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 정경유착 흑역사 종식…경영투명성 확보 앞장서야

[스트레이트뉴스=이호연 선임기자] 삼성그룹이 고 이건희 회장의 26조원 규모의 상속재산에서 12조원에 달하는 상속세를 5년간 분할 납부한다. 나아가 문화재급 미술품을 국민에게 돌려주고 소아암 등 의료공헌을 포함해 모두 4~5조 원 상당의 사회환원을 약속했다. 유산의 60%를 납세 기부하는 셈이다.

애플 창업자인 스티브 잡스의 상속세 28억달러(3조여원)의 5배를 크게 웃도는 삼성가 3세의 대범한 사회환원에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세계도 주목했다. 이병철 선대 회장의 기업보국의 유지가 고 이건희 회장으로 이어지며, 이재용 부회장 등 3세 경영에서 글로벌 삼성에 걸맞은 사회적 책임을 보여주는 결행이라는 평가가 이어 나온다. 

"납세는 국민의 당연한 의무다." 유족의 간결한 사회환원의 취지는 울림으로 다가온다.  

삼성 일가의 통큰 사회환원은 수감 중인 이재용 부회장의 사면 요구와 맞물려 있지 않은 진정성으로 다가올 때 떨림이 있을 것이다.

2008년 삼성 특검이 비자금 사건을 발표한 직후, 이건희 회장은 회장에서 물러나면서, "삼성 임직원 명의의 1,199개에 달하는 이건희 회장 차명 계좌를 실명으로 전환할 것이다"면서 "관련 세금은 깨끗하게 납부할 것이고, 세금을 내고 남은 돈은 사회를 위해 좋은 일에 쓰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이 약속들은 생전에 지켜지지 않았다.

공교롭게도 이번 삼성 일가가 발표한 4~5조원 규모의 사회공헌금액이 당시 밝혀진 비자금 4.5조원과 엇비슷한 규모다. 고 이건희 회장의 생전 약속을 후손들이 고인 사후에 이행한 것이어서 의미가 남다르다.

이건희 회장은 생전 "말이 씨앗이다. 좋은 종자를 골라서 심어라"고 했다. 또 "자신과 가족을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 사회와 더불어 사는 상생의 정신으로 기업을 꾸려나가야 한다"고도 했다.

사재 출연 등 고인 생전 약속의 씨앗이 사회와 기업이 상생하는 사회환원의 결실로 이어지도록 한 후손의 결단에서 개발년대의 재벌성장의 흑역사에 종지부를 찍고 사회적 책무에 앞장서는 재계 선도의 삼성그룹 신 경영관이 느껴진다.

삼성 1천여개 차명계좌 '비자금 적발'

지난 2008년 삼성특검은 4조 5천억 원 규모의 차명자산이 삼성 임직원 명의의 차명계좌 1,199개의 차명계좌가 밝혀냈다. 이후 2018년 1월 민주당 FT는 차명계좌 32개를 추가로 발견했다고 발표했다.

이호연 스트레이트 선임기자
이호연 스트레이트 선임기자

하지만, 이병철 전 회장이 언제 어떤 경로를 거쳐 언제 어떤 방식으로 4조 5천억원 규모의 비자금을 조성했는지에 대해 밝혀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

2019년 6월 15일 금융위원회는 제9차 정례회의를 열고, 삼성증권을 포함한 4개사에 12억3700만원의 과징금을 부과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어 금융감독원의 조사 과정에서 추가로 밝혀진 이건희 차명계좌에 대해, 4개 증권사에 개설된 9개 차명계좌를 본인의 설명으로 전환할 의무가 있음을 통보하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삼성 비자금 사건 관련 법 적용

통상적으로 비자금은 수입금액 누락 또는 비용 또는 투자금액 부풀리기를 통해 조성된다. 비자금 조성행위는 회사 또는 소액주주들의 이익을 편취한 것으로, 비자금 조성 주체는 횡령, 배임, 그리고, 탈세 등의 범죄를 저질렀을 가능성이 크다.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특경법’)에 따르면, ‘횡령이나 배임 등을 통해 50억원 이상의 이득을 보았을 경우,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에 처하도록 규정돼 있다. 그리고,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특가법’)에 따르면, ‘조세포탈 금액이 연간 10억원 이상인 경우,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에 처하도록 규정돼 있다.

하지만, 고 이병철 회장은 어떤 처벌도 받지 않았다.

고 이건희 회장은 해당 비자금을 차명계좌로 유지하면서 상속세 신고에서 고의로 누락시켰다. 이런 행위는 조세범처벌법 제3조 제1항에 규정된 ‘사기나 기타 부정한 행위’에 해당‘된다. 해당 금액은 10억원 이상인 까닭에 특가법 규정에 따른 처벌 대상이다. 고 이건희 회장도 처벌을 피해 나갔다.

