
bizlink@straigh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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