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에는 주 4일제, 주 22시간 노동, 연 6개월 노동, 표준 퇴직연령 38세를 달성할 수 있을 것이다.” 1967년 미국 상원 소위원회에서 나온 발언으로, 당시 사람들은 자본주의의 발달과 기술의 진보가 인간의 삶을 풍요롭게 해줄 것이라 기대했다. 노동을 덜어주는 도구를 손에 넣은 인류가 마땅히 품을 법한 기대였다.

그렇지만 한쪽에서는 이로 인해 ‘남아도는 여가’가 사회적인 위협이 될 날이 멀지 않았다고 보고, 이 주제에 관한 많은 책과 논문이 쏟아져 나왔다. 일찍이 영국 경제학자 케인스도 〈우리 손자들의 경제적 가능성〉이라는 글에서 ‘2030년에는 주 15시간만 일하게 되리라’는 장밋빛 예언을 내놓으며 ‘따분함 때문에 고민할 사람들’에 관한 우려를 내비친 바 있다. 

찰리 채플린이 1936년 감독, 주연한 영화 '모던 타임즈'(Modern Times)의 한 장면. 산업 혁명과 근대화의 과정에 있던 당시의 사회에서, 대부분의 노동자들은 공장과 건설 현장 등을 전전하며 겨우 생계를 유지해갔고, 부유층들은 그들을 착취해가며 호위호식하는 삶을 누리고 있었다. 이 영화가 전 세계의 찬사와 관심을 한 몸에 받게 된 계기는 자본주의와 산업화 시대로부터 비롯된 인간성 상실을 날카롭게 풍자하며 '시대를 앞선' 놀라운 통찰력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찰리 채플린이 1936년 감독, 주연한 영화 '모던 타임즈'(Modern Times)의 한 장면. 산업 혁명과 근대화의 과정에 있던 당시의 사회에서, 대부분의 노동자들은 공장과 건설 현장 등을 전전하며 겨우 생계를 유지해갔고, 부유층들은 그들을 착취해가며 호위호식하는 삶을 누리고 있었다. 이 영화가 전 세계의 찬사와 관심을 한 몸에 받게 된 계기는 자본주의와 산업화 시대로부터 비롯된 인간성 상실을 날카롭게 풍자하며 '시대를 앞선' 놀라운 통찰력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2018년 세계는, 특히 한국은 눈부신 경제 성장을 이룩하며 물질적인 풍요로움을 누리고 있다. 소득은 늘어났고, 경제 규모도 커졌다. 뛰어난 IT 기술력이 편리한 생활환경을 선사하고, 각종 상품과 서비스가 이를 뒷받침한다.

예측이 어긋난 것은 다음 부분이다. 놀랍게도 사람들은 과거 어느 때보다 더 많이, 더 오래 일하고 있다. 노동을 덜어주리라 예상했던 온갖 기술의 발달에도 불구하고, 그 기대는 보기 좋게 어긋났다. 아이러니하게도 ‘과노동의 시대’로 전락한 것이다.

세계의 노동시간에 주목해보자. 1980년대 초를 기점으로 이전까지 감소하는 경향을 보이던 노동시간이 다시금 증가하기 시작한 점에 눈을 돌린 것이다. 예컨대 미국의 연간 노동시간을 살펴보면, 1969년에는 1786시간이었던 것이 1989년 조사결과에서는 1949시간으로 163시간이나 늘어났다.

유럽 역시 마찬가지다. 유럽 내에서 노동시간이 짧기로 알려진 독일과 프랑스도 1980년대 초부터 21세기 초에 걸쳐 약하기는 하지만 노동시간이 증대되는 흐름을 보였다. 

세계가 과노동 시대로 들어섰음을 뒷받침하는 또 하나의 사례가 있다. 2002년 1월 옥스퍼드 영어사전에 일본어 ‘과로사’를 의미하는 ‘karoshi’라는 단어가 새로 등재되었다. 한국 못지않게 장시간 노동으로 악명 높은 일본의 노동현실이 드러남과 동시에, 과노동과 관련한 문제가 단지 일본뿐만 아니라 세계 각지에 퍼진 일반적인 현상임을 시사한다. 

완만하고 착실하게 이뤄져 온 시간 단축의 흐름이 역전해 노동시간이 길어지기 시작한 이유로, 크게 네 가지가 꼽힌다. ‘글로벌 자본주의’, ‘정보자본주의’, ‘소비자본주의’, ‘프리타 자본주의’가 그것이다.

한국은 오는 7월부터 종업원 300인 이상 사업장과 공공기관을 대상으로 ‘주 52시간 근무제’를 시행한다. 문재인 정부는 연간 노동시간을 2069시간에서 1800시간대로 줄이는 것을 최우선 국정과제로 삼아 추진했고, 이번 법 개정은 그 결실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시행을 앞두고 기대와 우려가 뒤섞인 다양한 목소리가 존재하는 것이 사실이다. 다만 법은 늘 현실의 변화를 뒤늦게 쫓아간다. 힘들지만 가야 할 길이다. 불명예스럽게도 한국은 멕시코와 함께 OECD 국가 중 최장 노동시간을 기록하고 있으며, 현장 곳곳에서는 업계를 막론하고 노동자의 비명이 끊이지 않는다.

출퇴근길 붐비는 대중교통 안, 직장인의 머릿속은 안녕하지 못하다. 기술의 진보로 ‘언제, 어디서나’ 네트워크 환경에 접속할 수 있는 태세를 갖춘 만큼 ‘언제, 어디에서’ 업무 관련 알람이 날아들지 모른다.

「죽도록 일하는 사회」 모리오카 고지 지음·김경원 옮김(지식여행)
「죽도록 일하는 사회」 모리오카 고지 지음·김경원 옮김(지식여행)

이뿐만이 아니다. 우리는 주문과 동시에 송장번호가 찍힌 메시지를 받고, 다음 날 울리는 초인종 소리를 듣는다.

클릭 한 번이면 ‘당일 배송’이 당연시된 택배, 새벽이건 밤늦게건 아무 때나 갈 수 있는 24시간 편의점 등등. 누군가의 삶이 편리해지는 만큼, 누군가의 노동환경은 악화된다. 눈뜬 순간부터 잠들기 전까지 일하는 우리는, ‘더욱 오래, 더욱 열심히’ 일할 것을 강요받는 사회에 살고 있다. 

장시간 노동은 인간다운 생활을 보장하지 않는다. 삶을 갉아먹는 장시간 노동의 배경과 원인, 그리고 해결 방안을 함께 모색해야 할 때다. 나아가 스스로 일하는 방식을 되돌아보고, 일과 생활의 균형을 찾기 위한 실마리를 발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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