고 이병철 회장은 천문학적 규모의 비자금을 조성하는 과정에서, 계열사 임직원들이나 가신들의 조력을 받았을 것이다. 불법 행위에 가담한 정도에 따라 당시의 임직원들도 처벌을 받았어야 옳았을 것이다.

고 이병철 회장이나 고 이건희 회장이 장기간 차명계좌로 비자금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금융권 인사들이 철저하게 비밀을 유지해 준 덕분일 것이다. 은행이나 증권사 임직원이 이런 거액의 비자금의 실체를 몰랐을 가능성은 희박하다. 최소한 STR(의심거래보고) 위반에 대한 책임을 져야 했을 것이고, 가담 정도에 따라 공범으로 처벌을 받았어야 옳았을 것이다.

검찰 등의 사정 당국은 탈세 관련 전속고발권은 국세청의 고유권한으로, 국세청의 고발이 없었다는 핑계를 둘러댈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방대한 자체 정보망을 자랑하면서도 인지를 하지 못한 책임은 피할 수 없을 것이다. 검찰은 최소한 ’대국민 사과‘는 했어야 옳았을 것이다.

국세청도 우리나라가 자진신고납부제도를 채택하고 있어, 일단 납세의무자의 도덕성을 가지고 신고를 했다고 추정할 수밖에 없어 어쩔 수 없다는 핑계를 댈 수 있다. 그리고, 과세관청 입장에서 한정된 예산과 인원으로 합리적인 행정 노력을 기울였지만, 제척기간이 경과 해 어쩔 수 없었기 때문이라는 변명을 할 것이다. 하지만, 국세청이 세원 포착 및 조사를 담당하는 엄청난 조직망과 차세대 국세 행정 시스템까지 갖추고 있으면서도 이런 거액의 탈세 행위를 수십 년간 적발하지 못했다는 점은 크게 반성해야 할 일이다. 적어도 ’대국민 사과‘는 했어야 옳았을 것이다.

삼성 봐주기 '의혹' 증폭

참여연대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08년 4월 7일 국세청은 금융위원회에 ‘1998~2001년 사이 타인의 명의를 빌리거나 도명하여 개설한 차명계좌가 금융실명법 제5조에서 규정하는 실명에 의하지 아니하고 거래한 금융자산’에 해당하는지 여부에 대해 질의했다.

금융실명법 제5조에 따르면, ‘실명에 의하지 아니하고 거래한 금융자산에서 발생하는 이자 및 배당소득에 대하여는 소득세의 원천징수세율을 100분의 90’으로 하도록 규정돼 있다.

국세청은 삼성 차명계좌와 관련해 과세 가능성 여부를 검토할 목적으로 질의를 했을 것으로 추정되는데, 지나치게 소심한 행정처리로 여겨진다.

이에 대해 금융위원회는 나흘 뒤 국세청에 ‘1993. 8. 13.(긴급재정명령) 금융실명제 실시 이후 개설된 계좌는 무조건 실명계좌이므로, 1998년 이후 개설된 해당 계좌는 차·도명계좌라 하더라도 비실명 금융자산이 아닌 실명 금융자산’이라는 답변을 했다.

금융위원회의 ‘실명에 의하지 아니하고 거래한 금융자산’이란 법문의 해석이 이현령비현령 격이다. 정부 부처 간 경쟁적으로 ‘삼성 봐주기’를 위해 ‘짜고 치는 고스톱’판을 보는 듯하다.

자금세탁방지(AML) 3법을 통한 해결방안

우리 정부는 지난 2020년 4월 20일 국제자금세탁방지기구(FATF)로부터 2차 ‘상호평가보고서’를 제출받았다.

FATF는 해당 보고서에 우리 정부에 우선적 조치(Priority Actions)가 필요한 8가지 권고사항을 나열했다.

8가지의 우선 조치가 필요한 사항 중 비자금 차명유지와 관련된 내용은 다음과 같다.

첫째, ‘조세범죄 기반 자금세탁범죄를 기소할 수 있도록 법령을 개정해, 자금세탁 전제범죄에 포함되는 조세범죄 범위를 확대해야 한다. 예를 들어, 전제범죄의 범위를 의심거래 보고의무가 있는 범죄들에 맞추어 조정하는 방안 등’

둘째, ‘몰수대상 자산 중 실제 환수액을 늘릴 수 있는 조치를 지속적으로 모색하고, 몰수 및 환수를 활성화할 수 있도록 기제와 조치를 체계적으로 이용해야 한다.’

