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적은 오로지 정권의 무능과 부패를 감추기 위한 몸부림

새누리당 이정현 의원이 1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전체회의에 질의를 마치고 회의실을 나서며 청와대 홍보수석 재임 당시 KBS의 세월호 참사보도에 개입 논란에 대해 설명을 한 후 황급히 자리를 뜨고 있다. 2016.07.01.ⓒ뉴시스

세월호참사 당시, 이정현 전 청와대 홍보수석이 KBS 보도국장에게 전화해 뉴스 보도에 개입한 녹취록이 공개되면서 일파만파 언론보도의 공정성 문제가 도마에 오르고 있다.

“하필이면 또 세상에 (박 대통령이) KBS를 오늘 봤네”

이정현 수석의 이 말에서 진실 은폐의 배후에 청와대가 있음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언제든 찾아오라며 눈물 쇼를 벌이던 박근혜 대통령이 사실은 뒤에서 자신의 책임을 감추는 데에 혈안이 돼 있었다.

어린 생명들이 차갑고 어두운 바다 속에서 구조를 기다릴 때 청와대의 관심사는 정권의 무능과 치부를 덮는 것 뿐이었다. 희생자들에 대한 절박함이나 유가족들에 대한 배려는 찾아볼 수 없었다. 언론통제 몸통은 바로 박근혜 대통령이었던 것이다.

이제껏 KBS는 세월호참사와 관련한 보도를 철저히 축소해 왔고 얼마 전 제주 해군기지 철근이 세월호에 실렸다는 의혹이 처음 폭로됐을 때도 침묵했다. 김시곤 전 KBS 보도국장의 박근혜 정부 인수위시절부터 청와대의 보도 개입이 있었다라는 그의 주장이 근거가 있음을 말해주는 대목이다.

무엇보다도 지금까지는 KBS 한 곳만 드러났지만 다른 언론사들에 대해서도 청와대가 통제를 시도했을 가능성은 충분하다. 청와대의 언론통제 속에서 얼마나 많은 권력형 비리와 의혹이, 진실이 파묻히고 왜곡되었는지 국민으로서는 분노하지 않을 수 없다.

“탄광 노동자들의 투쟁을 보도하지 말라”
“경상수지 계속 흑자라는 한국은행 발표는 1면 톱으로 다뤄라”
“학생 시위를 ‘적군파식 수법’이라고 제목 붙일 것”
“‘유인물 압수’ 보다는 ‘화염병과 총기 등 압수’로 뽑을 것”
“검찰이 발표한 내용만 싣고, 독자적인 취재 보도는 불가”

이상은 30년 전 군사독재시절의 보도지침이다. 당시 보도지침 사건의 당사자였던 김주언 전 KBS 이사의 저서 ‘한국의 언론 통제’에는 그 암울했던 시절의 언론 통제 사례가 다양하게 설명돼 있다 

학생들의 ‘시위’는 ‘학원사태’라고 쓰게 했고 ‘물가 인상’ 대신 ‘상향 조정’으로, 부천서 성 고문 사건은 “운동권 학생들이 성을 혁명 도구화한다”는 공안 당국의 발표 내용을 쓰게 했다. 미국의 민주화 압력은 철저하게 통제했고 군 관련 뉴스나 정부 고위층의 부패도 보도통제 사항이었다. 

보도지침을 위반할 경우에는 혹독한 보복이 뒤따랐다. 1985년 3월 김대중-김영삼의 만남을 3단 이하로 보도하라는 보도지침을 깨고 한국일보가 6단 크기로 보도했다. 청와대 홍보조정실장이 신문사를 찾아와 회장을 만나고 갔고 편집국장이 경질됐다. 중공 폭격기 불시착 사건의 엠바고를 깬 동아일보 편집국장은 중앙정보부에 끌려가 모진 고문을 당했다. 참담한 일이지만 이걸 먼 과거의 일로 치부하기는 어렵다.

김시곤 국장의 비망록에 따르면 공영방송 KBS에 대한 청와대의 언론통제는 정말 가관이었다. 국제적 망신거리였던 윤창중의 워싱턴 성추문 사건을 축소해 보도하도록 보도 실무자들에게 압력을 가했다. 국정원 대선개입에 대한 KBS의 단독 특종을 뉴스에서 빼라고 지시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 사건들은 빙산의 일각일 뿐이다. 수많은 진실이 왜곡되고 침묵으로 덮였고 이 상황은 현재도 진행 중이다. 

청와대의 언론장악과 통제는 KBS에 대한 것만이 아니다. MBC에서도 공정언론의 뜻을 굽히지 않았던 수많은 직원들이 보도와 제작에서 내쫓겼고, 불법 해킹프로그램에 일거수일투족을 감시당하고, 심지어 해고됐다. 백종문 MBC 미래전략 본부장은 불법해고인 걸 알면서도 무고한 직원을 해고했다고 자백했다. 

이처럼 한국의 언론 자유는 30년 전과 별반 다르지 않다. 이명박 정부를 거쳐 박근혜 정부까지 8년, 숱하게 많은 기자와 PD들이 비슷한 일을 경험했다. 고문 같은 물리적인 폭력이냐 시스템적인 겁박과 불이익이냐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이제 청와대의 언론통제는 끝내야 한다. 정부 여당이 일방적으로 공영방송 사장을 선임하는 제도를 이대로 놔둬야 하는지 생각해봐야 한다. 지배구조 개편 등 근원적인 대책 수립에 국민이 직접 나서 압력을 행사해야 할 시기가 지금이다. 국민이 세운, 국민에게 공정하고 정확한 정보를 알려야 할 공영언론이 더 이상 국민을 속이고 희생시키려는 정권에 부역하게 방치할 수는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20대 국회는 청와대의 언론통제에 대한 청문회를 즉각 열어 언론장악 현황과 그 실태를 낱낱이 밝히고 규명해야 한다. 그리고 방송의 자유와 독립을 위해 방송법을 즉각 개정해야 한다. 보도 순서를 바꾸고, 다시 편집하고, 녹음을 다시 하라는 언론통제를 통상업무라고 치부하는 정권이 개입할 여지가 없는 투명한 법 없이는 공정방송은 불가능하다.

정권의 언론통제 목적은 오로지 정권의 무능과 부패를 감추기 위한 몸부림이다. 이런 정권이 다시는 발붙이지 못하게 하는 것 또한 우리 국민이 어떻게 인식하고 행동하느냐에 달렸음을 명심하자.

 

 

김상환(전 양천신문/인천타임스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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