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트레이트 연재-보이지 않는 경제학] 〈2〉생산의 발견
[스트레이트 연재-보이지 않는 경제학] 〈2〉생산의 발견
  • 현재욱 (jeffhyun@naver.com)
  • 승인 2018.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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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세기에 나타난 자본주의로 인해 사람들의 생활은 풍요로워졌다. 그러나 자본가들의 무한 이윤획득에 의해 세계 경제는 불균등하고 불공정해지고 있다. 정치적으로도 강대국의 힘이 거세지면서 각종 모순적 요소가 심화되고 있다. 이러한 문제의 원인을 알기 위해선 현대 경제의 중요한 쟁점들이 무엇인지 이해하고, 그 쟁점들의 핵심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경제학의 세계에서 벌어지는 모든 현상과 논쟁을 우리가 알아야 할까? 몰라도 무방한 것들이 있지만, 반드시 알아야 할 것들이 있다. 경제학 논쟁이 경제 정책으로 이어지고, 그 정책은 보통 누군가에게는 유리하고 누군가에게는 불리할 뿐 아니라 나라의 운명과도 연결되기 때문이다. 스트레이트뉴스는 오늘날 우리 사회에 뜨거운 쟁점으로 떠오른 경제의 주요 요소들을 비판적으로 바라볼 수 있도록 본지 선임기자 현재욱의 저작인 「보이지 않는 경제학」를 연재한다. [편집자 주]

생산의 발견

시간을 거슬러 빅뱅에 이르면, 과학과 신화의 차이는 크지 않아 보인다. 혼돈(chaos)의 풍경은 태초의 말씀으로 전해졌고, 바둑을 배운 인공지능이 인간을 제압한 오늘날에도 복잡계의 불확실성은 여전히 인간의 상상력을 자극한다. “빛이 있으라.” 얼마나 명쾌한 지시인가! 21세기의 총명한 인간들은 신을 모방하여 혼돈을 제거하려고 시도해 보았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인플레이션이 있으라, 일자리가 생겨라, 경제여 회복하라, 거품은 꺼지지 마라. 과학자들이 측정한 지구의 나이는 45억 4,000만 년(±5,000만 년)이다. 이산화탄소와 메탄가스로 감싸인 볼품없는 행성의 표면에 스스로 움직이는 작은 화합물 덩어리, 즉 생명체가 등장한 때는 대략 38억 년 전이다. 인간의 감각으로 가늠키 어려운 긴 세월이 흐르는 동안, 헤아릴 수 없는 생물종이 번식하고 소멸하고 진화하면서 변화무쌍한 자연계를 만들어왔다.

생존을 둘러싼 외부 조건은 일정하지 않았다. 대기의 구성은 불안정하고, 대륙은 돛단배처럼 떠다녔으며, 때로 거대한 운석이 지표면을 강타했다. 6,500만 년 전쯤에는 지구상 생물종 가운데 75퍼센트가 갑자기 사라져 버린 적도 있다. 지구에 존재했던 생물종의 99.99퍼센트는 우리와 함께 살고 있지 않다. 어떤 생물종이건 최대한 많은 후손에게 자신의 유전자를 전달하려고 한다. 식물이든 동물이든 마찬가지다. 생장하고 번식하려면 에너지가 필요하고, 에너지원을 확보하려면 공을 들여야 한다. 즉 입으로 삼키든 뿌리로 흡수하든 먹이를 놓고 경쟁하지 않으면 안 된다. 먹이가 되는 자원은 유한하기 때문이다.

‘자원의 희소성(scarcity)’은 경제학에서 중요한 개념이다. 모든 경제학파의 현란한 이론은 여기에서 출발한다. 경제학이라는 학문이 생긴지는 250년밖에 안 되었지만 경제는 생명이 탄생하는 그 순간에 시작되었다. 생명활동은 곧 경제활동이고, 경제활동은 자원의 희소성에서 비롯한다. 예컨대 화성이나 목성에 자원이 부족하다는 말은 성립하지 않는다. 아직까지 그곳에서 생명체가 발견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경쟁은 종(種)과 종 사이에서뿐만 아니라 같은 종 안에서도 벌어진다. 힘 빠진 우두머리를 몰아내고 암사자 무리를 장악한 숫사자가 올망졸망한 새끼들을 모조리 물어 죽이는 것은 개체 간 경쟁의 잔혹한 사례다. 왜 숫사자는 스스로 왕국의 세력을 위축시키는 바보짓을 할까?