셋째, ‘차명계좌 사용을 예방할 수 있는 정책적 조치를 지속적으로 추진하고, 차명계좌를 이용한 자금의 흐름을 수사추적할 수 있도록 법집행기관의 능력을 활성화 및 확대할 수 있는 도구들을 탐색하는 등의 긍정적 노력을 지속해야 한다.’

FATF는 비자금 조성행위를 ‘전제범죄(predicate offences)’로 규정했는데, 비자금 조성과 관련된 선행범죄를 뜻한다.

문재인 정부의 강력한 의지 긴요

우리나라는 지난 2009년에 첫 상호평가를 받았고, 지난해 2차 상호평가를 받았다.

문재인 정부는 2차 FATF 상호평가에 대비해, 2015년 10월부터 12개 정부 부처가 참여하는 FATF 상호평가 합동대응반을 구성하는 등의 호들갑을 떨었다.

FATF는 2009년 6월 ‘자금세탁방지 및 테러자금 조달 금지’란 제목의 상호평가보고서를 통해, 우리 정부가 AML(자금세탁방지) 관련 제도를 강화할 것을 권고했다. 하지만, 우리 정부는 그동안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고 있다가 2차 상호평가 시점이 임박해오자, 정부는 급하게 2019년 말 다수 법안을 발의해 국회를 통과시켰다.

우리 정부는 1차 상호평가보고서가 제출된 이후 10년이란 세월을 그냥 흘려보낸 셈이다. 정말 하기 싫었겠지만, 마지못해 처리했다는 인상이 짙다. 기득권 세력의 저항도 대단했을 것이고, 정치권도 정치자금 투명성 확보와 관련돼 있어 내심 꺼렸을 것으로 짐작된다.

자금세탁방지 관련 법과 제도들은 우리나라의 의사와는 무관하게 미국과 OECD등의 압력에 의해 시행됐다. 우리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 하루라도 빨리 외부의 압력에 기대서라도 금융 투명성 강화를 위한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자금세탁방지 관련 법과 제도들은 우리나라의 의사와는 무관하게 미국과 OECD등의 압력에 의해 시행됐다. 우리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 하루라도 빨리 외부의 압력에 기대서라도 금융 투명성 강화를 위한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금융투명성 확보를 위한 개혁은 건강한 정치와 사회를 위해 늦춰서는 안되는 현안이다. 삼성 일가가 이번에 결행한 통큰 사회환원은 과거 개발년대에 정경유착의 유습을 종식하고 사회와 상생하는 경영의 진면목이다. 재계가 나아가야 할 ESG경영의 신지평이기도 하다. 사회와 함께 성장하고 발전하는 재계의 상생 경영은 평시의 투명 경영에서 더욱 빛을 발휘한다는 사실, 대한민국이 명심해야 한다.

< 기획 시리즈를 왜 시작하는가?>

- FIU 제도보완을 통한 탈세와 범죄 발생 억제해야

 

YS 정부는 1993년 8월 12일 전격적으로 ‘금융실명거래 및 비밀보장에 관한 긴급재정경제명령’를 발동함으로써 우리나라는 금융실명제와 관련해 첫발을 떼었다. 이후 1997년 말 국회가 ‘금융실명거래 및 비밀보장에 관한 법률’을 통과시킴으로써 금융실명제를 시행하고 있다.

 

2001년 9월 3일 국회에서 '특정금융거래정보의 보고 및 이용 등에 관한 법률'과 '범죄수익 은닉 규제 및 처벌 등에 관한 법률'을 통과시켰고, 같은 달 27일 공포됐다. 2008년 12월 22일에는 '공중 등 협박목적을 위한 자금조달행위의 금지에 관한 법률'을 시행함으로써, 이른바 우리나라는 ‘자금세탁방지(AML, Anti-Money Laundering) 3법을 시행하고 있다.

 

이러한 금융 투명성 강화를 위한 법이 시행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역대 정권마다 발생하는 대형금융사기, 악덕 기업주들의 비자금 조성, 불법 정치자금 수수, 거액의 탈세, 그리고, 해외 불법 자금 밀 반출 등의 사건이 끊임없이 발생하고 있다.

 

이런 일이 반복되고 있는 이유는 법이 제대로 작동되고 있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검찰이나 국세청 또는 관세청 등의 엉성한 감시망도 문제지만, 가장 중요한 문제는 정부가 금융 투명성 강화를 위한 의지가 약하기 때문일 것이다. 정치인이나 재력가 등의 강력한 로비력도 단단히 한 몫을 차지하고 있을 것이다.

 

지난해 4월 20일 OECD 산하 FATF가 우리 정부에 제출한 제2차 상호 평가보고서를 중심으로, 향후 10회에 걸쳐 우리가 금융 투명성 강화를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인지 살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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