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 주기 빨라졌는데 내용연수 늘려”
글로벌 빅테크들 이익 부풀리기 주장
삼성·SK 최근 5년간 20%대 비슷한 감가상각비 유지
자산 진부화 빨라졌지만…공정가치 평가로 부분적 반영

인공지능(AI) 빅테크들의 분식회계 주장이 나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회계처리에도 관심이 쏠린다. 금융위기를 예견했던 영화 '빅쇼트'의 실제 모델 마이클 버리는 빅테크들의 ‘감가상각비를 줄여 실적을 부풀리는’ 행태를 주장했다. 이와 관련,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경우 감가상각비가 매년 비슷한 흐름을 보여 인위적으로 조정된 흔적은 발견되지 않았다.

다만, 마이클 버리가 지적한 가속화된 기술 변화라는 경제적 실질을 재무제표에 충분히 반영하기 위해 감가상각비를 상향 조정하지 않은 점은 시장의 보수적인 회계처리 기대와는 다소 거리가 있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13일 업계에 따르면 마이클 버리는 일부 AI 빅테크들이 감가상각비를 축소해 이익을 부풀리고 있다고 주장했다. 엔비디아 블랙웰 등 거의 매년 AI용 GPU(그래픽처리장치) 신제품이 출시되면서 기존 장비가치가 급락하는데, 내용연수를 3년에서 6년으로 늘려 GPU 수명을 조작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이런 회계는 현대에 가장 흔한 사기 수법(분식) 중 하나”라고 직격했다.

제품 수명이 짧아졌다는 논리는 GPU에 고대역폭메모리(HBM)를 공급하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게도 적용된다. 일단 수치로 보면, 양사도 감가상각비 비중이 최근 5년간 소폭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회계적 재량권 범위 내에서 움직여, 조작 의도가 있다고 판단하기는 힘들어 보인다.

삼성전자의 유형자산 기초 장부가 중 감가상각비 적용 비중은 2021년 24.3%, 2022년 24%, 2023년 21.1%, 2024년 21.2%였다. SK하이닉스도 같은 기간 23.1%, 24.5%, 21.1%, 21.9%씩 변해 왔다. 양사가 비슷한 추이를 보여, 업계 평균적인 내용연수가 적용되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빠른 기술 주기로 자산의 진부화가 빨라졌다는 관점에서 보면, 재고자산 손실률도 커질 수 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2023년에 재고자산 충당금 설정률이 동시에 두 자릿수(각 12.5%, 15.3%)를 찍었다가 이듬해 8%대로 떨어졌다. 그러다 올 반기말엔 다시 차이가 벌어졌다(삼성전자 11.2%, SK하이닉스 6.4%). 이는 반도체 업황 사이클에 기인한 흐름과, 엔비디아발 HBM 판매 호조를 이어온 SK하이닉스가 삼성전자에 비해 손실률이 덜했던 정황으로 보여진다.

기업들은 회계상 재량권을 갖고 있어 내용연수를 늘려도 분식회계로 단정하기는 어렵다. 마이클 버리의 주장은 회계 위반보다 회계 관행의 윤리성과 현실성에 대한 문제 제기로 볼 수 있다.

그에 따르면 기술 주기 단축을 고려할 때 감가상각비 비중은 늘어야 합리적이다. 그러나 기존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는 것은 기업들이 가속화된 기술 변화라는 경제적 실질을 재무제표에 충분히 반영하지 않고 있다는 가능성을 시사한다. 이는 분식회계와는 별개로, 보수적인 회계처리를 지향하는 시장 원칙과 투자자 보호 측면에선 부정적으로 해석될 수 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모두 기계장치의 내용연수는 최소 5년으로 잡고 있다. 그런데 삼성전자는 2024년에 유형자산의 3964억원 규모 손상을 인식했다. SK하이닉스도 2023년에 1657억원 규모 자산을 손상 처리했다. 자산 진부화는 공정가치 평가를 통해 부분적으로 반영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감가상각비를 줄이면 법인세 부담이 생기고, 늘려도 세법상 손금 한도를 벗어날 수 없다”며 “조세 차원에서도 감가상각비는 인위적으로 크게 늘리거나 줄일 수 없는 제약이 있다”고 말했다.

마이클 버리는 일부 빅테크들이 AI 기술 주기가 빨라졌는데도 내용연수를 늘려 감가상각비를 축소, 이익을 부풀리고 있다고 주장했다. 사진은 SK하이닉스 HBM.
마이클 버리는 일부 빅테크들이 AI 기술 주기가 빨라졌는데도 내용연수를 늘려 감가상각비를 축소, 이익을 부풀리고 있다고 주장했다. 사진은 SK하이닉스 HBM.

[스트레이트뉴스 이재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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