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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IMF 발표에 따르면 OECD 회원국 중 1인당 GDP가 3만 달러 이상인 나라는 20개국이다. 이중 대통령제를 시행하는 나라는 미국과 프랑스 단 2개국뿐이다. 프랑스조차 대통령과 총리가 권력을 분점 하는 분권형 대통령제이다. 그만큼 대통령제는 보편적이지 않으며 다당제에 기반 한 내각제가 상식이다.

프랑스는 헌법 제6조 규정에 따라 2차 국민직선 다수결투표(2차 결선투표)로 대통령을 선출한다. 지난 21012년 당시 17년 만의 정권교체를 달성한 프랑수아 올랑드 후보(사회당)는 대중운동연합(UMP) 소속 니콜라 사르코지 대통령을 2차 결선투표로 눌렀다. 사르코지 역시 2007년 대선 때 사회당 여성 후보인 세골렌 루아얄을 2차 다수결투표를 통해 꺾어야 했다.

영국의 영향으로 건국 초기부터 200년 이상 양당제를 운영해온 미국은 별도의 결선투표를 실시하지 않는다. 대통령 선거는 선거인단이 대통령을 선출하는 형식으로 외형상 간접선거이다. 그러나 선거인단은 반드시 자신이 속한 정당의 대통령후보에게 투표를 해야 하기 때문에 내용적으로는 국민 직접선거이다. 선거인단제도는 단 1표라도 많이 득표한 후보가 해당 주에 배정된 선거인단을 독식하는 제도를 채택하고 있기 때문에 선거인단수가 많이 배정된 주에서 승리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따라서 선거인단 3명이 배정된 알래스카 등 8개 주를 전승해도 플로리다(29명) 1개 주에도 미치지 못한다.

미국은 연방 회계·감사원(Government Accountability Office)이 의회 소속이며 의원들에게만 법률안 제출권을 부여하고 있다. 상원의 인준 청문회를 반드시 거쳐야 하는 연방 고위직도 무려 1,200여 개에 달한다. 이처럼 의회의 권한이 행정부에 비하여 상대적 우위를 점하고 있으면서도 매 2년마다 실시하는 선거를 통해 사실상 대통령과 행정부의 중간평가로 활용한다. 대통령 임기는 4년인데 반하여 하원의원은 2년이며 상원의원(임기 6년)도 3분의 1씩 개선(改選)한다. 따라서 중간선거는 지난 2년간의 국정운영에 대한 신임투표 성격이 짙고 차기 대통령선거를 예측하는 자료가 되기도 한다. 특히 의회의 다수당이 되느냐 소수당이 되느냐에 따라 행정부가 궁지에 몰릴 수도 있고, 더욱 자신감을 갖고 국정을 추진해 나갈 수도 있다. 중간선거에서는 여당의 의석수가 줄어드는 것이 일반적 현상이다.

역사적으로 미국의 중간선거에서는 민주·공화당 구분 없이 재집권한 대통령 소속 정당이 승리한 사례는 매우 드물었다. 재집권한 여당은 중간선거에서 평균 28석 가량의 하원의석을 야당에 내주었다.

1992년 민주당 경선에 출마한 빌 클린턴은 첫 예비선거 지역인 아이오와에서 패배했다. 그러나 그는 “문제는 경제야, 멍청아!(It's the economy, stupid!)”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국내 경제문제를 집요하게 파고들었다. 그런데 사실 클린턴 당선의 1등 공신은 역설적으로 무소속 로스 페로 후보였다. 아칸소 주지사 출신 클린턴은 현직 대통령 부시를 상대로 유권자의 43%만의 지지만을 얻었다. 그렇지만 보수 성향 유권자를 잠식한 페로는 무려 18.9%를 획득했고, 공화당의 부시는 37.4% 득표에 머물렀다. 페로는 단 1명의 선거인단도 확보하지 못했지만 결과적으로 클린턴 당선의 어부지리를 제공했다. 페로는 1996년에도 다시 한 번 개혁당으로 출마해 8.4%를 득표하며 클린턴 당선(?)의 조력자가 되었다. 클린턴은 집권 초기 연속된 실책으로 인기가 급격히 떨어지며 1994년 중간선거에서 참패했다. 특히 하원의 경우, 40년 만에 공화당에 다수당의 지위를 넘겨주어야 했다. 백악관은 대선공약이었던 가족의료법안, 군대 내 동성애자 권리 보호 등 정책을 전면 재검토했다. 1998년 중간선거에서는 예상을 뒤엎고 민주당이 의석을 늘리자 비로소 한숨을 돌릴 수 있었다.

