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장기 성장 기대와 단기 거품 논란 뒤섞여
“닷컴 버블과는 달라...실질적 수요가 있는 곳에 투자 이뤄져 ”
인공지능(AI) 시장이 다시 거품 논란 한가운데에 섰다. 최근 2년 동안 미국을 중심으로 AI 관련 주가가 크게 올랐다가 2025년 들어 조정 국면에 들어서자, “AI가 정말 돈을 벌 수 있을까”라는 근본적인 질문이 다시 제기되고 있다. 시장에서는 실적이 충분히 뒷받침되지 않은 상황에서 주가만 앞서가고 있다는 불안이 커진다.
◇ AI에 쏠린 기대와 거품 논란
24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코스피는 17~21일 한 주 내내 오르내림이 거셌다. 17일 4089.25포인트(p)에서 출발했지만 21일 3853.26p로 마감하며 주간 기준 3.95% 떨어졌다.
주 중반까진 반도체가 지수를 끌어올렸다. 20일 새벽(한국시간) 나온 엔비디아 실적이 시장 기대를 웃돌면서 국내 반도체주가 강하게 반등했고 코스피도 4000선 근처까지 회복했다.
하지만 분위기는 하루 만에 뒤집혔다. 미국 기술주 쏠림과 AI 과열 논란이 다시 고개를 든 데다, 리사 쿡 연준 이사가 “자산 가격이 크게 조정될 가능성이 커졌다”는 취지로 경고하면서 투자 심리가 급랭했다. 외국인 매도가 겹치자 코스피는 21일 크게 밀렸다.
이번 주(11월 24~28일)도 흐름은 비슷할 가능성이 크다. AI 관련 기대와 거품 우려가 동시에 작동하는 가운데, 연준 인사 발언과 금리 경로에 대한 시장 해석이 변동성을 키울 변수로 꼽힌다.
영국 중앙은행은 10월, “AI 투자 열풍이 지나치게 반영되면 주가가 갑자기 조정을 받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실제로 미국 나스닥 시장의 AI 관련 대형주 주가수익비율(PER)이 2000년대 초반 ‘닷컴 거품’ 시기와 유사한 흐름을 보이고 있다는 점이 자주 언급된다.
박승영 한화투자증권 연구원은 “AI 기업들은 효율 극대화보다 시장 점유율 확대에 방점을 찍고 있어 과잉 투자가 이어질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박 연구원은 “현재의 AI 투자 흐름이 국가 간 군비 축소 게임과 구조적으로 동일하다”고 설명했다.
AI 기술은 빠르게 발전하고 있지만, 아직 당장 수익으로 이어지는 사례는 많지 않다. 일부 기업은 AI 모델 개발에 막대한 자금을 투입하고 있으나, 실제 매출 증가는 더딘 편이다. 골드만삭스는 10월 “시장 기대가 실제 경제효과보다 앞서 있다”고 지적했다. 즉, 실적이 뒤따르지 못하면 AI 주식의 조정이 더 커질 수 있다는 의미다.
특히 빅테크 기업들이 AI를 기반으로 하는 새로운 서비스를 내놓고 있지만, 아직 대부분의 수익은 기존 사업(광고, 구독, 클라우드)에서 발생하고 있다. 마이크로소프트(MS), 구글(알파벳) 등은 최근 발표에서 AI로 인한 직접 매출 증가는 제한적임을 인정했다.
이성훈 키움증권 연구원은 "AI 버블 우려에 대한 주요 이벤트가 부재해 증시 변동성이 지속될 것"이라며 "12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전까지 관련 노이즈가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정용택 IBK투자증권 수석연구원은 “거품론이 쉽사리 가라앉지는 않을 것”이라면서도 “가격이 조정되고 미 중앙은행이 금리 인하를 재개하면 증시가 반등할 가능성도 있다”고 덧붙였다.