새끼들이 자라면 훌륭한 사냥꾼이 될지도 모르는데 말이다. 경쟁에서 이긴 숫사자의 무자비한 행동 뒤에는 더 강한 세대를 육성하려는 유전자의 원대한 계책이 숨어 있을지도 모른다. 이것을 올바른 행동이라고 칭송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인간도 종종 그런 짓을 한다. 역사에는 권력을 둘러싼 골육상쟁이 무수히 기록되어 있다.

다른 종과의 경쟁만 놓고 보면 호모 사피엔스(Homo Sapiens)만큼 성공적인 종도 찾아보기 어렵다. 서식지의 넓이와 개체 수의 증가 속도에서 현생인류와 겨룰 만한 포유류는 쥐와 개 정도다. 쥐는 사람의 낭비벽을 활용하는 탁월한 재능을 가졌고, 개는 아예 사람과 함께 사는 방법을 선택했다. 개는 가축으로 선택된 최초의 동물이다.

불과 1만 2,000년 전까지만 해도 지구의 절반은 눈과 얼음으로 뒤덮여 있었다. 인간종의 개체 수는 1만 명, 남극을 제외한 전 대륙에 띄엄띄엄 흩어져 살았다. 봄이 점점 길어지고 인류 문명이 꽃피기 시작했다. 빙하가 녹으면서 해수면이 차오르듯 인구도 꾸준히 증가했다. 기원 전후의 세계 인구는 약 2억 명으로 추산한다. 산업혁명이 확산되던 1804년에 10억을 돌파한 인구는 1927년에 20억, 1960년에 30억을 기록했다. 그리고 그 2배인 60억이 되기까지 딱 40년이 걸렸다. 현생인류의 개체 수는 2017년 기준 74억 명이다.

호모 사피엔스는 어떻게 이런 놀라운 성공을 거둘 수 있었는가? 불을 이용하고 도구를 제작하고 언어를 사용하는 등 여러 요인을 찾을 수 있지만, 경쟁력의 핵심은 아무래도 압도적인 생산력일 것이다. 자원을 획득하는 능력을 비교하면, 수렵·채집 시대에는 인간과 다른 동물의 차이가 그리 크지 않았다. 사자 무리는 인간의 무리보다 능숙하게 사냥을 했고, 긴팔원숭이는 인간보다 효과적으로 과일을 채집했으며, 물수리는 인간보다 빨리 물고기를 낚아챌 수 있었다.

인간이 ‘생산(production)’이라는 새로운 방법을 찾아냈을 때 극적인 변화가 일어났다. 경제학에서는 인간의 경제활동에 필요한 물적 자원을 ‘재화(goods)’라고 한다. 수렵·채집 시대에 물고기, 새알, 달팽이, 열매 같은 재화는 대부분 획득하자마자 곧바로 소비하여 없어졌다. 이런 점에서 인간과 다른 동물의 차이는 두드러지지 않았다. 그런데 호모 사피엔스 가운데 한 무리가 특정 재화의 일부를 소비하지 않고 남겨 두었다가 새로운 재화를 창출하는 데 투입하기 시작했다. 처음에 그 낯선 광경을 목격한 사람은 놀라서 외쳤을지도 모른다. 썩지도 않은 알곡을 땅에다 마구 던지고 있었으니 말이다.

이런 행위를 ‘자본적 투자’라 하고, 생산에 쓰이는 재화를 가리켜 ‘자본재(capital goods)’라고 한다. 예를 들어 나무를 깎아 지팡이를 만들면 소비재가 되고, 사냥용 몽둥이로 쓰면 자본재가 된다. 이때부터 인간은 야생의 동물과 확연히 다른 길로 접어들었다. 이른바 ‘농업혁명’이 시작된 것이다. 대략 1만 년 전의 일이다. <계속>

※ 이 연재는 저자(현재욱)와 출판사(인물과사상사)의 동의로 게재한 글입니다. 무단 도용을 금지하며, 위반 시 법적 처벌을 받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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