아프리카계 최초의 대통령으로 남게 된 버락 오바마는 2008년 제44대 미국대통령 자리에 올랐다. 그는 민주당 경선과정에서부터 주로 젊은 층과 여성 및 사회적 소수계층에서 더 높은 지지를 바탕으로 아이오와 코커스를 1위로 통과했다. 그는 집권 직후부터 이라크 파병 부대 철수 문제와 오바마 케어(의료보험개혁) 등으로 공화당과 갈등을 빚은 끝에 2010년 중간선거에서 참패했다. 집권 초 상·하 양원을 여대야소로 출발했으나 하원은 공화당에 넘겨주었고 상원도 53 대 46석으로 좁혀졌다. 2012년 재선에 도전한 오바마는 공화당 롬니를 상대로 박빙 승부가 예상했으나 스윙(경합) 주 11개 가운데 10개를 석권하며 낙승했다. 특히 선거인단 수가 세 번 째로 많은 플로리다의 득표율 차이는 겨우 0.9%였다. 그러나 재선 임기 2년차를 맞아 외교정책 부진 속에 각종 개혁정책이 벽에 부딪히면서 지지율이 40% 아래로 떨어졌다. 민주당은 2014년 중간선거에서 하원 3석, 상원 7석을 더 내주며 8년 만에 완벽한 여소야대를 허용했다.

강경보수주의자 또는 레이거노믹스로 유명한 로널드 레이건은 1980년 당시 경제 불황으로 인기가 추락했던 민주당 대통령 지미 카터를 압도적인 표차로 누르고 제40대 대통령에 당선된다. 강경한 국내외정책을 펼친 끝에 1984년 선거에서 월터 먼데일에게 압승을 하며 재선됐다. 그러나 1986년 중간선거에서 공화당은 상원의석을 대거 잃었다. 레이건은 참모진을 대거 교체했다. 소비에트 연방에 대해 유화정책을 펴기 시작하여 1987년 고르바초프 서기장과 냉전을 종식시켰고, 현재 가장 위대한 전직 대통령으로 기록되고 있다.

이처럼 미국의 중간선거는 확실히 국정운영에 대한 중간평가 성격을 갖는다. 13대 대선 당시 노태우 대통령 후보의 중간평가 공약은 미국의 이러한 중간선거를 벤치마킹한 것이었다.

임기 5년인 대통령과 임기 4년인 국회의원 및 지방자치 단체장(의원) 선거가 비대칭적으로 실시되는 우리나라는 중간평가가 일정하게 이루어지지는 않는다. 1989년 3월 21일 민정당 김윤환 원내총무는 노태우 대통령의 대선공약인 중간평가를 실시하지 않는 대신 광주민주화운동을 무력진압한 정호용 전 특전사령관 등을 공직에서 사퇴시키는 내용을 담은 비밀각서를 평민당 김원기 원내총무와 작성했다. 같은 해 12월 29일 정호용 의원은 의원직과 민정당 대구경북 위원장 등 일체의 공직에서 물러났다. 그러나 한 달도 채 흐르지 않은 1990년 1월 20일 노태우 대통령은 3당 합당을 발표, 중간평가 후속 조치에 대한 국민의 기대를 저버렸다.

3당 합당은 호남 고립전략을 통한 PK·TK·충청 지역연합이었다. 민자당은 한때 218석까지 이르는 거대여당으로 탄생했고, 14대 대선에 나선 김영삼 후보는 PK(72.8% 득표, 이하 같음), TK(62.5%), 충청권(36.9%) 1위를 바탕으로 여유 있게 청와대 입성에 성공했다. 그러나 개혁과 세계화를 표방하며 공화계 김종필 대표와 일부 TK 민정계를 축출한 민자당은 1995년 초 지역연합이 해체됐다. 민자당은 충청권 3개 시도지사와 강원지사, 그리고 대구시장까지 패배하며 1995년 제1회 지방선거에서 완패했다. 이듬해 15대 총선에서는 신한국당으로 당명을 바꾸고 신진 수혈도 하는 등 안간 힘을 다했으나 충청권과 대구지역을 자민련에게 대부분 내주며 또 다시 여소야대를 허용했다.

15대 김대중 대통령 당선 전략인 DJP연대는 노골적인 호남·충청 지역연합이었다. 국민회의와 자민련은 공동정부 구성을 공약으로 호남(94.4%)과 충청(47%)은 물론이고 서울(44.9%), 인천(38.5%), 경기(39.3%) 등 모두 1위를 차지하며 39만표 승리의 원동력이 되었다. 그렇지만 2001년 9월 임동원 통일부장관 해임건의안 가결 직후 DJP연대가 파기됐으며, 이듬해 6월 지방선거에서 호남권 시도지사 3석과 제주지사 등을 제외하고 참패했다. 민주당은 특히 2000년 총선 당시 강원·충청권 13석을 기반으로 사상 처음 세 자릿수 의석을 달성했지만 2년 만에 헛수고를 한 것이다.