◇ 비투자와 기술 진화가 이끄는 중장기 성장론
AI 시장에 대한 기대가 꺾이지 않는 핵심 이유는 바로 투자다. 미국 빅테크(아마존, MS, 구글, 메타 등)는 올해에만 AI 설비에 3000억 달러가 넘는 돈을 투입했다.
올해 하반기에는 빅테크들이 투자 계획을 더 늘리면서, 연간 투자 규모가 4000억 달러에 육박한다는 분석도 나왔다. 실제로 글로벌 데이터센터와 반도체 공급이 모두 AI 수요에 맞춰 재편되는 흐름이다.
빅테크의 경우, AI 투자금 마련을 위해 채권 발행 등 자금 조달을 늘리고 있으며, 일부 기업은 이 과정에서 비용 부담이 생긴 상황이다.
JP모건은 “향후 몇 년간 AI 투자를 위해 고등급 회사채 발행액이 1조 5000억 달러에 달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주요국 정부와 각 기업은 업무 자동화, 고객 응대, 데이터 관리 등 거의 모든 분야에서 AI 도입을 본격화하고 있다.
AI 투자 섹터는 세부적으로 △반도체(GPU 등 고성능 칩) △클라우드와 데이터센터 △실제 서비스 등으로 나눌 수 있다.
반도체 쪽에서는 엔비디아가 대표 기업이다. 엔비디아는 최근 발표한 실적에서, 시장 예상을 넘는 매출과 ‘AI 수요가 계속된다’는 전망을 내놨다. AI 서버, 학습·추론 작업이 모두 늘어나면서 관련 반도체 수요가 폭발적으로 커지고 있다.
클라우드 분야에서는 MS, 아마존, 구글 등이 데이터센터와 전력 인프라에 막대한 투자를 하고 있다. 이들은 AI 서비스를 돌릴 ‘공장’을 계속 확장하며, 안정적인 매출 성장 동력을 확보하려 한다.
AI 서비스 분야는 가장 늦게 ‘돈이 붙는’ 단계다. 단순 체험을 넘어, 사용자가 실제 비용을 지불하는 서비스가 늘어나야 매출이 급증한다. 기업용 업무 자동화, 고객 응대, 보안, 의료, 설계 등 생산성을 높이는 서비스에 시장의 관심이 쏠린다.
AI 시장이 단기 조정과 중장기 성장 신호를 동시에 보내면서, 투자 전략도 바뀌고 있다. 최근에는 “AI라는 테마만 보고 투자하는 시대는 지났다”는 말이 힘을 얻는다. 숫자(실적, 현금흐름)가 증명된 기업이 더 많이 살아남을 것이라는 기대감이다.
나정환 NH투자증권 연구원은 “AI 버블 논란과 해소가 반복되며 오히려 붕괴를 억제하는 흐름을 형성한다고 판단한다”며 “AI 인프라 산업에 대한 매수 관점은 여전히 유효하다”고 말했다.
이민근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지금의 AI 투자 열기가 2000년대 초 닷컴 버블과는 결이 다르다고 봤다. 그는 “닷컴 버블 때는 수요가 없는 상황에서 네트워크와 광케이블 등의 공급이 과잉 상태였다”며 “현재는 그래픽처리장치(GPU)와 데이터센터 등 실질적 수요가 있는 곳에 투자가 이뤄지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MS, 아마존 등 빅테크에서 AI 관련 매출이 늘고 있다는 점을 근거로 들었다.
이은택 KB증권 연구원도 ‘거품 붕괴’ 단정은 이르다고 했다. 그는 “단기 조정과 붕괴를 구분하려면 경기와 이익 사이클을 봐야 한다”며 “여전히 확장 국면이면 조정 폭은 마이너스 10~15%를 크게 넘지 않는다”고 말했다. 경기가 식고 기업 이익이 꺾이는지 여부가 향후 하락의 성격을 가르는 핵심 변수라는 설명이다.
[스트레이트뉴스 조성진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