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중보건은 국가의 몫이다>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때문에 온 나라가 몸살이다. 1번 환자가 처음으로 확진 판정을 받은 지 20일 만에 확진자는 이미 세 자릿수로 늘어났다. 다른 발생국가와 비교해도 한국의 환자 수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유럽 등 선진국에서는 확진자 수가 모두 한 자릿수 대에 불과하다. 영국과 독일, 프랑스, 미국에서는 각각 4명 내지 2명의 환자가 발생하는데 그쳤다. 중동국가 중 사우디, 아랍에미레이트에 이어 확진자가 많은 요르단(19명)과 카타르(13명)가 모두 20명 미만이며 쿠웨이트 등 기타 국가는 한 자리 수에 머무르고 있다.

 

우리의 경우는 초기 방역실패가 결정적이다. 감염 경로에 노출돼있던 지역병원이 감염 환자를 적절하게 통제하지 못했고 확진 판정 이후에도 신속한 대응조치를 취하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한국 최고의 의료기관이라는 이 병원에서 2차 또는 3차 감염된 환자가 전체 발생 환자의 3분의 1이 넘는다. 결과적으로 한국 최고라는 삼성서울병원이 역설적이게도 메르스를 전국적으로 확산시키는 매개체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지난 6월 4일 박원순 서울시장은 심야 기자회견을 통해 삼성서울병원 소속 의사가 메르스 감염 상태에서 1500여명의 시민들과 접촉한 사실을 알렸다. 병원 이름 공개는 절대 없다던 정부가 한 발 물러서고 지방자치단체에 확진 권한부여 등 정부와 지방 간 유기적 협조체제 강화로 숨을 돌리자 결국 삼성서울병원도 국민을 향해 고개를 숙이고 나섰다.

 

많은 여론이 감염 환자들을 제대로 격리하지 않은 삼성서울병원을 크게 비난하고 있다. 그러나 냉정하게 따지자면 감염병 확산을 막는 일은 영리병원인 삼성서울병원의 소관사항이 아니다. 예나 지금이나 감염병을 예방하며 주민 모두의 건강을 증진시키기 위한 기술인 ‘공중보건’은 영리병원이 아닌 국가의 고유사무에 속한다. 그래서 정부조직법 제38조는 보건복지부 소관 업무로 ‘보건위생과 방역’을 분명하게 규정하고 있다. 그러므로 삼성서울병원은 메르스 환자를 확진할 시약조차 보유하고 있지 않은, 일개 영리병원일 뿐이다.

 

공중보건은 돈 벌이와는 무관한, 그야말로 공적 이익을 추구하는 기술 사무이다. 사적 이익을 앞세우는 삼성서울병원과 같은 영리병원과는 결코 양립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나라 보건행정을 총괄하는 보건복지부의 고위직들은 과연 공중보건을 담당하기에 충분한 자질과 능력을 갖추었는가?

 

<보건전문가 없는 보건행정>

 

먼저 문형표 복지부 장관을 보자. 미국 펜실베이니아대에서 재정·복지를 전공한 경제학 박사 출신이다. 귀국 후 줄곧 한국개발연구원(KDI)에서 재정·복지를 연구해왔다. 박근혜 대통령이 연금개혁을 위해 발탁한 연금 전문가이다. 현재 메르스 사태에서 그의 보직은 중앙관리대책본부장이다.

 

다음으로 장옥주 차관이다. 행시 25회 출신으로 1982년 보건복지부에 입부, 주로 장애인, 아동, 청소년, 노인 등 사회복지 분야에서 근무했다. 사회복지학 박사로 직전 청와대 보건복지비서관 출신이다. 그는 현재 박 대통령 지시로 8일부터 구성한 메르스 신속대응팀의 공동팀장을 맡고 있다.