 

2002년 노무현 대통령은 190만명 국민경선을 통해 후보로 선출됐지만 정몽준 후보와 또 한 차례 단일화경선을 거쳤다. 그렇지만 결정적 당선의 승부수는 내용상 행정수도 이전공약을 내세운 호남·충청 지역연합 및 PK지역 지지세 확장이었다. 노 대통령은 호남(93.2%)과 충청(52.5%), 그리고 서울(51.3%), 인천(49.8%), 경기(50.6%) 모두 1위를 차지했고 PK에서도 무려 29.4%를 득표했다. 그런데 2005년 상반기 국회의원 재보선 전패 직후 노 대통령이 한나라당에 대연정을 제안하자 호남을 중심으로 지지층은 급격하게 이탈해버린다. 이듬해 제4회 지방선거에서 열린우리당은 광역단체장(전북지사) 단 1석, 수도권 기초단체장 1석, 수도권 지역구 광역의원 0석 등으로 전무후무한 대참패를 기록했다.

헌정 사상 최다 표차 승리를 거둔 이명박 대통령도 정치적 기반인 수도권과 TK의 지역연합에 충청권 33만표 우세를 바탕으로 압승했다. 이 대통령은 호남권 3개 시도를 제외한 전 지역에서 1위를 마크했다. 하지만 한나라당은 18대 총선에서 친박 공천 배제라는 형식으로 표출됐지만 내용적으로는 TK와 충청 지역연합 일부가 허물어지면서 집권 초반임에도 간신히 과반수 확보에 그쳤다. 세종시 수정안까지 제출한 2010년 지방선거에서는 충청권 전패와 함께 인천, 강원, 경남지사 등을 야당에 허용해 완패했다.

지난 2012년 2월 새누리당 비대위원장을 맡은 박근혜 대통령은 ‘혁신’을 앞세우며 수도권 리버럴을 공략했다. 대선을 앞두고는 선진통일당을 흡수하여 TK·충청 지역연합을 완성했다. 박 대통령은 충청권에서 54.4%, TK는 80.5%로 압승하며 문재인 후보를 상대로 3.5% 차이 신승을 거두었다. 그런데 이는 수도권에서 겨우 5만 7천표 패배라는 밑바탕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하지만 역시 박근혜 정권 3년여 기간 중 계속된 친박-친이 갈등 또한 본질적으로는 지역연합의 해체과정이었다. 수도권 리버럴들은 바로 친이계의 주요 지역기반이다. 이번 2016년 20대 총선에서 새누리당은 수도권에서만 정당투표로 겨우 31.8%, 의석은 28.7% 점유하며 대참패했다. 내용상 수도권연합이 해체되며 16년만의 여소야대를 허용한 것이다.

이상을 살펴보면 14대부터 18대 대선까지 모든 대통령은 예외 없이 사실상 지역연합을 통해 정권을 손에 넣었다. 그러나 집권 후 지역연합 일부가 허물어지기 시작하면 레임덕에 시달리고 국회의원 총선이든 지방선거든 중간선거가 실시되면 반드시 필패하는 악순환을 겪게 된다. 미국의 경우, 중간선거가 대통령과 소속정당의 정책을 평가하는 성격이라면 우리나라의 중간선거는 세력의 이합집산에 따라 그 결과가 좌우된다는 점이다.

한편, 현재 우리나라 원내 의석을 가지고 있는 4개 정당은 전부가 가치지향 정당은 아니다. 진보정당이라고 하는 정의당조차 7%에 불과한 중상층 조직노동자의 이익만을 대표하고 있을 뿐이다. 1천만명 비정규직, 650만명 자영업자, 290만명 농어민, 200만명 빈곤 노인, 110만명 청년실업자, 450만명 경력단절여성 등 서민기반 정당은 사실상 부재하다. 경제민주화와 분배 확대를 요구하는 서민들은 TK지역과 강원도 등 전국 어디에도 숱하게 많다. 이번 20대 총선에서 국민의당과 더불어민주당이 TK지역에서 각각 22%와 14.5%로 약진한 것은 대단한 가능성을 보여준 것이다. 지역연합만으로는 간신히 집권해도 지속가능하지 못하는 까닭이다.

 

 

최 광 웅

데이터정치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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