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율안정 ‘4자 협의체’ 가동…’국민연금 환헤지’ 카드 논의
‘연금 수익성-외환안정 조화’ 강조…업계 “양립하기 어려운 주문”

제6차 국민연금기금운용위원회에서 발언하는 정은경 보건복지부 장관. 연합뉴스 제공.
제6차 국민연금기금운용위원회에서 발언하는 정은경 보건복지부 장관. 연합뉴스 제공.

원/달러 환율이 24일에도 오르며 6거래일 연속 치솟아 지난 4월 이후 최고치를 기록하는 등 원화 약세가 이어졌다. 이날 외환당국과 국민연금은 외환시장 안정을 위한 4자 협의체 가동에 돌입, 기금운용 6대 원칙 중 하나인 ‘운용 독립성’ 훼손 우려도 고개를 든다.

24일 외환당국과 국민연금 등이 외환시장 안정을 위한 4자 협의체 가동에 들어갔다.

이날 원/달러 환율은 장 개시 후 미국 연방준비제도에서 흘러나온 금리 인하 기대감을 반영, 3.6월 낮은 1472.0원으로 시작했다. 다만 외국인들이 주식시장 개장 초반 매수세에서 시간이 지나며 매도세로 돌아서자 원/달러 환율이 주간거래 마감(오후 3시 30분) 기준 1477.3원까지 올랐다. 지난 4월 9일(1484.1원) 이후 7개월 반 만에 최고치다


◇ 환율 방어 위해 국민연금에 SOS 친 당국


기획재정부는 24일 공지를 통해 "기재부와 보건복지부·한국은행·국민연금은 국민연금의 해외투자 확대 과정에서의 외환시장 영향 등을 점검하기 위한 4자 협의체를 구성했다"면서 첫 회의를 개시했다고 밝혔다.

구윤철 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은 지난 14일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 등과 긴급 시장점검회의를 통해 "국민연금 등 주요 수급 주체와 긴밀히 논의하겠다"고 예고한 바 있다.

기재부는 "앞으로 4자 협의체에서는 국민연금의 수익성과 외환시장의 안정을 조화롭게 달성할 수 있는 방안을 논의할 예정"이라는 입장이다.

이날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제6차 국민연금기금운용위원회 모두발언에서 정은경 보건복지부 장관도 "기금운용본부는 국민연금의 수익성과 안정성을 지키기 위해 시장에 대한 면밀한 분석을 바탕으로 기민하게 대응해 주시기를 바란다"고 당부하기도 했다.

환율문제 해결에 국민연금이 등판한 배경에는 국민연금의 대규모 해외투자 과정에서 환율이 오른다는 정부 시각이 자리한다.

이날 4자 협의체 첫 회의에서도 국민연금의 대규모 해외 투자가 외환시장 수급에 미치는 변동성을 줄이는 방안이 비중 있게 다뤄진 것으로 알려졌다.

일각에서는 국민연금이 더 적극적으로 환헤지에 나서는 방안이 다뤄지지 않겠느냐는 관측도 나온다. 이른바 '전략적 환헤지', 한은과 국민연금의 외환스와프 계약 연장 등이다.


◇ 국민연금 기금운용 '독립성'과 충돌 우려되는 '공공성'


다만 환율 안정에 국민연금이 동원되는 것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도 적지 않다.

한 자산운용사 대표는 “정부가 환율 안정에 쓸 수 있는 카드가 없는 상황에서 (국민)연금을 활용하겠다는 의도는 이해되나, 투자 과정에서 장기적으로 자연스레 헤지를 하는 것과 달리 환율에 영향을 주지 않기 위해 적극적인 헤지를 하게 되면 그 만큼 비용이 들고 궁극적으로 운용 수익률에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설명했다.

또 다른 운용사 자산운용본부장은 “국민연금에는 기금운용 6대 원칙이 있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운용 독립성”이라며, “해외 투자 비중을 늘이고 국내 비중을 줄여가는 것이 그간의 기조였는데 해외 투자에 브레이크를 거는 듯한 인상을 주는 것 자체가 독립성 훼손”이라고 말했다.

이어 “자칫 정부가 적극 추진중인 코스피5000 달성 목표를 위해 환율 안정을 이유로 국민연금을 활용했다는 오해가 생길 여지도 배제할 수 없다”며, “AI 버블 논쟁 속에 외국인들이 급등했던 한국 증시에서 이탈 가능성이 있고, 뒤 늦게 시장에 참여한 개인들의 수익률 방어를 위해 연금이 그 자리를 메울 경우 중장기적으로 (연금)수익률에 적신호가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 관계자는 “국민연금은 6대 운용 원칙을 철저히 준수하고 있고, 포트폴리오 조정은 매5년마다 기조를 정하는 만큼 정부의 입장과는 달리 독립성 준수에 만전을 기하고 있다”며 정부의 외압 가능성을 일축했다.

기금운용본부의 6대 투자 원칙은 ‘수익성, 안정성, 공공성, 유동성, 운용 독립성, 지속 가능성’ 등으로 구성된다. 2006년 5대 원칙을 세우고 2020년 지속가능성이 추가됐다.

수익성 원칙은 미래세대 부담 완화를 위해 가능한 많은 수익을 추구해야 하고, 안정성 원칙은 투자 자산 수익률 변동성이 허용 범위 안에서 유지돼야 한다는 원칙이다.

공공성의 원칙은 국민연금이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하기에 기금이 국가경제에 미치는 파급효과를 감안해 운용해야 한다는 원칙이다.

유동성의 원칙은 연금 수급에 문제가 없도록 인출 가능성을 감안한 것이고, 운용 독립성 원칙은 다른 목적을 위해 앞선 원칙들이 훼손되서는 안됨을 의미한다. 여기에 마지막으로 지속가능성의 원칙이 추가됐다.

자산운용업계 관계자는 “결국 국익을 위한다는 공공성의 원칙과 운용 독립성의 충돌 가능성이 제기되는 상황”이라며, “국민연금의 수익성과 외환시장의 안정을 조화롭게 달성할 수 있는 방안이라는 표현이 나오는 이유가 여기에 있고 실제로는 양립하기 쉽지 않은 일”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자칫 발생할 수 있는 환율조작 등 법적 이슈 여부에 대해서는 ‘기재부의 검토 사항’이라는 것이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의 입장이다.

[스트레이트뉴스 장석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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