 

보건복지부에는 주요 정책을 결정하는 1급이 4자리가 있다. 이 중 감염질환 관련정책을 담당하는 보건의료정책실장이 있는데 이마저도 행시 31회 출신 권덕철 실장이 차지하고 있다. 그는 자활지원과장, 사회정책기획팀장, 보육정책국장, 복지정책관 등을 거쳐 직전 보건의료정책관으로 일해 왔다. 권 실장은 보육정책관 재직 시, 박근혜 정부가 야심차게 준비한 3~4세 무상보육정책 도입을 총괄한 복지부 내 손꼽히는 복지정책 전문가이다. 그런 그가 2년 넘게 보건의료 정책을 담당하는 실·국장으로 근무하고 있다니. 현재 그의 보직은 중앙관리대책본부 총괄반장이다. 정말 코미디가 아닐 수 없다.

 

보건의료정책실장 산하에는 3명의 국장이 있는데 보건의료정책관, 공공보건정책관, 한의약정책관이 그들이다. 이동욱 보건의료정책관은 행시 32회 출신이고 고득영 한의약정책관은 행시 37회 출신이다. 유일한 비 고시 출신이 권준욱 공공보건정책관이다. 예방의학을 전공한 그는 의사 자격증을 소지하고 있으며 보건학 박사 학위도 갖췄다. 1992년 보건복지부 방역과 사무관으로 특채되어 질병관리본부 감염병관리센터장 등을 역임했다. 2009년 신종인플루엔자 발생 당시, 대책본부 업무에 참여하여 발군의 실력을 발휘한 바 있다. 의사로서 직접 환자를 진료한 경험은 오래됐지만 그래도 그가 23명의 본부 실·국장 중 유일한 의사 면허 소지자이다. 그래서 그에게 중앙관리대책본부 기획총괄반장이라는 엄청난 짐을 지운 것이다.

한편 청와대에서 보건행정 업무를 조정하는 고위직들은 대체 어떤 사람들이고 관련 전문가일까? 대통령비서실 선임 수석이자 정책을 총괄하는 이는 현정택 정책조정수석이다. 그는 행시 10회 출신으로 오랫동안 경제기획원 등에서 일해 온 경제 관료이다. 이미 한 차례 청와대 경제수석과 KDI 원장을 지낸 경제통이다. 청와대는 현재 그의 보직이 청와대 메르스 긴급대책반 공동반장이라고 밝히고 있다.

 

또 한 명의 긴급대책반 공동반장인 최원영 고용복지수석은 ‘공중보건’을 총괄 조정 중이다. 그는 행시 24회 출신으로 1981년 보건복지부에 들어가 주로 기획, 정책, 연금 등의 업무를 맡아왔다. 특히 사스가 창궐한 2003년 당시 한직인 국립의료원 사무국장으로 밀려나 범정부 차원의 방역시스템을 목격할 기회조차 얻지 못했다. 그가 보건의료정책실장을 맡은 기간은 2008년 당시 고작 7개월뿐이다. 그런 그가 지금 청와대 긴급대책반장을 맡고 있다.

 

최원영 수석의 명을 받아 보건복지부 업무를 조정하는 김진수 보건복지비서관 역시 보건의료와는 전혀 무관한 복지전문가 출신이다. 그는 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과 국민연금관리공단 건강보험정책연구원 실장 등을 거친 건강보험 분야 전문가이다. 장옥주 차관 발탁으로 인한 복지분야 공백을 메꾸기 위해 등용된 케이스라 하겠다. 이처럼 청와대 고위직 3명은 ‘공중보건’은커녕 일반 보건의료와도 거의 무관한 인물들이다.

 

정책이란 공공문제를 해결하고자 정부에 의해 결정되는 행동방침을 말한다. 이상에서 살펴본 것처럼 전문가도 거의 없다시피 한 상태에서 주로 행정고시 출신 관료들로만, 거기에 기껏해야 경제·복지 전문가를 더하여 입안하고 결정해온 정부의 방역정책이 과연 실효성이 있었을까? 그렇게 허둥대고 있는 순간에도 사적 이익의 극대화를 앞세운 대형 영리병원에 대하여 행정 관료들이 감싸는 것으로 비쳐졌을 텐데, 이들 간의 부적절한 유착을 의심한다면 지나친 기우인가?

최 광 웅

참여정부 청와대 인사제도비서관
민주당 조직사무부총장
현 데이터정치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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